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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유배문학 「남정(南征)」 천 리 먼 남쪽 거제도로 유배길을 떠나다>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이번 지면에 소개하는 「남정(南征), 남쪽으로 유배된 뒤에 짓다(南征 已下南遷後所作)」는 조선 후기의 문신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가 1689년(기사년) 기사환국으로 인해 한양에서 천 리 길이 넘는 유배길에 오르면서 총 9일이 걸려, 거제도에 도착할 때까지 그 여정을 적은 장문의 오언고시다. 저자 김진규는 송시열의 제자이자, 집안 분들 모두 서인(노론)의 중심인물이었다. 이 작품은 유배 가사 중에서도 상당히 이른 시기에 작성되었으며, 개인적인 고난을 넘어 충절과 자기 수양의 의지를 담고 있는 중요한 문학적 자료다. 김진규의 이 작품은 유배 생활의 고통을 단순한 원망이 아니라 자기 수양의 계기로 삼으려는 선비의 자세를 잘 보여준다. 이 고시의 전체 분량은 1,370자에 달하는 장편 가사(歌詞) 형식이다.
○ [한문 문체] 이번 죽천(竹泉)의 운문(韻文) 「남정(南征)」과 같이, 보통 서문(序文)과 고시(古詩, 오언 또는 칠언) 본문이 결합된 형태를 지칭할 때는 보통 '병서(幷序)' 또는 '시병서(詩幷序)'라고 부른다. 먼저 서문에서 시를 짓게 된 배경, 감회, 또는 인적 사항 등을 산문 형식으로 먼저 밝히고, 그 뒤에 본문인 시(詩, 오언‧칠언고시)를 덧붙이는 구성 방식이다. 이 글은 조선후기 문신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죽천집(竹泉集) 권2(卷之二) 시(詩)편에 실려있다.
*「남정(南征)」의 특징으론, 서(序)에서 시의 창작 동기나 구체적인 상황을 산문으로 설명한다. 이어 본문은 운문(詩)으로 서문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시적 정서를 고체시의 형식으로 표현했다. 보통 서문(序)이 붙은 시(詩)는, 단순한 시문(詩文)보다 당시의 상황을 더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기록 문학적 성격을 띤다.
○ ‘기사환국(己巳換局)’은 1689년(숙종 15) 장희빈이 낳은 아들을 원자로 정하는 문제를 계기로 경신환국(1680) 이후 집권해 온 서인이 축출되고 남인이 정권을 장악한 사건이다. 숙종은 인현왕후가 후사를 볼 수 있음에도 후궁의 자식으로 왕위를 잇는 것이 부당하다는 노론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총애하던 장희빈이 낳은 아들을 원자로 정하였다. 이에 노론의 영수 송시열이 다시 반대론을 제기하자 숙종은 그를 유배 보내고 영의정 등에 남인을 대거 등용하였다. 또한 숙종의 인현왕후 폐비 논의에 대해 노론 86명 등이 반대하다가 국문을 당해 처벌받았다. 숙종은 인현왕후를 폐비하고 장희빈을 왕비로 삼았다. 이후 갑술환국(1694)으로 서인이 재집권하자, 저자 김진규도 복권되어 지평으로 기용되었다. 그는 당시 정치적으로는 대표적인 노론 정객으로서, 스승인 송시열의 처지를 충실히 지킨 인물이었다.
*한편 「남정(南征)」의 서문에 담긴 내용은 유배 배경과 여정의 고통, 그리고 유배의 슬픔과 근심에 대해 기술했다. 1689년 6월 21일, 김진규는 형인 김진구(金鎭龜)와 함께 대간의 탄핵을 받아 섬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당시 서인이 실각하고 남인이 집권한 기사환국 시기다.) 도성 밖에서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노부모와 이별했으며, 그 다음 날 제주로 떠나가는 형과도 서로 다른 길로 갈라졌다. 이후 8일간의 고된 여정 끝에 유배지에 도착했으나 곧바로 병을 얻었다. 병석에 누워 이별의 슬픔, 험난한 여정, 낯선 풍토의 괴로움, 그리고 깊은 근심을 정리했다. 옛 현인들이 환난을 견뎌낸 법을 되새기며, 슬픔을 억누르고 스스로 나태해지지 않도록 경계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남정(南征)」의 본문에 담긴 내용은 당시 시대적 배경과 가족과의 이별과 유배길의 여정, 그리고 도착한 유배지에서 겪는 병고와 슬픔, 정신적 승화의 과정을 담고 있다.
즉, 광산 김씨(光山) 가문의 형제가 왕명(1689년)에 의해 동시에 유배길에 오르며 겪은 비장한 심경과 여정을 담고 있다. 이 시는 단순한 유배의 고통뿐만 아니라, 가족을 두고 떠나는 사대부의 인간적인 고뇌와 조상의 묘소를 지나치며 느끼는 죄책감이 잘 드러나 있다.
*내용인즉, 1689년 6월 당시 '광산 김씨' 가문의 형제가 동시에 해도(海島) 유배지로 쫓겨나게 된다. 시문 중에 "今春送尙書(올봄 상서를 보내다)"라는 구절로 보아, 앞서 유배된 숙부(김만중)나 집안 어른에 이어 조카들까지 화를 입은 긴박한 정치적 상황을 보여준다.
*주요 여정 및 내용을 살펴보면, 가족과 이별한 장소와 형제가 헤어진 갈림길, 유배길의 고난, 조상의 묘역을 통과하면서 느낀 점 등을 서술했다. 먼저 성남(城南) 근처 윤씨 댁(오음 윤두수의 고택)에서 노모와 가족들을 만난다. 이곳은 과거 오음과 월정 형제가 동시에 쫓겨났던 역사가 있는 곳이라 화자의 처지와 대비된다. 백발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두 아들의 손을 잡고 음식을 권하며 울먹이는 모습, 구석에서 흐느끼는 아내, 옷자락을 붙잡는 어린 딸과 곁에 앉은 아이의 모습이 매우 사실적이고 절절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어 형은 탐라(제주도)로, 동생(화자)은 멀고 험한 상군(裳郡, 거제의 옛 이름)로 향한다. 한강을 건너 남태령을 지나며 멀어지는 도성(종남산)을 바라보는 심경이 담겨 있다.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구토와 설사(곽란)를 겪고, 불어난 물 때문에 강을 건너기 위해 애를 먹는 등 고된 여정이 이어진다. 충청도 정민리(貞民里)에 있는 조부와 증조부의 묘소를 지척에 두고도 엄한 일정 때문에 들르지 못하는 불효에 가슴 아파한다. 이때 역리(鄭慶藎)가 나타나 "이 집안이 어찌 이리 액운이 깊은가"라며 위로하는 대목이 백미다. 이러한 유배길을 서술한 글은 문학적 특징을 가진다. 결국 이 시는 개인의 슬픔을 넘어, 조선 후기 세도 정치나 당쟁 속에서 몰락하거나 부침을 겪던 명문 사대부가의 비극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적거시(謫居詩, 귀양살이)의 성격을 띤다. 특히 가족애와 충심, 그리고 역사적 인물(오음 윤두수)을 인용하여 자신의 처지를 투영하는 방식이 돋보인다.
*이 시의 후반부는, 충청도 영동을 지나 경상도 성주, 진주, 고성을 거쳐 마침내 유배지인 거제도(裳郡)에 도착하여 그곳의 낯설고 척박한 환경을 마주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부분은 육로 유배길의 고단함에서 시작하여, 바다를 건너 유배지인 거제도에 들어서는 긴박한 순간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진주 남강에서 충신들의 절개를 생각하며 죄인의 몸인 자신을 자책하는 대목과, 도착한 거제도의 거친 자연환경(태풍, 안개, 염전, 시장 없음 등)에 당혹해하는 화자의 감정이 잘 드러나 있다. 마지막 구절 "형상이 말과 같은 물고기(有魚狀如馬)"는 유배객의 눈에 비친 신비롭고도 낯선 바다 생물을 상징하며, 고립된 섬 생활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 마지막 부분은 유배지에 도착한 후에 겪는 병고와 슬픔, 그리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정신적 승화와 달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시의 종반부에서 화자는 유배지의 척박한 환경과 육체적 질병으로 인한 절망을 딛고 일어선다. 맹자(孟子)의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임무를 맡기려 할 때 먼저 그 심신을 고달프게 한다'는 사상을 바탕으로, 현재의 고난을 자신을 단련하는 기회로 삼으려는 유교적 달관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제주도에 있는 형님에 대한 걱정과 고향에 계신 어머니에 대한 효심, 그리고 변치 않는 충심을 '한 치의 쇠(一寸鐵)'와 같은 의지로 승화시키며 시를 마무리하고 있다.
**「남정(南征), 남쪽으로 유배된 뒤에 짓다(南征 已下南遷後所作)」** 김진규(金鎭圭 1658~1716)
○<서문(序文)> 기사년(1689년, 숙종 15년) 6월 21일, 나는 형님(김진구)과 함께 대간의 탄핵을 받아 각각 바다 섬으로 유배되었다. 그날 성 밖으로 나와 하룻밤을 잤다. 하루를 지나 늙으신 부모님과 작별하고 길을 떠났으며, 또 하루를 지나 형님과 길을 나누어 갈라졌다. 다시 8일을 지나 고생 끝에 유배지에 도착했으나, 곧이어 병이 생기고 말았다. 문을 닫아걸고 베개를 베고 누워 있는 와중에, 이별의 슬픔과 길의 험난함, 낯선 풍토의 열악함, 그리고 근심스러운 마음의 고통을 애써 서술해 보았다. (글의) 끝에는 옛사람들이 환난에 대처했던 태도를 덧붙였는데, 이는 대개 슬픔과 근심을 억누르고 흐리멍덩함과 게으름을 스스로 경계하고자 함이다. 시의 전체 분량은 모두 1,370자이다.
[己巳六月二十一日 余與伯氏同被㙜彈 分謫海島 是日出宿城外 越一日別老親登程 又越一日與伯氏分路 又越八日辛苦抵所配 而疾隨以作 閉戶伏枕之中 聊叙別離之悲 道途之難 風土之惡 愁念之苦 終之以古人所以處患難者 盖欲抑悲憂而警惛惰也 詩凡千有三百七十字]
○<본문(本文)> 1689년 기사년(己巳年) 6월 병술일 저녁, 광산 김씨 집안의 형제가 동시에 해외로 유배를 떠나게 되었다. 상소문이 어지럽게 나열되었으나, 허물을 반성한들 어찌 다 알 수 있으랴. 거친 땅으로 내쫓김도 임금의 은혜이니, 두렵고 떨리면서도 오히려 감격스럽네. 대방(堂上, 대청 위)에는 두 어머니(할머니와 어머니)가 계시니, 슬픔이 깊어 차마 드릴 말씀이 없구나. 황혼녘에 사당에 하직 인사를 드리고, 성 밖 남쪽 길가에서 하룻밤 묵어가려네.
늙으신 부모님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자, 잠시 윤씨 성을 가진 이의 집(오음 고택)을 빌렸다. (이곳은 옛날 오음 윤두수가 그의 동생 월정과 함께 쫓겨났던 집이라네.) 오음 선생이 사시던 옛집에는 큰 나무들 절반이나 꺾이고 말았구나. 오음과 월정 두 어른께서 나란히 날개가 꺾였던 일을 생각하니, 감히 앞선 현인을 따를 순 없으나 지금 우리 형제의 일이 그때와 같구려.
형님께 어디로 가시냐 물으니, 아득한 남쪽 끝 탐라(제주도)라 하시고, 동생인 나에게 어디로 가느냐 물으니, 멀고도 험한 상주(裳州, 거제)라네. 어머니는 할머니를 부축하시는데, 백발이 모두 이마까지 내려오셨구나. 두 분이 두 아들의 손을 맞잡고, 애써 음식을 권하시네.
아내는 구석에서 흐느끼고, 서로 마주 보며 말없이 침묵할 뿐. 어린 딸은 내 옷자락을 끌어당기고, 어린 아들은 내 곁에 앉아 있네. 골육의 정으로 차마 헤어지지 못하는데, 친척과 친구들도 작별하러 왔구나. 이 길을 감히 지체할 수 없어, 억지로 일어나 문지방을 나서네.
얼룩덜룩 옷소매가 젖은 것은, 모두 어머니가 흘리신 눈물방울이라네. 울음을 삼키며 애써 밝은 표정을 짓는 것은, 어머니 마음이 더 아플까 두려워서라네. 막내 동생은 어리고 외로워 오직 중형과 백형만을 의지했는데, 말을 멈추고 다시 등을 어루만지니, 이별 중에 이 순간이 가장 가슴 아프구나.
한강을 이미 건너오니, 남산(종남산)이 점점 아득해지네. 동생은 뒤에 서고 형님은 앞장서니, 쓸쓸한 두 줄기 행렬이다. 날 저물어 작은 역촌에 투숙하여, 초가집에서 베개를 나란히 하고 누웠다. 처량한 밤비 소리에 옛사람의 기약(오음과 월정 형제간의 우애)을 감탄하노라.
갈림길인 구성(駒城, 용인)에서 헤어지며, 이별의 잔에 눈물을 섞어 마신다. 인생에 이런 이별이 또 있을까, 슬픔과 한이 가슴에 가득 차는구나. 아우와 조카는 여기서 돌아가니, 나그네의 회포를 억누르기 더욱 어렵네. 회오리바람은 이별의 슬픔을 어지럽히고, 지는 해는 길 위의 발자국을 비추네.
한밤중에 빗속을 뚫고 가니, 진흙탕 길은 미끄럽고 들길은 어둡기만 하다. 죽산부(竹山府, 용인·안성에 겹친 지역)에서 밤밥을 지어 먹으니, 새벽 닭소리가 어느새 나그네를 깨우네. 경기 땅이 이미 다하고, 호수와 들판의 길이 조금씩 멀어지네. 이때 마침 더위가 기승을 부려, 긴 여정에 햇살이 붉게 타오르는구나.
매미 소리는 숲에서 시끄럽고, 여름 구름은 먼 골짜기에서 피어오르네. 행인은 오랫동안 더위에 지쳐, 길 위에서 구토와 설사(癨亂)를 하기도 하네. 불어난 물에 까치천(鵲川) 길을 잃으니, 사공은 물줄기를 따라 배를 찾는다. 외치며 작은 배에 올라타니, 강을 건널 때 해는 이미 저물어 가네.
청주(上黨)에서 낮에 말에게 먹이를 먹이고, 문산(文山)에서 저녁에 채찍을 거두네. 새벽녘 형진(荊津) 나루를 지나니, 뭇 산들이 가파르게 둘러서 있구나. 서쪽을 바라보니 정민리의 묘역(조부와 증조부의 묘소)이 있고, 동쪽을 향하니 옛날의 약역(若驛)이로다.
엄한 일정에 밤낮으로 바삐 가느라, 조상의 묘소를 지척에 두고도 어긋나게 되었네. 역의 관리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역촌의 늙은 관리 정경진은 묘소가 가까워 대대로 아는 사이였는데, 와서 위로하며 말하길), "귀하의 가문에 어찌 이리 액운이 깊은가요. 올봄에 상서(尙書, 김만중) 어른을 보내드렸는데 바로 이 길로 지나가셨지요. 누가 알았으랴, 상서 어른의 조카께서 다시 이 길을 통해 멀리 가실 줄을." 나의 행차를 어찌 위로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대의 마음이 두텁다는 것을 잘 알겠네. (적등과 우화처럼 유배지를 선계로 여기며) 가는 곳마다 산수가 푸르르네. 외로운 신하 떠나는 걸음이 빠르니, 이 풍경을 그 누가 알아주리오. 높은 의리는 영원히 함께하리라.
○ (친구 송옥여의 종형이 마침 영동 현감으로 있어) 유배길 먹을 양식을 배낭에 채워주니, 길 가는 사람들이 어찌 그 내막을 알겠는가. 말을 멈춰 서서 (나의 처지를) 혀를 차며 안타까워하네. 길은 험하고 장맛비로 물이 넘쳐, 나아갔다 물러났다를 반복하며 길을 재촉하네. 험난한 고갯길을 오르고 올라, 비로소 남쪽 지방(영남) 땅을 밟았노라.
높은 곳에 올라 어머니 계신 곳을 바라보니, 아득한 구름과 안개만이 덮여 있네. 바라봐도 보이지 않을 것을 잘 알면서도, 몸을 굽혀 돌아보며 자꾸만 발걸음을 멈춘다. 김산군(김천)에서 아침을 먹고, 밤에는 성주 성곽을 향해 달리네. 말 앞에는 드문드문 반딧불이 비치고, 옷에는 괴로운 안개비가 젖어드네.
갈 길은 아직도 멀고 먼데, 내 말은 다리를 저니 어찌할꼬. 강개한 기상의 개성 상인이 대가도 따지지 않고 말을 빌려주었네. 여러 군현을 차례로 지나고, 험한 산봉우리도 자주 넘었노라. 저 멀리 가야산이 아득히 보이니, 옛날 고운(최치원) 선생이 머물던 곳이라네. 신선의 발자취를 밟아보지 못하니, 날개가 없음을 더욱 탄식하노라.
아아, 영남 지방은 땅이 어찌 이리도 넓단 말인가. 마을마다 오래된 괴목이 서 있고, 관로(官路, 국도)에는 자갈이 가득하구나. 들판에는 손님 맞을 주막 하나 없고, 논에는 벼를 지키는 원두막만 많네. 산길은 잔도(棧道, 험한 벼랑길)처럼 위태롭고, 바위는 벽돌처럼 네모나구나.
진주(晉山)는 한 지방의 큰 도시라, 벌판에 집들이 섞여 있네. 병마절도사의 성벽은 웅장하고, 수령이 머무는 관아는 화려하게 단장되었구나. 조그만 배로 남강을 건너가니, 단청 빛나는 촉석루가 눈부시게 서 있다. 열렬했던 김시민과 최경회 장군이여, 그 높은 절개는 어제인 듯 늠름하구나. 내 처지를 돌아보니 지금 그물에 걸린 몸이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뿐인 것이 부질없네. 초나라 굴원처럼 '이소(離騷)'를 잇지도 못하니, 충의로운 넋들(논개 등)에게 부끄럽지 않으랴.
가파른 삼기령 고개를 밤중에 넘으려니 나그네 마음이 떨리는데, 사나운 호랑이가 내 뒤를 밟고, 마을 개들은 갑자기 달려들어 짖어대네. 날이 밝아 고성(固城)을 지나니, 푸른 바다가 고을 남쪽에서 갈라지는구나. 엄숙한 삼도수군통제영의 산과 바다 사이로 원문(轅門)이 열려 있네. 나그네가 감히 곧장 지나갈 수 있으랴, 무사들이 관문을 엄하게 지키고 있구나.
길이 다하여 바닷가에 다다르니(견내량), 말에서 내려 배에 오르기를 재촉하네. 날은 저물어 바닷물은 하늘에 닿았고, 사나운 바람에 조수까지 밀려온다. 배의 현측은 물 푿는 두레박처럼 뒤집힐 듯하고, 파도 소리는 벽력같이 울부짖네. 표류하다가 정박할 곳을 놓치고, 간신히 물가에 배를 대었네.
이곳이 바로 내가 살아야 할 곳이니, 풍토가 놀랍고 두렵기만 하구나. 거대한 물줄기가 망망하게 에워싸고, 거친 산은 울창하게 가로막혀 답답하네. 거제현의 관아는 물가에 임해 있고, 백성들의 집은 대나무 껍질과 섞여 있구나. 몇 리를 가도 평평한 땅 하나 없고,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짠물 흐르는 갯벌뿐이네.
물건을 주고받는 시장도 없고, 병이 들어도 약 지을 곳을 모르겠네. 비가 오지 않아도 하늘은 늘 흐리고, 새벽이 아닌데도 안개가 늘 자욱하구나. 태풍이 일면 지붕이 뒤집히고, 고래가 놀면 물결이 요동치며 솟구치네. 물고기 중에는 그 형상이 말과 같은 것(해마 등)도 있구나. (현지인이 말하길 새로 이런 물고기가 나타났다고 하네)
○유배지의 고통과 정신적 극복
사람을 잡아먹는 것이 교룡이나 악어보다 심하고, 장기(瘴氣, 독한 안개)는 가장 두려운 것이라 북쪽 사람(한양 사람)은 특히 견디기 어렵다네. 장정들도 장차 죽어 나가거늘, 하물며 나같이 파리하고 약한 몸이야 어떠하랴. 열흘 동안 시달리며 고생한 끝에, 도착하자마자 이미 병이 들었구나. 바다의 비린내가 창자와 배 속까지 스며드니, 음식을 멀리하게 되어 굶주린 마음만 타들어 가네. 베개에 엎드려 외로운 넋을 슬퍼하고, 등불을 돋우며 홀로 남은 그림자를 위로한다. 쓸쓸히 비 새는 집에서, 벽에는 뱀들이 꿈틀거리며 기어다니는구나. 깊은 밤 삼경까지 잠 못 들고 등불만 밝은데, 깊은 근심 백 가지가 어지럽게 몰려오네.
멀리 계신 쇠약하고 병드신 어머니를 생각하니, 황량하고 외진 시골 마을에 머물고 계시겠지. 위로해 드리지 못하고 도리어 걱정만 끼쳐드렸으니,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함이 스스로 한스럽구나. 하늘 끝이라 소식조차 드물어, 밤낮으로 헛되이 눈물만 닦네. 새 무덤(선영)에 가서 청소(성묘)도 못 해 드리는데, (선친의 묘는 경기도 광주에 있다) 돌아가고픈 꿈은 소나무와 잣나무 사이를 맴도네. 남은 슬픔에 겨우 거문고를 타보지만, (당시 상기를 마친 지 겨우 한 달이라) 깊은 통증은 늘 마음속에 새끼줄처럼 꼬여 있네.
이별의 회포를 저 바다에 부치니, 한라산 쪽(형이 유배된 제주)과 이곳 거제로 형제의 우애가 나뉘었구나. 물길이 걱정되고 다시 바람이 걱정되니, 돛대 달고 가는 형님의 배를 어찌 짐작이나 하랴. 생각건대 나는 본래 대대로 신하 된 집안으로, 대궐에 드나들며 임금을 가까이 모셨노라. (대과와 소과에 급제하여 은혜를 입고 임금을 알현했었지.) 임금님 계신 보좌 곁에서 은혜로운 관복을 입고, 붉은 계단에서 홀을 높이 들고 절했었네. 간과 뇌를 땅에 쏟는 수고로움도 어찌 마다했으랴, 서릿발 같은 절개로 조금이나마 나라에 보탬이 되길 바랐건만.
크나큰 은혜에 조금도 보답하지 못하고, 오히려 무거운 죄를 거듭 지었구나. 몸은 먼 바다 섬에 갇히고, 눈은 구름 낀 하늘에 막혔네. 그리운 마음 한 조각뿐이라, 멀리 계신 임금님(美人)을 홀로 생각하네. 언제나 길가랑에 버려질까(죽을까) 두려우나, 해바라기가 해를 향하듯 임금 향한 충성은 끝내 변치 않으리. 위로는 거룩한 조정의 은택을 저버렸고, 아래로는 조상님의 덕을 욕되게 하였네. 이 때문에 비통함과 분함이 더해져, 마음이 아프고 뼈를 찌르는 듯하구나.
슬픔을 머금고 있는 것도 부질없는 고통이니, 답답함을 떨쳐내고 조용히 이치를 풀어보리라. 우리의 도(道)는 본래 험난한 법이니, 옛사람들도 배척을 많이 당했었지. 부귀는 스쳐 가는 뜬구름이요, 근심과 슬픔은 나를 단련하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네. 처한 환경에 따라 스스로 힘쓰면, 가는 곳마다 스스로 얻지 못할 것이 없으리. 벼슬자리가 영화로운 것도 아니요, 귀양살이 바닷가가 고난인 것도 아니라네.
그 누가 모였다가 흩어지지 않겠는가, 슬픔 뒤엔 즐거움이 있음을 진실로 아노라. 부모님을 위로하는 길은 스스로 도(道)가 있으니, 이름을 날리고 몸을 닦는 것이라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곁에 있는 것과 같으니, 군자는 미혹되지 않는 법이지. 임금을 섬기는 것 또한 의리가 있으니, 나아가고 물러남에 마음이 변치 않으리라. 간절한 정성은 변치 않음이 귀한 것이니, 총애와 치욕에 어찌 깜짝 놀라겠는가.
슬프다, 내가 곤궁하고 괴로운 일을 당함은, 이것이 바로 하늘이 나에게 더해주는 시련이로다. 비유하자면 저 서리와 눈이 내린 뒤에야, 소나무와 대나무가 우뚝하게 빼어나는 것과 같네. 황홀하게 미혹된 마음을 깨닫고 나니, 깊은 근심과 걱정을 모두 씻어내었노라. 시험 삼아 옛 책을 가져다 읽어보니, 지난 역사의 본보기들이 뚜렷하게 나열되어 있네. 하늘과 사람을 어찌 원망하겠는가, 우러러보고 굽어보아도 부끄러움이 없노라.
삶과 죽음은 본래 명이 있는 것이니, 화와 복의 갈림길에 억지로 힘쓰기 어렵네. 오직 믿는 것은 내 마음속 '한 치의 쇠(굳은 의지)'뿐이니, 한 자나 되는 옥벽을 보물로 여기지 않으리. 이 마음을 진실로 편안히 할 수 있다면, 내 고향이 남쪽인지 북쪽인지 구별이 없으리라. 땅의 장기가 어찌 두려우며, 내 몸의 위태로움을 어찌 아끼겠는가.
가슴 속은 날마다 넓고 시원하니, 바깥 사물들이 감히 나를 핍박하지 못하네. 술이 있으면 마음껏 마시고, 밥을 먹을 땐 매번 배불리 먹으리라. 한가한 중에는 문득 시를 짓고, 흥이 나면 때때로 글씨를 써보네. 정신을 기쁘게 하니 스스로 즐거울 수 있어, 평생토록 싫증 나지 않기를 기대하노라. 편지를 보내 두 분 어머니(조모와 모친)께 알리노니, 나에 대한 근심과 염려를 이제 그만 거두소서.
[吾王十五年 六月丙戌夕 光山子弟兄 同時海外謫 㙜章紛羅列 省愆豈能識 投荒亦嘉惠 悸恐仍感激 堂上有兩母 所悲無辭白 黃昏辭先廟 出宿城南陌 老親要就訣 爲借尹氏宅 (卽梧陰古宅 梧陰甞與其季月汀同時斥逐) 梧翁昔攸宇 喬木半摧落 念翁與汀老 聯翩曾碎翮 前賢敢思希 卽事偶如昔 問兄將焉往 耽羅杳南極 問弟將焉往 裳郡遠兼惡 阿母扶王母 白髮俱垂額 雙携二子手 聊與勸飮食 細君泣向隅 相視但嘿嘿 幼女牽我衣 穉兒坐我側 骨肉不忍別 親朋亦來覿 此行敢遅徊 强起出門閾 斑斑衣袖濕 盡是母淚滴 呑聲爲好顔 母心恐轉戚 季弟幼而孤 唯依仲與伯 停驂更撫背 臨別最悽惻 漢水旣渡去 終南漸渺漠 弟後兄在前 蕭然兩行色 暮投小驛村 茅屋聯枕席 凄凉夜雨聲 感歎昔人約 歧路分駒城 離杯和淚酌 人生有此別 悲恨塡胷臆 弟姪從此返 客懷轉難抑 回風擾離思 殘日照行跡 中宵冒雨去 泥滑野徑黑 夜炊竹山府 晨雞俄警客 邦畿地已盡 湖甸路稍逖 維時暑氣盛 長途日色赤 蟬聲噪平林 夏雲生遠壑 行人久執熱 道暍又嘔癨 漲水迷鵲川 舟子緣流覔 呼呼上小艇 旣濟日欲昃 上黨晝秣馬 文山夕斂 策 凌晨過荊津 衆山繞崱屴 西望貞民塋 (祖考曾祖考墓在貞民里) 東向曾若驛 嚴程忙日夜 先壠違咫尺 驛吏太息言 (驛老吏鄭慶藎 以居近先墓 累世相識 來慰如此) 君家一何厄 今春送尙書 去路是所歷 誰知尙書姪 復由此遠適 我行何須唁 汝意諒不薄 赤登復羽化 到處山水碧 孤臣去意速 風景誰領略 高義永同宰 (友人宋玉汝之從兄時爲永同宰) 餱糧贐于槖 路人亦何知 立馬爲咄唶 途險又潦滿 出沒前且却 崎嶇上嶺嶠 始踐南服域 登高望母處 渺渺雲烟羃 極知望不見 局顧頻駐脚 朝食金山郡 夜走星州郭 疎螢馬前映 苦霧衣上着 我途尙迢遰 我馬 奈跛躃 忼慨松京賈 借騎不論直 郡縣漸屢過 嶂巘亦頻陟 縹緲瞻伽倻 孤雲所棲息 未能躡仙蹤 益歎無羽翼 嗟哉嶺以南 土地何遼廓 邑里挾古槐 官路遍碎礫 野無迎客店 田多守禾幕 山徑危似棧 巖石方如甓 晉山一都會 原野閭井錯 節度㙜隍壯 刺史舘宇飾 扁舟泛南江 有樓耀丹艧 烈烈金與崔 盛節凜如昨 自顧方在網 有志謾許國 又未續楚騷 能不愧毅魄 嶻𡺼三歧嶺 夜踰羈心惕 猛虎躡我後 村犬倐來攫 天明歷固城 溟渤縣南拆 肅肅統帥營 山海轅門闢 徒旅敢徑度 武士嚴關鑰 路盡迫海漘 下馬 催登舶 日暮水粘天 惡風兼漲汐 船舷翻桔橰 濤浪吼霹靂 飄流失渚步 辛苦傍涯泊 此地是我居 風土足驚戄 大浸茫圍環 荒山欝阻窄 縣廨臨浦漵 氓家雜叢籜 數里少平曠 四望皆鹵潟 交易無市虛 疾病昧醫藥 不雨天猶曀 非曉霧長塞 颶起屋掀倒 鯨戲波盪射 有魚狀如馬 (土人言新有魚如此) 食人過蛟鱷 瘴癘最可畏 北人尤難托 壯夫且死亡 何况我羸弱 閱旬經頓撼 始至疾已作 海氣腥腸腑 却食飢心惄 伏枕悲魂孤 挑燈吊影隻 蕭蕭雨漏屋 蜿蜿蛇蟠壁 深更耿到三 隱憂紛集百 遙憐衰病母 流落荒村僻 莫慰反 詒罹 自傷隳子職 天涯少音信 日夕淚空拭 新阡隔灑掃 (先人墓在廣陵) 歸夢繞松栢 餘哀甫彈琴 (時外除才閱月) 沉慟長銜索 離懷寄瀛海 漢挐分棣萼 愁水復愁風 颿檣那可測 念余本世臣 肺腑更通籍 (中大小科 謝恩皆蒙引見) 恩袍廹黼座 峩笏拜丹墄 敢憚塗肝腦 庶期裨涓爝 洪私未少答 厚罪乃重獲 身拘海島遠 目斷雲天隔 嬋媛一念餘 美人遙相憶 常恐塡溝壑 未終傾葵藿 上孤聖朝渥 下忝先世德 以玆增悲憤 心痛更骨刺 含悲亦浪苦 排悶且靜繹 吾道本迍邅 古人多擯斥 富貴過空雲 憂戚他山石 隨遇以勉勵 無入不 自得 軒裳不爲榮 嶺海不爲阨 誰能聚無散 固知哀有樂 慰親自有道 名揚與躬飭 在遠猶在側 君子非所惑 事君亦有義 進退心不易 忱誠貴無渝 寵辱詎須愕 嗟我遭窮苦 此天所增益 譬彼霜雪後 松筠乃挺特 恍然迷心悟 盡將幽憂滌 試取古書讀 昭昭列往則 天人豈怨尤 俯仰無愧怍 死生固有命 倚伏難容力 所恃一寸鐵 不寶盈尺璧 此心苟能安 吾鄕無南北 地瘴亦何惧 身危亦何惜 胷中日浩浩 外物無敢迫 有酒卽放飮 當食每飽喫 閑中輒賦詩 興來時戲墨 怡神自可樂 沒齒期無斁 寄書報兩母 憂念 可解釋]
[주1] 백씨(伯氏) : 맏형을 높여 부르는 말. 여기서는 김진규의 형인 김진구(金鎭龜)를 가리킨다. 같은 시기에 제주도로 유배갔다.
[주2] 대탄(㙜彈) : 사헌부와 사간원의 관리(대관)들로부터 탄핵을 받음.
[주3] 분적(分謫) : 나누어 유배됨. 소배(所配)는 배소(유배 거주지).
[주4] 혼타(惛惰) : 정신이 흐릿하고 게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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