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엉덩방아에 JP 빵 터졌다…그 사진에 숨은 ‘정치의 기술’ (88)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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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베버는 ‘정치는 단념의 기술’이라고 말했다. 정치란 해야 할 일을 어김없이 해내고, 해서는 안 될 일은 단념하는 기술이란 뜻이다. 따지고 보면 역사란 해서 안 될 일을 함으로써 저지르는 과오들과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빚어지는 잘못들의 기록이다. 즉 일의 완급과 선후를 가려 순리에 맞게 다스리는 것, 그것이 정치기술의 요체다.
1989년 10월 2일 김종필 공화당 총재(왼쪽)와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가 안양컨트리클럽에서 골프를 치던 중 티샷을 하던 YS가 실수로 엉덩방아를 찧자 두 사람이 파안대소하고 있다.
이들은 연이은 골프 회동에서 “우정과 소신을 가지고 협력한다”는 합의문을 발표했다. 두 야당 총재의 잦은 만남은 정가의 주목을 받았고 민주·공화당 합당설까지 나돌았다. 하지만 JP는 “골프를 치면서 합당 이야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고 말한다. 중앙포토
1990년대를 목전에 둔 89년 초 나는 단념할 것과 집중할 것을 가려내기 위한 고민이 깊었다. 88년 4·26 총선은 여소야대(與小野大)의 4당 체제를 출범시켰다.
이는 대화와 타협, 견제와 균형으로 국정을 이끌고 민주화를 실현하라는 국민의 뜻이었다. 하지만 그 한계점은 오래지 않아 드러났다. 나를 비롯한 정당 지도자들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주의와 분파주의로 정치는 혼선과 낭비에 휩싸였다. 정쟁과 선명성 대결로 국민은 정치를 멀리했고 노태우 대통령의 민정당은 집권당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집권당의 전략 부재로 대법원장 임명 동의에 실패하면서 민정당과 정부는 무력감에 빠졌다. 오죽하면 노 대통령을 가리켜 ‘물태우’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정치가 삐걱거리고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 사회도 불안했다. 대학생들의 시위는 연일 계속 됐고 기업은 노사분규로 몸살을 앓았다. 치안 부재와 물가고로 국민의 불안과 한숨이 늘어갔다. 나는 제4당의 총재로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지만 국리민복을 위한 정치의 임무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과 무력감을 느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인식 속에 전환과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