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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원장 진우스님, 조계사 선 명상 특별법회서 법문
“끊임없이 인과를 이해하고 육바라밀을 행하라” 강조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는 불기 2568년 4월 초하루 조계사 ‘신중기도 법회’ 자리에서 총무원장 진우스님이 법문을 설했다. ‘부처님오신날 조계사 선명상 특별법회 시즌2’ 일환으로 조계사 대웅전과 대웅전 앞마당을 사부대중 2000여 명이 가득 메운 가운데 마련한 특별법단에 오른 총무원장 스님은 ‘선 명상, 그리고 조화로운 삶1’이라는 주제로 법문을 설했다. 법문내용을 요약한다.
총무원장 진우스님이 '부처님오신날 조계사 선명상 특별법회 시즌2' 법문을 설하고 있다. 장용준 기자
오늘 4월 초하루, 초파일을 앞두고 제2차 선명상 법회 첫 번째 시간을 갖습니다. 초파일은 부처님오신날이지요. 부처님께서 이 이 땅에 오신 뜻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오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왕자로 계시다가 출가하신 계기가 있죠. 그게 바로 사문유관입니다.
동,남,서,북쪽으로 문을 통해서 밖에 나가 보았어요. 첫 번째 동문을 나서보니 늙으신 노파가 지팡이를 짚고 겨우겨우 걸어가는데 왜 저 늙은 노파는 저렇게 힘겨워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죠. 몸이 늙어서 그렇다는 거예요. 왜 몸이 늙을까?
다음날 남문으로 나가보니 또 한 사람이 너무나 아파하며 목숨이 다해가고 있었습니다. 고통스러워했습니다. 병이 난 사람을 보고 왜 병이 날까?라고 물으니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중생은 다 병이 나게 되어 있다라고 하는 거예요. 왜 그럴까라는 의문이 생곘지요.
또 다음날 서문을 나가 보니 행상이 죽은 시체를 운구하는 거예요. 그 뒤에는 가족들이 울면서 따라 가는 거였죠. 저게 뭐냐고 물어보니 사람이 죽어서 그렇습니다고 했어요. 왜 죽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지요.
그리고 난 다음 북쪽 문으로 나가 보니 한 노 수행자가 가사를 걸치고 발우를 들고 가는 거예요. 저 사람은 누구나 그랬더니 수행하는 분이라고 했어요. 왜 수행을 하느냐하니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는 법을 찾기 위해 그렇다고 했어요.
싯타르타는 아! 결국은 나도 늙고 병들어 죽는구나. 그리고 늙으면 슬퍼지고 병들면 아파지고, 죽으면 모두가 사라지는구나. 그렇다면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했어요.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을 가득메운 사부대중이 총무원장 진우스님의 법문을 경청하고 있다.
그래서 북문에서 보았던 수행자를 따라서 해야겠다고 하고 출가를 합니다. 희말라야 산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수행을 하면서 잘 깨달아지지 않았어요. 왜 그럴까? 다시 생각을 해봤더니 이것은 분별심 때문이었어요. 분별, 이것이 생겨나면 당연히 저것도 생겨난다는 거였어요. 차생고피생(此生故彼生)이었어요. 이것을 없애야 저것도 없어진다. 생겨나면 사라지는 것이 동시에 생기는 거였지요. 생김이 없어야 사라짐도 없는 거였지요. 생겨남은 왜 생겨날까? 했더니 그게 무명(無明)이더라라는 겁니다.
무명이라는 말 들어보셨죠. 무명은 ‘없을 무(無), 밝은 명(明)으로 ’밝지 않다‘는 말이예요. 전문적으로 아뢰아식이예요. 이는 ’대승기신론‘과 ’유식(唯識)‘에 나오는 내용인데요. 현대심리학의 정신분석학적으로는 이것을 무의식, 또는 잠재의식. 불교적으로 말하면 업장(業障)입니다.
(우리는) 모르고 태어났는데 태어났어요. 왜 그럴까? 그것은 내가 알 수 없는 나의 업장 때문이다. 아뢰아식 때문이라는 겁니다. 무의식과 잠재의식과 과거식, 지나온 습식,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나오는 것들이 많지요.
성격도 차분했는데 갑자기 급해지는 때가 있죠. 가끔 머리가 나쁘다 생각했는데 좋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죠. 나도 모르게 많이 일어나지요. 이것은 나도 모르는 오랜 과거 수억 겁생의 버릇들이 누적돼 있다는 거예요. 그게 바로 요즘 성격, 성품, 성리, 성질 등으로 내 마음이 나도 모르게 쌓여있었던 겁니다. 이것을 업장이라 하고 아뢰아식, 제8식이라 합니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가 8가지(안이비설신의 6근과 제7식 말라식, 제8식 아뢰아식을 법문 내용에 설명하고 있다)가 있어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즉 눈, 귀, 코, 혀, 몸, 머리 이것을 육근이라 그러죠. 혹은 6입이라 하죠. 그리고 이것이 나다라고 생각하죠. 눈도 내 눈이고, 귀도 내 귀고, 코도 내 코고, 몸도 내 몸이고, 생각하는 것도 나라는 거죠.
모든 게 나로부터 출발해요. 일종의 아트만으로 ‘나다’라는 것을 <금강경>에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나라고 하는 거예요. 내가 있으니 동시에 내가 나라 생각하는 거예요. 내가 여러분을 보는 거예요. 모든 게 내 중심이예요. 여기서 나이기 때문에 내 것, 내 친구, 내 물건이 다 생기는 거죠. 이것을 업(業)이라 합니다.
어쨌든 연기법에 보면 12가지 연기가 있어요.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입니다. 모든 것은 유가 있으니 태어나고 생겨났으니 사라집니다. 이것을 12연기라 합니다.
이 아뢰아식, 무명을 업장이라 했어요. 이 업장을 부처님께서 가만히 보니까 분별심이었어요. 이 분별심 때문에 모든 사건이 벌어지는구나. 그래서 부처님은 고행을 하셨잖아요. 안 먹고, 안 자고 모든 욕심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신 거죠..
그래서 부처님은 피골이 상접했어요. 그것이 고행상이지요. 그때 부처님께서는 ‘분별심이 문제구나’, ‘내가 깨달아겠다’, ‘생사를 없애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사문(수행자)은 계율을 지키는 게 의무였어요. 부처님은 ‘아! 이 또한 ‘분별심이구나, 이 또한 나의 욕심이구나’ 생각했어요.
부처님은 과감히 일어나 네란자라강에 가서 여성에게 우유죽을 받아먹었어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수행자가 움직이고 돌아다니고 강에 가는 것도 안됐어요. 더구나 어린 여성을 만나는 것은 더욱 안됐어요. 엄청한 파계행위예요. 더구나 우유죽을 먹었다? 이것도 안되는 거예요. 인도에서는 소를 신성시 했기에 소를 먹을 수 없었고 소젖을 먹는 것도 안됐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드셨어요. 왜 ‘나는 이것이 좋은 죽이다’라고 생각했어요. 나의 이익을 위해 하는 행위가 아니고 마음을 딱 깨치는 순간 무심코 벌어진 행동이예요. 요것을 무애자재행(無碍自在行)이라고 해요.
우리는 육바라밀(六波羅密)을 실천하라 하죠. 왜? 육바라밀행을 하는 분이 누구예요. 보살이예요. 보살의 모든 행동은 육바라밀행을 합니다. 보살은 다른 행동을 하지 않아요.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를 바르게 하는 게 보살이 행하는 모습이예요. 지장보살, 대세지보살, 미륵보살도 다 하는 행동이 육바라밀행이예요.
보살은 걸림이 없어요. 걸린다는 것은 막힌다는 것인데 그러면 내 마음이 싫어지지요. 막히니까 기분이 나빠지고 감정이 안좋아지죠. 그것이 걸린다는 것예요. 그러나 걸림이 없으면 기분이 안 나빠지고, 괴롭지 않고, 근심걱정이 없습니다. 108번뇌가 없어요. 그러니까 기분 나쁜 일이 없어요.
그러한 걸림없는 자재, 스스로 행하는 행위가 육바라밀행이예요. 그래서 조금도 걱정이 없으려면 보살이 되어야 해요. 여러분들을 왜 “보살님”하는 것은 진짜보살님이 되라는 거예요. 그래서 육바라밀행을 따라 하라는 겁니다. 관세음, 지장, 문수, 보현보살이 한 행동을 따라하면 보살이 되리라. 보살이 되면 걱정근심이 없고 생사를 해탈합니다. 생사는 분별입니다.
선(禪)명상의 근본은 부처님이고 행동은 보살행을 하라는 겁니다. 아까 분별은 이것과 저것이라 했어요. 먼저 항상하는 이야기지만 내가 보고, 듣는 것을 현상이라 그러지요. 이 현상들은 부처의 눈으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해뜰 때 해 뜨고, 해질 때 해 지고, 비올 때 비오고, 바람불 때 바람 불고, 봄이 올 때 봄이 오고, 여름 올 때 여름 오고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전쟁도 사실은 문제가 없어요. 천둥번개가 치고 집이 날아가도 사실은 문제가 없어요. 왜? 이게 하나하나 따로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다 연결돼 있기 그렇습니다. 허공의 공기도 연결돼 있잖아요. 여러분 핸드폰도 아무것도 없는데 소리가 들려요. 왜? 다 연결돼 있기 때문이예요. 이 법회도 영상으로 다 보잖아요. 연결이 다 되어 있어요. 이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을 인드라망이라 해요.
잘못됐다는 것은 내가 내가 보기에 잘못된 것이지 잘못된 것이 없어요.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어요. 태풍이 불어 쓰나미가 일어난 것도 우주 지구가 연결돼 있어서 그렇게 태풍이 불고 해일, 스나미, 지진이 일어날 수 밖에 없어요. 필연적입니다. 잘못된 게 아니예요. 잘못됐다고 보는 보는 내가 잘못된 것입니다.
현상은 시비고락이 없어요. 문제는 현상을 보는 내가 시비고락을 만드는 겁니다. 내가 나빠하면 진짜 나쁠까요? 다른 이는 좋다는데 나는 나쁘다한다면 그 사람이 원래 나쁜 거예요, 나쁘게 보는 내가 나쁜 거예요? 나쁘게 보는 내 마음이 문제가 있는 겁니다. 가을되면 낙엽이 떨어져요. 낙엽이 떨어지는 너무 당연한 필연적 현상인데 그걸 보고 내가 쓸쓸해요. 그러면 낙엽이 쓸쓸해서 쓸쓸할까요? 그 낙엽을 보는 내 마음이 쓸쓸할가요? 내 마음이 쓸쓸한 겁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거예요.
그러면 일단 전쟁이 벌어지든, 사고(교통)가 일어나든 이런 현상은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거예요. 문제는 그것을 내가 볼 때 내 마음이 편하냐, 편치 못하냐 이것은 내 문제예요. 일단 세상은 문제가 없어요. 결국은 부처님이 깨달은대로 생로병사가 계속 돌아가는 거예요. 이 지구도 생로병사해요. 성주괴공 할 겁니다. 생주이멸 할 겁니다. 그게 잘못됐을까요? 아니예요. 우주질서가 그래요. 이것을 연기법이라고 해요. 연기법이니까 누가 잘되고 잘못되고 할 수가 없어요.
이 현상은 그대로 두고 봐요. 부처님은 생로병사하고 제행무상, 제법무아라 하니 현상은 문제가 없어요. 나쁜고 좋은 것에는 문제가 없다. 현상은 그대로 놓으면 각자의 마음이 문제예요. 각 현상을 보는 각자의 마음은 여러분 개개인 각자가 가지고 있는 아뢰아식이 있어요. 마음이라고 하는 거예요. 눈 마음이 있고, 귀 마음이 있고, 코 마음이 있고, 혀 마음이 있고, 몸 마음이 있고, 머리 마음이 있어요. 이것을 6식이라 해요. 6식에서 ‘이 모든 것이 나다’라는 것을 말라식이라 해요. ‘말라 비틀어진 식’, 제7식이라고 해요. 제7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무의식, 잠재의식을 업장식이라 해요. 나의 성품, 성미가 감춰져 있고 누적돼 있는 게 제8식 아뢰아식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분류하면 8가지로 분류가 됩니다.
그렇다 치고요. 아까 부처님께서는 그 모든 마음은 분별심 때문에 생긴다고 했어요. 우리가 살아가는데 뭣 때문에 살까요? 내가 싫은 것을 벗어나고 싶어해요. 그리고 행복하고, 기쁘고, 좋은 것 가지려 해요. 모든 중생은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깁니다. 행복하면 불행하고. 기쁘고 즐거움은 기분 좋은 것과 기분 나쁜 것이라는 상대가 있어요. 동전의 앞면 뒷면과 같아요. 이것을 고락인과(苦樂因果)라 해요.
아까 현상은 연기법이라 했지요. 이것은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좋고 싫은 고락의 인과가 생겨요. 크게 나눠 보면 내 마음은 딱 두가지가 있어요. 유식에서 고락사의 삼수작용이라 합니다. 마음에는 괴로운 마음 즐거운 마음의 두 가지가 똑같이 있어요.
살다보면 기쁠 때가 있고 불행할 때가 있어요. 왜 불행할까요? 행복했으니까 그렇습니다. 왜 좋은가요? 싫었을 때가 있었으니까 그렇습니다. 다만 좋은 것과 싫은 것이 나타나는 시간이 다를 뿐입니다. 태어나는 시간이 있으면 죽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요.
우리가 살아가는데 즐거운 일도 괴로운 일도 많은데 즐거운 일이 생기는 것은 우리가 지어놓은 아뢰아식이라는 업식에 의해 생겨납니다. 생겨나면 사라지겠죠. 그 즐거움이 생겨났으니 사라지겠죠. 그러면 즐거움은 사라지는 동시에 인과라는 괴로움이 생겨납니다. 생길 수 밖에 없어요. 우리는 이 구조적인 현상을 모르고 기분 나쁜 이유만 찾아요. 자식 속 썩이고 애 먹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원하는 것도 있고, 원하지 않는 것도 동시에 있으니 속을 썩일 수 밖에 없어요.
자식이라 그런 게 아니고 내 마음이 좋은 마음 있으면 싫은 마음이 동시에 생기는 거예요. 좋은 마음 생기면 싫은 마음이 생겨요. 연애할 때 사랑하던 사람도 싸우고 이혼도 합니다. 그런 겁니다. 필연적인 겁니다. 상대가 좋아서 나빠서가 아니고 내 마음의 좋은 마음, 싫은 마음이 아뢰아식으로 있다 이겁니다. 이게 왔다갔다 하는 거예요.
학교 다니면서 공부 잘해 시험에 합격하면 좋지요. 그런데 그와 상응해서 기분 나쁜 일도 생겨요. 시험에서 떨어지면 기분이 안 좋죠. 당연하지만 왜 기분이 안 좋을까요. 기분 나쁜 인과가 생겨서입니다. 기분 좋은 업이 생기면 나쁜 업도 생깁니다.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도 내가 기분 나쁠 때가 되어서 그렇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기분 나쁜 일이 없으려면 나의 업장을 바꿔 소멸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명상을 하라는 겁니다.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낍니다. 이 생각과 감정은 윤회합니다. 인과가 생기니까요. 좋은 생각이 생기면 싫은 생각도 생겨요. 그러면 마음이 복잡, 불편해지면 번뇌망상이 생깁니다.
그래서 수행하는 스님은 생각과 감정을 방하착(放下著)합니다. 내려놓는 겁니다. 분별심과 시비분별을 없애는 겁니다. 분별심이 없으면 가시방석도 불편하지 않아요. 돈방석에 앉아 있어도 불안하고 불편해요. 나의 업장이 두터우니까요. 분별심이 있으면 불편하고 기분이 나쁩니다. 업장이 있으니까 그렇습니다. 업장이 좋은 이는 소욕지족(少欲知足)합니다. 탐진치 삼독심을 안냅니다.
내 밖에 있는 것은 문제가 없어요. 연기와 인연 따라 벌어집니다. 내가 문제입니다. 좋다, 싫다하는 시비분별을 내려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보살이 되고 불편함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행복하려 할 필요도 없어요. 행복하면 불행해지니 ‘터억’ 내려놓고 무애자재행을 하세요. 너무 좋은 것은 너무 싫은 것이 나타나니 편안하게 하세요. 아이들은 이것 저것 좋다하는데 어른들은 안 그렇습니다. 편안한 게 좋아요. 나이들수록 경험에 의해 조금 아는 거예요.
남녀 노소 모두가 불편하지 않으려면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게 중요합니다. 안 그러면 복잡한 감정이 생깁니다. 일단 마음을 고요히 하고 나머지는 연기, 인연법에 맡기세요. 부처님께 맡기면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원만보신노사나불,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에게 맡기시고 나머지는 내 마음을 고요히 하면 나머지는 잘 되게 되어 있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내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선명상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뭘 할 것인지 지혜가 생깁니다. 그러면 내가 뭘 이렇게 해야 하겠다, 저렇게 해야 하겠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겠다는 지혜가 생깁니다. 수고롭게 고민하지 마세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요 원리적인 마음을 알면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이 됩니다. 그런데 잘 안 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겁니다. 육바라밀행을 끝없이 해야 합니다. 간단하고 쉬울 것 같지만 나도 잘 안 됩니다. 그래서 될 때까지 매일 기도하고 참회하는 겁니다.
그래서 선명상은 내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리 알아야 합니다. 현상은 문제가 없고 인연이 그리 되어서 업에 의해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이해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누가 욕을 하면 저사람 업장이 욕을 할때가 되었구나 하고 이해를 하면 됩니다.
업장을 줄여나가야 합니다. 상대방에게 설득해야 하고 부처님 법을 알려줘야 합니다. 성질내면 업장이 쌓여 또 나옵니다. 이것을 무명이라 하는데 명으로 만들어야 한다. 인연의 12연기를 (거꾸로 돌려) 환멸연기를 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인과를 이해하고 현상에 대한 연기법을 이해하고, 내 마음 내가 가지고 있는 아뢰아식을 이해해 보살이 행하는 육바라밀 행하고 기도를 열심히 하면 됩니다.
여태동 기자 사진 장용준 기자 tdyeo@ibulgy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