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량12교회, 인초가 건너는 다리] 追錄(1/2)
나는 생전에 성철스님을 두 번 만날 수 있었다. 스님과 신도로써가 아니라 진료차 산을 내려온 속세에서의 만남으로 따뜻한 차 한잔을 나누고 배웅하는 두 번의 만남이 있었다. 그분의 상좌중에 한명은 나의 친구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분과 같이 할 수 있는 인연 한 줄기가 멀리 지나간 적이 있는데 기회가 되면 그 기록도 남길 수 있을지... 에 대한 追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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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 앉아 업무를 보고있는데 사장실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사장님이 부리나케 뛰어 나가신다. 사장님이 그렇게 서두르는 모습을 아직 한번도 본 일이 없었다. 화재가 났나... 급한 마음에 나도 곧 바로 뒤따라 나갔다. 계단을 뛰어내려 마당에 내려서니 누더기같은 승복을 걸친 스님 한분이 경비실을 통과하여 마당으로 걸어 들어오고 계신다.
경비실에서 구내전화로 연락을 받은 사장님이 급하게 뛰어나가서 두손을 맞잡고 이끌어 들이시는 것이다. 가야산 해인사 백련암에 칩거하고 계시는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 성철스님이시다. 몸이 안좋아 부산으로 나와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시고 돌아가시는 길에 혼자서 세원으로 찾아오신 것이다.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느 거렁뱅이 중이라고 여길만큼 그분의 승복은 덕지덕지 기워놓은 누더기 투성이었다.
사장님의 부인 강O진여사께서 독실한 불자시고 백련암 신도이시다. 그리고 세원과는 인연깊은 고승이시다. 나는 강O진여사의 부탁으로 몇 번인가 백련암 심부름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때 백련암에서 성철스님의 상좌였던 원택스님은 지금 부산 중앙동의 고심정사 주지가 되어있다.
성철스님은 사장실에 앉아 차 한잔을 대접 받으시고 허허롭게 백련암으로 돌아가셨다. 백련암에 계시는 성철스님을 만나려고 하면 해인사 본전에서 삼천배를 마쳐야 백련암으로 가서 종정스님을 친견할수 있었다. 삼천배를 마치고 백련암으로 찾아가도 성철스님은 ‘미친년들아 뭐하로 여기까지 오노...’ 하면서 욕을 해대기 일쑤였다. 친근감의 표시였다.
그분은 생전에 내가 근무하던 회사를 두 번 방문 하셨는데 나도 그덕에 삼천배없이 두 번 공짜로 성철스님을 친견하고 차 한잔을 같이 나누고 배웅 할 수 있었다.
백련암에서 성철스님의 상좌로 있던 원택스님은 은사의 입적후 부산으로 나와 중앙동 천초탕 자리에 고심정사를 세우고 주지스님이 되었다. 불심깊은 노부부가 운영하던 목욕탕을 그분들이 백련암에 기증하고 돌아가셨는데 목욕탕을 헐고 그 자리에 많은 공력을 들여 불사를 이룬것이다.
세월은 많이 흘렀으나 수년전 중앙동 고심정사를 찾아가 원택스님과 차 한잔을 나누기도 했다. ‘아이구 사형, 반갑습니다. 어서오십시오...’ 하면서 환대해 주었는데 그가 나를 ‘사형’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따로 있다.
원택스님의 이바구도 한토막, 천제-원정-원택으로 이어지는 성철스님의 상좌중 한명인 그는 대학다닐때 백련암에 놀러간적이 있었는데 그때 성철스님께서 자기를 보고 하시는 말씀이 ‘어허!, 법상이로고, 중하면 딱 좋겠네...’ 하시더라는 것이다. 그후 그 말씀이 자꾸 떠나지 않아 모 대학의 법학과를 졸업하고 성철스님을 찾아가 수계를 받고 중이 되었는데 그후에 스님곁에 계속 있으면서 보니 성철스님께서는 만나는 청년들마다 ‘어허!, 법상이로고, 중하면 딱 좋겠네...’ 하시더라는 것이다. ㅎ ㅎ ㅎ...
(직장이야기 / 아, 이런일이 있었구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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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에게도 불필이란 이름의 여식이 있다. 스님과 너무나 닮은 모습이라 한번 보면 대번에 성철 스님의 혈육임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의도적으로 그러한 것은 아니겠지만 부처님의 가족들이 부처님을 따라 출가했던 것처럼 성철스님의 여식도 스님을 따라 출가했고, 부인도 석남사란 절로 출가했다고 들었다.
스님은 따님의 법명을 지을 때도 `너의 법명은 필요 없다.`라는 뜻으로 `불필`이라고 했다. 그러나 스님도 불필 스님에게는 남다른 정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다. 뒷날 불필 스님이 해인사 근처에 암자를 짓도록 허락하셨고, 스님은 가끔 백련암에서 멀리 보이는 곳에 있는 그 암자를 바라보시곤 하셨다. 가끔 목을 내밀고 그쪽을 바라보시며 이것저것 집의 구조와 방향 등을 물으시곤 하시는 모습은 정녕 딸을 걱정하는 다정한 친정아버지셨다. 얼마나 가보고 싶으셨을까? (원정스님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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