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무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를 살아내며 고비마다 토해낸 신음들이 용암처럼 분출한다. 늘어난 근심을 견뎌내려면 숨 고르기가 필요하다. 먼 산티아고가 아니어도 대자연이 만들어낸 독톡한 제주 올레길이면 족하다. 제주 올레길은 남겨진 생의 순례길이라 여겨진다. 내게 주어진 조건에 알맞은 곳이라서 더욱 좋다.
우거진 숲길 올레 17코스에 들어선다. 청아한 새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고 바람이 울창한 숲을 흔들고 지나간다. 갈잎들은 다시 돌아올 바람이기에 애가 타지 않는 눈치다. 아늑한 숲길에 내려앉은 햇살을 따라 벼랑길에 다가서니 신비한 계곡이 모습을 드러낸다. 깊은 계곡은 존재를 세상에 쉬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 울창한 숲으로 몸을 가리고 있다. 변해가는 세상과는 동떨어져 억겁의 세월을 홀로 견뎌내고 있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도 이런 곳이 있었나 싶다. 그랬다. 낯선 길에 서면 늘 설레게 된다. 오늘 선택한 이 길은 어떤 풍광을 펼쳐내어 감동을 줄까, 마음을 졸이던 터다. 넋을 놓고 묵묵히 바라본다.
복잡한 인간사 근심을 없애준다는 ‘무수천(無愁川)’, 얼마나 아름답고 한적하면 평생 달고 있는 이름일까. 근심이 한순간 사라진다, 할까. 나 자신도 눈과 마음이 온통 넋을 놓고 정신없이 풍광에 빠져든다. 깎아지른 절벽과 침엽수와 활엽수가 서로 어울려 고고한 장관을 이루고 있다. 판상절리, 주상절리의 기암이 어우러진 천혜의 비경에 세상 어떤 미사여구도 충분하지 않을 것 같다. 할 수만 있다면 밤낮 무수천이 주는 의미에 백번도 더 고개를 끄덕이겠다.
한라산 정상에 기원(起源)을 둔 계곡을 올려다본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계곡의 끝 가는 곳을, 내려다본다. 마치 용이 승천하면서 훑고 지나간 듯 계곡이 꿈틀꿈틀 남아있다. 용암들이 거칠게 흘러 한라산을 헤집어 놓은 계곡이어서 펼쳐지는 벼랑은 기이하고 험하다. 바람이 만들었을까, 물살이 깎아놓았을까, 해골 바위, 병풍바위, 대문 형체, 동물 형상의 거대한 바위들이 푸른 아열대 숲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화산이 뿜어낸 붉은 용암들이 난폭하게 폭행하는 동안 산이 세차게 저항했던 시간이 고스란히 남은 흔적들이다. 천지를 진동하며 쏟아내었던 붉음 용암들의 우레 같은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쳐다보고 내려다볼수록 신비감에 경탄과 탄식이 절로 나온다.
계곡은 건천이다. 비가 내릴 때만 잠깐 아름다운 폭포를 만들기는 한다. 물이 흐르지 않는다 하여 없을 무, 물 수, 무수천(無水川)이라고도 한다. 지하로 내려간 물은 다시 솟아 작은 소를 채운다. 그 이름 덕분인가, 에메랄드빛 깊은 소들이 계곡에 신비를 더한다. 저 물빛으로 물들고 싶다. 물이 들면 내 삶도 좀 괜찮은 생으로 살아질까. 얼마나 깎아내는 모진 고통을 견뎌야 천상의 마음으로 설 수 있을까. 모든 것은 고통 후에 주어지는 것, 세월이 만들어낸 덕분에 무수천은 신비롭고 아름답다.
신의 걸작이다.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곳에 전시장을 만들어 놓았다. 아름다운 풍경화로, 이해 못 할 추상으로 미술전을 펼쳐냈다. 눈으로 마주하고도 믿어지지 않는 경이로움, 말은 잊히고 생각은 망각된다. 깊은 협곡 사이에 드는 햇빛에서조차 태곳적 신비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머릿속이 맑아지고 발끝까지 청량감이 밀려온다. 일순간에 천연의 자연에 빨려 들어온 듯 억겁의 세월이 내 몸 안에 담긴다.
미술사학자 해밀턴은 ‘화산은 인류가 목격할 수 있는 가장 난폭한 폭행’이라 했다. 신은 붉은 불덩이를 하늘에 뿜어 지옥의 진수를 보여준다. 인간에게 자연의 위용 앞에 무릎을 꿇으라고 호통친다. 지금도 한계 없는 신의 분노가 지구 곳곳에서 폭발하고 있다. 무례한 인간을 각성시키려는 행사를 게을리하지 않는 듯하다.
무수천, 죽어야만 갈 수 있다는 천국이 이럴까. 순수한 성찰로 풍경을 마주하니 떠날 때 두고 온 곳곳의 시간들이 보인다. 살아온 속세의 삶이 너무 요란했다. 때로는 견디기 어려운 만큼 가혹했다. 해야 할 속말도 아직까지 가슴에 품은 채다. 이별의 상처도 묻어두어 더욱 아프기만 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이것들이 삭혀질까. 얼마를 더 살아내면 무수천처럼 고요하고 담담해질까.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곳은 어디에 있을까. 어디선가 위로의 소리가 들린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먼저 떠난 그리운 이의 다독임이 무수천 바람에 실려 들려온다. 혼자 살기 힘든 세상, 다 살아낸 후에는 소란스러우면 이곳으로 오라는 듯하다. 맑디맑은 모습으로 남은 생을 살라고 다독이는 바람이 다시 인다.
세월의 더께와 깊이가 느껴지는 풍광에 녹아든다. 마음이 경건해진다. 아직 포기해야 될 것이 많고 내려놓아야 할 것도 적지 않다. 버린다고 여기면 고통스럽다. 고통스러워야 될 이유를 버리면 조금은 가벼워진다. 집 떠나는 건 멀어지는 게 아니라 자연 속에 숨은 그리운 이에게 가까이 가는 길, 떠나오길 잘했다. 털어버리자. 가벼워지자.
한순간 천국을 보았다. 잠깐 꾼 꿈처럼, 아름다운 무수천은 긴 세월 동안 치솟던 용암들이 울부짖었던 기억을 잊은 듯, 고요하다. 누구든 살아있는 날까지 남은 길을 걸어야 한다. 조랑말의 상징인 간세와 화살표, 올레 리본이 이끌어주는 표를 따라 걷는다. 마음에 채웠던 생각의 무게가 얼마였기에 비워 내고 나니 이렇게 가벼울까. 천근 같은 발걸음이 이젠 날개처럼 가볍다.
아픔도 그리움도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라산 용암이 난폭하게 흘러내린 흔적도 남아있다. 다만 천년만년 바람이 흐르면서 무수천을 비경으로 만들었다. 모질게 살아왔던 삶들도 그렇게 흘려보내고 나면 조금은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지난 길을 잘 걸어왔듯이 올해도 잘 살아내었고 걸어 내고 싶다.
올레길 끝자락에 섰다. 한 덩어리 붉은 태양이 서쪽 바닷속으로 장엄하게 투신을 하고 있다. 나의 하루도 시간의 끝쪽으로 가라앉는다. 세속 풍랑에 흔들이는 날에는 다시 오고 싶다. 무수천 계곡으로.
첫댓글 최 작가님의 무수천을 읽으며 마치 내가 그 곳에 서 있는 듯 비경에 취하였습니다.
한 번도 보지 못하였던 무수천의 물결이 몸에, 마음에 감기는 듯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해가 저물어 갑니다. 마무리 잘 하시고 더욱 좋은 작품 많이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