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28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이 기업 수의 90% 이상이고 고용의 8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경제의 근간이지만 대기업보다 경영 환경은 열악하다. 정부가 다양한 중소기업 육성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새로운 정책을 추진할 때 시장에 급격한 충격을 주지 않도록 신중하게 검토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번 정부에선 소득 주도 성장을 간판으로 내세우면서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렸다. 2017년 6470원에서 2018년 16.4% 올려 7530원, 2019년엔 다시 10.9% 올려 8350원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정책은 시장에 충격을 줬다. 식당이나 영세 소상공인들이 인력을 축소하거나 폐업을 단행했다. 실제 필자가 투자한 한 중소기업은 2017년 30억원 이익을 올렸는데 2018년엔 인건비가 90억원이나 상승, 고전을 거듭했다. 그 뒤 제품값을 올리고 각종 부대 비용을 감축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서 겨우 유지하고 있다. 결국 정부도 최저임금 인상 폭을 2020년 8590원(2.9% 인상), 2021년 8720원(1.5% 인상)으로 조정하고 있는데 이번 정부 마지막 해인 2022년엔 9000원을 돌파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결과적으로 이 정부 임기 중 최저임금 인상액은 총 2424원. 차라리 최저임금을 5년간 매년 500원씩 점진적으로 인상했다면 2022년엔 같은 9000원 선이라도 시장이 받아들이는 체감 충격은 덜했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주 52시간 근무제 역시 마찬가지다. 대기업에 적용한 지 2년이 돼 가며 내년부터는 50~300인 미만 2만7000여 중소기업에 적용된다. 여기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근로 시간이 줄어들면서 시급제 근로자 임금이 줄 수 있고, 다른 하나는 근무 시간을 고집하다가 납기 등 비상 사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고자 탄력근로제를 검토하고 있지만 이를 3개월로 할지 6개월로 할지 아직 결론을 못 내리고 있다.
많은 대기업은 제조 현장에서 오래전부터 4조 3교대를 적용하고 있다. 생산직 근로자(블루칼라)들에게 52시간 근무제에 따른 문제점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고민은 사무직이나 연구·개발(화이트 칼라) 근로자들이다. 본인 재량에 따라 시간·노력을 투입하고 그 완수 여부와 충실도에 따라 인센티브를 지급받는데 이들에게 주 52시간은 족쇄에 가깝다. 사실 대기업은 경영 지원 시스템(ERP와 PMS)과 업무 프로세스 혁신으로 생각했던 것보단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사정이 다르다. 필자가 아는 중소 제조 업체는 직원들이 매일 11시간씩(평일 정규 근로 8시간+평일 연장 근로 2시간+추가 연장 근로 1시간)에 토요일 특근 8시간을 합쳐서 주 63시간 일을 하고 있다. 법정 근로 시간 40시간을 초과하면 연장 근로 수당(1.5배)을 받아 월급으로 환산하면 256만원이다. 그러나 주 52시간제가 되면 연장 근로 시간이 12시간이라 월급은 199만원으로 준다. 근로 시간은 17.5% 주는데 월급은 56.7만원(22%) 감소하는 결과를 낳는다. 기업 입장에서도 줄어든 근로 시간만큼 생산량을 이전과 동일하게 유지하려면 직원들 생산성이 올라가야 한다. 이를 위해 숙련공을 충원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데 그런 숙련공이 중소기업에는 잘 오려 하지 않아 문제다. 이 업체는 기존 직원을 교육·훈련해 숙련도를 높이려고 다각도로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단기간에 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걱정이 태산이다. 이를 확대해 300인 미만 중소기업 2만7000곳에 적용하면 숙련공을 10명씩만 더 채용한다 해도 27만명이 더 필요한데 이런 인력을 확보하는 건 결코 간단하지 않다. 수많은 중소기업은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생산 차질을 감수하든가 임금을 대폭 올려 숙련공을 경쟁적으로 채용해야 하는 환경에 놓인다. 더구나 새로 쓰는 숙련공만 임금을 더 줄 수는 없고 기존 인력에 대해서도 처우를 개선해줘야 갈등이 없을 텐데 안 그래도 코로나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들엔 악몽 같은 시나리오다.
만약 근로 시간 단축 역시 300인 미만 모든 중소기업에 일괄적으로 동시에 적용하는 게 아니라 200인, 100인, 50인 이하 등 규모에 따라 6개월 정도 시차를 두고 적용하면서 현장에서 발생하는 맹점을 조금씩 개선하면서 나아간다면 충격도 줄이고 정책 목표도 더 수월하게 달성할 수 있을 텐데 아직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 당국자들은 현장을 무시하고 정책을 강행하면 반드시 후폭풍이 돌아온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진대제 /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 대표·前 정보통신부 장관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