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단단한 음식을 먹어야 할 때” 固い食物を食べるべき時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먼저 여러분께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지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없거나 믿음이 약한 사람에게 어떠한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이는 그 사람의 잘못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리신 고난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1번 이와 같은 고난을 내리신 하나님에 대항하여 싸운다.
2번 빨리빨리 회개하고 용서를 구한다.
예, 이는 너무나도 쉬운 질문인지도 모릅니다. 여기 계신 분들께서는 모두가 다 2번을 고르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렇죠. 내 잘못 때문에
하나님께서 고난을 내리셨다면, 더 늦기 전에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막상 실제 상황에서 닥쳐보면 이게 그렇게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는 마치 그런 것이죠. 내가 방에 있는데, 아니면 사무실에
있는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면 무엇부터 해야겠습니까.
그렇죠. 일단 책상 밑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작은 지진이라고 방심하면 안 됩니다. 언제 크게 흔들릴지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옛날에는 지진이 일어나면 우선 가스부터 잠그라고 가르쳤습니다만, 지금은 아니라고 하더군요. 요즘은 안전장치가 잘 되어 있어서 지진 때
굳이 사람이 안 잠그더라도 자동으로 잠기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하냐 하면, 지진이 일어났다 하면 무조건 책상 밑으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선 머리부터 보호를 해야
한다고 해요. 이게 쉬운 것 같긴 합니다만, 막상 자기한테 일어나면 순간적으로 움직이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특히 진도 6~7 정도의
지진이 발생하면 서 있기도 힘들다고 하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냐 하면 평소부터 훈련을 해놓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일본의 경우 1923년(大正12年) 9월 1일에 관동대지진이 일어났다고 해서 지금도 매년 9월 1일이 되면 여기저기서 다양한 훈련을
합니다. 그래야지만 비상 사태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몸을 움직일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도 마찬가지입니다. 회개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쉬울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9장
20절~21절을 봅니다.
요한계시록 9장 20절~21절
“20.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21.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これらの災害によって殺されなかった、人間の残りの者たちは、悔い改めて自分たちの手で造った物から離れるということをせず、悪霊どもや、金、銀、銅、石、木で造られた偶像、すなわち見ることも聞くことも歩くこともできないものを、拝み続けた。
また彼らは、自分たちが行っている殺人、魔術、淫らな行いや盗みを悔い改めなかった。
여기에 보면 지금 주님의 심판의 날이 다가오면서 환난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재앙이 닥쳐오고 있어요. 그러면 어서 자신의 죄를 주님께
회개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의지해야 할 텐데,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우상들을 섬긴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혹시 반성과 후회의 차이를 분명하게 설명하실 수 있으십니까. 반성과 후회, 이는 비슷한 것 같긴 합니다만 엄연히
다릅니다.
예를 들어서 어느 집에 몰래 들어가서 도둑질을 하는 것, 이것은 잘못된 일이지요. 아무리 생활이 어렵더라도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도 잠시 세상의 유혹에 못 이겨서, 너무나도 살아가기가 힘들다 보니 남의 집에 들어가서 물건을 훔치려고 했는데, 아이구, 마침
그 근처를 지나가고 있던 경찰한테 잡히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경우, 반성과 후회의 차이는 무엇이겠습니까. 반성은 그야말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지요. 이미 잘못을 저질러버렸으니
어쩌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워낙 생활이 어렵다 보니까 나쁜 짓인 줄 알면서도 이처럼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 하더라도 다시는 이런 어리석은 죄를 짓이 않겠습니다. 이게 반성이지요.
그렇다면 후회는 무엇이겠습니까. 아이참, 내가 그 집이 아니라 옆집을 노렸어야 했는데, 아니면 그 동네가 아니라 옆 동네에 갔어야
했었는데, 그 시간이 아니라 다른 시간에 했어야 됐었는데, 하필이면 그 집에, 그 동네에, 또는 그 시간에 들어가는 바람에
잡혀버렸네……이게 후회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무엇입니까. 그렇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있습니다. 운이 없어서 재수가 없어서
내가 잡혔다는 것입니다. 이런 후회는 백 번 해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자신의 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늘어날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서 주님이 어려움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빨리 회개하고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아니겠습니까.
욥기 5장 17절~21절
“17.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18.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
19.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20.기근 때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 칼의 위협에서 너를 구원하실 터인즉
21.네가 혀의 채찍을 피하여 숨을 수가 있고 멸망이 올 때에도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ああ、幸いなことよ、神が叱責するその人は。だから、全能者の訓戒を拒んではならない。
神は傷つけるが、その傷を包み、打ち砕くが、御手で癒やしてくださるからだ。
六つの苦しみから、神はあなたを救い出し、七つの中でも、わざわいはあなたに触れない。
飢饉のときには、あなたを死から、戦いのときには、剣の力から贖い出す。
舌のむちで打たれるときも、あなたは隠され、破壊がやって来ても、恐れることはな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징계를 허락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미워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죄 가운데 빠져가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에 어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마음 때문에 우리에게 징계를 허락하시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런 어려움이 다가오면, 믿음이 적은 사람들은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후회를 합니다.
무엇을 후회합니까. 아이구, 내가 예수 괜히 믿었어. 교회 괜히 다녔어. 내가 모태신자인데, 내가 장로인데, 권사인데, 뭐, 심한
경우에는 내가 목사인데, 사모인데, 내가 교회에 헌금을 얼마나 많이 냈는데, 봉사를 얼마나 많이 했는데 이런 어려움을 당해야 해.
이러면서 헛된 우상을 섬깁니다.
우리가 다른 죄를 짓는 경우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 중에서 가장 무서운 죄를 꼽으라고 하면 바로 이 우상숭배입니다.
우리가 흔히 우상숭배라고 한다면 세 가지를 말씀드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제일 알기 쉬운 것이지요. 하나님, 예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일입니다. 사람이 만들어놓은 것에 대고 절을 하는 것만이
우상이 아닙니다.
신명기 17장 2절~7절
“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어느 성중에서든지 너희 가운데에 어떤 남자나 여자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
언약을 어기고
3.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것에게 절하며 내가 명령하지 아니한 일월성신에게 절한다 하자
4.그것이 네게 알려지므로 네가 듣거든 자세히 조사해 볼지니 만일 그 일과 말이 확실하여 이스라엘 중에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함이
있으면
5.너는 그 악을 행한 남자나 여자를 네 성문으로 끌어내고 그 남자나 여자를 돌로 쳐죽이되
6.죽일 자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으로 죽일 것이요 한 사람의 증언으로는 죽이지 말 것이며
7.이런 자를 죽이기 위하여는 증인이 먼저 그에게 손을 댄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댈지니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あなたの神、主があなたに与えようとしておられる町囲
みのどの一つでも、その中で男であれ女であれ、あなたの神、主の目に悪であることを行い、主の契約を破り、
行ってほかの神々に仕え、また、太陽や月や天の万象など、私が命じなかったものを拝む者があり、
それがあなたに告げられて、あなたが聞いたなら、あなたはよく調査しなさい。もしそのことが事実で確かであり、この忌み嫌
うべきことがイスラエルのうちで行われたのなら、
あなたは、この悪しきことを行った男または女を町の広場に連れ出し、男でも女でも彼らを石で打ちなさい。彼らは死ななければならない。
二人の証人または三人の証人の証言によって、死刑に処さなければならない。一人の証言で死刑に処してはならない。
死刑に処するには、まず証人たちが手を下し、それから民全員が手を下す。こうして、あなたがたの中からその悪い者を除き去りなさい。
여러분, 해나 달이나 별들도 모두 하나님께서 만들어놓으신 피조물, 물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거기에 대고 소원을 빈다거나 하는 일도
우상숭배이고, 세상에 있는 나무나 바위 같은 것에 대고 절을 하거나 하는 일은 하나님을 버리는 일이요, 예수님을 버리는 일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24절
“22.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その教えとは、あなたがたの以前の生活について言えば、人を欺く情欲によって腐敗していく古い人を、あなたがたが脱ぎ捨てること、
また、あなたがたが霊と心において新しくされ続け、
真理に基づく義と聖をもって、神にかたどり造られた新しい人を着ることでした。
그러면 누구는 이를 두고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이라고 할지 모르겠지요.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7장 8절~9절
“8.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9.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あなたがたは神の戒めを捨てて、人間の言い伝えを堅く守っているのです。」
またイエスは言われた。「あなたがたは、自分たちの言い伝えを保つために、見事に神の戒めをないがしろにしています。
우리 나라의 문화나 전통은 중요합니다. 보존해야 할 것, 계승해야 할 것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21세기에, 그렇게 성경은
비과학적이라고 비판하면서도, 그렇게 과학을 좋아하면서도 아직까지도 건물을 짓거나 하물며 무슨 자동차를 샀다 하면 돼지머리를 가져다
놓고 거기에 술잔을 올리면서 절을 합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예요. 자타가 공인하는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무슨 일이 있거나 하면 이른바
<오하라이>라고 해서 무슨 종이로 만들어진 먼지떨이 같은 것으로 이렇게 하고 그렇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신사를 참배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집이나 회사에도 <카미다나>라고 해서 귀신 집을 모셔놓으면서 거기에 대고 절을 합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축복 받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골로새서 3장 5절~6절
“5.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ですから、地にあるからだの部分、すなわち、淫らな行い、汚れ、情欲、悪い欲、そして貪欲を殺してしまいなさい。貪欲は偶像礼拝です。
これらのために、神の怒りが不従順の子らの上に下ります。
우상숭배가 무엇입니까. 내 이익을 위해서, 내 욕심을 위해서 하나님을 버리고 예수님을 버리고 우상에 대고 절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와 같은 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을
의지하고, 성령님을 의지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우상숭배는 이른바 이단이라고 하는 존재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우리와 같은 교회처럼 보입니다. 예수님을 이야기합니다. 성경을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조금 듣다 보면 성경을 완전히 잘못 해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냥
선지자 중 한 사람이라고 가르칩니다. 만약에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은 자기가 십자가에 달림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의 죄를
해결해줄 수 없습니다. 하물며 자기가 십자가에 달린다고 해도 자기 스스로의 죄조차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해결해주실 수 있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다음 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성부 하나님도 하나님이시요, 성자 예수님도 하나님이시요, 성령 하나님도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2절~3절에 보면 예수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2.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この方は、初めに神とともにおられた。
すべてのものは、この方によって造られた。造られたもので、この方によらずにできたものは一つもなかった。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처럼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 피조물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동등한 조물주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말미암아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해결해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구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자기 멋대로 해석해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잘못 전하는 교회가 이단이라고 할 수 있고, 나아가 심한 경우에는
교회 지도자가 선지자라고 한다거나 자기가 재림예수라고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처럼 잘못된 주님을 전하면서 엉뚱한 것을 믿으라고 하는 것도 우상이요, 하물며 자기가 선지자라면서, 자기가 재림예수라고 하면서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도 또한 대표적인 우상숭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의 우상숭배, 사실 이것이 가장 심각한 우상입니다만, 그게 뭐냐 하면 기존 교회에 있는 우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통적인 교회에 우상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예,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맹목적인 믿음이라고 하는 우상입니다.
맹목적, 즉 눈을 가린 채로 무조건 믿는 신앙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 눈을 가리느냐 하면 바로 이 성경인 것입니다.
교회에 따라서는 기도를 강조합니다. 방언을 강조합니다. 예배를 강조합니다. 금식을 강조합니다. 찬양을 강조합니다.
기도가 잘못된 건가요? 예배가 잘못된 건가요? 금식이나 방언이나 찬양이 성경적이지 않나요? 아니요. 다 좋은 것입니다. 성경적인
것이지요.
하지만 이를 마치 무슨 만능인 것처럼 성경보다도 더 중요시하게 된다면 이는 문제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찬양이나 방언이나 금식이나
기도가 우상이 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과거의 모습을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950년대 60년대를 보면 그야말로 먹고 살기가 힘든 시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들의 교육수준 대단히 낮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목사님이라고 하면 적어도 신학교를 졸업한 분들이니까 사회적으로 본다
하더라도 대표적인 지식인 계층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반해 대다수 국민들은, 문맹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런 분들한테
성경을 읽으라고 한다? 이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당시 성경을 보면 지금보다도 훨씬 가격도 비싸고, 난해한
말투였습니다.
특히 여성들을 보면 어떻습니까. 생활은 어렵고 애들은 많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눈코 뜰새 없이 바쁜데, 지금까지 봤던 책 중에서
제일 두꺼운 건 초등학교 교과서 밖에 없는데, 그것의 몇 배나 두껍고 글씨도 작고 말투도 어려운 성경책, 거기 나오는 이름도 철수야
영희야 정도가 아니잖아요? 그걸 읽으라고 하면 누가 읽겠습니까.
그러니까 성경에 대해서는 주일날 목사님께서 말씀해주시는 설교가 다고, 그 외에는 그냥 주구장창 기도하라고 합니다.
생각해보세요. 지금 필요한 게 한 둘이 아닌데, 기도할 게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리고 몸이 아프면 금식을 하라고 해요. 성경을
모르니까 성경에 어떻게 나와 있는지도 몰라요. 그저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그래서 옛날 분들을 보면 기도를 정말 열심히
하십니다. 금식도 얼마나 많이 하시는지 몰라요. 그리고 목사님의 말씀은 깍듯이 듣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성경을 모르는데, 목사님이
성경에 이래이래 나와 있다고 하면 그걸 어떻게 안 따를 수가 있겠어요.
이러다 보니 목사님의 권위가 너무나도 높아집니다. 목사님 말씀에 대해서 의문이라도 갖게 되면 뭐라고 합니까. 아, 그런 것 따지면 안
된다고, 무조건 믿기만 하라고. 그것 아니었습니까.
이 시점에서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히브리서 5장 12절~14절 신약 358페이지
“12.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あなたがたは、年数
からすれば教師になっ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にもかかわらず、神が告げたことばの初歩を、もう一度だれかに教えてもらう必要があります。あなたがたは固い食物ではなく、乳が必要になっています。
乳を飲んでいる者はみな、義の教えに通じてはいません。幼子なのです。
固い食物は、善と悪を見分ける感覚を経験によって訓練された大人のものです。
과거에는 그야말로 젖을 먹을 단계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저 금식하고 기도하고, 새벽예배 철야예배 드리고, 전도하고 봉사하고 그것이
다 인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빠졌어요? 그렇죠. 성경 말씀이 빠졌습니다. 하지만 환경이 그랬기 때문에 이는 젖을 먹는 단계,
아직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초보적인 단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국민들의 교육수준은 어떻습니까. 물론 목사님들도 많이 공부를 하십니다만, 일반 국민들의 교육수준은 정말 높습니다.
한국에서는 1950년대 같은 경우를 보면 고등학교만 나오더라도 초등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었다고 합니다만, 요즘은 학교 선생님 되려면
대학교 교수님보다도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1년에 석사, 박사가 얼마나 많이 배출이 됩니까. 지금 보면 교회 목사님보다도 많이 배운 분들이 무척이나 많은
세상입니다. 이제는 무조건 목사라고 해서 지식인 대우를 받는 시대는 지났다고 할 수 있겠지요.
사실 우리 개신교에 있어서 목사라고 하는 지위는 특별하지가 않습니다. 그저 예배를 인도하는 직책을 맡았을 뿐이고, 교회의 머리는
목사님이 아니라 오로지 예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하느냐. 목사님이 대우를 받지 못하게 돼요. 그러니까 경우에 따라서는 성경말씀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경우도 발생을 합니다.
그럼 성도님들은 어떻습니까. 성경 읽기를 즐겨 하시나요? 아니면 안 즐겨 하시나요? 예, 그냥 여전히 목사님이 말씀해주시면 편해요.
그런데 이런 것을 오늘 말씀에서 뭐라고 하십니까. 이제 젖 먹는 단계가 지나고 단단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여전히 젖을 먹고 있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어린 아이일 때에는 젖을 먹어야죠. 단단한 것을 먹으면 소화를 못 시켜요. 그러면 젖을 주고, 그리고 이유식을, 그것도 손수 먹여
주고 그러지요.
그런데 유아에서 아동, 소년, 청소년, 청년, 그리고 성년으로 몸은 점점 커가는데, 여전히 젖을 달라고 하고, 단단한 음식을 싫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몸의 체력은 떨어지고 저항력도 약해집니다. 아무런 일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이제 야채다 고기다 해서 많이 먹고 튼튼해져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일을 감당하고, 그리고 뿐만 아니라 어떠한 시련이 닥쳐오면 이를
이겨내면서 힘을 길러가야 하는데, 여전히 젖 줘. 분유 줘. 라고 하면, 온몸의 뼈와 근육은 발달하지 못합니다.
어린아이처럼 생각하고 어린아이처럼 행동하고, 그리고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오면 쓰러지고 넘어지고 하면서, 에이, 예수님 괜히 믿었다
하고 후회하면서 우상을 섬기고, 결국 타락하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꿈이 있었습니다. 아니, 그렇다고 뭐 대단한 게 아니라, 어렸을 때 꼭 한 번 타고 싶었던 것이 유모차가 있었습니다.
그게 그렇게 타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어렸을 때 그걸 타볼 기회가 없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제가 유모차를 타고, 손에는
딸랑딸랑 소리가 나는 것을 들고는 좋다면서 타고 다닌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우습겠습니까.
하지만 사실 이게 웃을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이것이 오늘날 우리 모습, 신앙적으로 볼 때 우리 사회에 있어서의 오늘날 교회
모습인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6절~27절
“26.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また、わたしのこれらのことばを聞いて、それを行わない者はみな、砂の上に自分の家を建てた愚かな人にたとえることができます。
雨が降って洪水が押し寄せ、風が吹いてその家に打ちつけると、倒れてしまいました。しかもその倒れ方はひどいものでした。」
아무리 교회에 오래 다녔어도, 아무리 높은 직분을 받았어도 성경 말씀이 없다면 아무런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를 알아야 행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모른다면 아무리 신앙생활이 오래되었다 하더라도 이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단단한 음식을 먹어야 할 때입니다. 주님의 말씀, 성경말씀을 먹어야 할 때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마귀 사탄을 물리치고, 주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기도 응답도 받고, 주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주님이
맡겨주신 모든 일들을 감당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해 예비해주신 축복을, 하나도 빠짐 없이 모두 받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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