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방고리(道傍苦李) - 길가에 있는 쓴 자두 열매, 남에게 버림받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 ◇
金(김)씨 다음으로 많은 大姓(대성) 李(이)씨의 훈음인 오얏은 털 없이 매끈한 과일 자두의 옛말이다.
자주색 복숭아 紫桃(자도)에서 변한 말로 시큼한데다 달콤하여 옛 성어에 많이 등장할 만큼 대접을 받았다.
오얏나무 아래선 갓을 고쳐 매지 않아야 한다는 李下不整冠(이하부정관), 재주나 풍모가 뛰어난 문하생이 많은 것은 桃李滿天下(도리만천하) 등으로 모두 아끼거나 귀한 과일이었다.
이렇게 누구나 좋아하는 오얏이라도 여기저기 지천으로 널려 있으면 눈길을 끌지 못한다.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가(道傍)의 오얏나무 열매가 쓰다(苦李)는 말은 모두 거들떠보지 않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는 것을 비유한다.
중국 竹林七賢(죽림칠현) 중의 한 사람인 王戎(왕융, 234~305)의 일화에서 유래한 성어다.
왕융은 西晉(서진)의 정치가로 어려서부터 영특했고 풍채가 비범했지만 노장사상을 선호하며 유유자적, 세속정치에는 큰 뜻을 두지 않았다.
그가 어릴 때 일이다.
아이들과 놀던 중 길가 오얏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어 모두 따려고 달려가는데 왕융은 움직이지 않았다.
한 사람이 물어보니 답한다. ‘길가에 오얏이 저렇게 많은데도 따지 않는 것은 틀림없이 쓰기 때문입니다(樹在道邊而多子 此必苦李/ 수재도변이다자 차필고리).’
오얏을 따서 먹어보니 과연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썼다.
房玄齡(방현령)의 ‘晉書(진서)‘ 왕융전과 劉義慶(유의경)이 쓴 ‘世說新語(세설신어)’ 雅量(아량)편에 실려 있다.
시구에서도 종종 등장한다.
晩唐(만당)시대의 시인으로 율시에 뛰어난 許渾(허혼)은 이렇게 읊는다.
‘길가의 쓴 오얏은 오히려 열매를 늘어뜨렸고, 성 밖의 감당나무는 그늘을 펼쳤구나(道傍苦李猶垂實 城外甘棠已布陰/ 도방고리유수실 성외감당이포음).’
우리나라 고전에도 고려 후기 문신 李尊庇(이존비)에서 인용한 것이 ‘東文選(동문선)’에 나온다.
‘좋건 궂건 물건은 다 쓸 데가 있는 법, 쓴 오얏 열매 많음을 누가 탓하리(物無美惡終歸用 苦李誰嫌着子多/ 물무미악종귀용 고리수혐착자다).’
흔한 물건이라도 쓰일 데가 있다는 이야기로 왕융 일화와는 뜻하는 바가 다르다.
이렇게 너무 많아 지천이라도 쓰일 곳이 없어 버림받는다는 처음의 뜻에서 차츰 그렇게 된 데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는 뜻으로 의미를 넓혔다.
하지만 우리 속담 ‘개살구도 맛들일 탓이다’란 것이 뜻하는 대로 정을 붙이면 처음에 나빠 보이는 것도 점차 좋아지게 마련이다.
흔해 빠진 쇠오줌과 말똥 牛溲馬勃(우수마발)이 약재의 이름이라고도 하니, 발길에 채는 물건일지언정 쓰임새가 있을 수 있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덩달아 팽개칠 일이 아닌 것은 좋고 나쁨이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주관에 달려 있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2024년 06월 18일,
"사소한 것이 완벽을 만들지만 완벽은 사소한 것이 아니다"라고 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인생 교훈이 오늘 내가 지나쳐버리는 사소한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화요일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