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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이제 시작점인데요. 우리 사랑하는 동역자들에게 정말 축복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한 명절 되세요. 네 행복한 명절 되세요. 추석 명절 기간이라 많이 분주하시죠 벌써 이제 각자 또 고향이나 가야 할 곳을 향해 가신 분들도 여러 가정에 계신데요. 여러분 예배의 우선순위를 두고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들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추석은 우리 옛 역사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농사를 짓고 살아가던 우리 조상들의 축제 같은 날입니다. 1년 동안 땀 흘려서 얻은 이 곡식들을 추수해서 한아름 안고 하늘을 향하여 감사하고 또 조상들에게 바치는 그런 민족의 소박한 감사절이 이 추석 명절입니다. 그래서 이때는 차가 막히든 안 막히든 요즘에야 교통수단이 그래도 많이 좋아지고 도로가 많이 넓어져서 시간이 보통 예전보다 훨씬 반틈 이상 준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다 고향을 찾고 집 안의 모든 식구들이 함께 모여서 음식을 만들고 또 먹고 또 조상의 묘소들을 찾아 성명하는 그러한 과정들을 통해서 부모를 공경하고 또 가족 간에 서로 우애를 다지는 절기가 바로 이 추석 명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하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장 풍성하고 가장 뭔가 가득해 보이는 날이 이 추석이었죠.
근데 요즘 여러분들 추석이 여러분들 어렸을 때 그 느낌의 추석과 연결이 되나요? 추석 어떻게 기대함으로 행복하게 지내고 계시는지 지낼 계획이신지 궁금합니다. 제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성 교우들은 여성 교우들대로의 스트레스가 있고 또 남성 교우들은 남성 교우들대로 또 자녀들은 자녀들대로 이 큰 명절을 맞아서 뭔가 가족들이 함께하는 시간 또는 함께하지 못하는 그런 시간들이 불편함으로 깨워지고 뭔가 이 명절에 대한 내용이 변질된 그런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저는 이 명절을 시작하는 오늘 우리가 이 성경적인 의미로 이 명절에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보내야 할까 좀 함께 발견하고 나아가는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특별히 우리는요 성도인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지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살아가는 자들이기 때문에 감사해야 하는 사람인 줄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매일매일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인도하심이 우리를 붙들어주고 계시니 우리는 감사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지, 여러분 감사하고 살아가십니까? 다시 한 번 감사하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게 우리 성도의 본연의 삶이에요.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려고 하는 이 시편 100편의 배경은요. 포로로 살았던 사람들이 귀환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애타게 애타는 심정으로 바라보았던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그리고 그 성전을 재건해 놓고 그 성전을 향하여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에요. 나라가 무너졌고 심지어 자기들이 가장 귀하게 여겼던 성전이 무너진 지 벌써 수십 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포로로 끌려가서 이방 땅에서 생활하다가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와서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장면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근데요. 이 시점에서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시편의 기자처럼 우리가 감사하기 위하여서는요. 진정한 기독교인,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진정한 감사는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성전을 재건해 놓고 지금 앞에 있는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요. 그들의 감격 감사의 정도가 달랐을 겁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 하나님을 향한 헌신의 정도에 따라 그 감사의 정도가 달랐을 거라고 저는 분명히 생각합니다. 감사의 유일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을 분명히 믿는 사람, 그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있는 사람은 그 시간이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여러분 믿는 자에게 감사는 중요한 덕목일 뿐만 아니라 신앙의 척도입니다. 지금 내 삶의 감사가 어떠한지를 살펴보십시오. 혹시 내 삶에 감사가 전혀 없습니까? 내 신앙이 지금 상태가 별로 안 좋은 거예요. 오늘 시편은 표제가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하는 표제를 가지고 있는 시편입니다.
이 외침답게 이 내용 안에는요. 원망 불평 비해 이런 내용들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아요. 다른 시편에 보면 감사를 하고 찬양을 하면서도 뭔가 애달픈 사연들이 그 안에 딸려 들어오거든요. 우리가 삶을 살아가다 보면 그 누구도 아픔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요즘 우리 사랑하는 동역자들의 육체적인 연약함으로 인해서 우리가 전심으로 기도하고 있잖아요.
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회복되는 분들도 계시고 여전히 진행 중인 분들도 계십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신앙적인 어려움, 관계적인 어려움 다양한 어려움들이 우리 모두에게 늘 존재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이라면 이 시편 100편의 기자처럼 우리의 환경이 어떠하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불평하거나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가운데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들임을 다시 한 번 기억하길 원합니다. 오늘 이 시간 20편 100편의 기자의 외침,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양하라 이 찬양의 고백이 우리에게 온전히 울려퍼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특별히 감사절 때는 어떤 내용 때문에 감사합니다. 이런 내용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요. 오늘은 어떻게 감사할까? 특별히 이번 명절 기간 좀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감사를 해볼까라고 하는 내용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추석 명절을 맞아서 신앙인들인 우리가 다른 신앙인인 우리 동력자를 만날 수도 있고 또는 전혀 믿지 않는 우리 친척들 형제들을 만날 수 있는데 그 과정 속에 어떠한 감사를 드려야 할까 먼저 첫 번째로 찬송함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 정말 즐겁고 기쁠 때 무슨 노래를 부른다고 해요 우리가 여러분 진짜 기쁘고 즐거울 때 부르는 노래 콧노래 응얼응얼거리는 뭔가 노래도 아닌데 막 이렇게 막 즐거워가지고 막 이렇게 부를 때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진짜 감사하면요. 찬양은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인의 고백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이거 넘기게 해주세요. 네, 오늘 1절 2절입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러분 이 고백 안에 지금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그 표현을 한번 느끼셔야 합니다. 찬양하는 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성경은요.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함으로 감사함으로 찬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근데 우리 안에요. 찬양에 대한 약간 잘못된 인식들이 있어요. 나는 노래를 잘 못해 나는 악기 같은 거 잘 연주하는 게 없어. 그래서 찬양은 뭔가 특별한 은사가 있는 사람들,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찬양은 누구든지 즐거운 마음, 감사의 마음이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겁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성경 성경은 우리에게 찬양을 아주 잘하라고 말하지 않아요. 최고의 목소리로 하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기쁜 소리를 바라라고 말합니다.
우리 한번 요 이사야 말씀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52장 9절 시작
아멘 아름다운 곡조에 맞춰서만 부르는 것이 찬양이 아닙니다. 기쁜 소리로 또 시편 47편을 보면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합니다. 찬양은 기쁜 소리 즐거운 소리 감사가 담긴 그 찬양이 진짜 찬양입니다. 악보를 나는 잘 못 봅니다. 나는 음치라서 소리만 내면 좀 이상합니다. 그런 분들도 계시죠. 근데 여러분 여러분들 안에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즐거움으로 그 찬양을 드린다면 하나님이 그 찬양을 가장 기뻐받으신다는 거예요.
요즘 리셋을 외치면서 찬양의 소리를 높여보자라고 하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떻게 오늘 좀 도전을 해보셨나요? 제가 보니까 몇몇 분들은 도전하기 시작했어요. 여전히 목소리를 내지 않는 분들이 계십니다. 속으로만 하세요. 하나님은 속을 보시니까. 물론 속을 보시지만 우리 공동체의 찬양이 회복돼야 나의 찬양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왜요? 하나님은 어디서나 다 계시는 분이기 때문에요.
여러분들이 일하는 일터에서도 또 이 명절 가운데 먼 길을 오고 가는 차 안에서도 또 여러분들이 명절에 밥상을 치우고 설거지하는 그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번 명절 기간 한번 이 찬양에 대해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시고 찬양과 함께하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특별히 지금 우리는 신앙의 리셋 기간입니다. 리셋을 외치며 지금 하나하나 점검하고 있는데요. 주일 예배의 자리에 습관적으로 넣는 분들은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여러분들 설교 시간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코로나 기간에 우리의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우리 교회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 교회도 저는 비슷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유튜브에 여러분들이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릴 때 유튜브의 통계가 다 점검될 수 있는 거 아시나요? 시간대별로 몇 명이 접속했고 이런 게 다 나와요.
근데 많은 사람들이 이제 연구를 했는데 온라인 예배를 드렸던 그때 많은 교회들이 그때 성도들의 이 예배에 참여 그 퍼센테이지가 어떤 때 어떻게 됐었는지 여러분들 예측이 가능하시죠?
설교 시작하는 순간 가장 많이 들어왔고 설교 끝나고 가장 많이 나갔다는 거예요 무슨 인식이 있는 겁니까? 예배는 말씀을 듣는 것이라고 하는 인식이 있는 거예요.
아닙니다. 여러분 말씀만으로 예배가 끝나는 게 아니에요.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죠. 근데 여러분 주일 예배를 시작할 때 드리는 찬양 우리 찬양팀과 하는 그 찬양의 시간에 놓쳐서는 안 됩니다. 아니면 오히려 먼저 와서 여러분 준비하십시오. 오늘은 어떤 찬양을 부르는지 제가 전날 유튜브 링크를 올려드리는 이유가 뭡니까? 미리 들어보시고 미리 그 찬양을 묵상하시고 와서 함께 찬양하자는 거예요. 앞에 찬양하는 찬양팀들을 기도해 주시고 응원해 주십시오.
우리 교회가 찬양팀이 지금 세워져 가는 과정이라 많이 부족함도 있고 연약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응원해 주고 기도해 주실 때 찬양팀은 더욱더 살아날 것입니다. 찬양이 살아야 예배가 삽니다. 예배가 살아야 우리가 사는 겁니다.
우리 한번 따라해볼까요?
찬양이 살아야 예배가 삽니다.
예배가 살아야 우리가 삽니다.
네 정말 이건 분명합니다. 크리스천 상담자들이요 상담을 할 때 그 크리스천들을 상담하는 과정 속에서 질문하는 질문들 속에 이런 질문이 있답니다. 지난 주일 교회에 가서 찬양을 소리 내서 부르셨습니까? 만약에 아니요라고 말을 하면 지금 집에 가셔서 소리 내서 찬양을 부르십시오.
왜 이렇게 상담가가 이러한 이야기를 할까요? 찬양에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찬양은 우리의 심령을 변화시킵니다. 여러분들 기분도 전환시킬 수 있어요. 우울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명절 기간 여러분들 어떠신가요? 여러분들을 짓누르는 혹시 그 어떤 사건들도 있지 않으신가요? 부담스러운 어떤 사람과의 만남이 혹시 있지 않으신가요? 요즘 계절 탓하고 계시지 않으신가요?
찬양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찬양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특별히 이번 명절 기간 여러분들 가정이 믿음의 가정이라면 가정 예배를 드리실 거 아니에요?
그렇죠 가정 예배를 드리시고 난 이후에 아니면 드리기 전에 한번 이번 기회에 좋아하는 찬양들을 한번 이렇게 서로 말해서 그 찬양 한번 불러보기 이런 것도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이니까 그런 말씀하시지 요즘 평신도 가정에서 그런 문화가 가능합니까? 제가 예전에 간증같이 그런 고백드린 적 있잖아요. 저희 집안도요. 명절만 되면 고스톱 치고 같이 막 이방저방 아이들 할 것 없이 고스톱 치는 문화가 있는 가정이었던 근데 한 믿음의 사람이 들어와서 저희 아내가 들어와서 믿음으로 외치는 한 그 작은 외침이 곧 수업이 사라지고 지금은 오히려 예배드리고 그리고 그 예배 이후에 그 삶의 나눔 그 은혜의 나눔이 이루어지는 그 시간들을 볼 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여러분 문화는요 만들어가는 겁니다. 물론 처음엔 쉽지 않아요. 저희도 고스톱 치다가 앉히니까 어른들이 뭘 해야 될지 몰라가지고 막 서성거리고 다니고 막 어색해가지고 이게 장손이 말을 하니까 뭐 듣기는 해야 되겠고, 목사님이 말하니까 듣기는 해야 되겠는데 뭘 해야 될지 모르는 그런 상황 속에서 점점점점 문화가 세워지더라고 여러분들의 가정이 믿음의 가정이 되길 원하십니까?
문화를 만드셔야 됩니다. 물론 고스톱 자체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에요. 저는 여러분들 안에 믿음의 문화 특별히 이번에는 서로 함께 찬양을 공유하고 찬양하는 문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섬김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찬양은 우리의 입술로 드리는 것이지만 섬김은 우리의 온몸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2절에서 우리에게 권면하죠. 우리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면서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아멘 섬김에 대하여 히브리 기자는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어떤 의무 부담, 귀찮은 일이 아닙니다.
섬기는 일은요 특권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동기,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과 또 은사를 사용해서 여러분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섬기는 동기, 그것은 바로 감사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누가 주신 겁니까? 여러분들이 늘 수고하고 애써서 지금 움직이고 살아가지만 지금 우리가 바로 옆에 있는 우리 동력자들만 봐도 알잖아요. 한순간에 지금 우리가 기도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리지 않았습니까? 여러분들의 삶도 딱 지켜보면 알지 않습니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내가 지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세상 사람들도요. 자기가 가진 것을 사람들에게 나누는 기부를 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가 가진 것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들이 가진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명절 같은 시기에 가족들이 같이 모일 수 있는 것, 그것도 여러분 은혜입니다.
요즘 가족들이 모이지 못하는 가정이 너무 많아요. 여러분들 가운데도 아마 그런 가정들이 있으실 겁니다. 근데 우리 가족은 맨날 뭐예요? 여러분 불평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기회를 주시는 겁니다. 이 귀한 시간에 맛있는 음식 만드느라고 그걸 먹느라고 또 tv 보느라고 다른 것들 때문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시간에 마땅히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섬김으로 감사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여러분들 안에 있는 그 은혜에 그 감사를 가지고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표현해 보기를 원합니다. 섬김의 구체적인 내용은 여러분들이 스스로 정해야 되겠죠. 제가 여기서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지만 여러분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정하고 한번 해보는 겁니다.
여러분 누군가와 함께해 주는 시간을 내어 보십시오. 명절 기간 그냥 막 정신없이 음식 만들고 치우고 먹고 놀고 하는 걸로만 시간을 보내지 마시고 한번 여러분들 같이 있는 여러분들 가족들의 얼굴 표정을 자세히 보세요. 그리고 그들의 말 한마디 그 소리를 한번 잘 들어보십시오. 어쩌면 영적으로 그들이 부르짖고 있는 소리가 들릴 수도 있어요. 고통 속에서 제발 내 손을 잡아달라고 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릴 수 있습니다.
명절이 되면 넉넉하게 혹시 음식을 만드셨다면 그 음식 괜히 꾸역꾸역 먹다가 살찌고 나중에 버리지 마시고 그냥 명절 지내고 많이 만들었으면 여러분들 주변에 있는 이웃들과 한번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명절이 되면요 홀로 계신 분들은 더 외로워요. 주변에 이런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분들을 한번 찾아보십시오. 눈을 크게 떠보십시오. 보일 겁니다.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섬김의 손길을 기다리고 또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명절 기간 설거지가 산더미같이 쌓였는데 여성분들이 다 그것들을 감당하느라고 얼마나 힘드십니까? 우리 교회에서 남성 교우들 설거지 잘해주시잖아요. 한번 이번에는 가정에서도 한번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거기가 여러분 사역지라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들 한 번 변화되면 여러분들 때문에 아마 그 가정의 변화의 역사가 일어날 겁니다.
어지러워진 집안을 정리하는 것도 누군가의 몫으로만 넘기지 마시고 함께 한번 해보세요.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도 시험 기간이고 바쁜 거 알아요. 하지만 이 기간에 어머니 아버지 그 눈을 보십시오. 그 몸을 보십시오. 뭘 하고 계십시오 여러분들이 조금만 도와줘도 엄마 아빠가 행복해질 겁니다.
작은 예 몇 가지를 드렸지만 여러분 이런 섬김의 행동들의 원인이 어디서부터 시작하자고요?
하나님을 향한 감사에서부터 시작하자고요. 힘겹고 외로운 가운데 부르짖는 사람들의 그 기도의 제목이 우리의 감사로 인한 동기로 시작된 작은 섬김으로 응답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찬양은 입술로 하지만 섬김은 온몸으로 하는 거예요. 이번 명절 기간 여러분들의 작은 섬김을 통해서 또 선한 영향력이 흘러넘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길 원합니다. 여러분 감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있는 사람은요. 이 감사를 나만 가지고 있을 수가 없어요.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감사를 나눌 수밖에 없는 겁니다.
오늘 3절의 상반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선지자 이사야가 한 날의 예언을 하는데요. 그날에 우리가 찬양할 말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이사야 12장 4절 현대 현대어 성경의 내용으로 보겠습니다. 시작
아멘 감사하는 사람들이 지금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이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 기쁜 소식을 알고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인 줄 믿습니다.
지금 세상은 갈수록 더 깨워지고 나빠질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가진 소식은 더 날이 가면 갈수록 빛을 바라게 되고 또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소식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는 거 여러분들이 가진 그 소식을 들으면 그들의 삶의 변화가 일어날 겁니다. 풍성하고 영원한 삶을 시작해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삶에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역사가 있으시죠? 여러분 그것은요 여러분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하나님의 한 부분일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이 가장 권위 있게 전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간증은 교회 앞에서만 하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들의 삶의 자리에서 간증이 일어나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행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전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만약 우리가 입을 열지 않는다면 그 복음을 전해들을 수 없는 우리 가족들, 형제들, 친척들, 이웃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듣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깨어진 세상 가운데 고통당하다가 결국 멸망의 길로 가고 말 것입니다.
이번 명절 기간 여러분들 안에 역사하고 계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물론 복음을 전함에도 지혜가 필요하겠죠. 여러분들 가정 안에도 뭔가 복음적인 이야기, 신앙의 이야기를 꺼내면 다툼이 되고 전혀 거부감이 일어나는 그런 가정들도 분명히 있는 줄 압니다.
근데 여러분 먼저는 우리 안에 분명한 인식이 있기를 원하는데요. 지금 내 옆에 있는 그들이 겉 모양으로는 평안해 보이고 뭔가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와 같은 신앙인들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기쁨과 감사가 없는 삶을 살아가는 그들은요. 메마른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이야기하거든요. 외적인 풍부함이 그들의 영을 풍부하게 할 수가 없는 걸 우리는 알지 않습니까? 무엇으로도 얻을 수 없는 죄 용서, 평안,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그 우리는 그들의 영의 상태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근데 말로 그들에게 전할 수 없다면 여러분들의 삶을 통해 보일 수밖에 없어요. 물론 너무 짧은 시간 만나는 그것이 아쉽지만 여러분들이 뭘 한 가지를 하더라도 감사하십시오. 뭘 한 가지를 하더라도 그들을 축복해 주십시오. 뭘 한 가지를 하더라도 여러분들 가족들이 다른 가족들과 만날 때 우리 가족의 행복함을 드러내 보이십시오. 그게 바로 복음을 증거하는 빛의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그들에게 도전을 일으킬 겁니다. 감사의 위력은 놀랍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울과 신라 사도행전 16장에 나오는 장면을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복음을 증거하는 중에 옥에 갇혔습니다. 옥에 갇히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겠죠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근데 그 고통의 현장 가운데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그 상황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하는 과정 속에 감사가 터져 나옵니다. 그리고 감사하다 보니 찬양이 막 나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찬양이 나오니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막 흔들리더니 옥새가 다 열려버리고 그리고 그들이 묶여 있었던 쇠사슬까지도 다 풀려버렸습니다. 그들을 지키고 있었던 간수들이 깜짝 놀래가지고 다 열려 있는 상태니 다 도망갔겠구나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할 때 그것을 가로막고 그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면 저희도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하는 그들의 고백을 듣게 되고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당신과 당신의 가족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고 하는 복음을 선포함으로 그날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동력자 여러분 명절을 앞두고 목사님이 엄청 부담 주시네라고 생각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근데 여러분 먼저 여러분들 안에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러면 억지로 하는 게 아니에요 억지로 뭔가를 의도적으로 하자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감사와 찬양 앞에 지하의 감옥 문이 열렸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기억하길 원합니다.
여러분들도 혹시 여러분들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감옥에 갇혀 있는 혹시 지금 모습입니까? 두려우십니까? 혹시 명절에 오랜만에 만날 누군가를 생각하면 혹시 여러분들 마음에 두려움이 있으십니까? 여러분들 가정 안에 깨어짐의 어떤 사건 때문에 불안하십니까?
또는 재정적인 염려에 감옥에 갇혀 계십니까? 또는 관계에 풀리지 않는 답답함의 감옥에 계십니까?
무엇이든지 먼저 감사로 그 문이 열려지는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때에 우리는 찬양하고 또 섬김의 자리로 또 복음을 내 삶을 통하여 드러내는 그러한 자리로 나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이제 명절의 시작점인데요. 오늘 이 시점에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더 이상 고민이나 불평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더 크시기에 오히려 그것들이 하나님을 더욱더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뿐만 아니라 이번 명절 기간을 통하여 나를 통하여 우리가 요즘 계속적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기억한 것처럼 우리는 세상에 소금이다. 우리는 세상의 빛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일꾼이다. 우리 4주 동안 나눴던 그 정체성을 기억하면서 이번 명절 기간 이 정체성으로 한번 우리 살아가 보자고요.
여러분들 경험하지 못했던 역사, 여러분들이 기대하지 않은 역사가 이번 명절 가운데 여러분들 가족 가운데 일어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통해 또 하나의 열매를 기대하시는 줄 믿습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