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시: 2026년 8월 13일 (목)
2. 날씨: 맑음
3. 경로: 상이암 아래 문화관광 해설사의 집 - 성수산 - 지장재 - 상이암 - 원점회귀
4. 거리: 약 3.3km
5. 소요시간: 2시간 25분
6. 성수산 지명도: 산림청 선정 숨겨진 '우리산 244'
7. 산행정보 : 성수산, 상이암
8. 지역: 전북 임실군
9. 트랙:
10. 코스지도
[성수산]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의 성수면 성수리와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고도:876m). 남서쪽의 팔공산과 이어지는 산줄기로 동쪽 사면에서 발원한 하천은 섬진강 본류를 이루고 서쪽에서 성수천, 남천 등의 하천이 발원해 오봉저수지, 성남저수지 등을 만든다. '여지도서'(임실)에 "성수산(聖壽山)은 장수의 팔공산에서 뻗어 나온다. 관아의 동쪽 30리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가지사(迦智寺), 심원사(深源寺), 상이암(上耳菴)이 있다고 하였다. '호남지도'에 현의 동쪽 끝 장수와의 경계에 성수산이 묘사되어 있으며 아래로 상이암 등의 사찰이 함께 그려져 있다. 그 밖에도 '해동지도', '대동여지도'(17첩 4면) 등의 지도에 '성수산'이 표기되어 있다. 산에는 신라 때 창건했다고 알려진 상이암(上耳菴)이 있는데 이 사찰은 왕건과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가 함께 백일기도를 올린 곳이며 이성계도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올린 뒤 왕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특히 산 지명은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올릴 때 '성수만세(聖壽萬歲)'라는 신의 계시를 받은 것에서 '성수산'이라고 하였다는 설이 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상이암] 성수산에 위치한 상이암은 신라 헌강왕 원년(875)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며, 최초 도선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후 태조 3년(1394) 각여선사(覺如禪師)가 증수하였으나 1894년 동학혁명 때 병화를 입었다가 다시 1909년 김대건(金大建)이 중건했다. 일본 강점기에는 의병장 이석용이 상이암을 근거로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그 여파로 절은 일본군대에 의해 불에 타버렸다. 1912년 대원(大圓) 스님이 재건하였으나 1950년 한국전쟁당시 소실되었다. 1958년 임실군수 양창현(梁昌鉉)이 중심이 된 상이암 재건위원들이 빈터에 법당과 요사를 지었다. '성수산 상이암 사적기'에 의하면, 894년에 고려 태조 왕건이 17세의 나이로 도선국사와 함께 이곳에서 100일 기도를 드리고 다시 3일을 더 기도를 올렸다고 하는 전설과 조선 태조 이성계가 황산대첩(1380)을 승리로 장식하고 개선하는 길에 이곳에 들러 3일간 치성을 드리자, 천신이 내려와 ‘성수만세’를 세 번 외쳤다고 하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이후 조선 태조가 도선암을 상이암(上耳庵)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경내에는 고려 태조가 썼다는 ‘환희담(歡喜潭)’ 비석과 태조 이성계가 썼다는 ‘삼청동(三淸洞)’ 비석이 있고, 혜월당(慧月堂) 부도와 두곡당(杜谷堂) 부도가 각각 국가유산자료 제124호와 유형국가유산 제150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출처 : 임실군 문화관광)
[성수산과 상이암] 성수산(聖壽山)은 해발 876m로 임실의 주산(主山)이다. 장수 팔공산(八公山) 준령이 치달아와 우뚝 멈춘 세 가닥 중 힘찬 맥을 형성하고 있으며 호남의 미목(眉目)으로 여덟 왕이 나올 길지(吉地)라 알려온 명산이다. 이곳은 구룡쟁주지지(九龍爭珠之地)라 이는 아홉 마리의 용이 구슬을 물려고 다투는 형국(形局)이라고 한다. 일찍이 신라 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이 산을 둘러보고 천자봉조지형(天子奉朝地形)이라 탄복하고 헌강왕 원년(875)에 도선암(道詵庵)이라는 명찰을 창건하였다. 도선 국사는 송도로 올라가 왕건(王建)의 부친 왕융을 찾아 왕건으로 하여금 이곳 성수산에서 백일치성(百日致誠)토록 은밀히 권유하였다. 이곳에 내려온 왕건은 백기도 끝에 고려 건국의 대업을 성취할 수 있는 계시를 받아 그 기쁨을 억누르지 못하여 환희담(歡喜潭)이라 비에 새겼다고 전한다. 그 뒤 고려 말에 무학대사(無學大師)의 권유로 태조 이성계도 이곳을 찾아 치성을 올린바 삼업(三業)이 청정함을 깨닫고 삼청동(三淸洞)이라 글씨를 새겼다고 한다. 또한 하늘에서 천신이 내려와 손을 귀 위로 올리며 성수만세(聖壽萬歲)라 세 번 외치는 용비어천(龍飛御天)의 길몽을 얻었다. 따라서 조선개국과 더불어 태조3년(1394) 각여선사(覺如禪師)가 도선암(道詵庵)을 상이암(上耳庵)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이로써 성수산은 한반도 제일의 생왕처(生王處)로 부른다. 구룡지지도(九龍之地)인 이곳은 군신조회형(君臣朝會形)으로 임금 앞에 여러 신하가 조례(朝禮)를 하는 형국이니 산세(山勢)가 그토록 좋아 천기(天氣)와 지기(地氣)로 인하여 생기(生氣)가 넘쳐나고 있는 곳이다. (안내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