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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회 대간팀 계획에 따라 '빼재(신풍령) → 삼봉산 → 소사고개 → 삼도봉 → 대덕산 → 덕산재 → 부항령' 20.9km, 9시간 코스를 달릴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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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산[三峰山]
높이: 1,254m
위치: 경남 거창군 고제면
삼봉산(1,254m)은 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삼봉산이라 부르며 전북 무주와 경남 거창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남쪽에 자리 잡은 금봉암이 있는데 금봉암을 중심으로 산행이 이루어진다.
금봉암 주위에는 투구봉, 노적봉, 칼바위, 장군 바위, 신중봉, 부부봉, 신성봉, 칠성봉, 장군수 마당바위 등 봉과 바위벽 등이 어울려 있다.
금봉암은 150여 전 해인사 여신도가 백일기도 끝에 점지받은 자리에 세운 암자로 금빛 찬란한 봉황이 기도처를 세 번 왕복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행길에는 억새밭과 잣나무 숲이 펼쳐지고 정상에 서면 덕유산의 웅장한 모습이 펼쳐진다. 등산 기점은 고제 봉산 삼거리에서 금봉암을 거쳐 오른다.
대덕산[大德山]
높이: 1,290m
위치: 경북 김천시 대덕면 덕산1리
대덕산은 이곳으로 살러 오는 사람은 모두 많은 재산을 모아 덕택을 입었다 하여 대덕산으로 불렸다. 대덕산은 가야산을 향해 뻗은 능선을 사이에 두고 경북 김천과 경남 거창을 갈라놓은 삼도 분기점, 즉 해발 1,250m의 초첨산을 옆에 둔 명산으로, 옛날에는 다락산, 다악산으로 불리었고 정사에는 기우단이 있었다고 전하는 명산이다.
부드럽게 생겼으면서도 우직한 남성다운 덕기가 어린 이 산은 예로부터 수많은 인걸을 배출했고, 또한 이 산이 있는 무풍동은 남사고의 십승지지 중 하나로 알려진 고장이기에 유명하다. - 한국의 산하
12월 12일! 2020년 12월 두 번째 토요산행은, 월 1회 정도는 오지 산행을 계획하는 산악회와 같이 정선 상원산에 갈 예정이었다. 상원산행은 11월 초 우연히 산악회 12월 산행계획을 둘러보다 발견한 계획으로 기대가 컸었다. 현재 진행 중인 해발 1,000m가 넘는 산이라 꼭 가야 하지만, 많이 알려진 산이 아니라 등산객의 방문이 거의 없어 산악회가 잘 찾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당일 산행으로 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특히 요즘 같은 코로나 상황에서는 그나마 있던 대중교통 편수도 대폭 줄어 더욱 어려웠다. 그런데 개인적인 기대와는 다르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라서인지 산행 신청 상황이 지지부진해 어쩔 수 없이 Plan B를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발견한 게 대간 팀이 진행하는 삼봉산, 대덕산 연계 산행이다.
해발 1,000m가 넘어 꼭 가야할 산인 삼봉산, 초점산(삼도봉), 대덕산도 오지 중의 오지 산이라 등산객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지만, 대간 상에 있어 대간꾼이라면 꼭 지나야 하는 산이기 때문에 교통편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대간꾼이 있는 한, 산악회에서 최소 1년에 한 번은 방문하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처음 계획을 봤을 때는 무박 산행에 20km가 넘는 구간이라 약간 망설였지만, 그 날짜에 딱히 갈 만한 산도 없고, 1행에 1,000m가 넘는 3산을 오르를 수 있어 고민 끝에 선택했다. 지난주에 이미 야유회 겸 먹방산행으로 순천 금전산을 다녀와 연이어 야유회 산행을 할 수도 없었다. 해서 산악회에서 아직 상원산행 계획을 취소하지 않았지만, 다른 산악회의 빼재~부항령 대간 구간이 이미 만원이라 더 두고 볼 수 없어 지지난 주 금요일 대기자 명단 1번에 이름을 올렸었다.
지난 토요일 헉헉대며 순천 금전산을 오르고 있는데 갑자기 문자가 도착했다는 신호음이 울렸다. 해서 확인해보니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산악회로부터 자리가 비어 배정했으니 회비를 입금하라는 문자였다. 아니 하룻밤 사이에 산행 취소자가 생겼다고? 뭐 어쨌든 산행 중이고 급한 거 없어 무시하고 산행을 즐겼다[산행기]. 산행 후 일요일 해당 산악회 사이트에 들어가 살펴보니 한 명이 아니라 서너 명이 산행을 취소했다. 이후 취소자가 급증하더니 빈자리가 13개까지 늘었다. 취소 사태를 지켜보며 갑자기 취소자가 늘어난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다른 산행은 거의 변동이 없는 걸 보면 코로나 위기 단계 상승이 이유는 아닌 거 같고, 혹시 코스가 힘들어서인가 살펴봤지만, 대개 금요 무박 산행은 25km를 초과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20km에 불과해 다른 무박 산행에 비해 짧았다. 처음 이 산행 계획을 보고 같은 산악회의 백복령, 석병산, 삽달령 백두대간 코스가 19.59km였음에도 당일 산행으로 진행했는데[산행기], 고작 몇 백 미터 길다고 무박 산행으로 진행하는 건 과한 게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라 코스가 어려워서도 아니라는 내 판단이다. 그럼 뭘까? 그 와중에 흥수가 이 대간 산행을 신청해 단독 산행에서 흥수와 동행하게 되었다.
대안이 없어 20km 무박 산행에 참여는 하지만, 부담스러운 건 어쩔 수 없어 카메라는 가벼운 똑딱이, 아침은 빵으로, 거기다 스틱까지 들고 갈 예정이라, 날머리인 부항령에 식당이 있어 점심을 싸 들고 가는 일은 없기를 바랐다. 해서 부항령 주변 식당을 찾아보니, 부항령에서 3km를 더 가야 한다! 그럼 두 끼를 산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얘긴데, 다행인 거는 점심은 버스에 두고 갔다가 산행 후 먹어도 된다. 그럼 부항령에서 삼겹살을 구워? 버스 옆에서 거하게 하산주 파티를 해? 추위에 벌벌 떨면서 삼겹살 굽는 것도 모양 빠지는 일이라 산행 인생 처음으로 날머리에서 라면에 햇반으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금요일 오후 퇴근 시 집 근처 빵집에 들러 빵을 샀다. 45년 산행 인생에서 산에서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빵을 산 건 처음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백두대간 산행에서 최초가 몇 개 생겼다. 집에 도착해 언제든지 집을 떠날 수 있도록 배낭을 쌌다. 작은 디팩에는 비상식과 간식거리를 큰 디팩에는 산행 후 날머리에서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게 버너와 코펠, 라면 두 개, 물 1ℓ, 햇반 하나, 김치 등을 넣어 버스에 두고 산행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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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은 이미 싸두었고, 무박 산행이란 게 들머리로 이동 중 잠을 잔다는 의미라, 비록 3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버스에서 푹 자기 위해 수면제가 필요해 빨갱이를 반주로 평소보다 저녁을 늦게 먹었다. 다른 때 같으면 출발 장소에 모여 같이 한잔하고 버스를 탔겠지만, 코로나로 식당이 9시면 문을 닫는 상황이라 10시경 모여 한잔할 만한 장소가 없어 각자 집에서 해결해야 했다. 그렇게 잠들기 딱 좋은 정도로 빨갱이를 마시고 22시 48분경 집을 나서 등산객의 성지 양재역에 23시 50분경 도착했다.
등산객을 태우고 23시 50분에 사당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정차할 국립외교원 앞에는 이미 대여섯 명의 등산객이 모여 있었다. 멀리서 그 등산객을 구경하다가 버스 도착할 시간이 가까워 그들에게 다가가 산행 시 버스에 두고 갈 점심용 디팩을 배낭에서 꺼내 들었다. 낭비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배낭은 짐칸에 실었다가 들머리에 도착하면 짐칸에서 꺼내 바로 둘러메고 산행해야 한다. 따라서 들머리에서 짐을 꺼내 버스에 두고 어쩌고 할 시간이 없어, 버스에 둘 짐과 짊어지고 갈 짐을 분리했다. 23시 58분경 드디어 사당을 출발한 버스가 도착했다. 바로 짐칸에 배낭을 넣고, 점심용 디팩과 카메라, 패드를 들고 버스에 탔다. 사당에서 타고 온 흥수와 인사를 나누고 옆자리에 앉아 바로 잠을 청했다.
술기운에 잠이 들었다가, 갑자기 밝은 불빛에 눈이 부셔 잠에서 깨어보니 버스는 휴게소로 들어가고 있었다. 죽암 휴게소로 주어진 휴식 시간은 10분 정도였다. 아니 심야 무박 산행에서 굳이 휴게소를 들리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혼자 투덜거리며 화장실을 다녀왔다. 사실 양재에서 들머리인 빼재까지는 심야에는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수면시간이 많이 부족한데, 와중에 휴게소에 들린다고 잠을 깨우니 짜증이 났다. 그리고 버스가 휴게소를 떠나자 할 건 해야 한다고 버스 출발 전 각 자리에 놓아두었던 지도를 들고 인솔 대장이 이번 구간의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한 설명을 시작했다.
주의 사항이라고 특별할 게 없어, 무시하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눈이 부셔 잠을 깨어보니 버스가 힘겹게 고개를 오르고 있었다. 이번 산행에 참여하기 위해 대간꾼이나 산꾼의 산행기로 코스를 연구했기에 이미 전체 산행 구간의 어려움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들머리인 빼재가 해발 800m가 넘어 해발 1,250m인 삼봉산까지는 400여 미터만 올라가면 돼 다른 산에 비해서는 쉬운 편이지만, 삼봉산에서 소사고개로 내려갔다가 다시 초점산(대덕산 삼도봉)으로 올라가는 구간이 쉽지 않았다. 소사고개의 고도가 680m로 빼재의 고도보다 낮아 두 번째 초점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600여 미터를 올라야 한다. 여기가 고비다! 주어진 시간이 9시간이라 3시 도착 및 산행 시작이면 12시 마감이다. 날머리에서 라면을 끓여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늦어도 11시 30분까지 도착해야 하고, 그러려면 덕산재에 9시 30분까지는 도착해야 한다는 시간 계획까지 세워두었다. 힘겹게 고개를 오른 버스가 2시 58분에 정지했다. 기사와 인솔 대장의 분위기를 보니 목적지에 도착한 건 아니지만, 버스는 더 오를 수 없는 상황인 거 같아 버스에서 내렸다. "강설 및 결빙으로 인한 통행금지" 입간판이 버스의 진행을 막고 있었다. "응? 주변에 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 강설?"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지만, 빼재까지 남은 거리가 멀지 않기를 속으로 빌며 버스 짐칸에서 배낭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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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 58분 교통 통제용 철책을 넘어 빼재(신풍령, 수령)를 향하는 거로 이번 빼재~부항령 백두대간 산행을 시작했다. 눈도 없고 길이 얼지도 않았는데, 길을 막아 놓아 투덜거리며 가장 싫어하는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7분 정도 올라가자, 길을 차단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도로의 반이 허물어져 없었다. 그걸 보고 같이 온 친구나 일행과 지난 여름 태풍에 무너진 거라는 대화를 나누며 그 구간을 통과해 올라가자 더 황당한 모습이 나타났다. 마치 폭격을 맞은 거처럼 도로의 반쪽이 아니라 도로가 통째로 사라진 구간이다. 이 구간은 무너진 도로 옆의 산기슭으로 난 위험한 길을 따라가야 했다. 길이 무너진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모든 등산객이 지난 태풍 때문이라고 믿고 그 위력에 놀라며 계곡 가 3시 20분에 덕유산 동엽령으로 이어지는 빼재(수령)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제는 애초 계획에 없던 20분, 1.5km 정도의 구간이 추가된 거다. 라면을 끓여 점심 먹을 수 있는 30분 시간을 참작한 산행을 계획했는데 미처 생각지도 못한 20분이 소모된 거다. 갑자기 이번 산행이 불안해지기 시작했지만, 어쨌든 달려보자고 마음을 다잡고 데크 계단에 첫발을 올려 삼봉산으로 향하는 거로 실제적인 이번 빼재~부항령 산행을 시작했다. 그 시각이 3시 21분이다. 중간에 볼일을 보며 30여 분 깜깜한 산을 올라가 '된새미기재'에 도착했다. 삼봉산 2.5km 거리다. 강한 바람에 싸락눈이 내리고 칠흑 같은 어둠에 랜턴이 비추는 곳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조건에서 앞만 보고 계속 길을 가 4시 45분에 삼봉산 정상 3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도착했다. 이정표에는 0.34km, 즉 정상까지 340m라고 적혀 있지만, 34m의 오기로 보인다. 소수점 이하 오기를 생각보다 많은 산에서 발견하는데, 삼봉산에서도 하나 찾았다. 그런데 정말 문제는 실제 거리는 15m 정도라는 거!
별로 급할 게 없는 흥수나 나는 유유자적 산행을 하느라 거의 모든 등산객을 앞세우고 우리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많아 보이는 등산객과 그룹을 이뤄 후미에서 올라갔다. 와중에 볼일을 보느라 그 몇 사람도 앞세웠지만. 소수점 이하 오기의 이정표를 바로 지나 삼정산 정상에 오르자 대여섯 명이 까만 소 수건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대간 빼재~부항령 구간 까만 소 인증 장소 중 하나가 삼봉산 정상이다. 칠흑 같은 어둠에 랜턴 불빛에 의지해 사진을 찍어야 하는 상황이라 감히 누구에게 사진을 부탁할 수 없는 상황이라 둘이 같이 인증 찍는 건 포기하고 각자 서로를 찍어는 주는 거로 인증을 남기고 여전히 까만 소 인증 남기기에 정신이 없는 등산객을 뒤로 하고 4시 55분에 삼봉산 정상을 떠나 소사고개로 향했다.
눈에는 보이지만 카메라 렌즈에는 잡히지 않는 주변 경관을 사진으로 남기며 계속 전진하다가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좀 전에 정상에 도착해 인증을 찍었으니, 이제부터는 소사고개를 향해 내려가야 하는데 조금 내려가는 거 같더니 다시 올라가고 있었다. 이게 뭔 황당한 상황인가? 그리고 정상에 오르자 다시 조금 내려가더니 또 올라간다. 가뜩이나 힘들어 죽겠는데 예상을 벗어나니 더 힘들어진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게 정상이다. 삼봉산의 삼이 셋이란 얘기다. 즉 세 개의 봉우리가 연이어 있는 산이다. 고로 최소 세 개의 봉은 넘어야 한다. 셋 중 정상만 오르고 뒤로 넘어가리라 생각했는데 백두대간 답게 세 봉우리를 차례대로 다 넘고 소사고개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소사고개를 내려가는 급경사는 지난 설악산 큰귀때기골 쉬길 폭포로 내려가는 급경사를 생각나게 할 만큼 위험했다[산행기]. 얼마나 위험한가 내리막인가 기록으로 남기며 내려갔지만,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사진은 한 장도 못 건졌다!
급경사의 너덜에 가까운 길을 내려가 고랭지 배추밭을 지나 6시 6분 소사고개 터널 입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앞서가던 대간꾼을 따라오는 바람에 길을 잃고 말았다. 대간은 도로 쪽으로 내려가는 게 아니라 터널 위로 지나고 있었다. 까만 소 대간 인증은 터널 위가 아니라 터널 입구의 소사마을 이정표에서 찍어야 하지만. 어쨌든 도로로 내려왔는데 어디에도 다음 목표인 초점산(삼도봉)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없었다. 해서 단순히 길을 건너 계속 가려고 하자, 뒤에 따라오던 산꾼이 터널을 통과하면 길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터널을 통과하자 초점산 이정표가 나타났다. 이번 산행 두 번째 터널 통과고, 그 시각이 6시 8분이었다.
등산로는 터널을 뚫기 전 소사고개를 넘던 도로를 따라가다가 고개 정상 부근에서 야트막한 야산 능선을 따라 북동진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우리가 후미 그룹에 속해 있기는 했지만, 빠른 걸음은 어쩔 수 없어 예닐곱의 등산객을 추월한 상태였다. 그리고 3시경 산행을 시작해 3시간 이상 달려온 상태라 우리에 앞섰던 대간꾼 몇몇은 어둠 속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아침을 먹고 있었다. 그들을 통과하며 어둠 속에서 아침을 먹는 건 바람직하지 않으니, 해가 뜨면 먹기로 하고 일단 조금 쉬면서 따뜻한 물 한 모금하기로 했다. 그렇게 대략 5분 정도 쉬는 동안 또 몇 명은 우리를 추월해 갔다.
따뜻한 오미자차로 몸을 데운 후 쉬던 자리를 떠나 초점산을 향했다. 그런데 이 소사마을이 생각보다 커 마을 곳곳을 향하는 길도 다양했다. 가장 높은 농장의 위치는 해발 900m가 넘기도 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북동진하는 모든 도로나 길은 결국 초점산을 향하고 있었다. 그걸 몰랐던 우리는 길을 찾기 위해 과수원도 통과하고 약간 헤매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같이 움직인 몇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등산객은 우리를 추월해 갔다. 마지막 농장을 지나자 길은 등산로로 바뀌고 뒤를 돌아보자 여명 속에 우리가 넘어온 삼봉산이 어슴푸레 보였다. 그 삼봉산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빼재에서 부항령까지 어느 정도 높이의 능선으로 이어지리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해발 1,000m가 넘는 산을 하나 넘고 하산 후 다시 넘는 거다. 지리산, 덕유산, 광청 등 종주 개념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순간이다. 그렇기에 까만 소는 소사마을을 백두대간 한 구간의 시작이나 끝으로 보고 인증 장소로 지정했을 거다. 나 개인으로서는 산악회가 아니었으면 절대 시도하지 않았을 산행이다. 그리고 내가 산행 계획을 세웠다면 소사마을에서 시작해 삼봉산을 지나 덕유산으로 향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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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반경이 되자 여명에 불빛의 도움 없이도 길을 갈 수 있어 랜턴을 벗어 배낭에 넣고 해발 1,249m의 초점산(삼도봉)을 향해 올랐다. 마침 해가 떠오르는 시점이라 찬 바람이 강하게 불어 귀가 얼어 떨어져 나갈 거 같은 추위 속에 국사봉 갈림길을 지나자, 바람이 불지 않는 북동 사면에 앉아서 아침을 먹고 있는 팀이 몇몇 보였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상고대가 우리를 반겼고 그만큼 추위는 더했다. 7시 39분에 백두대간에서 수도지맥으로 분기하는 지점에 도착했다. 지난 11월 14일 올랐던 그 수도산으로 향하는 갈림길이다[산행기].
우리도 아침을 먹어야 할 거 같아 적당한 장소를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아 계속 가다가 결국 7시 52분에 초점산(대덕산 삼도봉)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우리에 앞선 두 명의 대간꾼이 인증을 찍고 있었다. 그중 한 명에게 부탁해 이번 산행 처음으로 둘이 인증을 찍고 미련 없이 정상을 떠나 아침 먹을 만한 장소를 찾으며 대덕산 정상으로 향했다. 물론 초점산 정상에서 내려갔다가 다시 대덕산 정상으로 올라가야 한다. 저 앞에 바로 보이는 대덕산 정상을 보자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다시 저기를 올라가야 한다니! 그나마 왼쪽으로 섬처럼 보이는 삼봉산을 보며 저기를 우리가 넘어왔다는 거에 위안을 느끼며 적당한 식당 장소를 물색하며 계속 내려갔다.
식당으로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지 못했지만, 더 가봐야 이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을 거 같아 그나마 바람이 좀 덜 분다 싶은 암벽 뒤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아침으로 가져온 빵을 꺼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흥수가 뜨거운 물과 컵라면을 가져와 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용기에 뜨거운 물을 붓고 그 용기의 뜨거움으로 손을 녹이며, 라면이 익을 동안 빵을 먹었다. 그런데 그 빵도 얼어, 먹기가 쉽지 않았다. 식사로 빵을 택한 이유가 겨울에 먹을 만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아니었다. 겨울 산행 점심에 대한 고민이 다시 생겼다. 손이 곱아서 젓가락질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추위 속에 빵과 컵라면으로 아침을 먹고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추워서 그 자리에 더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식당을 떠나 헉헉대고 상고대를 구경하며 다시 봉우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뒤로는 우리가 떠나온 초점산(대덕산 삼도봉)이 이제 막 떠오르는 햇볕을 머리에 이고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왼편으로는 삼봉산 뒤로 눈으로 덮인 기다란 능선이 보였다. 해서 흥수에게 ‘저게 뭔 산일까?'하고 물었고 돌아온 답은 '덕유산!'이라는 거다. 맞다. 덕유다! 주변 산을 구경하며 계속 달려 8시 55분에 대덕산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초점산 정상에서 보았던 등산객이 서로 인증을 찍어 주고 있었다. 우리도 인증을 남겨야 할 거 같아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영감님이 막 정상에 도착해, 카메라를 드리고 사진을 부탁했다. 그리고 내가 사진을 찍어 드린다고 하자 필요 없다고 거절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영감님은 그 연세에 까만 소 대간 인증 산행 중으로 빼재~부항령 구간의 인증 장소는 '삼봉산', '초점산(대덕산 삼도봉)', '부항령'이라 다른 장소의 사진은 필요 없다는 의미였다.
9시경 정상을 떠나며 남은 시간을 계산해봤다. 점심을 먹으려면 마감 시각 30분 전에는 도착해야 하니 11시 30분까지는 버스가 기다리는 부항령에 도착해야 한다. 이번 산행 이전에 지도를 가지고 시간과 거리를 계산해 본 바에 의하면 대덕산 아래 덕산재에서 부항령까지는 5.2km가량으로 소요 시간은 1시간 40분 정도, 그럼 덕산재까지 3.5km를 50분 만에 주파해야 한다. 쉽지 않다. 설상가상 그 하산길 또한 낙엽 쌓인 급경사고 간간이 낙엽 밑이 얼어 있어 위험하기까지 했다. 어쨌든 시도는 해봐야 해서 정신없이 내려가다 보니 혼자 가고 있었다. 무릎이 좋지 않은 흥수가 하산에 취약해 속도가 나지 않았다. 해서 가던 걸 멈추고 바위에 앉아 홍수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흥수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다른 등산객이 추월해 지나갔고, 흥수가 보이고 거리가 5m 정도 되는 지점에서 다시 하산을 시작했다. 그렇게 천천히 하산하는데 앞에 이정표가 나타났다. 어디로 향하는 갈림길인가 하고 이정표를 확인하니 얼음폭포 갈림길이다. 촉박한 시각이라 거리가 멀면 폭포를 버릴 생각으로 이정표의 거리를 확인하니 30m다. 이번 산행 유일의 폭포인데, 그럼 다녀와야지! 그리고 폭포 쪽으로 방향을 잡고 갔다. 30m가 아니라 10m도 채 안 되는 거리다. 폭포를 보자마자 대덕산에 얼마나 자랑거리가 없으면 여름에도 얼음처럼 차다고 얼음폭포라고 이름 짓고 자랑하고 있을까 하고 안쓰럽기까지 했다. 다른 산에 가져다 놓았다가는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을 폭포를 뒤로 하고 시간에 쫓겨 계속 달려 10시 7분에 덕산재에 도착했다.
흥수는 몇 달 전 덕산재에서 시작한 대간 구간을 달린 경험이 있고, 나는 대간 연결에 별 관심이 없어 굳이 덕산재에서 부항령까지 달려야 할 이유가 없었다. 해서 흥수가 인솔 대장에게 덕산재에서 픽업해 달라고 요청했다가, 당연히 거절당했다! 해서 택시 타고 부항령으로 달릴까 하고 교통 앱으로 거리와 비용을 확인해 보니 12km가 조금 넘는 거리에 요금은 12,000원 정도 나왔다. 택시의 유혹이 강했지만, 흥수, 나, 그리고 영감님, 또 중년의 대간꾼 해서 총 4명이 1시간 50분 정도 남았으니 계속 달리기로 했다. 사실 영감님은 마감 시각과 앞으로 남은 거리도 모르고 있었다. 해서 내가 2020년 처음으로 배낭에서 스틱을 꺼내며 조립하는 동안 마감 시각 및 남은 거리에 관해 설명하자 영감님과 그 중년의 등산객은 부항령을 향해 바로 출발했고, 우리는 조금 쉬면서 달릴 준비를 했다.
사실 해발 1,000m가 넘는 산을 세 개나 넘는 코스에서 5.2km의 해발 900m에서 해발 500m 사이 능선은 지도상으로 보면 큰 기복이 없어 보이지만, 그 구간만 놓고 보면 북한산 성문 종주와 비슷하게 힘든 코스였다. 그 구간을 달리는 것도 쉽지 않아 작은 봉우리 대여섯 개와 큰 봉우리 두 개를 넘어야 했다. 우리 뒤에는 아무도 없어, 마감 시각에 못 맞추면 우리 때문에 서울로 향하는 버스가 예정된 12시에 출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런 사태는 45년 산행 인생 최초다! 어쨌든 스틱을 이용해 네발로 달렸지만, 12시까지 날머리인 부항령 터널까지 도착하기는 틀렸다는 판단에 부항령 800m를 남겨둔 지점에서 흥수가 인솔 대장에게 우리 인원과 현재 위치를 알려주고 좀 늦겠다고 전화했다. 그리고 저기만 넘으면 부항령이라고 몇 번이나 속고 나서 부항령에 도착한 시각이 12시 2분이다.
그런데 부항령이 우리가 이번 대간 구간에서 만난 고개인, 빼재, 소사재, 덕산재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도착해서야 알았다. 앞의 세 고개는 거의 정상까지 도로가 나 있고 차가 다니지만, 부항령은 이와 달리 도로까지는 거의 600m를 내려가야 했다. 실제 부항령과 교통상의 부항령이 다르다는 얘기다. 물론 등산지도 상의 부항령은 실제 부항령으로 차량 통행이 가능한 부항령과는 다르다. 고로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는 부항령이 더 멀었다. 그걸 고려하지 않은 계획상의 거리라 실제 거리와는 차이가 있었다. 결국, 빼재에서 도로 파괴로 늘어난 거리에, 실제 부항령과 차량 통행이 가능한 부항령과의 차이로 늘어난 거리를 더하면 거의 3km에 달했다. 산에서는 최소 한 시간 거리다! 초기에는 우리가 늦은 게 미안했지만, 밑에 보이는 버스를 향해 내려가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건 우리가 아니라, 무리한 시간 계획을 세운 산악회가 문제였다.
뭐 사정이야 어떻든 남들은 다 제시간에 도착했지만, 시간을 못 맞춘 우리가 잘못이라 죄인 된 심정으로 버스가 기다리는 도로를 향해 내려가며 주변을 살펴보니 부항령 터널 입구에 정자가 있었고, 그 정자에는 먼저 온 대간꾼들이 라면 등을 끓여 점심을 먹은 후 주변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야 아침으로 빵과 컵라면을 먹은 게 다라 배가 아주 고픈 상태지만! 터덜터덜 내려가 터널 입구에 있는 부항령 표지석에 도착한 시각이 12시 12분으로 예정된 마감 시각보다 12분 늦었다. 45년 산행 인생 최초의 낙오다! 만나는 꾼마다 늦어서 미안하다고 인사를 하고 정자로 가 보온병에 남아 있던 오미자차로 배를 채우고, 스틱을 다시 분해 정리해 배낭에 넣는 등 귀경 준비를 했다. 그런데 정자에서 뭘 먹고 있던 꾼들이 움직일 생각을 안 해 뭔 일인가 물어보니 우리 외에 2명이 아직 도착을 안 했다는 거다! 응? 우리가 죄인이 아니었어? 비록 늦었지만, 어쨌든 우리가 죄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얻고 배낭을 짐칸에 실었다. 그리고 주린 배를 쥐고 버스에 타 자리를 잡고 앉는 거로 이번 백두대간 빼재~삼봉산~소사고개~초점산(대덕산 삼도봉)~대덕산~덕산재~부항령 산행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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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낙오자 2명이 도착하자 12시 30분경 버스는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그 두 명이 늦은 이유는 다른 대간팀을 따라 부항령을 지나 계속 달리다가 뭔가 이상해 확인 후 되돌아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역시 산악회 펜던트를 매달고 다녀야 이런 실수가 없다. 배가 고픈 상태라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을 만한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주어진 시간은 10분에 불과해 식혜를 사 마시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사실 낙오자 여섯을 제외한 나머지는 날머리에서 충분히 먹고 마셔 휴게소에서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었다. 점심은 서울에 도착해 먹어야 하는 상황이라, 같은 날 청계산에 올랐던 팀의 하산 시각이 우리가 서울에 도착하는 시각과 비슷할 거로 예상돼, 같이 하산주를 하자고 텔을 보냈다. 돌아온 답은 과천 장어집에서 4시에 만나자! 해서 3시 38분 버스가 양재역에 도착하자마자 흥수와 둘이 바로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가 약속 과천 장어집으로 향했다.
4시 10분경 우리가 먼저 장어집에 도착해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장어 1kg과 빨갱이, 맥주를 주문했다. 장어가 구워지기를 기다리며 소맥으로 무사 귀환을 축하했다. 잔을 기울이며 창문으로 밖을 보니 4시 21분경 택시가 도착하고 익숙한 친구들이 내린다. 청계산 팀인 진행, 진행 부군, 영빈, 창우 4명이다! 그리고 영한이 5시 30분경 도착해 합류했다. 빨갱이는 몇 병 마셨는지 기억이 안 나고, 7명이 장어 4kg에 장어탕, 김치찌개를 먹고 1차를 마감했다. 그리고 진행 부군의 초청으로 2차는 진행의 집에서...
걸어서 진행의 집으로 가 두 아들과 인사하고 뭔가 좋은 술을 잔뜩 마시고 집으로 갔다. 정확히는 기억에 없다. 다만, 다음날 들은 얘기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쓰러졌다고... 어쨌든 집에까지 가는 과정 중 500mL 보온 물통이 사라졌다. 이렇게 또 하나가!
애초 계획에 따라 '빼재(신풍령, 수령) → 삼봉산 → 소사고개 → 초점산(삼도봉) → 대덕산 → 덕산재 → 부항령'의 23.48km, 9시간 18분 백두대간 구간을 달렸다. 이동 9시간, 휴식 18분!
백두대간 빼재~부항령 무박 산행으로 45년 산행 인생 몇 가지 기록을 세웠다. 밥 대신 빵을 가져 간 거, 마감 시각을 맞추지 못해 낙오한 거, 무박 산행을 종주가 아닌 대간 구간에서 감행한 거 등!
산행 후 청계산팀과 함께 한 1, 2차 뒤풀이가 산행 못지않게 좋았다.
이 나이에 무박으로 20km 이상 달리는 건 무리라는 걸 절감한 산행이다.
1타 3피 아니, 1행 3산! 한번 산행으로 목표하고 있는 1,000m 이상의 산
첫댓글 안티임에 틀림없군! 검열도 안받고 젤 배나온 사진을 올리다니
ㅋㅋㅋ...
또다시 이런 테러하면 각오해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