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영 선교사 '천국간증 1편'
천주영 선교사(타이소망교회)님이 올해 3월 22일 에스더철야기도회에서 간증한 내용입니다.
큰 은혜 받기를 소망합니다.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마태복음 13장 19절)
저는 대전시 용정침례교회 목사님 장녀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선천성 심장병을 앓았다. 14개월 때는 급성 환웅성 관절염을 앓았다. 다리를 절단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8살 때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심장병 어린이돕기 캠페인을 벌였다. 그 교회의 도움으로 심장수술을 받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됐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예수님을 영접했다. 심장병 치료에 이어 다리도 절단하지 않고 치료해 주신 하나님이 감사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것도 너무 감사했다.
저도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드리고 싶었다. 생각 끝에 가장 귀한 것을 드리고 싶었다. 목숨을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선교사를 서원했다. 그 편지가 주일학교 게시판에 붙었다. 힘들면 예수님이 도와주시고, 죽으면 천국가면 된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때부터 성경을 읽었다. '나실인'의 말씀이 머리에 꽂혔다.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기로 했다.
노래하기를 좋아했다. 그렇지만 한 입으로 세상을 노래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기로 했다. 세상 노래를 부르지 않기로 결심했다. 중1 때 반장이 됐다. 전교 수련회에 갔다. 마지막 날 피날레로 즉석에서 반대항 반장노래대회가 열렸다. 학생들이 많았다.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했다.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 앞에 결심한 것을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호산나 호산나 호산나 높은 곳에서'를 불렀다. 아무도 박수 치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나서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왕따를 당했다. 그러나 신앙으로 버텼다. 선교사가 될 몸이니 이 정도의 시련은 겪어야된다는 마음에서였다.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 교회에 불이 났다. 불 타는 교회를 보며 하나님이 없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께 삶을 맡기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마음도 들었다. 고등학교 입학 한 뒤 장래희망란에 적을 수 없었다. '선교사' 대신 '선'자를 떼고 '교사'를 적었다. 교대에 가기로 하고 즐겁게 학창시절을 보냈다.
고3 때 1월 1일 기도원에 올라갔다. 금식 3일을 했다. '교대에 합격하고 교사가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집회 마지막 날이었다. 목사님께서 "방언통역(변) 받고 싶은 사람 나와라고 했다. 뛰어 나갔다. 목사님이 방언을 해보라고 했다. 방언을 했다.
목사님은 "애기(아이) 방언이네" 하시면서 저의 머리를 때리셨다. "선교사 되기 싫어요, 선교사 되기 싫어요" 그렇게 통역하셨다. 머리 맞은 것도 충격이었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 창피했다. 목사님 딸이 선교사 되기 싫다는 것을 공개해버렸기 때문이다.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숙소에 들어가 이불을 덮어쓰고 울었다. 그러다 "하나님, 저 선교사 되기 싫어요" 하며 하나님께 따졌다. 주변에 성경이 있었다. "전, 선교사 되기 싫은데 놓아주세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말 제가 선교사 되길 원하시면 제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말씀을 주세요. 제가 한 번 성경을 펼 때 말씀을 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성경을 폈다. 예레미야 1장이 펴졌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4~5절)
말씀이 확대되고 천둥같은 소리로 저에게 다가왔다. "모든 것 내려 놓고 하나님 앞에 쓰임 받겠습니다"고 약속드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대학교에 들어갔다. 그 다음부터 뒤돌아 보지 않고 선교사로 온전히 쓰임 받기 위해 노력했다. 선교 동아리와 어린이사역 동아리에 들어갔다. 열심히 준비했다. 그러다 선교사 소명을 가진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2008년 4월 태국선교사로 파송받았다.
6개월 된 큰 아이를 안고, 신혼살림을 싣고 태국에 갔다. 복음률 1%도 안 되는 태국 복음화를 위해 그곳으로 갔다. 뼈를 묻을 각오로. 그런 열정보다 태국의 상황이 너무나 악했다.
태국은 영적전쟁이 너무나 치열했다. 영육이 탈진돼 3년을 못 채우고 철수했다. 둘때 아이를 임신한 만삭의 몸이었다. 태국에서 철수를 했으니 후원이 끊겼다. 고국에 돌아와 아기를 낳았지만 돌봐주는 기관이 없었다.
둘째 아이는 잠자는 시간 외에 울었다. 산후 우울증이 왔다. 남편은 무기력증에 빠졌다. 경제활동도 할 수 없었다. 결국 가스도 전기도 끊겼다. 아기 기저귀 살 돈도 없었다. 남편과 부부싸움을 심하게 하고 남편이 집을 나갔다. 한달간 연락이 없었다. 아이 둘을 돌보며 카드빚 협박에 시달렸다. 그 때쯤 되니 목사님 딸이고 선교사고 상관없이 죽고 싶었다. 죽음의 영이 저를 끌고 갔다. 저 차에 치어 즉사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저를 사로잡았다. 이혼하기로 하기로 하고 남편을 수소문했다.
남편은 전라남도 나주 성좌산기도원에 있었다. 기도원장님 딸과 남편이 동기목사님이셨다.
훗날 남편은 "그러면 우리 엄마가 하는 기도원에 와봐" 라는 동기 목사님의 제의에 그곳으로 갔다고 했다.
남편을 찾기 위해 성좌산기도원에 찾아갔다. 그곳 간사님이 "오늘 숙소에서 자고 내일 새벽기도회 뒤에 만나라"고 했다. 원장님의 말씀이라면서. 숙소에 누워 있었으나 마음이 좋지 않아 성전에 갔다. 그곳에서 기도했다. 눈물만 나왔다 "하나님, 내가 뭐 잘못했습니까. 선교사 되기 싫었는데 선교사로 부르셔서 선교사 준비도 열심히 했습니다. 태국에서도 태국어를 배워며 열심히 힘들게 했는데. 하나님, 내가 뭐 잘못해서 이제 이혼녀가 되고.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러세요 너무 하십니다."하며 밤새도록 울다가 새벽기도회를 참석했다.
새벽기도를 하는데 남편이 앞 좌석에 앉아 있었다. 저는 성전 맨뒤 좌석에 앉았다. 남편이 기도회 때 데굴데굴 굴렀다. "내가 온 것을 보고 쇼하나"하는 마음이 들었다.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제게 음성을 주셨다. "주영아, 내가 네 남편을 만졌다. 한 번만 용서해주라"고 하셨다. "싫어요"라고 했다. 하나님은 반복해서 한 번만 용서해주라고 하셨다. "딱 한 번만이예요"하며 남편을 용서했다. 남편의 기도가 끝났다. 남편에게 그 모든 것을 이야기를 했다. 남편에게 "내려 오라"고 한 뒤 먼저 집에 돌아와 있으니 2주 후에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정말 잘못했다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성좌산기도원에 오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 때는 갈 때가 없었다. 카드빚 독촉 등 너무 힘들었다. 아이 둘을 데리고 피신가듯이 그곳으로 갔다.
2012년 3월 1일 성좌산기도원에 도착했다. 산후 우울증에 허리까지 너무 아팠다. 한의원에서 침 맞고 물리치료를 받아야 아이를 돌 볼 수 있었다. 기도원은 바닥에 앉아 기도를 해야했다. 몸을 비틀면서 앉아있으니 최양자 기도원 원장님이 보시고 "사모, 허리가 아프네 이로 나와봐"라고 하셨다. 강단 앞에 나가 누웠다. 원장님이 제 배에 손을 얹고 기도해주셨다.
원장님이 갑자기 "애기 귀신 나가라"고 했다. 갑자기 제 입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났다. 많이 놀랐다. 다음 날도 원장님께서 앞으로 나오라고 했고 눕혀 놓고 기도를 해주셨다. 기도하다가 질문을 하셨다. "너 누구냐"고 했다. 제 입에서 대답이 나왔다. "간호사 귀신이다. 5명이 들어 있다"고 했다. 제가 어릴 때 병원에 많이 있었다. 그 당시 간호사들에게 있었던 귀신이 제 몸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 귀신이 독을 제 몸에 넣어 제가 조금만 있으면 죽는다고 했다. 제가 죽으면 남편이 자살하고 애들도 자살할 운명이라고 했다. 귀신들이 깔깔거리며 좋아했다.
원장님이 "예수 이름으로 나가라"고 축사하셨다. 귀신들이 소리를 질렀다. "다 됐는데, 아깝다. 억울하다. 왜, 이 기도원에 와서"라고 했다. 그 때 내 몸에서 뭔가 쑥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부터 허리가 아프지 않았다. 통증이 말끔이 사라졌다. 애기를 업을 수 없었는데 애기를 업고 찬양할 수 있었다. 춤을 추고 싶었다. 춤을 췄다. 몸이 제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무대를 휩쓸며 춤을 췄다. 성령님이 이끄셨다. 그러다 자꾸 눈이 감기고 몸이 자꾸 뒤로 넘어갔다.
이를 보던 원장님이 "사모님, 입신들어가네"라고 하셨다. 그분은 저를 눕혀놓고 "하나님 천국문을 열어 주세요"라고 기도하셨다. 그 때부터 천국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