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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가시가 박히고 비비꼬는 듯한 수혼의 말투에 지나는 기분이 상했다.
물론 자신이 잘못한 것은 안다.
아니 잘못한 것도 없다.
자신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아버지의 연인과 붙어먹는 놈을 못 본 척 가만있으란 말인가.
그런대도 지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자신에게 차갑게 대하는 수혼이라는 놈이 미웠다.
“흥! 볼일 없네. 다만 사람 다니는 길을 막고 서 있어서 자니가지 못하고 이러고 있을 뿐이네”
“오~ 그러셔 빨리 말씀하시지..자 소인이 비켜 드리지요.”
수혼이 한쪽으로 물러 서자 지나는 입을 삐죽거리며 다시금 수혼의 앞으로 온다.
“왜! 소인이 비켜드렸으니 지나가시면 되지.”
“네가 갈 길을 또 막고 있잖아.”
“너 지금 시비거니”
“시비 거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래.”
“좋은 말할 때 가라 응~.. 난 말이야 너 얼굴만 봐도 성질이 나.
그러니까 성질 건들리지 않고 조용히 가라.”
“흥! 누군 좋은 줄 알아. 나도 너 얼굴 보면 구역질이 나.”
“이게 정말”
“흥! 또 때릴라고. 말로 안 되면 주먹부터 올라오지. 때려봐 때려보라고”
“음~ 너하고 말하는 내가 바보지.”
“알긴 아는구나. 자기가 바보새낀지.”
“아유 이걸 그냥”
수혼이 팔을 들어올리자 지나는 그걸 보면서도 기가 죽지 않고 얼굴을 더욱 수혼에게 내민다.
수혼은 기가 막혀 팔을 내리고 돌아서 버린다.
저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는 지나에게는 상대하지 않는 것이 속 편할 것이다.
“왜 도망가. 잘못한거라도 있어.”
“........”
“바보새끼. 화선이년 떠났다고 세상이 끝난것처럼 죽을상 하고 있는 꼴이라니.”
수혼의 다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몸이 번개처럼 회전하며
평평하게 펴진 발이 지나의 눈앞에 딱하니 멈춘다.
“죽고 싶지 않음 주등이 함부로 놀리지마. 나도 참는데 한계가 있어.”
하얗게 질려 부르르 떨던 지나는 곧 진정하고는 눈앞에 있는 수혼의 발을 잡는다.
수혼도 지나가 뭐 하려는것인지 지켜보기 위해 가만히 있으니
수혼의 발을 잡은 지나는 그 자리에서 허리가 뒤로 휘어지며
뒤로 한바퀴 돌며 날아올라 수혼의 탁을 가격해 온다.
지나가 잡은 다리를 급히 회수하고 피하면 그만이지만
지나가 자신의 다리를 지지대로 삼아 뒤로 회전하니 다리를 빼는 날에는
지나가 땅바닥에 머리를 박고 뒹굴 것이 자명한 일이라 수혼은 다리를 회수하지 못하고
지나의 다리를 피하며 안으로 파고들어 회전하는 지나의 허리를 잡더니
바닥에 착지하는 순간을 기다려 지나의 팔을 뒤로 꺾어 버린다.
그 와중에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지니의 발이 뺨을 스치고 지나가며
얼굴 살이 살짝 갈라져 피가 흐른다.
“뭐야 새끼야. 놓지 못해”
지나가 잡히지 않은 손으로 수혼의 머리를 잡으려고 하자
수혼은 그 손까지 잡아 비틀어 뒤로 꺾어버린다.
한손으로 지나의 가는 손목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다른 손으로 지나의 목을 잡아 버리니 지나는 몸에서 힘이 빠지고 만다.
“제발 성질 건들리지 마라. 부탁이다.”
“나쁜 놈아, 팔 풀어. 풀어 달린 말이야.”
“풀어주면..또 덤비려고.”
“안 해. 나도 잠깐 화가 나서 그런 거야. 이제 한번씩 주고받았으니 더 이상 안 해.”
수혼이 팔을 풀어주자 지나는 잡힌 팔을 흔들며 수혼을 향해 돌아선다.
자신의 팔을 주무르던 지나가 수혼의 얼굴에서 흐르는 피를 보더니
손을 들어 수혼에게 다가오자 수혼이 한걸음 피해 버린다.
“잠깐만 움직이지 마. 얼굴에서 피나.”
수혼은 자신의 얼굴을 만지더니 흐르는 피를 쓱 닦아버린다.
얼굴에 상처가 깊게 난 것은 아니다.
살짝 스쳐 지나가서 상처가 난 것이다.
지나는 들어올린 팔을 거두지 못하고 멍하니 있더니 한숨을 쉬고 팔을 내린다.
“누가 잡아먹니. 피하게.”
“정말 왜 자꾸 못살게 굴어. 나하고 볼일 없잖아.”
“그래~ 볼 일없다. 이것만 물어보고 대답해 주면 간다.”
“뭐~”
“원서 어디 접수했어.”
“왜 물어봐”
“대답이나 해. 대답하면 더 이상 귀찮게 안 해.”
“S대학교 수리대학 법학과”
“알았어. 되게 비싸게 구내 정말”
“대답했으니 빨리 가라”
“쌍~ 알았어. 간다. 간다고.”
지나는 찬바람을 일으키며 씽하니 체육관으로 들어가 버렸다.
수혼은 대입시험을 보고 두개 대학에 모두 합격했다.
한곳은 합격만 한 것이고 한곳은 수석으로 장학금 혜택이 있었다.
수혼은 장학금 혜택이 있는 수리대학으로 진학했다.
수리대학 법학과에 명물이 하나 들어왔다.
입학식 날 남들은 최소한 단정하게 입거나 정장을 입고 오는데
이놈은 청바지에 흰색남방차림이다.
그것도 단정한 차림도 아니고 몇 칠은 입은 건지 흰색남방인지 회색남방인지 분간도 가지 않고
청바지도 헐렁하고 지저분하고 신발도 입학식에 왔는지 등산하려 왔는지 등산화를 신고 있다.
아무리 봐도 학교에서 잡일이나 하러온 차림인데 뒷모습은 또 가관이다.
178정도 되는 키에 날씬한 몸매, 그리고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가 아름답게 나풀거린다.
도대체가 이놈의 정체를 모르겠는데 황당하게도 이놈이 입학생들 맨 앞줄에 서 있는 것이다.
신입생들은 뒷모습만 보고 있으니 모두 여자로 착각하고
정말 저렇게 지저분한 년이 다 있나 싶어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입학식이 시작되고 이런저런 순서가 끝나고
신입생들 중 과별 수석합격자 표창 순서가 되었는데 아 그 년이 올라가는 것이다.
“법학과 수석합격 조 수혼”
신입생들의 입이 쩍 벌어지고 모두들 황당해 하는데
표장이 끝나고 돌아서 인사하는 순간 신입생들은 단체로 쓰려질 뻔했다.
그 지저분한 녀석이 우리학교 신입생이란 것에 놀라고,
그 녀석이 법학과 수석합격이라는 것에 놀라고,
더구나 뒤에서 보면 분명 여자인데 앞모습은 남자라는 것에 놀랐다.
수혼은 이렇게 입학식 첫날부터 수리대학 학생들 사이에 명물이 되고 말았다.
입학식을 마치고 강철의 집으로 찾아갔다.
아무래도 형님인 강철에게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저녁 늦게 강철의 집에 들어서니 화선과의 추억이 생각난다.
집안 곳곳에 아직도 그녀가 남기고간 자취가 남아 있었다.
당장이라도 화선이 문을 열고 달려와 자신을 반갑게 맞아 줄 것만 같았다.
집안에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 있던 강철이 수혼을 반갑게 맞아준다.
“어서와. 동생 축하해, 수리대학 수석입학이라..역시 내 동생이야.”
“감사합니다. 빨리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했는데..죄송합니다.”
“무슨 소리 이렇게 잊지 않고 찾아주니 내가 고맙지. 자자..앉아.”
수혼이 자리에 앉자 부엌에서 한 여자가 쟁반에 과일과 음료수를 내온다.
수혼이 처음 보는 여자였다.
“아 인사해. 은희경 이라고 새로 들어온 사람이야.”
강철은 화선이 떠나고 수혼이 독립한 후
회사에 개인비서로 있던 은 양을 집에 불려들어 살림을 차렸다.
강철에게 화선이란 존재는 그냥 즐기는 그런 존재일 뿐이였다.
지나도 아빠가 여자 바꾸는 것이 처음도 아니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안녕 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사장님..아니..그이가 수혼씨 자랑을 얼마나 하는지..
하여튼 직접 뵙니 말로 들은 것보다 훨씬 잘생긴 분 이내요.”
“안녕하세요. 조 수혼이라고 합니다.”
수혼은 강철이 벌써 화선을 잊어버리고 딴 여자와 살림을 차린걸 보니 마음이 아프다.
강철에게 화선이란 존재는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면 왜 자신과 억지로 갈라놓은 것인가.
수혼은 마음속에 끓어 오로는 울분이 있었지만 억지로 참았다.
“자자 은 양도 앉아, 어 근데 이놈은 왜 코배기도 안보여.”
“지나는 입학식 끝나고 친구들하고 놀다 들어온다고 했어요.”
“하여튼 이년은..이제 대학 들어갔다고 벌써부터 놀기 바쁘니..
동생 반에 반만 닮아도 좋겠구만.”
“너무 그러지 마세요. 그래도 삼화대학이라면 알아주는 대학인데..
그동안 공부 열심히 했으니 놀 때도 있어야죠.”
“참 당신이 몰라서 그래. 지나 그년이 공부한 것도 동생 때문이라고..
동생 아니었으면 대학은 커녕 고등학교나 재대로 졸업했을라고.”
“그럼 수혼씨 때문에 지나가 공부했다는 건가요.”
“그치. 그년이 뭐하러 공부해. 지가 공부하고 싶어서 공부해.말도 마라.
내가 어려서부터 학원이니 과외니 별짓을 대해도 안하던 년이야.
근데 동생이 막나니 같던 그년을 잡아버린 거야. 킥킥킥..
그년이 딴 건 몰라도 지고는 못살거든”
“그래서 지나가 수혼씨와 같은 대학에 지원 했구나.”
“아마 그랬을 거야. 근데 수리대는 똑 떨어지고 삼화대학으로 간 거지.
아마 그년 속께나 아플 거야.
참 우리 얘기만 했네. 동생이 인사차 들린 것 같지는 않고..할 말 있어”
“예! 아무래도 살던 집을 정리하고 학교 근처로 이사했으면 해서요.”
“음~ 하긴 학교근처에 사는게 좋겠지.알았어.
내가 아이들에게 지시해서 신촌에 적당한 집 알아보고 연락하지.”
“그리고 매달 주시는 돈 말입니다.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아아~ 그건 내게 이야기 하지 마. 내가 주는 돈도 아니니 말이야.”
“예~ 형님이 주시는 돈이 아니면 누가 500만원 씩나 매달 입금 합니까?”
“몰랐어. 아이들이 주는 거야.
그 있지 동생한터 무술배우는 아이들. 그 아이들이 모아서 보내는 돈이야.
아참 그놈들이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동생은 그냥 모르는 척 해. 나한테 들었다고 하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자자~ 은 양. 술이나 내와. 동생도 이제 술도 마셔봐야지.”
“저는 아직”
“아아~ 남자라면 술도 먹을 줄 알아야 해.
그리고 말이야. 술은 어른한테 배우라고.. 오늘 술자리 예절을 확실하게 가르쳐 주지.”
“예 알겠습니다.”
은 양이 술상을 차리자 수혼과 강철은 술을 먹기 시작했다.
강철은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지나도 대학에 합격하고 자신이 돌보는 동생도 떡하니 일류대학이라는 수리대학
그것도 법학과에 수석으로 합격을 했으니 입이 찢어지게 좋은 것이다.
막말로 지나나 수혼이 사법고시라도 패스해서 검사나 법관이 되면
자신이 하는 일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강철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을 먹으니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수혼은
머리가 띵하고 속이 울렁거려 정신이 없었다.
“저기 형님 그만 마시겠습니다.”
“왜 벌써 취했어.”
“그건 아니지만..정신이 없어서.”
“아직 멀쩡하네. 혀도 안 꼬이고. 남자가 술을 마시면 끝장을 봐야지.
중간에 일어나는 경우는 없지. 자자 더 마셔.”
“더 먹으면 취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괜찮아. 먹다 쓰려지면 여기서 자면 되지..여기가 남에 집이야.
걱정하지 말고 쓰러질 때까지 마셔봐!”
수혼은 마무가내로 나오는 강철을 말리지 못하고
주는 잔을 계속 먹다보니 어느새 양주 한 병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강철이야 말술로 먹는 사람이라 이것 먹고 끄덕도 없지만
처음 이렇게 많이 마신 수혼은 쓰러질 지경이다.
“행~님..그만 마시죠.”
“어허. 이제 막 시작인데 그만 먹자니. 은 양아 술 좀 더 내와라.”
은 양이 다시 술을 가져오자 강철은 수혼에게 술을 내민다.
정신이 어질어질하고 속도 울렁거리는데 강철이 계속 권하니 수혼은 억지로 받아 마신다.
새로 나온 술을 반쯤 마시자 수혼은 끝내 버티지 못하고 테이블에 쓰려져 버렸다.
“동생..동생..이제 좀 먹은 것 같은데 벌써 쓰려져 버리는군.”
“아이~ 사장님처럼 말술을 누가 당해요.”
“은 양은 아직도 사장님이야. 이제 오빠라고 불려.”
“호호호. 알았어요. 오빠..수혼씨 어떢해요.”
“동생이 쓰던 방 그대로 있으니 여기서 자야지. 일단 방에 데려다 놓자고.”
강철은 수혼을 부축해서 수혼이 쓰던 방에 눕게 했다.
강철이 수혼을 눕히고 밑으로 내려오니 마침 지나가 들어오고 있었다.
“이놈의 자식. 이제 대학 들어갔다고 노는 거야.”
“아빠는 입학식이라 친구들과 간단하게 한잔 했어요. 근데..아빠가 집에서 술도 먹어요.”
“아 이거. 수혼이 녀석이 인사차 찾아와서 같이 한잔했다.”
“어~ 근데 안보이네..집에 갔어요.”
“술 먹고 쓰려져서 방에 눕히고 왔다.
참 오늘 하루만 자는 거니까 여기서 잔다고 토 달리 마라.”
“피~ 알았어요. 그놈은 어디서 자요.”
“향상 쓰던 방에서 자지.”
“예~ 전 올라 갈 깨요.”
“왜 아빠하고 한잔 하지.”
“두 분이서 드세요. 저 피곤해요.”
“자식이~ 알았다.”
지나도 오늘 친구들과 한잔했다.
오랜만에 블랙로즈 회원들과 만나서 수다를 떨며 놀다 들어온 것이다.
지나는 이층으로 올라가 망설이다 자신의 방으로 가지 않고 수혼이 잠든 방으로 향했다.
수혼은 강철과 술을 더 먹으면 정말 쓰려질 것 같아 연극을 했다.
속도 안 좋고 술을 더 마시면 화선에 대한 추억으로
강철에게 실수할 것 같아 취한 척 연극을 한 것이다.
강철이 나가자 수혼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둘려보았다.
자신이 떠날 때와 변한 것이 없었다.
책장에 있던 책들, 화선과 사랑을 나누던 침대 등등 하나도 변한 것이 없지만
사랑했던 화선의 모습만 보이지 않았다.
화선을 생각하자 마음이 울적해 지며 슬픔이 몰려와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화선과 사랑을 나누던 침대에 누워 떠나간 화선의 체취라도 느끼려고 침대에 몸에 누인다.
수혼이 추억에 빠져 있는데 복도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수혼은 강철이 확인하러 온 것으로 생각하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지나는 수혼의 방 앞에서 망설이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불이 커져 어둠에 쌓인 방안에 희미하게 침대에 누워있는 수혼의 모습이 보인다.
지나는 수혼이 깨지 않게 살금살금 들어가 침대 곁에 앉는다.
어둠이 눈이 익숙해지며 수혼의 얼굴이 뚜렷하게 보인다.
수혼은 반듯하게 누워 잠들어 있었다.
자신이 들어와도 깨지 않은 모양이다.
수혼은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강철이라 생각하고 잠든 척하고 있는데
상대가 다가올수록 화장품 냄새와 향수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는 것이
아무래도 강철은 아닌 모양이다.
혹시 자신이 온걸 보고 양지댁이 들어왔나 싶어 잠든 척 해 버린다.
가슴 아픈 추억이 가슴속에 가득하여 양지 댁과 일을 버릴 기분이 아니다.
수혼의 잠든 얼굴을 지켜보던 지나가 손을 들어 잠든 수혼의 얼굴로 향한다.
혹시나 수혼이 깰 것 같아 숨을 죽이며 접근하는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살짝 수혼의 얼굴에 손이 닫자 지나는 얼른 손을 거둔다.
혹시 수혼이 깬 건가 확인해 보니 여전히 수혼은 잠들어 있었다.
지나는 용기를 내서 다시 수혼의 얼굴을 손을 대보니
술을 먹어서 그런지 뜨거운 기운이 느껴진다.
수혼은 양지 댁이 자신 옆에 앉아 숨을 죽이고 있다가
자신의 얼굴을 만지자 잠든 척하는 것이 낮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자신이 일어나면 일이 귀찮아 질 것 같아 눈도 뜨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양지댁이 몸이 달았는지 한번 스쳐간 손이 이번에는 얼굴을 감싸는데 약간 느낌이 이상했다.
양지댁의 손이라면 약간은 거친 느낌이 나야하는데
지금 자신의 얼굴을 만지고 있는 손은 부드러운 느낌이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그냥 자신이 취해 그러려니 생각하고 만다.
지나는 수혼의 뜨거운 얼굴을 만지다가 무슨 생각인지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내려간 지나의 얼굴은 수혼의 얼굴과 가까워지며 수혼의 체취를 느낀다.
지나는 입술을 깨물고 있다 살며시 고개를 내려 수혼의 입술에 입을 맞춘다.
수혼은 화장품 냄새가 진해지고 여인의 체취가 느껴지더니
입술에 또 다른 입술이 덥히자 눈을 뜨고 상대를 보려다가 고개를 돌려버리고 만다.
그리고는 잠결에 몸을 뒤척 이듯이 돌아누워 버리고 만다.
지나는 수혼이 돌아누워 버리자 깜짝 놀라 얼른 고개를 들고는 밖으로 뛰어나간다.
수혼은 상대방이 방을 나가자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을 보았지만
이미 상대는 사라지고 난 후였다.
수혼이 느끼기에 양지 댁은 아닌 것 같은데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아침이 되어 수혼이 일어나 거실로 나오자 식사준비가 끝나 있었다.
강철과 여러 식구들이 한자리에 같이 있는데 지나는 보이지 않았다.
강철도 식탁을 들려보고 지나가 없자 은 양에게 물어본다.
“지나는”
“아직 자요. 어제 피곤했는지 깨워도 안 일어나요.”
“가시나가 오랜만에 수혼동생도 왔는데..하여튼..동생 지나와 가끔 만나.?”
“독립하고 나서 한번 본적 있어요.”
“지나가 저번일로 동생한터 단단히 삐진 모양이군. 동생이 이해하고 잘 달래봐.”
“예. 그러지요.”
수혼은 내키지는 않았지만 강철 앞이라 건성으로 대답하고 만다.
식사를 마치고 수혼은 강철에게 인사를 하고 나선다.
정원에 선 수혼은 화선이 가끔 거닐던 정원을 둘러보다
강철이 마중 나와 곁에 있으니 인사를 하고 나왔다.
이층창가에 아까부터 수혼을 지켜보던 보던 지나는
수혼이 살아질 때까지 한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영은은 자신이 원하던 교대에 합격했고, 수혼이 이사한다는 소식에 많이 섭섭했다.
자신의 집과 가까워 수혼이 보고 싶을 때마다 부담 없이 찾아갔는데
이제 수혼이 이사를 한다니 많이 섭섭한 모양이다.
하지만 영은은 수혼에게 그런 내색은 하지 않고 이사하는 수혼을 도와주었다.
강철은 신촌에 있는 아파트를 얻어 주었지만
이번에는 수혼이 강력히 요구하여 작은 원룸을 얻었다.
집이 크면 청소하기도 힘들고 혼자 사는 집이 커서 좋을 게 없다는 이유로
수혼이 극구 사양하자 이번에는 강철도 수혼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수혼이 아파트를 극구 사양한 이유는 앞서의 이유도 있지만
텅 빈 집안에 혼자 있으면 외롭고 고독해 화선에 대한 기억이 괴롭고 힘들였기 때문이다.
수혼은 다음날부터 학교에 가서 수업을 받는데
첫인상부터 강렬했던지 수혼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이한 외모에 법대수석합격이라는 타이틀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수혼은 주위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수업만 열심히 듣는 학생 이였다.
동기나 선배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고 말도 없는 수혼을
동기들이나 선배들은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수업을 받기 시작하지 3일째 되던 날,
수혼은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온 미모의 여인을 보고 얼어버린 듯 멍청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30대 중반에 남색 투피스 정장을 입고 얼굴에 안경을 끼고 들어온 여자는
교탁에 들고 온 책을 놓더니 학생들을 살펴보았다.
웅성거리던 학생들이 조용해지자 칠판에 “국제법 담당교수 오 정숙”이라고 쓴다.
“오늘부터 여러분과 수업을 진행할 국제법 담당교수 오 정숙이라고 해요.
여러분을 만나서 반갑고, 앞으로 잘 부탁해요.”
“우와~, 교수님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그게 수업하고 무슨 상관이죠.”
“너무 젊으셔서 교수님 같지 않아서요.”
“내 나이가 중요한건 아니죠. 자자 조용하고..출석 부르겠어요.”
“교수님 알려 주세요. 내~..그리고 결혼은 하셨습니까?”
“아 참내~ 좋아요. 나이는 35살이고 결혼에서 딸까지 있어요. 됐죠. 이제 출석 체크 합니다.”
“휴~”
여기저기에서 아쉬움의 타성이 터지고
학생들 특히나 남학생들은 젊은 여교수의 외모에 눈을 때지 못하고 쳐다보느라고 정신이 없다.
수혼은 자신의 눈을 잘못된 것이 아닌지 확인해 보았다.
지금 앞에 있는 여자는 아무리 보아도 화선과 너무나 닮았다.
얼핏 보면 꼭 쌍둥이처럼 닮은 것이다.
다만 틀린 게 있다면 안경을 쓰고 화선보다는 약간 키가 작고 통통하다는 것이 다를 뿐,
얼굴이나 풍기는 분위기는 화선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조 수혼..조 수혼..조 수혼학생 없어요.”
오 정숙 교수가 호명을 해도 정신없던 수혼이 대답하지 못하자
옆에 있던 학생이 수혼의 옆구리를 찌른다.
펴 듯 정신을 차린 수혼이 대답하자. 여교수는 안경을 벗더니 수혼을 천천히 쳐다본다.
“학생이 이번에 수석합격 한 조 수혼학생인가요.”
수혼은 오정숙 교수가 안경을 벗자 정말 화선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만큼 안경을 벗은 오정숙 교수는 화선과 닮았다.
“예. 제가 조 수혼입니다.”
“학생에게 기대하는 바가 커요.
학적부를 보니 중등, 고등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바로 우리학교에 입학했더군요.
정규교육도 받지 않고 우리학교에 그것도 수석으로 합격했다는 것에
모든 교수들이 놀라고 있어요. 앞으로 지켜보겠어요.”
“예~”
“자 그럼. 강 만식..김 해선”
수혼은 여교수가 자신에게 시선을 거두고 다시 출석부를 보자 진한 아쉬움이 몰려왔다.
수업이 끝나고 그날은 선배들이 마련한 신입생 환영회가 있었다.
수혼은 참석하고 싶지 않았지만 동기들이 억지로 끌고 가니
어쩔 수 없이 환영회에 참석하게 됐다.
학교 근처 호프집에 들어서자 먼저 도착한 선배들이 신입생들을 맞이한다.
호프집을 통째로 빌린 모양인지 다른 손님들은 없었다.
신입생들이 모두 자리에 착석하자 한 선배가 앞으로 나선다.
“새내기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먼저 제 소개부터 하죠. 전 같은 법대2학년 학생회장을 맞고 있는 허영기라고 합니다.
이렇게 선배들이 마련한 환영회에 참석해 주신 새내기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자 이렇게 여러분을 만나보니 반가운데.어허. 역시나 올해도 흉작이내요.
하여튼 법학과에는 예쁜 여자학생 들어오는 법이 없어.”
여기저기서 신입생 여학생들의 야유가 들리고 허영기를 손을 들어 조용히 시킨 다음
“아아~ 농담입니다. 우리 2학년들도 환영회에서 선배들에게 들었던 말이라 따라해 본 거죠.
그래도 2학년 여학생들에 비교하면 이번 새내기들을 꽃밭이내요.”
“야~ 허영기 너 죽어”
여기저기 앉아있던 여학생들의 불만에 찬 소리에 허영기는 다시 자제하라고 하더니
“하하하~ 이거 잘못하다가는 동기들한테 맞아죽겠군요. 자자 인사는 이것으로 마치고..
우리 오늘 죽어봅시다. 자 모두 잔을 들고 수리대 법학과를 위하여.”
모든 학생들이 허영기의 구호에 맞춰 외치며 술을 마신다.
수혼도 분위기에 맞춰 술을 마시신다.
“자. 그럼 법학과 전통대로 수석합격 한 학생에게 축하주를 주는 행사를 하겠습니다.
이번에 우리 법학과가 전체 수석을 배출했다고 교수님들이 다들 기뻐하고 있습니다.
작년이나 제 작년에는 전체 수석을 컴퓨터공학과에서 배출했는데
올해 드디어 우리 법학과가 전체수석을 배출했다고 난리가 났어요.
자 조 수혼 새내기 앞으로 나와요.”
수혼은 조용히 앉아 있다 자신을 호명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가니
허영기는 대접에 소주를 가득 부여 수혼에게 내민다.
“자 한잔 쭉 마셔.”
수혼은 잔을 바라보다 단숨에 마셔버린다.
독한 소주가 들어가니 목구멍이 따는 것 같고 배속이 뜨거워지는 것이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한잔 주면 정 없다고 한잔 더 마셔.”
다시 한 병을 따서 대접에 따르니 소주 한 병이 가득 찬다.
수혼은 말없이 다시 대접을 받아 마셔버린다.
“공부만 잘하는 게 아니라 술도 한 술 하네. 아주 마음에 들어. 자 소감 한마디 하지.”
수혼은 연달아 두 병의 소주가 들어가자 속이 타는 것 같고 얼굴이 붉어졌다.
소감을 말한 기분은 아니지만 권하니 억지로 마이크를 잡았다.
“조 수혼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수혼이 인사를 마치고 마이크를 전해주자
허영기는 마이크를 전해 받고 수혼은 제자리로 돌아와 버렸다.
“말 수가 적은 친구 내요.
자 그럼 선배들을 먼저소개하고 새내기들이 자기 소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선배들이 한명씩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소개를 하는데
이젠 다들 관심이 없는지 지역방송이 나오기 시작한다.
선배들이 소개를 하든 말든 여기저기 자기들끼리 모여앉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을 먹는데
수혼은 속이 울렁거려서 슬며시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니 조금은 술기운이 날아가는 것 같다.
수혼은 낮에 보았던 오 정숙교수의 영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화선과 너무나 닮았다.
술을 사양하지 않고 마셔버린 것도
화선과 오 정숙교수의 얼굴이 겹치며 마음이 심란했기 때문이다.
수혼은 습관처럼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았다.
산에서 생활할 때 외롭고 고독할 때면 밤하늘에 떠있는 달과 별이 수혼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한참을 밤하늘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다.
고개를 내려 상대를 보니 양복정장을 차려입은 사내였다.
“안녕. 난 이무석이라고 해. 같은 법학과 학생이고 4학년이지.”
“예! 안녕하세요.”
“본래는 4학년이 참석할 자리가 아닌데 자네 소문이 학교에 자자해서 궁금해서 찾아왔지.
직접 보니 특이하긴 하군. 긴 생머리의 남자 법대생이라.
아마 자네 같은 특이한 외모의 남자가 법대에 들어온 건 처음이지.
자네도 알지 법대생 하면 고리타분한 이미지 아냐.
근데 자네가 그런 고정관념을 한방에 날려 버렸더군. 하하하하. 대단한 친구야 자네.”
“외모가 특이하다는 건가요. 아님 다른 게 특이하다는 건가요.”
“물론 외모도 특이하지만 역시 이런 외모의 자네가 수석합격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거지.
그러니 사람들이 특이하게 생각하지.”
“그래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합니까?”
“물론 아니지. 하지만 말이야 사람에게는 첫인상이란 것이 있어.
자네의 첫인상은 공부하고는 거리가 멀 것 같아.
특히나 뒷모습만 보면 여자로 착각할 정도고 말이야.”
“이놈의 머리 잘라버리든지 해야겠군요.”
“아아~ 그런 뜻은 아니야. 좀 특이할 뿐이지 못 봐줄 정도는 아니야.
요즘은 개성시대인데 사람외모 가지고 뭐라 하는 사람은 없지.”
“그래요. 근데 저 얼굴이나 보려고 참석하신 건가요.”
“하하하~ 이 친구 좀 삐닥한 구석이 있네. 사람의 인연이란 게 별건가?
이렇게 만나면 인연이지. 난 말이야 내가 하고 싶음 망설이지 않고 하는 사람이야.
내가 자네를 보고 싶으니 다른 생각은 집어치우고 이렇게 찾아온 거야.”
“그런가요. 자기가 하고 싶음 망설이지 말라. 좋은 말이네요.”
“하하하하. 그렇지 이제 좀 통하는 것 같네. 자 들어가서 한잔 해야지.”
수혼은 선배에게 이끌려 다시 호프집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좀 지나자 하나 둘씩 술 취한 학생들이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수혼은 술 고픈 생각이 없어 자리에 앉아서도 술을 먹지 않았다.
밖에서 만난 이무석이란 선배는 수혼의 앞에 앉아 학교가 어떠니, 학과가 어떠니 등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수혼 앞에서 떠들어 댄다.
이 선배라는 놈은 지치지도 않는지 입이 가만있질 않는다.
어느 정도 학생들이 빠져나가고 술집에는 이제 10여명만 남아있었다.
“선배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열심히 해요.”
처음 무대에서 인사를 하던 허영기가 이무석을 아는 체 하며 자리에 앉는다.
“아 그냥. 이 친구하고 인연한번 만들어 보려고”
“참내. 그렇게 해서 인연 만들어 지겠어요. 아까부터 치켜보니 선배혼자 떠들고 있더구먼.”
“이 친구 말이야, 입에 금테 둘렸는지 내가 아무리 떠들어도 말이 없네.”
“아 선배가 재미없는 이야기만 하니까 그러죠.”
“아쭈~ 이놈바라 그럼 내가 이야기해봐”
“자 보세요.조 수혼 새내기 난 누군지 알지.
자네 말이야 요즘에 우리학교에 들어온 킹카 교수님 알아.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짱인데 아마 자네도 보았을 거야. 국제법 담당교수 오정숙 교수님이라고.”
“예 낮에 국제법 강의 있었어요.”
“어어~ 이놈바라 이때까지 입도 벙긋 안하던 놈이 오정숙교수 이야기하니 입이 열리네.”
“그것 봐요. 이래서 선배가 틀렸다는 거예요.
누가 법대생 아니랄까봐 하는 얘기들이 모두 고리타분하니 누가 관심이나 가져요.”
“그럼 인마. 오정숙교수 이야기는 고리타분하지 않냐.”
“당연하죠. 요즘 남학생들 사이에 초미의 관심사가 오정숙 교수인대. 몰랐어요.”
“허 참내. 결혼까지 한 교수에게 무신 놈의 관심.”
“이래서 선배는 안돼. 한 인물 해. 나이 젊어. 그것도 대학 교수야.
남학생들이 관심 가질 만도 하죠.”
“참내. 그래서 오교수가 뭐”
“그러니까. 오 정숙교수의 프로필을 보면 말이죠.
미국 하버드 법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조교수로 제직하다 이번에 우리학교 정교수로 왔어요.
남편은 미국에서 유학중에 만난 남자로 무슨 사업한다고 하던데 잘은 모르겠고,
슬하에 5살 된 딸이 하나있어요.”
“그게 다냐.”
“선배 대단하지 않아요. 그 나이에 하버드 법학 박사에 우리학교 정교수라는 것이.”
“뭐 그럴 수도 있지. 뭐가 대단한 거라도 있는 줄 알았네.”
“참내~ 어째든 이 녀석 제 이야기 경청하고 있잖아요.”
“정말 이내. 야~ 조수혼 네도 오교수 한터 관심 있냐.”
“글쎄요.”
“이놈 보게 똑바로 말해.
네가 여자에게 관심 있다면 그런 유부녀 말고 쭉쭉 빵빵한 여자들로 소개시켜 준다.”
“어 선배 그런 여자 있음 나나 소개시켜 줘요.”
“이 자식아 넌 애인 있잖아.”
“혹시 알아요. 삼삼하면 애인 바꿀지.”
“야야~ 그런 말 하지마라. 수지가 그 말 들었으면 넌 죽은 목숨이야.
자자 조수혼 여자 관심 있어. 말만해 내가 소개시켜 준다니까?”
“관심 없어요. 전 이만 일어나야겠네요. 두 분이서 이야기 하세요.”
“야~야”
수혼은 두 사람의 말류에도 불구하고 호프집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수혼의 마음속에 오 정숙이라는 여인이 깊게 각인되고 있었다.
수혼은 체육관으로 향했다.
요즘 들어서 시험이다 입학식이다 이런저런 일로 제자들에게 소홀한 감이 없지 않았다.
더군다나 자신의 통장으로 매달 보내오는 돈이 강철이 주는 돈이 아니라
제자들이 준다는 말을 듣고 마음속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체육관에 도착하자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아 제자들이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학교가 끝나고 바로 체육관으로 오는 길이라 남들보다 몇 시간이나 먼저 도착한 것이다.
수혼은 검은 도복으로 갈아입고 음양도의 음양각과 음양수,
그리고 음양금나수 등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요즘 들어서 공부한다고 음양도의 수행을 게을리 해서 그런지 몸이 무거웠다.
체육관에서 한참을 수련하고 있는데 체육관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서고 있었다.
수혼은 제자 중 한명이거니 생각하고 들어온 사람을 무시하고 수련만 열심히 했다.
수혼의 몸이 풍차처럼 회전하며 연속적으로 터지는 음양각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한 마리 학처럼 공중으로 치솟아 올라 허리가 꺾이며
공중을 향해 터지는 발차기는 공기를 가르며 날카롭게 날아가고 쳐낸 발을 휘수하지도 않고
공중에서 계단을 밟듯이 날아오르는 동작은 사람의 상식을 벗어나 버린다.
농구에서 이단점프라는 것은 들어봤어도 수혼이 지금 하는 것은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고,
꼭 사람의 몸에 날개를 단 것처럼 공중에서 자유자재로 몸을 회전하며
연속적으로 발차기와 주먹을 터진다.
이것이 바로 음양각과 음양수 그리고 음양신법의 조화가 만들에 내는 한 폭의 작품 이였다.
특히나 수혼의 손동작은 주먹이다 싶음 수도가 되고
수도다 싶음 반쯤 말아 주먹도 아니고 수도도 아닌 특이한 주먹이 된다.
순간순간 변화가 막심하여 그의 손동작만 보면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 같지만
자세히 보고 있음 어지러울 지경이다.
공중에서 춤추듯 한 동작이 멈추고 다리를 바닥에 붙이고
수혼이 손가락들을 독수리의 발톱마냥 오므리더니 팔의 동작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건 수혼이 잘 쓰지 않는 음양금나수로 사람을 제압하거나 혈도공격에 사용되는 무술 이였다.
수혼이 비록 사람의 혈도를 이용한 공격과 수비방법을 알고 있지만
아직까지 사람에게 사용해 본적은 없었다.
혈도를 이용한 공격은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화를 불려올 수 있기 때문 이였다.
드디어 수혼의 동작이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고 들어온 사람을 돌아보니 처음 보는 사람 이였다.
청바지에 간편한 면 티.
등 뒤로 넘긴 희색도복이 보이고 껌을 짝짝 씹고 있는데 그 표정이 심히 불량스럽게 보인다.
더 황당한 것은 남자가 아닌 여자였으며,
짝짝 씹고 있는 껌만 아니면 상당한 미인이라는 것이다.
이곳 체육관은 강철이 비어있는 체육관을 인수해 사용하는 것으로
밖에서 보면 간판도 없어 이곳이 체육관이란 것을 아는 사람도 수혼과 제자들 뿐 이였다.
그런데 이곳에 도복을 가지고 온 이 여자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끝났어. 멋 지내. 그게 음양도라는 무술인가 보죠.”
들어온 여자는 씹고 있던 껌을 바닥에 찍하고 버린다.
수혼과 제작들이 운동하는 매트리스에 껌을 뱉고는 수혼에게 건들건들 걸어온다.
“아저씨가 이곳 관장이야.”
“누구죠. 이곳은 개인도장으로 일반인들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알아. 나도 들었어. 무술 배우려 온 게 아니라 아저씨 보려고 왔어.”
“무슨 말이죠.”
“얼마 전에 깡패새끼 하나가 건들리기에 죽도로 패주었지.
근데 말이야 그녀석이 특이한 무술을 하더라고,
태권도도 아니고, 유도도 아니고 하여튼 내가 처음 보는 무술이더라고”
“그래서요”
“난 말이야 궁금한 건 못 참거든,
특히나 무술이라면 밥 먹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광적으로 좋아하지.
그런 특이한 무술을 보고 참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그 녀석을 죽도로 패서 이곳을 알아냈어.
그 녀석 말로 음양도라고 하던데 생전처음 들어본 무술이걸랑.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나. 바로 달려왔지.”
“그 녀석이라는 놈이 어떤 놈이죠.”
“몰라. 이름 같은 거 귀찮은데 뭐하려 물어봐.”
“후후후. 특이한 여자군. 그래 직접본 소감은 어때요.”
“화려하대. 동작도 멋지고 말이야. 근데 실전에서는 어떤 위력을 발휘할까 궁금해.
화려한 것 치고 실전에서 별 볼일 없는 경우가 많거든.
그리고 말이야 아저씨가 관장이라면 실망인걸. 난 나이 좀 든 사범으로 예상했는데 말이야.
아저씨가 엄마 배속에서부터 수련했다고 해도 몇 년이나 했겠어.
그런 짧은 수련기간으로 이처럼 화려한 무술을 완벽하게 익히고 있겠어.
그냥 흉내만 내는 거 아닌지 몰라.”
“그럴지도 모르지요. 근데 그 말하려고 온건 아닌 것 같고,
도복까지 챙겨온 걸보면 나하고 한판 붙여보겠다는 건가요.”
“아~ 아저씨 눈치한번 빠르네. 맞아 아저씨하고 한판 붙어보고 싶어서 왔지.”
“싫어요. 난 여자하고 싸우고 싶은 생각 없어요.”
“허허 참내. 이 아저씨가 여자라고 깔 보내. 아~자~씨~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우리나라 태권도 국가 대표야 국가 대표라고.
아~자~씨 같은 엉터리 무도가는 나한테 걸리면 뼈도 못 추려. 알아.”
“국가 대표라.”
“그래~ 국가 대표. 태권도 공인 4단에, 합기도 3단, 공수도 3단이라고.
여자라고 우습게보다가 큰 코 다진 남자들 부지기수야.
아저씨도 그 놈들과 똑같은 놈 이내.”
“정 나와 대련하고 싶다면 받아주지요.
그 대신 맞고 나서 치료비 물어달라는 소리 하지 마요.”
“아저씨 보기보다 확근한데.
그리고 말이야 아저씨나 나 한터 맞고 치료비 물어달란 소리 하지 마.”
“저기 들어가서 도복으로 갈아입고 와요.”
“OK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
급작스럽게 찾아온 여자가 탈의실로 들어가자 수혼은 여자가 버린 껌을 주여 휴지통에 넣는다.
여자의 정체는 모르겠지만 오늘 그녀와 한판 대련을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운동을 했다는 여자의 태도가 불손한 건 둘째 치고,
운동하는 체육관에 껌을 씹고 들어와서는 바닥에 뱉는다는 것은 명백한 도전행위다.
아예 싸우려고 맘 잡고 들어오지 않는 한 저려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가 들어가고 시간이 된 건지 제자들이 문을 열고 “우르르” 들어오고 있었다.
“아 사부. 오늘은 저희들 보다 일찍 오셨네요.”
“예~ 운동 좀 하려고 일찍 왔어요. 아참 탈의실은 잠시 후에 들어가세요.”
“예. 누가 있습니까?”
“여자가 한명 들어갔어요. 이제 나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오~호. 사부. 여자친구 입니까?”
“아니요. 나에게 도전한 사람입니다.”
“참. 어떻게 이곳을 알고 왔지. 이곳에서 우리가 무술 배운다는 건 비밀인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하여튼 기다려 보죠. 국가대표 태권도 선수라는데.”
잠시 후, 희색도복에 호리호리한 여자가 탈의실 문을 열고 나왔다.
그녀는 검정색 양복일색인 덩치들을 보고도 전혀 기죽지 않고 수혼에게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녀가 수혼과 대치하자 제자들은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뒤쪽에 정렬해서 자리했다.
“시작하죠. 난 태권도가 주 종목이지만 이번 대결은 태권도 경기가 아니니
몸에 익은 기술을 사용하도록 하겠어요.”
“맘대로 하세요. 자 공격해 봐요.”
“흥~ 자신 있다는 건가요. 좋아요. 사양하지 않고 공격하죠.”
그녀는 태권도를 기본으로 하는지 제자리에서 몇 번 뛰더니
순간적으로 수혼에게 덮쳐오며 수혼의 허리 아래를 걷어차 온다.
수혼이 한걸음 옆으로 살짝 피하자 걷어찬 발을 바닥에 살짝 착지함과 동시에
그녀의 몸이 빙글 돌며 수혼의 얼굴로 발이 날아온다.
수혼은 허리를 뒤로 쳐져 살짝 피하니
그녀는 올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수혼으로부터 떨어진다.
“오후. 제법인데. 내 발치기를 이렇게 쉽게 피하는 사람은 간만에 보내.”
수혼이 빙긋 웃고만 있자 여자는 기분 나쁜지
다시금 수혼을 향해 접근하며 왼발을 들어 수혼의 허리를 가격하고
수혼이 피하자 몸이 붕 날아올라 두 다리가 연속적으로 수혼의 급소를 놀리고 날아온다.
이번 공격에 수혼도 칠성밟기를 실천하며 몸이 흔들리니 그녀의 발은 허공만 가른다.
수혼의 옆에 떨어진 그녀는 흔들리는 수혼을 지켜보다 팔을 뺏어 수혼을 잡으려하니
수혼의 몸은 어느새 그녀의 뒤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녀는 수혼이 자신의 뒤로 이동하고 있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뒤차기를 날린다.
수혼의 이동속도와 자신이 쳐내 다리의 위치가 절묘하여
이번에는 피하지 못할 것으로 확신했다.
“아~악”
그녀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몸의 균형이 무너지며 휘청하더니 바닥에 쓰려진다.
그녀가 쳐낸 다리는 수혼의 갈고리 같은 손에 들려 있었다.
수혼은 갑자기 날아온 다리를 피하지 못하고 금나수로 그녀의 발목을 잡아 버린 것이다.
여자가 바닥에 쓰려지자 그녀의 발목을 풀어주었다.
그녀는 다리가 풀리자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뒤로 물려서며 자신의 다리를 만진다.
발목을 보니 손자국이 선명하다.
“방금 그게 아까본 금나수 인가요.”
수혼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여자는 아픈 다리를 몇 번 떨더니 몸을 수혼에게 날린다.
수혼을 향해 날아오던 몸이 중간에서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수혼의 곁에 이르려 손과 다리가 정신없이 터지기 시작했다.
수혼도 이번에는 적지 않게 당황하여 칠성밟기를 실천하며 피하는데
그녀의 모든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공격을 쳐내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칠성밟기로 피하지 못할 것이 없었는데
이번 그녀의 공격은 막지 않음 안 될 정도로 신랄했다.
수혼이 그녀의 공격을 막으며 일자보로 뒤로 쭉 밀려나니 그녀는 한번 바닥을 찍더니
다시 날아올라 수혼에게 덮치는데 이번 공격은 처음보다 더 신랄하여
그녀의 손과 발이 공기를 찢어버리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리고
상하좌우 손과 발이 일체가 되어 수혼에게 날아왔다.
수혼은 태만히 상대하지 않고 뒤로 두발자국 물러서더니
앞으로 솟아지며 공격 사정권으로 몸을 날려 들어간다.
수혼의 다리와 손이 그녀의 공격권으로 들어가더니
손과 발이 부디 치며 “타타탁”거리는 타격 음이 들리기 시작하고
두 사람의 손과 발은 너무나 빨리 움직여 보는 사람이 어지러울 지경 이였다.
특히나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는 덩치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스승인 수혼의 실력이야 알고 있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여인의 무술 또한 대단한 경지에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얍..”
“아~악.”
수혼의 기압소리가 들리고 수혼의 몸이 공중으로 치솟아 올라
체육관의 천장까지 아슬아슬하게 올라가더니 몸을 숙여 밑으로 떨어지며
전번에 딱 한번 김호식과의 대결에서 보여 주였던 음양수가 터지기 시작했다.
수혼의 손 그림자가 꽃비처럼 아름답게 휘날리고,
천천히 다가가던 손 그림자들이 그녀의 앞에 이르려
전광석화처럼 날아가 그녀의 몸을 강타한다.
그녀의 몸은 실 끊어진 연처럼 뒤로 쭉 밀려나며 입에서 피를 한 모금 토한다.
“음~ 이게 뭐죠.”
“음양수. 당신이 아까 보았던 무술이지. 화려하기만 하다는 그 무술”
“치~ 빌어먹을”
그녀의 몸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쓰려진다.
“퍽”하고 쓰려지는 그녀의 입 꼬리가 올라간 것은 무슨 의미일까?
쓰려진 그녀의 얼굴에는 분명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수혼은 쓰려진 여인을 보며 깊은 상념에 잠겼다.
이 여인이 마지막에 보여준 무술은 분명 일반세간에 알려진 무술은 아니다.
정확하게 무슨 무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익히고 있는 음양도와 같이 신비에 쌓인 무술 같았다.
아무리 고민한들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일단 여인을 안아 한쪽에 눕게 했다.
“자 모두들 옷 갈아입고 정렬해요.”
덩치들이 탈의실로 달려가 옷을 갈아입고 정렬하자 수혼이 앞에 선다.
“저 사부. 저 여자 대단하던데. 무슨 무술입니까?”
“제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무술은 아닌 것 같아요.
태권도나 합기도처럼 세간에 알려진 무술은 아닙니다.”
“하여튼 사부는 대단합니다. 저 여자도 강한데 사부에게 상대도 안돼는 군요.”
“글쎄요. 초식만 가지고 말하면 저 여자나 나나 비슷해요. 단지 수련한 깊이가 다를 뿐이죠.
내가 음양도를 수련한 깊이만큼만 수련했다면 좋은 대결이 될 수 있었는데..아쉽군요.”
“그 정도로 대단한 무술입니까?”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여러분께 할말이 있어요.”
“말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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