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곡 내 영혼의 땅에 붙었도다, 사람은 똑 같은 존재
단테의 꿈에 한 여자(세이렌)가 나타났습니다.
단테의 시선은 그녀의 혀를 풀어 주었고
그녀의 뒤틀린 몸을 곧추세워 주었으며, 그녀의
병약한 얼굴에, 사랑이 원할 때처럼,
화색이 돌게 했다.
위 시의 세이렌의 변화는 단테의 사랑이 깃든 응시에서 나옵니다. 이는 청신체파(淸身體派)의 전형적인 주제로 ‘사랑과 여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청신체파는 사랑하는 여성을 숭고한 존재로 여기고 사랑하는 여인에게 나가는 길은 모든 욕망을 벗어던지고 영혼을 정화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상적인 여인에 대한 숭배는, 열망하지만 가질 수 없는 여인에 대한 사랑으로, 중세 기사도적 사랑과 결합된 숭배의 대상으로 사랑입니다.
르네상스 미술 또한 같습니다. 르네상스 미술도 조토와 마사초처럼 ‘자연 모방’에 충실하였지만 또한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이데아를 찾아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려 하였습니다.
보티첼리의 성모, 비너스, 아테네는 각기 다른 인물들인데 모두 같은 얼굴이고 표정도 거의 같습니다. 이는 보티첼리가 자신이 숭배하는 여인인 시모네타를 이상적인 여인으로 그렸기 때문입니다. 보티첼리 그림 속의 여인이 언제나 비슷한 표정인 것은 보티첼리가 하나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마르스와 비너스, 보티첼리 런던 내셔널 갤러리
- 2019년 런던 여행 중에서
마르스와 비너스, 보티첼리 런던 내셔널 갤러리
-
성 모자와 다섯 천사(석류의 마돈나),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 2012년 피렌체 여행 중에
팔라스와 켄타우로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그렇게 혀가 풀리자 사이렌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암초가 많은 바다에 살며 수많은 뱃사람을 홀려 죽게 만든 세이렌이 노래를 부르자 단테는 마음을 빼앗겨 혼미해졌습니다.
내 노래는 오디세우스를 표랑의 길에서
벗어나게 했네. 나에게 걸리면
떠날 수가 없어요. 나에게 취하니까요.
단테는 오디세우스의 실패한 여행을 이야기하는데 호메로스 <오딧세이아>에서는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고 자신은 배의 기둥에 묶어 유혹을 면했습니다. 그러나 단테는 오디세이의 실패한 여행과 자신의 성공적인 여행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세이렌의 노래가 닫히기도 전에 거룩한 귀부인(루치아)이 세이렌의 술책을 막습니다.
단테는 악취에 잠이 깹니다.
선생님은 세 번이나 단테를 깨웠다고 하며 네가 들어갈 문을 찾아보자고 합니다. 우리는 새로 뜬 해를 등지고 걸었습니다.
그때 천사가 나타나 다섯 번째 둘레로 올라가는 길을 가르쳐 주었고 날개를 움직여 바람을 일으켜 나태의 죄인 네 번째 P를 제거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천사를 지나 좀 더 올라왔을 때 선생님이 땅만 보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단테가 꿈의 끔찍한 환영에 정신을 차릴 수 없다고 하자
네가 본 것은 늙지 않는 요녀였다. 우리 위에서
영혼들이 오직 그 때문에 울고 있다.
넌 사람들이 그녀에게서 어떻게 벗어나는지도 보았다.
늙지 않는 요녀인 세이렌은 '내 자신의 탐욕'입니다. 세이렌의 허상에 반하여 인생을 망친 경우가 허다합니다.
선생님은 탐욕, 대식, 음란과 같은 사악의 쾌락에 빠져 세이렌의 유혹에 넘어간 영혼들이 연옥의 다섯 번째 단지(우리 위)에서 참회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침내 다섯 번째 단지에 올라섰습니다.
그 곳에서 단테는 바닥에 너부죽이 엎드려 얼굴을 숙이고 눈물을 흘리는 영혼들을 보았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보다 세상의 행복을 더 사랑한 탐욕의 죄를 지은 자들이 땅바닥에 엎드려 하늘을 보지 못한 채 땅만 쳐다보며 이승에서 범했던 죄를 씻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내리신 고통을 정의와 희망으로 참고 있는
하느님의 선택된 영혼들이여
더 높은 계단으로 이르는 길을 알려 주시오.
하느님의 정의에 따른다는 자각을 가질 때 탐욕이 저지른 죄를 덮어갑니다.
영혼은 ‘당신들의 오른손을 언제나 밖에 두시오’했습니다. 오른 손을 들고 돌아보면 방향을 알게 됩니다.
단테는 길을 가르쳐 준 영혼에 대해 당신은 누구인지 묻습니다. 자기는 교황 하드라이누스 5세라고 알려줍니다.
흙탕물을 조심하는 자에게는 교황의 커다란 망토가
어찌나 무거웠던지, 한 달이 조금 지나서야 알았소.
다른 짐이야 다 깃털처럼 가벼웠소.
교황 재위 38일 만에 더 오를 자리가 없는 것을 알고 인생이 헛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거기서도 그런 삶에서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음을 알고 지상의 재화에 대한 사랑이 내 마음 속에 타올랐습니다.
그때까지 난 비참한 영혼이었소.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은 탐욕의 노예였소.
보시다시피, 지금 여기서 그 벌을 받고 있소.
탐욕이 무슨 짓을 하는지는 바닥에서 회개하는 영혼들의 정죄 속에서 밝혀지는데 이 산에서 그보다 더 가혹한 죄는 없는 것 같다고 합니다.
우리의 눈이 세속적이 것에 들어붙어서
위를 바라보지 못한 것처럼 여기서도
정의가 우리의 눈을 바닥에 붙여 놓은 것이오.
인생이 추구하는 권력, 명예 돈이 궁극적 목표가 아닙니다. 눈은 높은 데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을 저들의 눈은 바닥에 붙여 놓은 것입니다.
여기서도 정의의 힘은 우리의 손과 발을 바닥에 단단히 묶어 놓은 것입니다.
탐욕은 선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망쳐 버렸고
사랑 없는 삶은 헛된 것이었소. 여기서도
정의의 힘은 우리의 손과 발을 바닥에
단단히 묶어 둔 것이오.
무릎을 꿇고서 말을 꺼내려 하자 교황이 "당신은 왜, 몸을 숙이는 것이오?" 물어 단테가 "당신의 권위 앞에 똑바로 서기에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자
형제여, 다리를 곧게 펴고 일어나시오!
잘못된 생각이오! 나는 당신뿐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과 함께 유일한 권능 아래 똑같은 존재라오!
교황이 탐욕으로 인생이 헛된 것임을 알았다는 것보다 "나는 당신뿐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과 함께 유일한 권능 아래 똑같은 존재라오!"하는 교황 하드리아누스 5세의 말이 더 깊이 다가옵니다.
교황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교황이 죄를 씻는데 전념하고자 하여 그의 뜻을 따랐습니다.
교황에게는 세상에 알라지아라고 하는 조카가 있답니다.
단테는 망명 중에 도움을 준 말라스피나의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이 교황의 조카 알라지아는 단테의 친구인 모로엘로 말라스피나의 아내가 되었고 단테가 망명 중에 말라스피나 집에 머문 적이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