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카 칵테일 / 김석수
“내가 술을 다 마셨는데 당신이 취한 거 같아요.” 아내가 가끔 웃으면서 한 말이다. 나는 막걸리 반 잔만 해도 얼굴이 홍당무가 된다. 대낮에 술을 입에 댄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술자리에서 되도록 적은 양을 마시려고 병아리 물 먹듯이 한다. 적게 마시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양이 많아진다. 소주 한 병 정도 들어가면 배에서 난리가 난다. 머리가 아프고 자주 재채기하며 토한다. 다른 사람은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다는데 나는 그 반대다. 생리적으로 맞지 않다. 그런데도 잘 마셔보려고 무진 애쓴다. 한때는 술 잘하는 친구가 부러웠다.
비싸거나 싸거나 내게는 맛이 비슷하다. 군복무 중에 미군 부대에서 양주를 가끔 맛볼 기회가 많았다. 그때 내가 어울렸던 미군이 좋아하는 술은 ‘진빔’이다. 위스키 종류인데 가격이 싸고 뒤끝이 개운하다. 발렌타인보다 10배 정도 싸다. 주말이나 휴일에 피엑스(PX 군부대 기지 안의 매점)나 바에 가면 재즈를 들으면서 한 모금씩 꼴딱꼴딱 마시고 있는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들은 그 술을 우리가 소주 마시듯이 먹는다. 나는 비싼 발렌타인과 그 맛의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술은 잘하지 못하지만 가끔 아내와 함께 마시는 술이 있다. 보드카다. 40대 중반에 교육부 파견 해외 국제학교 교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동포 환영회에서 ㅂ 한인회장이 소개한 술이다. 그는 젊었을 적에 국가 대표 축구 선수다. 골키퍼라서 키와 손이 크다. 머리는 스포츠형이고 체격은 건장하다. 동포사회 회장과 학교 이사장을 겸임하고 있다. 그는 내가 학교에 부임한 첫해 봄 우리 부부를 그의 집이 있는 아름다운 섬으로 초청했다.
그곳은 빌딩 숲이 있는 도심에서 배를 타고 40분쯤 간다. 주변이 고요하고 공기가 깨끗하다. 경치가 아름다운 바닷가와 골프장이 유명하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곳은 해수욕장 가까운 해산물 식당이다. 아열대 지역이라 삼월에도 해수욕하는 사람이 많다. 선착장에서 십여 분 걸어서 식당으로 가니 ㅂ 회장 부부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한인회 간부도 함께 참석한 자리다.
서로 인사하고 식탁에 앉으니 잘 차려진 해산물과 보드카 술병이 눈에 띄었다. 순간 오늘 힘들겠다는 불안감이 올라왔다. 한인회 사람들이 술을 잘한다는 말은 들었으나 보드카를 즐겨 마시는 줄 몰랐다. 군대 시절 술 좋아하는 미군 친구도 알코올 도수가 높다고 싫어했다. 러시아에서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려고 만든 증류주다. 시베리아에서 단숨에 목구멍으로 털어 넣어 몸을 녹인다는 것이다. 독한 술로 정평이 있다.
ㅂ 회장은 인사 소개를 하자마자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큰 그릇에 나보다 두 배 큰 손으로 레몬을 으깬다. 칼로 나눈 절반을 억센 손아귀에 넣고 짜면 하얀 물이 비 오듯 쏟아진다. 위스키 술잔에 얼음 두서너 개 넣는다. 보드카와 레몬즙을 섞어서 잔에 따른다. 마지막에 토닉 워터(탄산수)로 간을 한다. 모두에게 술잔을 돌리며 환하게 웃었다. 술잔이 하얀색에서 뽀얀 우윳빛으로 변한다. 달콤새큼한 맛이다. 술술 넘어간다.
푸른 바다와 저녁노을이 어울려 환상적인 분위기다. 갈매기가 머리 위로 날고 바다 고기가 물 위로 뛰어오르고 있다.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인어처럼 보인다. 식당 옆 바위에 부딪힌 물거품이 물보라를 일으켜 내 볼을 간지럽게 한다. 먼바다에서 범선이 하얀 돛을 달고 물 위에 떠 있다. 받는 잔의 술을 마시고 준 사람에게 술을 권하는 반배가 없어도 나는 계속 술을 청했다. 한인회 간부가 내가 술을 잘한다고 좋아한다. 아내는 많이 마신다고 내 옆구리를 찔렀다.
그날 여러 잔을 마셨지만 취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 음식을 토하거나 배가 이상하지도 않았다. 아내는 내가 취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한다. 음식도 맛있고 칵테일이 별미라고 했다. 나중에 ㅂ 회장에게 그 술 맛이 좋았다고 하면서 만드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했다. 보드카와 탄산수, 레몬즙 비율을 잘 조합하는 것이 맛있는 술을 만드는 그만의 방법이다. 상점에서 레몬즙 짜는 도구를 샀다. 여러 번 되풀이 해서 칵테일을 만들었지만 그날 느꼈던 술맛은 나오지 않았다. 아마 그때 술자리 분위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귀국해서 아내는 내게 가끔 칵테일을 만들어 보라고 권한다. 여러 차례 시행착오 끝에 내가 좋아하는 술을 찾았다. 아내와 가끔 내가 만든 술을 즐긴다. ㅈ 고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해서 친목회 때 교직원에게 내가 좋아하는 술을 만들어 돌린 적이 있다. 술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도 대부분 좋아했다. 한동안 그 술맛이 일품이라고 칭찬이 자자했다. 칵테일은 해산물과 함께하면 더 맛있다. 요즘 주꾸미와 갑오징어 철이다. 아내와 함께 보드카 칵테일에 요즘 나오는 해산물을 곁들이고 싶다.
첫댓글 와! 원장님이 만든 칵테일 저도 맛 보고 싶어요. 얼마나 맛이 좋으면 일품이라고 할까요?
글쎄요. 술은 동반자와 분위기가 중요하니까요?
저도 맛보고 싶네요. 알코올 분해 효소가 없는 저도 술술 넘어가는지 궁금합니다. 술 잘 마시는 사람을 지금도 저는 부러워합니다.
교장선생님 술 잘 마시는 사람 부러워 할 필요 없어요. 자기에게 맞는 술을 적당히 마시면 되니까요.
칵테일도 취하더라구요. 글 잘 읽었습니다.
네, 많이 마시면 취하지요.
부부가 오붓하니 마시면 좋을텐데 전 남편에게 술 친구가 되어 주지 못하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자세히 써 놓으신 글 참고해서 칵테일에 도전해 봐야 겠어요.
네, 한번 해보세요. 소확행입니다.
선생님 글이 술술 읽히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