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 / 박명숙
드디어 지난 4월 10일에 이사할 집을 계약했다. 아파트는 주차하기가 복잡하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많아서 평소에 싫어했다. 주택도 주변 관리하기가 어려워서 꺼렸다. 이런저런 이유로 원하는 새집을 구하기가 어지간히 힘들었다. 이번이 마지막 이사로 생각하고 알아보던 터라, 여러 가지를 따져가며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살던 집을 비워 줘야 할 때가 다가오니 불안이 밀려오기 시작했는데, 때마침 내가 바라던 모든 조건을 갖춘 집이 기다렸다는 듯 나타난 거다. 한적하고, 남향이고, 앞이 훤하게 트여 사계절이 변해가는 경치를 감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거기에다 내 생활권과 가까운 거리라서 더 마음에 쏙 든다.
계약하고, 집을 새단장해야 한다. 리모델링 업체와 공사 날짜를 조율하려고 맡아줄 사람을 찾았다. 최근에 여동생이 사는 아랫집에서 일한 사람은 욕심 없이 꼭 필요한 부분만 수리하니, 비용이 적게 들어 집주인이 좋아했다고 자랑하기에 귀가 솔깃했다. 입소문이 잘 나서 그를 찾는 대기자가 많단다. 나도 얼른 보고 싶었다. 경험 있는 주변 사람의 말로는 최소한 두 업체의 설명을 들어보고 결정하는 게 좋다 해서 또 다른 한 사람도 만났는데 자기 자랑만 늘어 놓고 어떻게 손보는 게 낫다는 말은 별로 하지 않았다. 얼마를 들여 공사할건지만 물었다. 돈에 맞게 일을 하겠다는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동생이 소개한 사장은 꼼꼼하게 구석구석을 살피며 그대로 두어도 괜찮은 곳과 다시 고쳐야 할 부분을 찬찬히 얘기했다. 집은 단열이 제일 중요하다면서 바람이 많이 들어올 것 같은 공간에 단열제와 석고를 두껍게 더 넣어 보수해주겠다고 먼저 말을 꺼냈다. 집주인 입장을 더 배려하는 것 같아 감동이 됐다. 돈을 벌려고 하면 여러 곳을 고치라고 하겠지만 자신은 일이 재미있고 좋아서 하는 것이라 꼭 필요한 데만 말한단다.
고수답게 일을 척척 빠르게 해 갔다. 베란다 뒷벽에 결로가 생기는 걸 막으려면 타일로 붙이는 게 좋겠다고 했다. 마음에 드는 색과 모양으로 고르라 해서 남편, 동생과 같이 타일 가게에 가서 주문해놓고 왔다. 디자인은 우리가 정하고, 물량은 면적을 재서 사장이 가지고 왔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간식을 사서 날마다 한 번씩 들렀다. 바빠서 가보지 못한 남편이 상황이 궁금하여 물었을 때 뒤 베란다 바깥쪽 벽까지 다 붙이고도 방에 많이 남았더라고 했다. 다음 날 사장에게 안쪽에도 붙여주면 좋겠다고 부탁해보란다. “사장님, 혹시 타일이 남았으면 안쪽 벽에도 붙여주실 수 있을까요?” “진즉 말하지 그랬어요. 타일을 더 사 와서 타일공 있을 때 했으면 좋았지요. 나중에 말하면 나 도망가 버리요.” 하며 웃는다. “여기 신발장도 서비스로 시트지를 붙여주신다고 했지요?” “나 그런 적 없는데요? 재료비 5만원 더 보태야 해요.”라고 딱 잘라 말한다. “분명히 말씀 하신 것 같은데, 더 드릴게 해주세요.”
이사를 몇 번 해본 동생과의 대화가 스치고 지나간다. “언니, 서울에는 리모델링도 계약서 작성하고 공사 시작하거든. 언니도 적었어?” “ 얘는, 서로 믿고 해야지. 무슨 계약서까지 쓰니?”
예쁘게 꾸며진 집 거실에 앉아, 냇가의 시원한 물소리와 초록의 앞산을 벗삼아 글을 쓰는 나를 상상하며 그 사장을 끝까지 신뢰하기로 했다.
첫댓글 화장실 들어가고 나갈 때 마음이 다르다더니 계약서를 꼭 써야겠군요.
계약서는 왠지 그 분이 서운해할까 봐 차마 못 쓰겠더라구요. 열심히 하신 분 같아 믿기로 했습니다.
저도 믿고 맡겨 버렸는데...
계약서 쓰고 하면 편하긴 하겠네요.
앞으로 예쁜 거실에서 좋은 글 많이 쓰시길 바랍니다.
네, 좋은 글 한번 써보는 게 저의 소원입니다하하.
마음에 쏙 드는 집으로 이사 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나중에 여러 말 하지 않으려면 사소한 부분까지 계약서는 꼭 써야겠다고 글 읽으며 생각했어요.
네, 고맙습니다.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저랑 비슷하게 허술하시네요. 하하. 그래도 그 분이 성실하신 것 같아 믿음을 저버리진 않을 것 같네요.
네, 믿음대로 된다는 말을 믿으니까요. 고맙습니다.
저도 치과에서 견적서 달라고 했는데,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믿고 맡기기로 혔습니다.
네, 믿고 하는 게 건강에도 좋은 것 같더라구요하하.
리모델링도 계약서를 써야하는 군요? 마지막 단락을 다 품은 집을 가지셨네요. 축하드려요.
네, 고맙습니다. 순천이나 광양은 아직 계약서 쓰는 분위기는 아닌듯 싶어요. 제 성격에도 안맞구요하하.
네. 믿는 동안은 행복하니까요. 그게 좋겠어요.
선생님의 말이 명언이군요. 믿어야 행복해요하하.
축하합니다. 드디어 계약을 하셨군요. 어서 입주하여 마지막 단락에서 상상한 것 처럼 되었음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