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애굽기 29장 1-46절
1-9.『네가 그들에게 나를 섬길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여 그들을 거룩하게 할 일은 이러하니 곧 어린 수소 하나와 흠 없는 숫양 둘을 택하고 무교병과 기름 섞인 무교 과자와 기름 바른 무교 전병을 모두 고운 밀가루로 만들고 그것들을 한 광주리에 담고 그것을 광주리에 담은 채 그 송아지와 두 양과 함께 가져오라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회막 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의복을 가져다가 아론에게 속옷과 에봇 받침 겉옷과 에봇을 입히고 흉패를 달고 에봇에 정교하게 짠 띠를 띠게 하고 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위에 거룩한 패를 더하고 관유를 가져다가 그의 머리에 부어 바르고 그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속옷을 입히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띠를 띠우며 관을 씌워 그들에게 제사장의 직분을 맡겨 영원한 규례가 되게 하라 너는 이같이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위임하여 거룩하게 할지니라』
제사장 위임식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담고 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제사장 직분을 위임할 것을 명령하셨다. 그리고 그 절차에 대해 말씀하셨다. 먼저 하나님은 제사장 위임식에 사용될 제물인 어린 수소 한 마리와 흠 없는 숫양 두 마리 그리고 누룩을 넣지 않고 고운 밀가루로 만든 빵인 무교병과 기름 섞인 무교 과자와 기름 바른 무교 전병을 담은 광주리를 준비하도록 명령했다.
수소는 속죄제를 위한 것이며 수양 둘은 각각 번제와 화목제를 위한 것이다. 흠 없는(테미밈) 이라는 의미는 완전함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물은 완전 그 자체인 것이다. 이러한 제물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죄를 담당하실 어린양 예수의 완전하심을 상징한다(히 4:15)
“무교병과 기름 섞인 무교 과자와 기름 바른 무교 전병을 모두 고운 밀가루로 만들고” 이것들을 누룩을 넣지 않고서 만든 이유는 무교병과 마찬가지로 여기서 누룩은 부패와 죄악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들에 기름을 섞거나 바른 것은 하나님께 성별해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제단이나 제물, 제사장과 왕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성별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편 이러한 무교병과 무교 과자, 무교 전병은 하나님께 소제를 드리는 데 사용되었다.
고운(솔레트) 은 곱게빻은 의미이다. 광야 지대에서 고운 밀가루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하나님께 바칠 제물에는 이와 같은 것들이 요구되었다. 고운 가루는 부숴지고 갈아져서 원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다시 태어난 자의 모습이다. 즉 이전의 것은 죽었다는 것이다. 소제의 소는 흰 것을 의미한다. 제사에 사용되는 밀가루가 하얗기 때문에 소제라고 표현한다. 다섯가지 제사 중에서 피흘림이 없는 제사다. 그래서 곡식이 제사에 사용된다. 소제는 제사장을 임명할 때, 성막을 짓고 봉헌할 때, 나병환자가 병을 치유하고 난 뒤에 드린 제사다. 소제는 성도의 삶을 나타내는 중요한 표현이다. 즉 의의 옷을 입은 거듭난 자의 삶을 나타낸다. “송아지와 두양”에서 속죄제용 젊은 수소 한 마리와 번제용과 화목제용 수양 두마리를 가리킨다.
그리고 다음 절차로 모세에게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회막 문으로 데려가 물로 씻기고 의복을 입게 하라고 하셨다. 물로 씻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멸해졌다는 의미가 있다. 물로 씻는다는 것을 깨끗하고 정결하게 한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으나, 물로 씻는 것은 죄를 제거하는 것이다. 죄는 물로 씻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그래서 물은 죽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홍해바다를 건넜다. 홍해바다를 건넌 것은 애굽에 대해서 죽었음을 의미한다. 세상에 대해서 죽은 것이다. 세상은 죄를 상징한다.
제사장의 의복을 입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대리인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제사장의 의복을 입고 난 다음 절차는 기름을 붓는 일이다. 이 기름은 거룩한 것으로 구별되게 하는 기능을 한다. 그 다음 절차로 속죄제와 번제 그리고 화목제를 드려야 했다.
제단을 위해서도 속죄제가 드려져야 했는데, 위임식이 열리는 7일 동안 매일 드려야 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백성을 위해서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일 년 된 어린 양 두 마리를 번제로 드리고, 고운 밀가루와 기름을 소재로, 또 포도주를 전제로 드려야 할 것을 명령하셨다. 하나님은 이런 절차를 통해 제사장 위임식을 하게 하셨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제사장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제사장이 입는 옷은 거듭난 영의 몸이라고 할 수 있다. 육의 몸을 불사를 때 성령의 능력으로 영의 몸을 입게 된다. 이 영의 몸(옷)을 의의 옷이라고도 한다. 이 옷을 입은 성도는 비록 세상에 살지만, 세상과 구별된 자라는 것이다.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별된 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육의 몸이 죽은 것을 기억하고 영의 몸을 입었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제사장이 백성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중보자였던 것처럼, 거듭난 자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잃어버린 영들을 위하여 중보자가 되는 것이다. 제사장 위임식은 제사장을 거룩하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29장 36절에서,『매일 수송아지 하나로 속죄하기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며 또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여 깨끗하게 하고 그것에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라』는 말씀이 있다. 이를 통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도 거룩하니 너희들도 거룩할지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성도가 하나님과 같이 거룩하게 되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길 외에는 없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육적 몸이 예수와 함께 죽을 때,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이유로 거룩하게 여겨주시는 것이다.
10-14.『너는 수송아지를 회막 앞으로 끌어오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그 송아지 머리에 안수할지며 너는 회막 문 여호와 앞에서 그 송아지를 잡고 그 피를 네 손가락으로 제단 뿔들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제단 밑에 쏟을지며 내장에 덮인 모든 기름과 간 위에 있는 꺼풀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 불사르고 그 수소의 고기와 가죽과 똥을 진 밖에서 불사르라 이는 속죄제니라』
희생 제물로 바쳐질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하는 것은 사람과 제물을 동일시하여, 그 제물에게 사람의 죄를 전가시킨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외에도 성경에는 안수의 예가 자주 있는데 이를 살펴 보면 신성 모독자를 돌로 칠 때(레 24:14), 병을 고칠 때(막 6:5:행 28:8) : 치유의 능력을 안수를 통해 병자에게 옮긴다는 의미를 지닌다. 성령을 받게 할 때(행 8:18) 이때의 안수는 성령 안에서 서로 하나가 된다는 의미이다. 직분을 위임할 때(행6:6;13:3; 딤전 4:14) : 안수하는 사람이 자신의 권위와 직분, 능력 등을 타인에게 전수함을 뜻한다.
여기서의 단은 성소안의 금으로 만든 분향단이 아니라 뜰에 있는 놋쇠로 만든 번제단을 말한다. 또한 단 뿔이란 번제단의 네 모퉁이 귀를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단의 뿔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상징하니, 여기에 희생 제물의 피를 바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피를 받으시고 대신 인간의 죄를 사해 달라는 간구 행위이다.
“내장에 덮인 모든 기름과 간 위에 있는 꺼풀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사르고” 짐승의 여러 부위 중 내장, 간, 콩팥은 독성을 제가하거나 분해하는 역할을 한다. 죄를 태워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짐승을 태워드리므로 죄의 대속의 의미를 갖는다.
“고기와 가죽과 똥은 진 밖에서 불사르라”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행군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광야에서 유목민의 캠프 형태로 생활했다. 진'이란 라마하네는 바로 이러한 장막, 캠프 등을 뜻한다. 희생 제물의 고기와 가죽 등을 진 밖에서 태운 이유는, 인간의 육체로부터 비롯된 혼을 태우는 것이다. 혼은 옷과 같은 것으로 불로 태우는 것이다. 이게 신약에서 불세례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새옷(그리스도)으로 갈아입는다. 이게 둘째 사망인 것이다.
속죄제는 다른 사람의 속죄를 위한 중보자의 자리에 서기 전 먼저 자신이 속죄를 얻는 시간이다. 모세가 수송아지를 회막 문 앞으로 끌어오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그 송아지 머리에 안수를 해야 했다. 그런 다음 모세가 그 송아지를 잡고 그 피를 제단 뿔에 바르고, 그 나머지 피는 제단 밑에 부어야 했다. 또 내장에 덮인 기름과 간에 붙은 기름과 두 콩팥과 거기에 붙은 기름을 떼어 내서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그 수소의 고기와 가죽과 똥은 진 바깥에서 불태울 것을 하나님은 명령했다. 이 제사를 통해 제사장의 죄가 짐승에게 전이된다. 죽은 짐승이 제사장이라는 것이다. 죽은 짐승과 제사장이 연합되어 죽은 것이다. 그래서 제사장이 죽었으므로 죄가 사해지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않으면 죄가 사해지지 않는다. 로마서 6장 6-7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물세례는 죄(옛사람)에 대해서 죽은 것을 의미한다. 로마서 6장 3절에서『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15-18.『너는 또 숫양 한 마리를 끌어오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그 숫양의 머리 위에 안수할지며 너는 그 숫양을 잡고 그 피를 가져다가 제단 위의 주위에 뿌리고 그 숫양의 각을 뜨고 그 장부와 다리는 씻어 각을 뜬 고기와 그 머리와 함께 두고 그 숫양 전부를 제단 위에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번제요 이는 향기로운 냄새니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너는 그 수양을 잡고 그 피를 취하여 단 위의 주위에 뿌리고” 수양 하나는 1절에 나오는 두마리의 수양 중 번제 제물로 쓰기 위한 한 마리이다. "그 피를 가져다가 제단 위의 주위에 뿌리고” 모든 죄는 피로써 속한다는 원리(히 9;22)에 따라 번제 드릴 단을 먼저 속죄하기
위해 뿌리는 것이다.
속죄 제물과는 달리 번제 제물은 내장 뿐 아니라, 그 고기와 머리, 다리부분까지 단 위에서 모두 태워야 했다. 속죄제물은 죄에 대한 것이지만, 번제 제물은 혼의 죽음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불세레로 표현된다. 다 태우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의의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다. “그 수양의 전부를 단 위에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번제요 이는 향기로운 냄새니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연기가 위로 '올라간다'는 의미는 완전히 자신을 태워드리는 것이다. 향기로운 냄새(레아흐 니흐호아흐)에서, 레아흐 는 향내, 냄새라는 뜻으로 바람불다, 숨쉬다는 뜻의 루아흐에서 유래했으며, 니흐호아흐는 본래의 의미가 편안한, 즐거운이다. 따라서 이를 직역하면 즐거운 향기, 편안한 향기가 된다. 즉 제물이 하나님께 열납되어 이전의 혼은 태워지고, 새로운 영의 몸으로 갈아입음(부활을 상징)으로 평화로운 상태가 되었다는 뜻이다. 한편 루아흐는 명사로 쓰일 때 바람이라는 뜻과 함께 영이라는 뜻도 가진다. 따라서 향기로운 냄새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즐거운 영적인 제사가 된다는 의미도 있다.
화제(이쉐)의 뜻은 불에 의한 제사를 가리킨다. 신약에서 불세례를 의미한다. 이것은 제사의 종류가 아니고 제사의 한 방법이다. 그 점에 있어서는 뒤에 나오는 요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불세례는 성령세례와 이어지며, 이전의 것을 타서 사라져버리고, 새피조물(부활)이 된다는 것이다. 요제는 흔들어서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이 다시 내려주는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몸이 바로 부활인 것이다.
19-25.『너는 다른 숫양을 택하고 아론과 그 아들들은 그 숫양의 머리 위에 안수할지며 너는 그 숫양을 잡고 그것의 피를 가져다가 아론의 오른쪽 귓부리와 그의 아들들의 오른쪽 귓부리에 바르고 그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바르고 그 피를 제단 주위에 뿌리고 제단 위의 피와 관유를 가져다가 아론과 그의 옷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들들의 옷에 뿌리라 그와 그의 옷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들들의 옷이 거룩하리라 또 너는 그 숫양의 기름과 기름진 꼬리와 그것의 내장에 덮인 기름과 간 위의 꺼풀과 두 콩팥과 그것들 위의 기름과 오른쪽 넓적다리를 가지라 이는 위임식의 숫양이라 또 여호와 앞에 있는 무교병 광주리에서 떡 한 개와 기름 바른 과자 한 개와 전병 한 개를 가져다가 그 전부를 아론의 손과 그의 아들들의 손에 주고 그것을 흔들어 여호와 앞에 요제를 삼을지며 너는 그것을 그들의 손에서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번제물을 더하여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냄새니 곧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번제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라는 존재가 멸해졌음을 의미한다. 오직 하나님의 종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두 마리의 숫양 가운데 한 마리의 머리 위에 안수를 한 후 모세가 그 숫양을 잡고 그 피를 받아서 제단 둘레에 뿌려야 했다. 그리고 그 제물을 적절하게 자르고 씻은 뒤 제단 위에 올려놓고 통째로 불살라 하나님께 드려야 했다.
두 번째 숫양도 아론과 그 아들들이 안수한 후에 모세가 잡아야 했는데, 첫 번째 숫양과는 다르게 그 피의 일부를 아론과 그 아들들의 오른쪽 귓볼과 오른손 엄지 그리고 오른발 엄지에 바르고 그 남은 피를 제단 둘레에 뿌려야 했다. 숫양의 피를 귓볼과 오른손 엄지 그리고 오른발 엄지에 바른다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 안에 속한다는 의미다. 오른쪽은 하나님 우편을 상징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하나님 우편에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한 자임을 나타낸다.
이후 모세는 제단 위의 피를 취해 관유와 함께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또 그들의 옷에 뿌려야 했는데, 이는 그들뿐 아니라 그들의 의복도 거룩하게 하는 의식이었다. 하나님은 제사장에게 음식 또한 구별하여 주셨는데, 화목 제물 가운데 요제로 드려진 가슴 부위와 거제로 드려진 우편 뒷다리를 제사장의 몫이 되게 하셨다. 제사장의 몫은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과 같은 것이다. 피(포도주)는 대속의 의미를 갖지만, 떡(그리스도의 몸)은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다. 의의 옷, 그리스도의 옷을 상징한다. 아론의 거룩한 옷은 그의 아들 중에 세움 받은 후임 대제사장에게 물려주어야 했고, 후임 대제사장으로 위임된 자는 칠 일 동안 아론의 거룩한 옷을 입고 성소에서 섬겨야 했다.
26-28.『너는 아론의 위임식 숫양의 가슴을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으라 이것이 네 분깃이니라 너는 그 흔든 요제물 곧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위임식 숫양의 가슴과 넓적다리를 거룩하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릴 영원한 분깃이요 거제물이니 곧 이스라엘 자손이 화목제의 제물 중에서 취한 거제물로서 여호와께 드리는 거제물이니라』
여기서 분깃이란 표면적으로는 받을 권리가 있는 몫을 가리킨다. 당시 제사장은 다른 생업에는 관여함이 없이 오직 하나님께 봉사하는 일에만 전념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생계를 유지할 다른 방도가 달리 없었는데,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난 제물이나 백성들의 십일조를 그들의 분깃으로 주셨던 것이다. 그러나 영적으로 분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성도:제사장)가 부활의 몸인 영의 몸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화목제(쉘라밈)는 “배상하다, 반환하다, 평화롭게 하다” 는 동사 솰람에서 유래한 말로 하나님과 인간의 화목을 위해 드리는 제사인데, 화목의 회복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화목한 사실을 감사하여 드리는 제사였다. 화목제는 지나간 축복에 대해 드리는 감사제, 장차 받을 은혜와 축복의 조건으로 드리는 서원제, 기도의 보조물로 드리는 자원제 등 세 가지가 있었다(레 3장;7:11-36). 한편 성경에서 이러한 화목제를 드린 의식의 경우로는 칠칠절때(레 23:19,20)와 나실인의 서원이 완전히 마칠 때(민6:17-20) 그리고 본문과 같이 제사장의 위임식 때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화목제 희생을 드린 국가적 사건으로는 암몬족을 제압한 전쟁의 종결(삼상 11:15), 기근 내지는 온역의 중단시(삼하 24:25), 국가적인 영적 부흥 때(대하 29:31-36) 등을 들 수있다. 이밖에도 각 지방에서는 온 가족을 위해 화목 제물을 잡거나(삼하 20:6) 첫 열매의 수확같은 축제 때에 이 같은 화목 제물을 드렸었다.
영적으로 신약에서 화목제의 의미는 부활을 감사하는 의미를 갖는다. 예수와 함께 죽은 자(물세례, 불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함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화목제라는 제사는 신약에서는 없으며, 마음으로 감사드리는 것이다.
거제란 제물의 가슴부위를 높이 들었다가 내리는 제사 방법으로 그 실제적, 영적 의미는 요제와 동일하다(24절). 제사가 끝난 후에는 그 거제 제물 중 오른쪽 넓적다리가 제사장의 분깃으로 돌려졌다. 이는 하나님께서 영의 몸을 입혀주시는 것이다. 부활의 몸이 되는 것이다.
29-30.『아론의 성의는 후에 아론의 아들들에게 돌릴지니 그들이 그것을 입고 기름 부음으로 위임을 받을 것이며 그를 이어 제사장이 되는 아들이 회막에 들어가서 성소에서 섬길 때에는 이레 동안 그것을 입을지니라』
표면적으로는 대제사장직은 종신 세습제였으므로 아론이 죽은 후 그 직분은 장자가 차지하도록 되어 있었다. 한편, 그러나 아론의 장자 나답과 차자 아비후는 하나님께 제사를 잘못드린 결과로 죽임을 당했으므로(레10:1,2), 아론은 죽기 직전에 호르산에서 그의 세째 아들 엘르아살에게 대제사장복을 넘겨 주었다(민20:28). 대제사장의 의복은 후임자를 위해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전임자의 것을 물려받았다. 그러므로 그가 대제사장의 직무를 이어받기 위해서는 최초의 대제사장인 아론이 했던 것과 똑같은 위임식을 치러야 했다.
영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성도)는 부활의 몸을 가지고 있으므로 하나님께로부터 대제사장직을 물려받는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두 종류의 신도가 있음을 알게된다. 날마다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고 믿는 자는 날마다 예수의 피를 요구하며 율법 아래 있게 된다. 그러나 참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직접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제사장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였음을 믿어야 한다. 현재적 부활을 믿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를 이어 제사장이 되는 아들이 회막에 들어가서 성소에서 섬길 때에는 칠 일 동안 그것을 입을찌니라” 이처럼 대제사장 위임식은 7일 동안 행해졌는데(35절), 이후부터 후임대제사장 역시 이에 준하여 7일 동안 위임식을 거행해야 했다. 한편 성경에서 칠(7)은 거룩과 완전을 상징하는 수이다. 따라서 제사장의 위임식 날수를 7일로 정한 것은 이와 같은 거룩한 완전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수 있다.
31-34.『너는 위임식 숫양을 가져다가 거룩한 곳에서 그 고기를 삶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회막 문에서 그 숫양의 고기와 광주리에 있는 떡을 먹을지라 그들은 속죄물 곧 그들을 위임하며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데 쓰는 것을 먹되 타인은 먹지 못할지니 그것이 거룩하기 때문이라 위임식 고기나 떡이 아침까지 남아 있으면 그것을 불에 사를지니 이는 거룩한즉 먹지 못할지니라』
“너는 위임식 수양을 취하여 거룩한 곳에서 그 고기를 삶고” 거룩한 곳(마콤 카도쉬)에서, 카도쉬는 지점, 장소, 공간 등의 뜻으로 쓰인다. 성소는 하 카도쉬라 하여 거룩함을 뜻하는 카도쉬에 정관사(하)가 결합한 형태를 취한다. 마콤은 일어나다'는 뜻의 동사 쿰에서 유래한 말로 예수님이 죽었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 하신 말씀은 달리다쿰이라고 했다. 쿰은 본래의 의미는 서있는 것이다. 영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 서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28장 6절에서 막달라 마리아와 천사간의 대화가 있다.『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οὐκ ἔστιν ὧδε, ἠγέρθη γὰρ καθὼς εἶπεν· δεῦτε ἴδετε τὸν τόπον ὅπου ἔκειτο.』우리말 번역에서 살아나다 라고 번역된 것은 헬라어 에게르데(ἠγέρθη)이다. 영어 번역(kjv)은 be risen (일어나다)이라는 것이다. 부활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아타스타시온으로서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이라는 말에서 등장하는 단어인데, 아나스타시온은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에게르데는 영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난다 라는 의미인데, 한글 개역개정은 모두 살아났다 라고 번역하므로서 마치 이전의 죽었던 육체가 살아난 것으로 오해하게 만드는 것이다. 부활은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육체는 썩어 없어지고, 하늘로부터 새로운 영의 몸을 입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에게르데는 문법적으로 동사이고, 아나스타시온은 명사인데, 아나스타시온은 에게르데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아론과 그 아들들이 회막문에서 그 수양의 고기와 광주리에 있는 떡을 먹을찌라” 화목제는 공동 식사 곧 제물을 드리는 사람과 제사장 등이 그 희생 제물을 할당받아 함께 먹는 것으로 절정을 이룬다. 이때 제사장에게 돌아가야 할 몫과 제단 위에서 불사르는 부분 이외의 고기는 제사를 드리려고 제 물을 가져 온 사람과 그 가족, 그리고 레위인까지 포함하는 공 동의 양식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제사장 위임식을 위한 화목제였으므로, 다른 사람들을 제외한 아론과 그의 아들들만이 식사에 참여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때 그들이 먹을 수 있는 고기는 하나님께 제물로 불태워 바친 것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다. 이와같이 제사 후 남은 부분을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는 경우는 이 외에도 속죄제가 있다(레 6:26).
“속죄물 곧 그들을 위임하며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데 쓰는 것은 그들은 먹되 타인은 먹지 못할찌니 이는 성물이 됨이며” 속죄물은 단지 속죄용 제물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번제용 제물과 화목제용 제물까지도 지칭하는 말이다. 그 모두를 속죄물이라 칭한 것은 통상 속죄제로 죄를 속하지만, 언제나 화목제도 피 뿌림 의식으로 죄를 속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레1:4, 3:2). 타인(주르:2114)은 이방인, 세석인, 간음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제사드린 후 남은 고기는 당일에만 먹고 나머지는 모두 소각시켜야 했다. 그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무더운 팔레스틴 지방에서 고기를 남겨두면 쉽게 부패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적인 의미로서, 남은 것은 부활되지 못한 자를 상징한다. 부활되지 못한 자는 불세롕를 받아야 성령으로 부활할 수 있는 것이다.
35-37.『너는 내가 네게 한 모든 명령대로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그같이 하여 이레 동안 위임식을 행하되 매일 수송아지 하나로 속죄하기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며 또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여 깨끗하게 하고 그것에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라 너는 이레 동안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여 거룩하게 하라 그리하면 지극히 거룩한 제단이 되리니 제단에 접촉하는 모든 것이 거룩하리라』
『단을 위하여 속죄하여』단도 부정한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동일하게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고, 이를 거룩하게 하기 위한 의식을 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깨끗케 하고(힛테타)” 기본형 '하타'는 '속죄하다', '회개하다'는 인데(본래 의미는 '빗나가다') 개역 성경이나 영어 성경(KJV, NIV)에서는 '깨끗하게 하다'(purify)로 번역하고 있다. 이를 앞 부분의 '단을 위하여 속죄하여'와 연결해서 직역하면 '속죄제를 지내는 동안 단을 위해 속죄하라'는 말이 된다. 이는 매일드리는 속죄제 때, 단을 위해서도 속죄하라는 뜻이다. 레위기 16장에 의하면, 같은 이유에서 비단 단뿐만 아니라 성소의 모든 기구들도 속죄일에 '깨끗함'을 입는 의식을 거쳐야 했음을 알 수 있다. “기름을 부어” 일반적으로 기름 부음은 성별을 의미하므로, 단에 기름을 붓는 것은 제사를 거룩하게 드리기 위한 성결의식으로 볼 수 있다.
“단에 접촉하는 것이 거룩하리라” 접촉하다로 번역된 “나가”는 기본어근;본래 의미는 ‘만지다’, 즉 ‘손을 대다’(어떤 목적으로;완곡어법, 여자와 함께 ‘눕다’);함축적으로, ‘다다르다’(상징적으로 ‘도달하다’, ‘획득하다’);격렬하게 ‘타격하다’(처벌하다, 패배시키다, 파괴하다 등):-치다, (아래로)가져오다, 던지다, (가까이)오다, (가까이)끌다,일이 생기다, 결합하다, 가까이 있다, 역병에 걸리다, …에 이르다, 세게 때리다, 치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단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죄인이 거룩해질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함이다. 예수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므로 거룩해지는 것이다.
38-46.『네가 제단 위에 드릴 것은 이러하니라 매일 일 년 된 어린 양 두 마리니 한 어린 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 양은 저녁 때에 드릴지며 한 어린 양에 고운 밀가루 십분의 일 에바와 찧은 기름 사분의 일 힌을 더하고 또 전제로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을 더할지며 한 어린 양은 저녁 때에 드리되 아침에 한 것처럼 소제와 전제를 그것과 함께 드려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여 여호와께 화제로 삼을지니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 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으로 말미암아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 내가 그 회막과 제단을 거룩하게 하며 아론과 그의 아들들도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며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네가 단 위에 드릴 것은 이러하니라 매일 일 년 된 어린 양 두 마리니』매일(라욤 타미드)은 계속적으로'라는 뜻으로 7일간의 제사장 위임식 기간 동안 매일 드려야 하는 상번제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편 이스라엘 역사상 이러한 상번제는 점차 율법 준수의 핵심이 되어졌는데, 이 제사시에는 번제와 소제와 전제도 한꺼번에 드려졌다.
『한 어린 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 양은 저녁때에 드릴찌며』유대인의 전통에 따르면, 아침에 드리는 양은 전날 밤에 지은 죄를 위한 것이고, 저녁때 드리는 양은 그날 낮 동안에 지은 죄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침과 밤을 연결하면, 밤낮이 된다. 칠일 동안 밤낮으로 드리는 것은 자신을 완전히 드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한 어린 양에 고운 밀가루 에바 십분 일과 찧은 기름 힌의 사분 일을 더하고 또 전제로 포도주 힌의 사분 일을 더할찌며』밀가루와 기름은 소제용 제물이며(41절), 포도주는 전제용 제물이다. 전제는 술(포도주)을 제물위에 뿌리는 제사의 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헌신적인 봉사를 상징한다. 이러한 전제(drink offering)는 상번제(민28:7)때에 조석으로 함께 드려졌고, 안식일 제사때(민 28:14)에도 드려졌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초막절 제2일과 그 이후의 각 절일들에도 드렸던 것으로 확인된다(민29:18, 21). 그러나 그 절차와 방법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다(Josephus).에바(Ephah)는 고체의 부피를 측정하는 단위로 대략 23리터 즉 11되 가량의 체적이다. 그리고 힌(Hin)은 액체의 용량을 측정하는 단위로 시대와 지역에 따라그 양의 차이가 있으나 대개는 약3.8리터에 해당한다.
소제는 다른 제사에 규칙적으로 따르는 부수적인 제사로 떡, 첫열매, 고운 가루, 기름 등이 그 제물이었다. 보통 번제 뒤에 따랐고 그 가루와 기름의 양은 희생 제물에 따라 정해졌다(민15:2-10). 한편 성경에 의하면 이러한 소제가 드려진 다음에는 언제나 화목제가 뒤이어졌음올 알 수 있다(레 7:12-14;민 15:4). 이 소제는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감사를 의미하는데, 제사 후 남은 부분은 다른 제사 때와 마찬가지로 제사장의 분깃으로 돌려졌다.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외막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늘 드릴 번제는 상번제를 가리킨다. 번제 중에는 때를 따라 드리는 특별번제가 있고, 이처럼 항상 아침 저녁으로 계속 드려야 하는 상번제가 있었다.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을 인하여 회막이 거룩하게 될찌라』하나님께서 희막 곧 지성소 안의 속죄소 위에서 제사장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실 것인데, 이로 인해 회막이 거룩한 장소가 될 것이란 의미이다. 그렇다고 해서 본구절을 하나님께서 회막 안에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회막이라는 구체적 장소를 통해 당신의 백성됨과 보다 직접적인 교제를 나누시기 원하셨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신약에서 성도의 심령 속에 지성소가 세워지면, 그곳에서 하나님과 성도간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내가 그 회막과 단을 거룩하게 하며 아론과 그 아들들도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며』모세에 의한 제사장 위임식 및 성소기구의 성결 의식은 제사장과 각종 성막 기구를 거룩하게 하는 상징적 의미만을 지니고, 실제로 그것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는 말이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이스라엘 자손 중에(베토크 베네 이스라엘)에서, 베토크는 중앙에, 가운데라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에 거하시겠다는 뜻으로 일차적으로는 성막의 위치가 이스라엘 진의 중앙에 위치했다는 점에서 입증된다. 그러나 나아가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의 모든 영역 중심부분에 함께 하시겠다는 표현이다.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이 약속은 예레미야26장12절에서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로 발전하여 이후 계속 반복되는데, 특히 예레미야 31장 31-34절에서는 이를 가리켜 '이스라엘집에 세울 언약'이라고 하여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관계가 수립됨을 보여준다. 즉 하나님과 그의 백성 간의 언약 관계가 정식 체결된 것은 출애굽을 통해서이며, 그것이 제사장의 위임식 때에 공식화 되었고, 예언자들을 통해 완전한 형태로 확인되다가, 마침내 그리스도에 의해 완전 성취된 것이다.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알리라(야다) 야다의 의미는 부부관계에서 처럼 알다는 의미다. 표면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하신 일을 실제 역사적 경험을 통해 깨닫고 인정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하나가 되는 의미를 갖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은 죄인이었던 자가 부활의 몸을 입고 거룩하게 된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전의 하나님 나라에서 거룩한 자였으나,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범죄하여 첫사람 아담과 함께 세상에 온 자가 되었다. 그러나 마지막 사람 아담과 함께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