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The Devil all the time, 2020, 안토니오 캠포스 극본 겸 감독)는 한마디로 쉽지 않은 작품이다. 1960년대 오하이오주의 노컴스티프와 웨스트버지니아주 콜크릭이란 두 마을에서 벌어지는 얘기를 다룬다. 미국 북동부 깡촌 마을의 보잘것 없는 인생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는지 엿볼 수 있다. 종교와 구원이란 주제가 날줄로 더해진다. 그런데 구제 받기에 이들의 인성이, 삶 자체가 쓰레기란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
할리우드 배우 제이크 질렌할이 제작자로 참여했고, 톰 홀랜드를 비롯해 로버트 패틴슨 등 볼만한 배우들이 많이 얼굴을 내밀긴 한다. 하지만 두 배우를 비롯해 슈퍼히어로 물이나 블록버스터 영화에 출연했던 쟁쟁한 배우들이 망라됐다고 해서 이 작품을 보겠다고 줄지어 설 리는 만무할 것 같다. 영화가 그만큼 지독하고 신랄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넷플릭스나 되니까 이런 마당을 깔아준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2시간 18분의 러닝타임을 따라 가며 영혼이 정화되는, 맑아지는 느낌을 가졌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다. 이 작품은 원작자 로널드 레이 폴록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해 종종 그의 목소리로 얘기를 풀어나가며 매좆는 점이 특이하다. 그의 내레이션은 영화에 묵직한 현실감을 선사한다.
워낙 긴 얘기인데 얼마나 잘 요약해내며 영화를 보라고 유인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폴록의 내레이션 "미국 지도를 펼쳐 그 두 마을을 찍어 보라면 아무도 못 찍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마을들은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그 때 두 마을 사이에서 벌어진 일들을 그저 우연이라는 사람도 있을테고, 신의 뜻이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이 돌아간 걸 보면, 두 개 다였지 싶다."
노컴스티프(Knockemstiff)는 'Knock him stiff'가 어원으로 글자 그대로 '그를 때려 눕히다' 란 뜻이 된다. 태평양전쟁 말기 솔로몬 제도에서 미군 해병대 병사 윌러드(빌 스카스가드)는 일본군이 십자가에 매달아 놓은 전우의 고통을 끝내주려고 총을 쏜 일에 괴로워하며 신앙을 버린다. 전쟁이 끝나 집으로 돌아오다 오하이오주 미드의 카페에서 만난 샬럿(헤일리 베넷)을 만나 반한다.
같은 공간에서 칼(제이슨 클라크)과 샌디(라일리 키오,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도 서로 눈이 맞아 결혼하는데 샌디가 남정네를 유혹하면 칼이 사진을 찍어 협박하고 괴롭히다 목숨을 빼앗는 일을 재미삼아 벌인다.
윌러드의 어머니 에마는 화재로 모든 것을 잃었지만 신앙심은 깊은 헬렌(미아 바시코프스카)과 아들을 맺어주려 했으나 윌러드는 한사코 거부하고 샬럿과 가정을 꾸린다. 헬렌은 신이 곁에 있음을 증명하겠다며 거미를 얼굴에 쏟는 로이 레퍼티에 반해 그와 가정을 이룬다. 두 가정에 곧바로 불행이 찾아든다.
샬롯이 암에 걸리자 윌러드는 종교에 귀의해 뒷마당에 십자가를 세우고, 아내를 살릴 생각에 반려견을 십자가에 못박는 만행을 저지른다. 아들 아빈(톰 홀랜드)에게도 주먹을 휘두르는 등 엇나간다. 결국 샬럿이 죽자 그날 곧바로 극단을 선택한다.
로이는 아내를 부활시킬 수 있다고 믿어 헬렌을 제물로 쓸 생각에 딸 레노라(일라이자 스캔런)를 윌러드의 어머니 에마에게 맡기고, 오랜만의 피크닉에 들떠 하는 헬렌의 목을 드라이버로 찌른다. 로이는 "부활하라"고 연신 외치지만 그럴 리 만부당하다.
로이는 샌디와 칼의 자동차를 히치 하이킹하는데 칼은 저수지로 데려가 속옷만 입은 샌디를 강간하라고 강요한다.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말싸움 끝에 칼은 로이에게 총을 쏴 죽인다.
졸지에 천애고아가 된 아빈과 레노라는 에마와 그녀의 오빠 어스콜의 돌봄을 받게 된다. 아빈은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주먹질을 일삼고, 레노라는 부모를 닮은 듯 주일 교회를 빠지면 천벌을 받을 듯 괴로워한다. 목사로 새로 부임한 프레스턴 티가딘(로버트 패틴슨)은 에마가 돈을 아낄 생각에 닭의 간을 튀긴 요리를 손으로 집어 맛본 뒤 저혼자 먹고 싶어 '내장'(Organ)이라면서 에마를 "가련한 영혼"이라고 불러 창피를 준다. 그리고 교회의 다른 이들이 좋은 고기(red meat)를 먹을 수 있도록 자신이 닭의 간 요리를 먹겠다고 일장 역겨운 말을 늘어놓는다.
프레스턴은 레노라를 위로하는 척 가스라이팅하며 겁탈해 임신하게 한다. 태아를 지우라고 강요하며 다른 아가씨를 농락한다.
샌디는 서서히 칼에게 염증을 느껴 기회만 생기면 달아날 생각을 한다. 그녀의 오빠 리 보테커(세바스천 스탠)는 보안관을 계속하기 위해 성매매업소를 운영하는 이들의 뒤를 봐주는데 테쿰세 바에서 일하는 윤락녀들이 자꾸 사라지는데 샌디가 연관돼 있는 것 같다며 조용히 처신하라고 경고한다.
절망한 레노라는 헛간 들보에 목을 매단다. 레노라는 이게 아니라고 막판에 깨달았지만, 미끄러지는 바람에 목숨을 잃는다. 레노라를 괴롭히는 애들을 혼내주곤 하던 아빈은 결국 프레스톤의 숨을 끊어 놓는다.
아빈은 할머니 에마에게 말도 하지 않고 집을 떠난다. 히치하이킹을 하려는데 하필 칼과 샌디의 차였다. 칼은 바깥에 서서 기회를 엿보는데 수상쩍은 기미를 눈치 챈 아빈의 총이 먼저 불을 뿜는다. 샌디도 조수석에서 뒷좌석의 아빈을 향해 총을 쏘는데, 샌디가 자신을 쏠지 모른다고 생각한 칼이 미리 공포탄만 재워둔 탓에 아빈은 목숨을 구하고, 그의 총탄에 샌디는 목숨을 잃는다.
둘의 피살 현장에 보안관이 찾아오는데 윌러드의 자살 현장을 찾아 아빈을 차에 태워줬던 보데커였다. 동생과 매부가 사람을 밥먹듯 죽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보데커는 분노에 사로잡혀 프레스턴 목사가 살해됐을 때 사용됐던 총이 여동생 부부에게 쓰인 것을 직감한다.
보데커는 아빈을 거의 따라잡는 데 성공하지만 역시 그의 손에 죽고 만다. 아빈은 다시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는데 신시내티로 간다는 히피족이 운전하는 옆에서 처음에는 긴장했지만 이내 저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입이 찢어질 정도로 크게 하품을 한다. 히피족이 듣는 라디오에선 존슨 대통령이 베트남전 파병 미군을 증파하겠다는 대국민 연설이 흘러나오고, 풀록의 내레이션으로 "그곳에 가면 뭔가 괜찮은 일이 벌어질 수 있겠다 싶어서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가 나오며 영화는 마지막을 장식한다.
IMDB에 한 제작자가 털어놓기로 마지막 장면의 히피는 저유명한 미치광이 연쇄 살인마 찰스 맨슨으로 상정했다고 했다. 아빈이 끝까지 악마를 좇아간 설정이었다고, 이 얘기를 얼마나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뒷감당이 간단치 않은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 말기부터 미국이 베트남전에 본격 뛰어들기까지 20년을 악의 연대기로 돌아본 드라마로 읽힌다. 길고 복잡한 얘기지만 영화를 보면 상당히 자연스럽게 풀려 나간다. 미국 북동부 '러스트 벨트'를 다룬 영화의 하나로 상당히 인상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플록의 원작을 진지하게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앞의 줄거리를 요약하며 'red meat' 얘기를 했는데 최근 미국 대선 와중에도 이 주제는 이슈가 됐다. 아래 기사를 참조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