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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원리 : 하나님의 말씀
루터의 종교개혁은 1517년-1520년 사이에, 로마 가톨릭 교회와의 단절 과정을 겪었으나, 한편 개혁 진영 내부 세력들과의 차별화 과정도 겪었다.
먼저 칼슈타트, 뮨처, 농민들을 중심으로 한 급진적 개혁운동과의 차별화(1521년-1525년), 다음으로는 에라스무스와 인문주의자들과의 차별화(1524년-1525년)과정이 있었다. 이러한 과정들은 종교개혁의 급속한 발전을 막는 결과를 가져오긴 했으나 다른 한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복음이 열광주의적 신비주의라든가, 인문주의적 계몽, 그리고 사회정치적 급진주의로 오해되는 것을 막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과정들에 있어서 공통점은 루터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하였다는 것이다. 성서가 정경화를 통해 등장하기 전에는 교회가 있었다는 이해에 따라 교회와 전통의 권위를 성서위에 올려 놓은 로마 가톨릭 교회에 대해 루터는 ‘성서만으로’를 주장하였고, 인간의 종교적 경험을 강조하는 열광주의자들의 주관적인 계시이해에 대해서는 성서의 객관적인 말씀을 주장하였으며, 에라스무스의 인문주의에 대해서는 성서가 말하는 확실성을 주장하였고, 복음을 정치적 운동에 오용하는 농민들에 대해서 복음은 오직 양심만을 상대한다고 하였다.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만 된다면 그 결과는 저절로 온다고 확신하였다.
나는 면죄부와 모든 교황주의자들을 반대하였으나 결코 무력은 사용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설교하고, 썼을 뿐이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잠을 자거나 친구들인 립과 암스도르프와 함께 비텐베르크 맥주를 마시는 동안 말씀은 교황을 철저히 무력화시켰다. 그 어떤 군주나 황제도 그 정도의 해를 입힐 수 없었을 정도로 말이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말씀이 다 했다.
결혼과 죽음
루터는 1525년 6월 13일 결혼을 했다. 그의 나이 42세였다. 신부는 16년 연하의 전직 로마 가톨릭교회 수녀인 카타리나 폰 보라(1449년 - 1552년)였다. 루터는 자신이 결혼하려는 목적이 늙으신 아버지에게 손주를 안겨드리기 위해서, 또한 결혼을 머뭇거리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설교한 것을 몸소 실천하면서 본을 보이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나는 내가 가르쳐 온 것을 실천으로 확증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는 복음으로부터 오는 그렇게 커다란 빛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소심한 이들을 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행동을 뜻하셨고 또 일으키셨다. 왜냐하면 나는 ‘사랑에 빠졌다’거나 욕정으로 불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내 아내를 사랑한다.”
그러나 루터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모두 다 반대를 하였다. 동료들은 루터가 결혼하면 온 세상과 마귀가 웃을 것이며 그 자신이 그동안에 이루어 놓은 일을 다 헛수고로 만들 것이라고 걱정하였다.
특히 농민전쟁의 와중에서 그의 결혼선언은 놀라움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러나 루터는 종교개혁과 함께 복음이 전파됨으로 해서 사탄이 마지막 공격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독일 농민들이 영주들의 착취에 저항하여 일으킨 독일 농민 전쟁도 처음에는 동정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나중에는 복음을 독재 체재로 왜곡시키려는 사탄의 공격이라고 보아서 영주들에게 강경진압을 요구하였다.
지금까지 교황은 세속권력에 대한 우위권을 주장하였는데, 이제 농민들은 정치적 권력을 얻기 위해 복음의 이름으로 칼을 손에 쥐었다는게 루터의 생각이었다. 이렇게 종말이 왔다고 생각했을 때 루터는 다른 세상만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바로 결혼하였다. 하느님이 오시면 인간은 이 세상에서 살라고 하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루터는 결혼을 하는 것이 원수 마귀를 대적하는 한 방법이라 믿었다.
“나는 내 결혼식으로 천사들을 웃게 하고, 마귀들을 울게 했다.”
루터의 결혼생활은 매우 행복했는데, 그는 집안살림을 돕는 자신을 보고 웃는 이웃들에게
"그래. 웃으시오. 하느님과 그분의 천사도 웃고 있소" 라고 했으며,
자신의 애독서인 갈라디아서를 "나의 카타리나"라고 불렀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은 루터는 자신이 태어난 아이슬레벤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일기 63세였다(1546년 2월 18일).
이 때 그는 만스펠트의 백작들 사이에 있었던 법적 논쟁을 중재하러 가 있는 중이었다.
루터가 사망하던 밤 의사와 그의 친구들이 그의 임종을 지켜보았다. 루터는 요한 복음서 3장 16절을 계속 암송하고 있었다.
“하느님이 세상을 이처럼 극진히 사랑하시어 외아들을 주셨는데,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영원한 삶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새벽 세 시가 가까워 요나스 박사는 마지막이 이른 것을 알고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선생님께서 가르치신 교리와 그리스도 위에 굳건히 서서 돌아가시겠습니까?” 루터의 몸이 움직이면서 큰 소리로 대답하였다. “예.” 루터의 유해는 비텐베르크로 옮겨져 성(城)교회에 안치되었다.
루터와 음악
루터는 음악이 신학 다음으로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이라고 하였다.
음악은 신학과 닮은 점이 많은데 특히 영혼을 고치고 영들을 소생시키는 데 있다고 하였다. 음악이 없으면 인간은 목석과 마찬가지이지만 음악이 있으면 마귀를 멀리 보낼 수 있다.
루터는 이것을 영적인 고통 가운데에서 직접 경험하였다.
“음악은 나를 자주 소생시켜 주고 무거운 짐으로부터 해방시켜 준다.”
그러나 음악을 멸시하는 ‘열광주의자들’은 음악의 이 유익을 몰랐다. 그들은 오르간을 마귀의 유산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루터는
“음악은 하느님의 선물이요 축복이다. 음악은 또한 마귀를 몰아내주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음악은 사람의 모든 분노, 음란, 교만, 그리고 모든 악을 잊게 해준다. 나는 음악을 신학 다음으로 중요하게 보며 무한히 아낀다.”
고 하였다.
한편 루터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한정된 이들에 의해서만 사용되어 오던 찬송을 만인의 소유물로 돌려주었다. 이전의 그레고리안 찬트에서는 예배시 회중은 잠잠히 있고 성가대의 전문가들만이 송영을 번갈아 불렀다.
그러나 루터는 일반 회중도 찬송을 부를 수 있게 예배 양식을 개혁하였으며 ‘내 주는 강한 성이요’[5]를 비롯하여 많은 찬송곡을 작사, 작곡 하였다. 그의 곡들은 ‘코랄’이라는 장르로 자리 잡는다. 그는 자신의 ‘작고 못생긴 목소리’를 불평했지만 플루트와 류트를 연주하는 능수능란한 음악가였다.
루터는 사람을 움직이는 찬송의 능력을 믿었다. 찬송은 보통 사람들뿐만 아니라 배운 이들에게도 성서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가장이 가족에게 찬송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루터의 신학 사상
루터의 신학사상은 크게 세 가지 구호로 설명된다.
“믿음만으로(sola fide)! 은총만으로(sola gratia)! 성서만으로(sola scriptura)!”
루터의 종교개혁사상은 철저히 하느님 중심이었다.
그의 종교개혁 작업의 핵심은 하느님을 인간의 눈으로 판단하고 그 위에 자신의 종교를 쌓아가려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 대항하여 하느님을 하느님 되게 하는 것이었다.
사실 중세 로마 가톨릭 교회라고해서 성서의 권위와 영감에 대해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또한 선행(先行)하는 하느님의 은혜를 가르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믿음의 중요성에 무지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루터에게 있어서 급진적이었던 것은 이 말들 앞에 붙은 한 작은 단어, “오직”(sola) 이었다.
루터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이것들을 말하면서도 실은 그 밑바닥에는 인간중심의 종교가 사로잡고 있음을 간파하였다.
그럼으로 해서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서의 권위를 말하면서도 그 성서를 해석하는 교황의 권위를 그 위에 세웠으며, 은혜를 하나님이 주신다고 말하면서도 그것을 인간이 율법의 의를 쌓는 데 도움을 주는 하나의 ‘능력’으로만 이해하였고, 믿음이 중요하다는 말을 처음에는 시작하다가 어느덧 ‘선행으로 형성된 믿음’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러나 루터는 성서는 그 문자가 자명하고 단순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책으로서, 자신 이외의 다른 어떤 해석자도 중요로 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며(성서만으로!), 은혜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들을 죄인에서 의인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 신앙을 보시고 의인으로 인정해주시는 ‘호의’로 이해하였고(은혜만으로!), 하느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은 단번에 모든 율법을 성취하며 인간을 의롭게 한다고 하였다(믿음만으로!).
하느님 중심의 원칙 하에서 나온 이 세 가지 종교개혁의 구호들은 서로 밀접한 관계 속에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만으로’의 원칙이 서로를 연결시켜 주는 끈이다.
곧, 신·구약을 통틀어 성서의 본문 안에서 말씀하시는 이는 그리스도로서 ‘그리스도를 성서에서 빼보라. 그리하면 성서에서 무엇을 더 찾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으며,
‘은혜만으로’는 대속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의 절대적 중요함과 또한 충분함을 주장하였고,
‘믿음만으로’는 율법의 종결자로 오시며 그 요구를 ‘텅 비게’ 하시는 신인(神人)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가르침은 교리뿐만 아니라 윤리, 문화, 정치에까지 포괄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루터는 이 조항 위에 교회가 서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한다고 그 중요성을 강변하였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은 더 이상 의롭게 되기 위하여 하나님께 자신의 행위를 드릴 필요가 없다. 대신 그는 그의 행위를 필요로 하는 이웃에게 베푼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 안에서 충실할 때 누구보다도 거룩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며, 율법의 완성인 이웃 사랑(갈라디아서 5:14)을 실천하는 것이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는 한글 개신교 찬송가 384장에 수록되어 있는데, 가사는 다음과 같다.
“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원수 마귀는 이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수 밖에 없도다.
힘 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 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아멘.
”
(이 글은 위키백과에 소개된 마틴 루터의 내용 중 일부을 가져온 것입니다. 전문은 위키백과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굵은 글자, 경사체 혹은 밑줄은 옮긴이가 첨가한 것입니다.)
첫댓글 위키백과의 내용이 한번쯤은 읽어보아도 좋을 내용 같습니다. 참고로 읽어두셔도 해가 되지 않을 것 같군요.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