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정의 내리기조차 매우 힘든 이것은 삶에서 유일하게 진실하고 오래 남는 경험입니다.
그것은 두려움의 반대말이고, 관계의 본질이며, 행복의 근원입니다.
또한 우리 자신을 이루고 있는 가장 깊은 부분이고, 우리 안에 살면서 우리를 연결해 주는 에너지입니다.
사랑은 지식, 학벌, 권력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사랑은 모든 행위 너머에 있습니다.
또한 삶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 유일한 선물입니다.
결국 그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환상과 꿈, 공허함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사랑은 진실의 근원입니다.
사랑이 가진 모든 힘과 위대함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어렵습니다.
평생 사랑을 찾아다니는 이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얻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고, 사랑을 얻으면 그것이 오래가지 않을까 봐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갖게 된 그림입니다.
가장 흔한 그림은 갑자기 누군가 특별한 사람을 만나서 완벽하다고 느끼며,
모든 것이 멋져 보이고, 그후로 영원히 행복하게 산다는 낭만적인 이상형입니다.
그러다가 현실의 삶에서 그렇게 낭만적이지 못한 상황들에 맞닥뜨릴 때,
그리고 대부분의 사랑이 조건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크게 상처받습니다.
심지어 가족과 친구 간의 사랑도 각자의 기대와 요구에 좌우되고 있습니다.
그대와 요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현실의 사소한 갈등은 필연적으로 악몽을 만드는 씨앗이 되고,
우리는 결국 사랑 없는 관계 속에 놓인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낭만적인 환상에서 깨어나 어릴 적에 꿈꾸던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냉정한 세상과 마주합니다.
이제 어른의 시선으로 사랑을 보면서, 분명하고 현실적이고 씁쓸하게 사랑을 바라봅니다.
다행히도 진실한 사랑은 틀림없이 존재하고, 우리가 꿈구는 사랑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분명 존재하지만, 우리가 선택한 방법으로는 그것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
진실한 사랑은 완벽한 동반자나 가장 좋은 친구를 찾으려는 꿈속에서는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무조건적인 사랑, 곧 우리가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상관없이 우리 자신에게 바쳐지는 사랑을 원합니다.
만일 운이 아주 좋다면 인생에서 몇 분 동안은 그런 사랑을 경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 삶에서 경험하는 사랑은 대부분 매우 조건적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해주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벌기 때문에, 재미가 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잘하기 때문에, 살림을 잘하기 때문에 사랑을 받습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치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구실을 찾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강연히 끝나자 단정한 차림의 여성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단정한 차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 것입니다.
미용실에서 갓 나온 듯 곱게 정돈된 머리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옷차림이 그것입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작년에 당신의 워크숍에 참석했었어요. 집에 돌아오는 열여덟 살 된 아들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어요.
매일 저녁 집에 돌아오면 아들은 여자 친구한테서 얻은 꼴사나운 색 바란 티셔츠를 입고 식탁 앞에 앉아 있었어요.
아들이 그 옷을 입고 있는 걸 이웃 사람들이 보고 자식 옷도 제대로 못 입힌다고 흉볼까 봐 걱정이 되었어요.
아이는 늘 패거리들과 함께 거기 앉아 있었거든요."
'패거리들'이라고 말할 때 그녀의 얼굴엔 혐오감이 어렸습니다.
"매일 저녁 집에 돌아오면 난 옷차림부터 시작해 아이를 야단쳤어요. 이것저것 꼬투리를 잡아......
우리 관계는 늘 그런 식이었어요. 그날 나는 당신의 워크숍에서 해본 삶과 작별하는 연습을 떠올렸어요.
그리고 삶이란 나에게 잠깐 동안 맡겨진 선물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영원히 내 곁에 두지는 못하겠지요.
나는 삶에 대해 여러 가지 가정들을 떠올려 보았어요.
'만일 내가 내일 당장 죽는다면, 내 삶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까?"
아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삶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문득 이런 가저을 해봤어요. '만일 내일 아들이 죽는다면, 난 어떤 기분일까?'
그러자 우리 둘의 관계에 대해 엄청난 상실감과 후회의 감정을 갖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속으로 계속 이렇게 끔찍한 시나리오를 쓰면서 그 아이의 장례식에 대해서도 상상해 봤어요.
나는 아들에게 정장을 입혀서 묻지는 않을 거예요.
정장을 입는 타입의 아이가 아니거든요. 그 얘가 그토록 좋아하던 지저분한 셔츠를 입혀서 묻을 거예요.
그렇게 그 애의 삶을 기리게 될 거예요.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들이 죽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그애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겠구나.'
그 애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런 선물을 줄 생각이 없었던 거예요.
갑자기 그 티셔츠가 아들에게는 큰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유야 어찌 됐든 그건 그 애가 좋아하는 옷이니까요.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서 아들에게 마음대로 티셔츠를 입어도 좋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아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아들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그 애를 사랑하는 기분은 정말 행복했어요.
이제 나는 더 이상 아들을 완벽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아요. 지금 이대로의 모습도 사랑스럽다는 걸 알았거든요."
서로에게 걸고 있는 기대를 버려야 평화롭고 행복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엄격한 조건을 내세웁니다.
우리는 거의 조건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조건적인 사랑에 익숙해졌기에,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매우 까다로운 과정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서로에게서 완전히 무조건적인 사랑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런 무조건적인 사랑을 인생에서 단 몇 분만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발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경우 중 하나는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 부모에게 주는 사랑입니다.
그들은 부모의 돈이나 지위에는 개의치 않습니다. 그저 부모로서의 우리를 사랑할 뿐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의 웃음이나 좋은 성적, 말을 잘 듣는 것에 대해 보상을 해줌으로써 결국 사랑에 조건을 다는 법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조금만 더 많이, 조금만 더 오랫동안 무조건적인 사랑을 준다면 지금과는 아주 다른 세상이 올 것입니다.
사랑에 대한 조건은 관계를 무겁게 짓누릅니다.
그런 조건들에서 벗어난다면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그 사랑이 되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감정이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는 사랑을 일일이 계산한다면 결코 사랑받는다고 느끼지 못할 것이며,
언제나 손해 본다는 기분이 들 것입니다. 정말로 사랑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재는 행위 자체가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사랑받고 있지 않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당신이 사랑을 움켜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다툴 때면 당신은 상대방이 잘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화가 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당신은 스스로 마음을 닫고 사랑을 거두었기 때문에 당황한 것입니다.
상대방이 당신의 마음에 들 때까지 자신의 사랑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 해결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가 또는 그녀가 당신의 마음에 들면 어떻고, 또 안 들면 어떻습니까?
어머니, 친구, 형제들이 변하지 않는다고 그들을 다시는 사랑하지 않을 건가요?
그들이 무엇을 하든 그들을 사랑한다면 당신은 그 변화를 보게 될 것이고,
갇혀 있던 우주의 모든 힘이 해방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상대방의 가슴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인생수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