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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형만 대리 재테크 포인트 1. 냉철하게 판단해 저지르는 무모함이 필요하다. 2. 신용카드 대신 보험의 약관대출을 이용한다.
3. 집 마련 등 '부자'에 대한 자기만의 기준을 정해라. |
“봉급만 모아서 집 사는 게 가능하냐고요? 사고 싶은 집의 가격을 기간으로 나눠보세요. 아마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올겁니다. 그 다음 단계는 그냥 그 돈을 모으는 거죠.”교보생명 다이렉트 마케팅부 허형만(34) 대리는 무일푼으로 시작해 4년만에 영등포에 시가 3억5,000만원짜리 34평 아파트를 재산목록에 올렸다. 부담스러운 빚도 없는 그는 “30대에 이 정도면 이뤘으면 남보다 많이 앞선것”이라고 자신한다.
그가 집 마련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외환위기가 시작된 1998년 초. 당시맞벌이 하던 아내가‘우리 집에서 살고 싶다’는 소망을 부쩍 많이 내비치자 여기저기서 정보를 얻은 후 서울 영등포 D 조합원 아파트를 부모님까지동원, 삼일 밤낮을 새가며 청약했다.
당시 분양가는 1억4,000만원. 재산이라곤 대출 2,500만원을 낀 전세 보증금 4,500만원이 전부였다. 입주할 때까지 4년 동안, 4개월에 한번씩 1,000만원의 중도금을 막는 일이 급선무로 계산은 간단했다. 당시 두 사람의월급을 합친 금액은 300만원 선. 입을 것 안 입고 먹을 것 안 먹어가며 허대리 부부는 한 달에 250만원씩 꼬박꼬박 통장에 넣었다. 금새 나갈 돈이었으므로 별다른 상품을 노릴 수도 없었다.
“99년 10월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났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분유 값과 아이 봐줄 사람 등 한 달에 70만~80만원의 비용이 나가게 됐거든요. 결국 아이는 부모님께 맡길 수 밖에 없었죠.”이런 곡절 끝에 2002년 여름,허 대리는 전세금을 빼 잔여금을 지불하고 아파트에 입주했다.
“저금을 늘리기 위해서는 도저히 돈을 쓸 수 없는 상황을 스스로 만드는것도 필요합니다. 제 경우에 약간은 무모해보였던 아파트 청약이 계기였습니다.”
돈에 대한 갈망으로 33세 10억 모은
독자적 정면 승부형 조상훈씨
조상훈씨의 재테크 포인트 1.'고위험 고수익'은 편견, 철저한 분석이 우선 2.분산투자해서 성공하기는 힘들다. 3. 심리전에 말리지 마라. |
최근 가장 인기 있는책 중 하나인 ‘33세 10억 모으기, 젊은 부자의 투자일기’ 저자 조상훈씨. 그는 처음부터 “남이 가는 길을 따라간다고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못박는다. 그의‘돈벌기철학’은 명함에 적힌‘사람들은 너무 쉽게 자신의 한계를 설정한다’는말에서 쉽게 드러난다.
1996년 육군소위 시절, 대학때 모은 200만원에 적금에서 탄 600만원을 더한 800만원으로 주식거래를 시작했지만 큰 재미는 못봤다. 1998년 만기가되는 적금 400만원에 이리저리 빌린 100만원을 더하고 중도금을 대출받아구입한 6,200만원짜리 21평 의정부 미분양 아파트가 입주 시점에 전세가만4,000만원에 이른 것이 첫 성공이었다. 일산에 분양 받은 오피스텔 시공사가 부도나면서 돈을 날릴 위기를 겪기도 했다.
결정적인 기회는 2001년에 찾아왔다. 부동산이 재테크 수단으로서 매력을잃었다는 보도가 잇따르면서 미분양 아파트가 쏟아져 나왔다. 퇴직금을 담보로 2,000만원을 대출했고 선배의 보증으로 1,000만원을 조달한 3,000만원이 가진 돈. 미분양 아파트라는 특성 때문에 각종 무이자 융자와 국민주택기금을 끌어 썼을 때 21평형 한 채의 실입주금은 2,000만원 정도. 21평형 하나를 분양 받아 3,500만원에 전세를 놓고 그 돈으로 21평형 한 개를더 매입하는 식으로 21평형 세 채, 24평형 세 채, 총 여섯 채의 집을 갖추게 됐다.2002년 전역 후 입시학원을 해보고 싶어 2억원대의 은행부채를 안고 있는학원을 경매로 매입, 은행 이자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계약금 5,000만원에월200만원의 월세를 챙겼다.
“운이 좋았다구요? 짧게 설명하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투자를 해서 돈을 벌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 그 게임은 벌써끝난 겁니다. 충분한 연구를 통해 확실히 벌 수 있다고 생각될 때만 돈을넣었습니다.”
부동산으로 차근차근 돈 불리기
원칙적부동산 투자형 이옥주씨
이옥주씨의 재테크 포인트 2. 정기 예금은 만기를 나눠 넣어라 3. 들어오고 나가는 돈은 꼼꼼히 체크 |
“돈을 벌어서 써야지 빌려서 쓰면 안됩니다. 세금 낼 건 단 내야 하구요. 전 돈 없이 사는 어려움을 알아요. 그래서 잘못되면 큰일난다는 생각으로 무조건원금은 살려둡니다.
그러다 보니 30년 동안 580만원이 20억원 넘게 불어났네요.”분당구 야탑동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난 이옥주(50)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전주에서 홀로 올라와 큰아버지댁에서 더부살이를 하다가 대학교를중퇴하고 20살이었던 1972년 변호사 사무실에서 급사 생활을 시작했다. 20만원 월급을 받아 분식집에서 하루에 90원짜리 통만두 하나로 연명하며그녀에게 기회가 온 것은 76년.
‘평생 돌만 골라내며 사셨다’는 아버지가 농사를 짓던 전주 고향 땅이도시 계획에 들어간 것이다. 일부는 헐값으로 매입됐지만 비싸게는 평당12만원까지도 땅을 팔았다. 당시 주변 사람들에게 도시계획세를 위해 빌린210만원은 처음이자 마지막 빚이 됐다.
땅 판 돈으로 총 10식구가 살 서울 정릉의 집을 550만원에 구입했다. 80년논현동으로 이사 갈 때 정릉 집의 가격은 2,000만원. 부동산이 돈 된다는것을 알게 된 그녀는 신문 등에서 분양정보를 얻어 조금씩 투자하기 시작했다. 10식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 실질적 가장이었기 때문에 무리한 투자는 엄두도 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원금도 조금씩 불어나 투자 규모도늘어났다. 정부 청사가 들어서기 이전 과천에 4,000만원짜리 집을 구입해1억6,000만원에 되파는 행운도 따랐다.
지금은 국민은행이 된 주택은행의 단골고객이 되면서 좋은 상품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현재 그녀가 보유한 부동산은 분당의 시가 4억원 정도의 아파트 3채와 강남역 인근의 소규모 점포, 선산이나 하려고 구입했다데 행정수도 이전의 행운을 거머쥘 지 모르는 충남 공주군의 땅 500여 평이다.
“500만원, 1,000만원 모을 때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2,000만원부터는 조금 숨통이 트이더군요. 물론 70~80년대 얘기이긴 하지만…. 분양 받는 아파트가 분양가보다 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큰 욕심 부리지 말고 원금은건드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중요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