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바른 판단 , 번뇌와 방황을 멈춰야 하는 모든 중생들에게
무당에대한 편견을 줄이고 신도들의 판단에 도움이되였으면 해서 올려요
무당도 사람이다
개인적인 생각과 소견을 이야기한 것이고 다른 무당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음을
그리고 무속신앙의 믿음을 강요하려는 의도는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다. 라는 말투를 쓴 것이며 기분 나쁘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어요~
긴 글이지만 끝까지 천천히 잘 읽어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세상 어느 한 사람 소중하지 않은 사람 없으며
존재의 이유가 없는 사람은 없다.
땅 위에 굴러 다니는 돌도 그 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고
하늘에서 내리는 비도 모든 만물이 살아가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내린다.
그렇기 때문에 옛 시대(고려, 조선시대)에는 비가 오지 않으면
하늘에 기우제를 지냈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과 모든 만물은 다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여기서 기우제란..
하지가 지나도 비가 오지 않을 때 비가 내리게 도와달라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늘에 제사는 언제부터 존재하였고 무당들이 하는 굿은 무엇인가 ?
이 제천(하늘에 제사를 지냄)의 문화는 단군왕검의 시대 때부터 생겨났고 현대 시대인 지금도 존재하고
있으며 그 문화와 전통을 지키고 행하는 사람에 무당도 포함 되어있다.
**굿의 정의는 무교의 사제인 무당들이 하늘에 제를 지내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굿은 인간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그 시대의 정서를 우리 가슴에 심어주고
굿이라는 형태를 빌려 좁게는 개인, 나아가서는 마을 단위, 더 나아가서는
나라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면서 우리 민중들과 함께 해왔다.
바로 생생지생, 접화군생 이라 말하고 싶다.
우주의 모든 만물에는 모두가 생명이 있으며 각자 서로의 생명을 중요시하여
그 존재 가치를 인정하여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화합하여 모두가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는
정신을 말하는 것이 바로 "홍익인간" 이다. (국조 단군 삼신님 의 이념 )
하지만 이러한 우리의 심성이 담긴 굿을 우리 정신을 잃어버린 시대에 남의 시각으로 남의 정신으로
왜곡되게 바라본 학자들의 기록과 외래 종교의 영향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굿은 미신이라 폄하하며 싫어한다.
한웅천황은 소도를 만들어 삼신께 제를 올리고 삼신을 조상으로 삼았다.
상고시대의 소도는 바로 굿을 하던 장소이다.
소도에서 굿을 하면서 하늘에 문을 여는 것이다.
무당에 직접적인 기록은 <삼국사기>와<삼국유사>에 전하는 신라 제2대 남해왕 조를 보면
남해왕은 차차웅으로 불렸는데 이 말은 무당을 나타내는 말이라 한다.
남해왕은 시조의 묘를 세워 친누이동생 아로로 하여금 제사를 주관케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다 부루단군 시대에 와서 하늘만 위하는 굿이 아닌 조상을 추모하는 의식과 팔가에서 단군왕검을
숭배하는 의식을 종족의 특징을 살려 만들어지면서 여러 형태의 굿거리가 생겨났다.
조선시대에 작성 된 무당내력이라는 문헌도 있다.
**무당이 이렇게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는 자유 민주국가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싫다는 걸 억지로 강요하지는 않는다.
나 또한 민속신앙이니 믿어야 한다. 하고 말할려는 것이 아니다.
여러 이유로 무당에게 점을 보러 오는데 .
무당은 무얼하는 사람이며 , 무속이 어떤 신앙인지,
어떤 이념과 사상을 품고 있는 지를 알고 왔으면 해서
이리 적어보는 것이다.
또한
힘들어서 무당을 찾았을 때에는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줬으면 좋겠다.
미신이다, 믿지 않는데 그냥 와봤다, 사기다, 라는 표헌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맞춰봐라 니가 얼마나 영검한 지 보겠다라는 마음가짐도 내려놓고 오셨으면
옛날에는 무당에게 찾아가 우리집이 이러하고 내 상황이 이러한데 어찌할까요?
자문을 구하러 왔지.
요즘 시대처럼 불신을 가득 안고 맞추는 지 못 맞추는 지 보러 오지 않았다.
무당도 사람인 지라 영적인 능력이 없다면 어찌 이 자리에 앉아서 사람을 맞이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다른 일을 해서 먹고 살지.. 마음 편하게..
사람들은 여러가지의 상황들과 아픔들 고통 속에 살고 있는데.
찍어서 맞출래야 맞출 수가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다.
확률적으로도 찍어서 맞출 수 없는 일을 무당들은 욕을 먹으면서까지
이 일을 하겠는가? 하고 싶겠는가? 잘 생각해보길 바란다.
무당의 존재의 이유를..
무당도 엄연히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행위들을 하는 것이다.
무당들이 무당이 되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니고
없는 무당을 만들어 낸 것도 아니며
갑자기 없는 일을 만들어서 억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자료까지 첨부하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기업, 공무원 , 고위직이 아니면 대부분 무시를 한다.
특히 무당이라는 직업이 많이 무시 당하고 천대받는다.
왜죠 ? 왜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
내가 당신들께 피해를 입힌 것이 있습니까 ?
저라는 사람을 잘 아십니까 ?
보지도 않고 겪어보지도 않고 그 사람에 대해 판단하고 무시해도 되는 사람입니까 ?
우리도 사람인 지라 평범하게 살고 싶고 남들처럼 일하고 싶다.
대부분의 무당들은 지금이라도 안해도 된다 하면 그만할래요 , 안할래요 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만큼 인생의 돈이 전부가 아니란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돈만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닌란 말인 것이다.
무당은 귀신을 섬겨 길흉화복을 점치고 굿을 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여자를 뜻하고
천인간 만인간을 구제중생하고 원 많고 한 많은 조상님들의 원풀이 한풀이를 해드리는 것도 무당이 하는 일이다. 또한 기자 라고도 칭한다 .
빌고 또 비는 사람인 것이다 .
365일 매순간 순간 무당과 인연이 된 사람들을 위해 수 없이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며 기도하고
계절 상관할 것 없이 밤낮 구분없이 산과 바다 허공 전국팔도를 돌아다니며
무당이 아닌 힘들어서 찾아온 내 재가집 , 신도들의 소원성취를 위해
빌고 또 빌고 그 사람들과 인연이 다할 때까지 빌며 기도한다.
(재가집, 신도는 쉽게 말해 굿이나 치성을 드린 손님을 뜻한다)
**한남동 유수지공원에 있는 민비서낭(명성황후서낭)이라 불리며
그 이유는 밤마다 명성황후가 빌고 공들였던 나무라 하여
이름 붙여지고 무속행위가 가능한 기도터이고 보호수로 지정이 되어있다.
그렇다 우리 옛 조상님들은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하늘에 달을 보고 빌고 별을 보며 빌고
부뚝막에 정화수를 떠놓고 빌고
자손이 없는 집안은 산신할아버지 앞에 가서 자손 하나 점지해달라며 빌고 수 없이 비셨다.
옛날 마을 입구에 큰나무 하나씩은 보았을 것이다.
마을 입구에 큰나무에는 오색천을 두르고 금줄을 둘러서 신과 같이 숭배하고 그 나무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겼다.
그 나무에도 빌었던 것이다.
옛날부터 하늘에 빌고 산에서 비는 행위는 옛 선조때부터 내려온 전통이다.
그 전통을 이어가고 지키는 것이 무당이란 사람들이 하고 있다.
** 하지만 우리의 지금 모습을 되돌아보자.
옛날부터 지낸 온 각 집안의 제사는 어떤 형태로 자리 잡고 있는가?
제사의 의미는 알고 있는가?
형식적으로 행하고 있지 않은가 ?
우선 4대까지는 지내야하는 제사를 간추리고 간추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부부시니깐 통합해 버리고
엄연히 기일이 다른데.
제사 지내는 시간도 멀어서, 다시 돌아가는 시간때문에
내일 출근해야하니깐 빨리 지낸다.
쫓기든 숙제하듯 하고 있는게 오늘 날의 제사다.
물론 아닌 집안도 있지만 그리 많이 존재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명절 때 해외로 국내로 여행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뉴스도 보았다.
이러한 경우도 보았다.
어떠한 종교의 영향을 받아 종교를 바꿔 버리고 제사를 없애버리는 경우..
"뿌리 없는 나무 없고 , 조상 없는 자손 없다."
우리가 이처럼 편한 세상에 호의호식을 누리면서 살 수 있는게
누구 덕분인가 ?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아야한다. 모든 선조분들께..
우리나라를 위해 힘 써주신 우리나라를 독립 시켜주시고
자유민주국가인 대한민국에 살 수 있게 해주심을..
이 나라를 지키기위해 수 없이 많은 분들이 희생되고 젊은 나이에 별이 되셨고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고문의 고통 ,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손들을 위해 당신들을 위해 가족들을 위해 희생도 감안하셨다.
그 조상님도 달래고 위하는 게 무당의 일에 포함되어 있고
굿을 해야하는 의미에도 포함되어 있다.
무당인 내가 여러분들께 지향하는 삶은
조상님들 잘 모시고 잘 대우해주세요.
그리고 잊지말고 가슴 속에 항상 품고 계세요.
그렇게만 해도 집안이 편할 것이고 모든 게 뜻대로 움직여질 꺼예요.
" 가화만사성이다. "
내가 모시는 신과 나의 목표이다.
이런 경우도 많이들 들어봤을 것이다.
차가 폐차할 지경까지 이르는 큰 사고였는데.
사람은 멀쩡히 걸어나온 상황.
그럴 때 우리는 무슨 말을 하는가 ?
"하늘에서 도왔다, 천운인다, 조상에서 보살펴 주셨다"
그렇다. 본인의 집안을 도와주고 살펴주는 분들은
각 집안의 조상님들이신 것이다.
물론 신의 힘도 어느 정도 작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점을 볼 때 무당들이 알 수 없는 조상님들의 거론하는 것 또한
그 조상님의 존재를 일 깨워주고
그 조상님의 원과 한을 달래 죽어서도 편치 못한 죽음을 겪지 마시고
편안한 상태로 계시게 하자고 일러 드리는 것이다.
즉 조상님이 편치가 않으면 자손이 편할 수가 없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는 원리와도 같다. "
무당은 또 액막이라고도 표현한다.
무당에게 아무렇지않게 안 좋은 이야기를 하고 가지만
그 말은 무당에게 전달되어 무당이 그 사람들과 함께 또는 대신해 아픔과 고통을 겪고
그 안좋은 액을 땜해준다.
이 무당 또한 그걸 많이 경험하였다.
그러면서 굿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과 굿을 함부로 하면 안되는 무서운 이유
돈에 대한 무서움을 느꼈다.
작년 여름이였다. 나에게 굿을 의뢰한 사람은 죽을 고비를 넘겨라 하는 수에 당도한 중년여성분이셨다.
즉 이사람을 살리자고 살려달라고 안 좋은 거 걷어가 달라고 하는 굿이였던 것이다.
무당들은 굿을 해야하는 사람이 오면
굿 날짜는 가깝고도 굿을 의뢰한 집이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는 날로 잡는다.
가까운 날로 잡을려고 하는 이유는 이 글을 읽다 보면 알 수 있다.
본론으로 돌아와 무당은 시간이 어찌 맞지 않아 굿 날을 좀 멀리 잡게 되었다.
약속한 굿 금액(목숨값)이 오간 날부터 일은 시작이 되었다.
어딜 나가기만 하면 차들이 나에게 달려들고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잘 달리던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고
시야에 보이지 않던 차가 갑자기 튀어 나오고
톨게이트 빠져나오는 데 갑자기 차선이 줄어들면서 양옆에선 나를 보지 못하고
내 차선으로 갑자기 끼어 드는 경우도 있었다.
신체가 이유없이 아프며 약을 먹어도
전혀 호전이 되지 않았다.
이 무당이 바로 이 사람의 죽을 고비를 계속 넘기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굿 날짜도 멀었는데 벌써부터 이 집안의 조상님들이 내게 찾아와
(귀신같이 안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 말인 듯 하다.)
자기의 억울한 죽음을 보여주시고
느끼게 해주신다.
정신적으로는 예민해지고 신체적으로는 고통스러웠다.
험하게 간 조상님들은 죽기 전 순간에 모습과 고통을 갖고 무당 몸에 실린다.
그럼 그 죽음의 대한 공포와 그 순간의 고통을 무당이 겪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당은 원 많고 한 많은 조상님들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는 것이다.
무당이 느껴보았으니깐.. 동병상련이 되는 것이고 또 무당의 몸을 통해서
이 생에서 해보지 못한 것을 해보고 가신다.
(가족들에게 차마 못했던 말, 먹고 싶었던 음식, 술 , 또는 가무을 즐기시는 분도 계신다)
상상이나 해보았겠는가? 무당이 알고 있던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 생전 겪어보지 못했던 고통.. 그래도 묵묵히 우리는 인내하고 이겨낸다.
굿값이 비싸다. 무당들은 돈도 쉽게 잘 벌고 많이 버는 것으로 보여지나
이 굿값은 우리에 목숨값과도 같다.
그리고 굿으로 모든 게 끝나는 게 아니고 그 후에도 무당은 계속 빌고 기도한다.
무당이 굿을 할 때 공수를 내린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공수라는 뜻을 살펴봐도 무당이 얼마나 고단한 지 목숨걸고
일하는 지를 알 수가 있다.
공수의 한자의 뜻대로 하늘에 무당이 목숨을 바쳐 그 집안이 즐겁고 건강하기를
기원한다는 것, 무당이 굿을 맡을 때는 신중하게 처신하여야하고 또 목숨을 걸고
정성을 드려야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내가 들은 바로는 굿을 하다가, 굿을 하러 가다가, 굿을 하러 가서
갑자기 돌아가신 무당분들도 계시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없는 얘기가 아니다.)
사람들은 고통과 인내와 깨달음의 연속적인 삶을 산다.
무당 또한 사람이다. 신이 무당의 귀에다가 일일이 다 설명해주지 않는다.
엎어지고 깨지고 다치고 넘어지고 일어서면서 깨달음을 얻고
그 깨달음이 마침 나의 것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도 겪어 나간다.
신의 뜻도 깨달음 속에서 얻어가는 것이다.
절대 무당의 귀에 속삭여 주시지 않는다.
무당은 이런 질문을 수없이 받아온다.
왜 맨날 무당집에 가면 부적쓰라고 해요 ? 초 키라고 해요 ? 치성 들이라고 해요 ?
굿하라고 해요 ?
굿 했는데 왜 또 힘들어요 ? 딴 데서 굿 했는데 왜 또해요 ?
라고 이런 일차원적인 질문 또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본인들은
무당에게 올 때에는 본인들이 알지 못 한 고통과 괴로움으로 우릴 찾아온다.
보이지 않는 무언의 힘때문에 본인들이 괴로워 우리를 찾아오는 것이다.
무당이 아닌 사람들은 볼 수 없는 알 수 없는 기운을 느끼고
해결하는 사람이 무당이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의사와 비교해보겠다.
예를 들어 독자가 어깨가 아파서 정형외과 병원에 갔다고 가정해보자.
병원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통증, 즉 외상 때문이 아닌 통증은
촉진으로 알 수 없으니 엑스레이를 찍어보자고 할 것이다.
이 때 대부분의 진단이 나올 것이다.
염좌인 지, 타박상인 지 , 파열인 지 애매할 경우에 CT나 MRI를 권유할 수도 있다.
이때도 정밀검사의 선택은 본인이 하는 것이다.
진단이 나오면 그에 대한 처방이 나올 것이다.
약처방, 물리치료, 주사치료, 시술, 수술 등등
의사가 저런 처방을 권하는 이유는 의사가 해야하는 일이니깐
의사의 기술이기때문에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 때 독자들은 왜 약 먹어요 ? 왜 주사 맞아요 ? 왜 물리치료 받아야해요 ? 하고
찢어진 거 맞아요 ? 수술 안해도 되는데 괜히 하라고 하시는거 아니예요?
의사들에게 따지듯 물어보는가 ?
수술과 시술은 비용적인 것도 크기 때문에 고려해보거나
다른 병원도 찾아가 본다. 선택 사항인 것이다.
그러므로 원치 않으면 안 하면 되는 것이고
그의 진단에 부정하거나 막 말을 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약 처방과 같은 처방들은
무당들의 부적들과 같은 처방들이다. 라고 말할 수 있겠다.
무당들이 하는 일이 의사들과 같다.
무당도 처음에 손님이 오면
왜 힘든 지, 어디가 아픈 지, 무엇이 문제인 지를 파악하고 진단하여
처방을 내리는 것이다.
부적을 쓰던 초를 키던 치성을 드리던 굿을 하라고 하는 건
무당이 그런 능력과 재능을 갖고 있고 무당이 하는 일이 그런 일들이니깐.
무당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부적 , 굿, 치성, 초를 키는 것은 우리의 기술인 것이다.
이를 두고 돈 벌어 먹을려고 라고 표현한다면
모든 직업에서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사람들은 다 나와 같은 사람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또 많이들 궁금해 하는 부분이
왜 굿을 했는 데 또 해야되요? 라는 질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려고 한다.
우선 굿은 부자되고 장자되게 해주는 일이 아니다.
굿 한 번에 모든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소원성취를 이루면 이 세상 사람들 못 사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굿이란 이렇게 생각하면 되겠다.
얼키고 설키고 매듭져있던 실타래의 첫 매듭을 찾아서 풀어주는 ,
고여있던 썩을 물을 말끔히 씻어내주는,
길이 아니였던 곳에서 헤매고 주저 앉아 있던 사람을 원래의 길의 출발선에 데려다 주는,
또 호사다마라고 좋은 일에는 안 좋은 일이 항상 같이 하니
좋은 기운을 제대로 전부 다 가져갈 수 있게 안좋은 일은 젖혀주는 것이다.
그렇다, 무당이 하고 싶은 말은
힘든 원인을 해결해서 본연의 상태로 돌려놔주는 거지.
그 후의 어떤 걸음을 하고 어떤 길을 걷고 어떤 일을 선택하는 지는
굿의뢰자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하지말라고 했는데 그걸 어기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예전과 같은 삶은 산다면
도로아미타불이다. 기부했다 생각하면 되겠다.
이 말을 쉽게 풀자면
수술하고 소독하고 실밥 풀고 재활하고
수술하기 전의 컨디션으로 돌아가기위해 노력을 해야하는 것처럼
무당과의 소통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무당의 뜻도 잘 헤아려주고 발맞춰 잘 간다면
굿에 대한 효능과 가치와 능력은 점 점 더 빛을 발할 것이다.
또 길을 걷다보면 잘 못 된 길로 갈 수 있고 비 바람이 불어서 잠시 멈춰질 수도 있고
태풍이 불어서 날아갈 수도 넘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무당의 힘을 빌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되는 것이다.
흔적은 남는다. 어느 정도의 대가는 치루게 된다.
우리가 감기 예방주사를 맞았다고 감기에 안 걸리는 게 아닌 것처럼
약하게 걸릴 때도 있고 강하게 걸릴 때도 있는 것처럼..
모든 지 다 100%로는 없다.
우리가 수술했다고 죽을 때까지 재발 안하고 재 수술 안 할 수 없는 것처럼.
찢어진 곳이 또 찢어질 수 있고
다른 곳이 아파서 다른 수술을 할 수도 있고
그 이유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고
이유가 어찌 됐든 또 찢어질 수 있고 또 수술하게 될 수 있다.
굿을 또 해야하는 이유도 저 위에 예시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문제가 올 수도 있고 같은 문제가 더 배가 되어 다시 올 수도 있다.
무수히 많은 일들이 우리 삶에 있다.
위험한 일도 천가지 만가지이다.
다치는 경우도 여러가지 일이 있다.
위험한 일을 피해가는 방법도
다친 곳을 치료하는 방법도 여러가지이다.
그러므로 해결해주는, 치료해주는 사람의
소견도 다다를 것이다.
보는 관점도 다를 것이고
중요시 생각하는 부분도 다를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 틀리고 맞고는 없다.
비교하고 다르다고 부정하지 말고, 따지려 들지말고
1) 자기와 맞는 사람.
2) 자기가 옳게 생각하는 처방을 내려준 사람을 따르면 될 것 같습니다^^
무당은 여러분들의 적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삶의 어렵고 힘든 짐을 함께
지고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이 험하고 수수께끼 같이 어려운 세상
여러분들처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무당이기 전에
무당도 평범한 사람이고 평범한 여자이고
한 가정의 소중한 딸, 소중한 동생이며
한 아이의 소중한 엄마입니다.
무당도 직업의식을 갖고
그에 맞게 열심히 살아갈려고 노력하는
한 사람입니다.
무턱대고 나쁘게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행복하고 즐겁고 건강하게 무탈한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
[출처] 강동구 점집 (방문전필독) " 무당도 사람이고 무당도 직업이다. "|작성자 이씨신애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