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 사랑] 돈황 막고굴과 경주 남산
실크로드를 찾는 외국인들이 놓치지 않는 도시는 중국 돈황(敦煌)이다.
실크로드의 천산북로(天山北路)와 남로(南路)가 갈라지는 교통의 요지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막고굴(莫高窟) 때문이다.
당나라 중종 때(698) 이극양(李克讓)이 수찬(修撰)한 ‘막고굴불감비(莫高窟佛龕碑)’는 “서기 366년 승려 낙준(樂준)이 수행 중 홀연 금빛으로 반짝이는 1000여 부처의 형상을 목격하고 굴을 파 감실(龕室)을 조성한 것이 시초”라고 전하고 있다.
속칭 ‘천불동(千佛洞)’인데, 현재 812개의 석굴이 있다.
막고굴은 제17굴에서 신라승 혜초(慧超)의 인도여행기인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 발견되었기에 우리 역사와도 관련이 있다.
서기 1900년 막고굴 근처에 살던 왕원록(王圓록)이란 도사(道士)가 불경과 그림, 법기(法器) 등 무려 5만여 점의 유물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이 유물의 가치를 먼저 주목한 것은 당시 청나라 정부나 왕원록이 아니라 영국의 오럴 스타인과 프랑스의 폴 펠리오였다.
이 중 폴 펠리오가 왕원록에게 사 간 ‘왕오천축국전’은 현재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에 있다.
무측천(武則天) 때(695) 만들어진 35.5m의 제96굴 북대상(北大像)과 현종 때 만들어진 130굴 남대상(南大像)은 거대한 규모로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고구려와 신라인들이 즐기던 조우관(鳥羽冠)을 쓴 벽화나 고구려 벽화처럼 비천상(飛天像)이 그려진 벽화는 한국 관광객들의 특별한 탄성을 자아낸다.
그러나 처음 방문 때는 불상의 크기나 벽화의 가짓수에 놀라지만 두 번째부터는 조금 냉정해진다.
벽화는 차치하고라도 막고굴의 대부분 불상은 흙 위에 석회를 입히고 색을 칠한 소조(塑造)로서 화강암에 직접 조각한 우리 경주의 불상들에 비해 예술적 완성도가 떨어진다.
수는 많지만 어느 굴도 사찰의 모든 형식을 다 갖춘 석굴암에 비할 것이 없다.
산 전체가 자연과 조화를 이룬 불국토(佛國土)인 경주 남산은 막고굴 전체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실크로드의 동쪽 끝이 중국이 아니라 신라의 경주였음이 입증되는 지금 우리가 노력만 한다면 경주 남산은 실크로드의 감춰졌던 보고로 돈황 막고굴 못지않게 세계인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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