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3. 큐티
마태복음 12:33 ~ 42
사람의 말과 솔로몬 보다 더 큰 이
관찰 :
1) 나무와 열매에 대하여
- 33절.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 좋은 나무란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은 것입니다. 좋지 않은 나무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은 것입니다. 즉, 열매가 좋은 것은 나무가 좋은 나무이기 때문에 좋은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그 뿌리와 줄기와 가지가 바른 것이라야 좋은 열매가 나는 것입니다. 설령 돌 감람나무를 참 감람나무에 접붙인다하여도 그 열매는 좋지 않은 가지로부터 말미암기 때문에 참 감람나무의 양분을 빨아들인다 하여도 돌 감람나무를 열매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 속에 있는 DNA가 중요합니다.
2) 말에 대한 말씀
- 34절.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 독사의 자식은 선한 말을 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독사의 자식이란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를 미혹한 옛뱀 곧 사탄에 속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주님은 그렇게 주님을 훼방하는 자들에 대해서 분명하고 매몰차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 그들의 중심이 사탄에 속해 악하기에 선한 말, 즉 주님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메시야로, 구원자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는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바알세불을 운운하고, 예수님의 이적과 기사에 대해서도 그렇게 비토를 놓고 있었다는 것을 주님이 정리해서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래도 이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 35절.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는 것입니다. 명심보감에 “공자가 말하기를, 爲善者는 天報之以福하고, 爲不善者는 天報之以禍니라”는 말과 일맥 상통하는 말이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무엇이 선인가 할 때, 이 선은 세상이 말하는 도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모으는 것입니다. 주님을 훼방하고, 주님의 뜻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 악한 것이 됩니다. 그리고 결국은 심판으로 이어집니다. 공자님이 인생을 궁구함으로 많은 가르침을 베푼 것이 맞지만 그것의 실체와 또한 그 가르침을 실행할 실력까지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선의 실체와 그 선을 이루는 능력과 모범, 그리고 그에 대한 심판까지 이루시는 분이심을, 즉 진리의 본체이심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 36절 ~37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 사람이 심판 날에 무슨 말을 했던지 심문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말로 정죄함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이 사실이라면 말을 조심해야 할 것을 다시금 명심, 또 명심하게 됩니다.
4) 표적을 구하는 이들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대답
- 38절.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 예수님은 이미 너무나 많은 표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또 다시 표적을 구하는 이들이 나왔습니다. 이들은 이미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예수님을 압박하고자 합니다. 자신들이 예수님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에게 또 표적을 구하는 것입니다. 교만하기 짝이 없는 이들의 모습입니다.
- 39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 예수님은 그들에게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요나가 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습니까?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도망갔기 때문입니다. 요나가 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도망을 갔습니까? 바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을 증거할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왜 그가 하나님을 이방인에게 증거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까? 이스라엘 자신들만이 구원받는 선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자민족을 괴롭히는 앗수르에게 구원은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심지어는 구원의 문까지도 닫아버리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의 구원을 위해 아브라함을 부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40절.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드러냈다면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고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을 필요가 없지만, 주님의 선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이 주님께 순종하지 않기에 그런 일이 일어나 표적을 보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 41절 ~ 42절.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니리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 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같은 말씀으로 반복해서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죄 받는 이유는 요나보다 더 크고, 솔로몬보다도 더 큰 분이신 예수님을 몰라보는 백성들의 죄악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표적을 구하지만 사실 표적 중에 가장 큰 표적이요, 이적중에 가장 큰 이적인 예수 그리스도를 눈 앞에 두고도 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안타까움으로 그 사실을 설명하고 계시는 주님의 모습이 대조되고 있습니다. 주님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시간을 다 꿰뚫어 보심에도 그 모든 사정을 깨닫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주님의 안타까이 보고 계신 것입니다.
가르침 :
1) 주님이 누구이신지를 아는 자들이 좋은 나무가 되어 주님을 증거하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주님이 참으로 누구이신지를 모르는 이들은 좋지 않은 나무이기에 나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결국 주님을 바르게 증거하지 않는 이유는 그 나무가 나쁜 것이기 때문입니다.
2) 표적 중의 가장 큰 표적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 표적을 구한 이들은 어처구니 없는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거나, 한전 앞에서 촛불을 키거나, 포크레인 앞에서 삽질을 하는 것보다 더 우스운 것입니다. 주님을 모르기에 그렇게 합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우스운 짓을 하게 되는 이유 중의 가장 큰 것은 바로 주님을 모르기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을 바르게 알고 있는가 생각해봅니다. 최소한 성경을 통해 알고자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성령의 인도하심과 깨닫게 하심에 대해 과거의 틀로만 인식함으로 닫혀있는 사고를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내 생각보다 크신 분이시고,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3) 주님에 대한 모든 말이 말세의 때에 심문의 근거가 될 것입니다. 무익한 말을 삼가고 의미 있고 정직한 말을 쌓아야 할 것인데, 그렇기 위해서는 내 중심이 주님으로 가득 차올라야 가능한 상황이 될 것입니다.
적용 :
1) 주님을 묵상함을 놓치지 않겠습니다. 예수로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2) 좋은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되려면 예수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솔로몬 보다 그 누구보다 크신 우리 주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