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조 투자 ‘송도바이오’, 전력 모자라 가동 차질
[전력망 구축 지연에 발목 잡힌 첨단산단]
송전선로 확충 3년반 지연돼
공장 늘려도 전력 공급 빨간불
적자 쌓인 한전, 전력망 도맡아
“정부가 인프라 구축 주도해야”
국내 최대 바이오 협력단지(클러스터)인 송도 바이오클러스터에 추가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송전선로 건설이 2028년 12월 마무리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목표였던 2025년 6월보다 3년 반 늦어지는 것이다. 이미 이곳에 자리잡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에 이어 SK바이오사이언스와 롯데바이오로직스도 연구·공정개발(R&PD)센터 등을 짓기로 하면서 필요한 전력량은 크게 늘어난다. 13조 원에 이르는 투자 계획을 밝힌 바이오 기업들은 추가 전력을 공급해 달라고 인천시와 한국전력에 요청했지만 송전선로 건설이 지체되면서 전력 공급에 빨간불이 켜졌고 단지 가동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16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 등에 따르면 9차 송변전 설비계획에 담긴 28건의 전력망 구축 사업 중 11건의 사업이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5개 중 2개꼴로 전력망 구축이 늦춰지고 있는 셈이다. 현재 발전소가 밀집된 동해안과 서해안에서 만든 전기를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의 산업단지로 보내야 하는데 전기를 실어 보낼 송전선로는 부족하다.
전남 장성에 들어설 카카오 엔터프라이즈의 데이터센터 역시 전력망 구축이 늦어지면서 가동 시기가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 당초 한전은 카카오 데이터센터에서 사용할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송전선로를 2024년 4월까지 구축하기로 했다. 그러나 현재 한전이 잡고 있는 준공 시기는 2026년 6월이다. 이마저도 지방자치단체의 비협조로 일정이 늦어지고 있어 완공 목표 시점을 맞출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전문가들은 관련 법을 개정해 국가 주도로 핵심 전력 인프라 구축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는 전력망 구축 사업의 주체인 한전이 입지 선정부터 주민 보상금 산정 및 지급 등 모든 과정을 도맡고 있다. 게다가 전력망 구축 비용마저 정부 재정 지원 없이 한전이 부담하고 있다. 최근 한전에 쌓인 적자가 47조 원에 달하면서 전력망 구축을 위한 안정적인 재원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도로나 수도 같은 인프라를 건설할 때는 국비가 지원되고 있는데 전력이라는 핵심 인프라는 한전이 오롯이 책임지고 있는 실정”이라며 “전력 인프라 구축 시 정부의 재정 투입이나 구축 과정에서의 기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력망 28개 중 11개, 2년씩 구축 지연… 첨단산단이 전기 걱정
서해안 수도권 송전선로 12년 지연
반도체-IT 등 첨단산단 제기능 어려워
송전선로 없어 발전소 가동중단 늘어
석탄-LNG 등 발전손실 5년간 178억
국내 주요 바이오 기업들이 송도 바이오협력단지(클러스터)에 공장 건설 등 대규모 투자에 나서면서 2029년까지 필요한 신규 전력량은 220MW(메가와트)다. 최대 10만 가구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한국전력은 이 중 122MW는 기존 설비를 통해 공급하고 나머지 98MW는 송전선로를 추가로 구축해 공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선이 지나는 지역의 주민 반대 등으로 송전선로 준공 시기는 2028년 12월로 당초 목표보다 3년 6개월 늦춰졌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새로 짓기로 한 공장은 2025년 4월, SK바이오사이언스의 연구·공정개발(R&PD)센터는 2025년 초 준공 예정이다. 송전선로 구축이 지연되면 전기 공급이 차질을 빚어 공장이나 센터가 제 역할을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 평균 17개월 늦어지는 송전선로 건설
16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 등에 따르면 2021년 수립된 9차 송변전 설비계획에 담긴 전력망 구축 사업 28건 중 지연되고 있는 사업 11건의 평균 지연 기간은 2년이었다. 전력망 구축 사업은 송전선로와 변전소 건설로 나뉘는데, 송전선로 건설 사업의 평균 지연 기간은 17개월이었다. 변전소 건설 사업의 경우 평균 28개월 늦춰지고 있다. 동해안에서 만들어진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한 송전선로는 3년 6개월, 서해안의 발전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는 송전선로는 12년이나 지연되고 있다.
전력망 구축 지연은 한국의 미래 먹거리인 첨단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카카오 엔터프라이즈가 전남 장성에 짓기로 한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송전선로는 준공 시기가 이미 기존 목표보다 2년 2개월 늦춰졌다. SK하이닉스의 신규 반도체 생산공장이 들어설 충북 청주 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에 추가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송전선로도 인허가 처리가 늦어지면서 완공 시기가 1년 연기됐다.
세계 최대 반도체 산업단지가 들어설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역시 전력망 구축이 쉽지 않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는 2050년까지 총 10GW(기가와트)의 신규 전력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정부와 한전은 3GW는 국가산업단지 근처에 새로 발전소를 지어 충당할 방침이다. 나머지 7GW는 서해안에 있는 당진화력발전소 등에서 끌어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서해안을 관통하는 초고압직류송전(HVDC)선로 등을 구축해야 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를 비롯한 첨단산업의 신규 투자가 성공하려면 장거리 송전망 신설을 포함해 대규모 전력 공급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전력망 부족에 석탄발전소 중지 3배 증가
전력망 구축이 늦어지면서 국내 발전소의 손실도 커지고 있다. 태양광 시설이 늘어나면서 태양광 발전 전력이 늘었는데 이를 실어 보낼 송전선로는 부족하다. 이로 인해 액화천연가스(LNG), 화력 등의 발전소 가동을 강제로 멈추는 횟수가 크게 증가했다. 실어 보낼 수 있는 전력보다 더 많은 양을 송전선로에 싣게 되면 과부하가 걸려 대정전의 위험이 발생한다.
국민의힘 양금희 의원이 전력거래소와 발전 공기업 5개사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LNG발전소의 가동 정지 횟수는 2만1726회였다. 2019년(1만2631회)보다 약 1.7배 늘어난 규모다. 같은 기간 석탄발전소의 가동 정지 횟수도 2.8배로 증가했다. 가동 정지 과정에서 발전소 고장으로 인한 가동 실패도 다수 발생했다. 2019년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당초 계획에 없던 가동 정지로 인한 손실액은 약 178억 원이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송전선로가 부족하면 지역별로 전기가 남거나 부족하게 돼 비교적 가동, 정지에 걸리는 시간이 짧은 화력발전소를 켜고 끄는 빈도가 증가한다”며 “이로 인해 전력 손실이나 발전소 고장 역시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세종=김형민 기자, 세종=조응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