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 셔틀외교·지소미아 정상화 합의…경제안보대화도 출범키로
윤 대통령, 16일 기시다 총리와 1시간23분 간 정상회담 진행
양국 정상, '韓 강제징용 해법 계기로 논의 토대 마련' 공감대
김대중-오부치 선언 계승 확인…기시다 "역대 내각 입장 계승"
▲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뉴시스 |
윤석열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한일 경제안보대화를 출범하기로 했다.
양국은 정상이 수시로 방문해 만나는 셔틀외교를 복원하기로 하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완전 정상화를 선언했다.
윤 대통령은 16일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진행된 한일정상회담 기자회견에 나와 "우리 두 정상은 양국 정부가 긴밀히 소통하고 머리를 맞댄 결과, 우리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 발표를 계기로 양국이 미래지향적 발전 방향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고 했다.
이어 "이번 회담은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정신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양국 간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한일 간 협력의 새 시대'를 여는 첫걸음이 됐다"며 "앞으로도 우리 두 정상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필요하면 수시로 만나는 셔틀 외교를 통해 적극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기시다 총리는 한국 정부의 강제 징용 해법에 대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던 양국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한 것으로 평가한다"면서 "일본 정부는 1998년 10월 발표된 일·한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 전체를 계승하고 있음을 확인한다"고 했다.
▲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한일 확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
북한의 핵 문제 대응 방안으로 양국은 한미일 공조 강화로 뜻을 모았다. 윤 대통령은 "북핵,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일·한일 공조가 매우 중요하며 앞으로도 적극 협력해 나가자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고 했다.
기시다 총리도 "북한에 대한 대응을 위해 한·미·일 동맹의 억지력과 대처력 더더욱 강화하고 3국간 안보협력을 (강화하는데) 양국 정상이 서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양국은 한일 재계가 창설하기로한 미래파트너십기금도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양 정상은 강제징용 해법을 두고 한국의 여론이 좋지 않다는 점과 일본의 호응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답변에 나섰다.
윤 대통령은 "한국 국익은 일본 국익과 제로썸 관계가 아니다"라며 "이번 해법 발표로 인해서 양국 관계가 정상화되고 발전한다면 먼저 양국의 안보위기 문제에 대응하는 데 많은 도움 될 것"이라고 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번 발표를 계기로 다양한 조치를 실시하고 또한 한국과 일본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분야를 더욱 강력하게 확대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한일 양국이 자주 연계해서 하나씩 구체적이 결과를 내고 싶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기금의 설립이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을 위한 의미 있는 교류와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지원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16일 오후 4시39분 정상회담 장소인 일본 총리관저에 도착했다. 기시다 총리가 직접 영접에 나섰고, 일본측은 의장대의 애국가를 연주로 윤 대통령을 환영했다. 윤 대통령은 의장대가 들고 있던 태극기에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기도 했다.
환영행사 직후인 오후 4시50분에 본격적으로 정상회담이 시작됐다. 먼저 외교·안보 참모들이 배석한채 진행되는 소인수 회담이 진행됐고, 이후 경제 참모들이 추가로 배석하는 확대회담으로 이어졌다. 소인수회담은 23분, 확대회담은 1시간 동안 진행됐다.오승영, [손혜정(일본 도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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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사설]
韓 대통령 12년 만의 방일과 日의 유보적 태도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취임 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85분간 회담했다. 한국 대통령이 다자회의가 아닌 일본 총리와의 양자 회담을 위해 일본을 찾은 것은 12년 만이다. 윤 대통령은 “오늘 만남으로 어려움을 겪던 한일 관계가 새롭게 출발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도 “미래를 위해 한일 관계에 새로운 장을 열 기회가 찾아왔다”고 했다.
이날 일본 정부는 포토레지스트 등 반도체 소재 3종에 대한 대(對) 한국 수출 규제 조치를 4년 만에 해제했다. 한국은 수출 규제에 대한 대응 조치인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취하했다. 문재인 정부의 파기 선언 이후 조건부 연장 상태였던 한일 지소미아(군사정보보호협정)의 완전 정상화도 선언했다. 이로써 2018년 징용 판결 이후 양국 정부의 대응 조치가 대부분 해제돼 표면적으론 한일 관계가 징용 판결 이전으로 회복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한일 정상회담 후 열린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윤석열 대통령에게 악수를 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
징용 문제와 관련해 일본 측의 진전된 입장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기시다 총리는 공동 기자회견에서 “1998년 10월 발표된 한일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징용 해법 발표 직후 발언 그대로다. 1998년 공동선언에 담긴 ‘반성과 사죄’ 내용도 언급하지 않았고 한국의 징용 피해자에 대한 위로 표명도 없었다. 윤 대통령의 결단에 대한 일본의 호응을 요구하는 한국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계속 과거에만 얽매일 수는 없다. 미래로 전진해야 한다. 양국 정부는 한일 경제안보 협의체와 차관급 전략 대화를 비롯해 분야별 소통 채널을 신설하기로 했다. 한일 양국의 미래를 위한 협력 관계를 전방위로 확대하기 위한 조치다. 한일의 경제단체인 전경련과 게이단렌은 피고 기업을 포함한 일본 기업의 참여가 예상되는 ‘미래 파트너십 기금’을 창설했다. 윤 대통령은 “한국의 국익은 일본의 국익과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 윈윈할 수 있는 국익”이라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앞으로도 양국이 자주 연계해 하나씩 구체적인 결과를 내고 싶다”고 했다.
이번 방일은 미·중 전략 경쟁과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질서의 새판 짜기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뤄졌다. 유엔 안보리가 유명무실화하고 중립국들까지 재무장·군비경쟁 대열에 뛰어들고 있다. 낙오하지 않으려면 자유·인권·법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우방과 공조해야 한다. 이날 두 정상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빈번하게 상대국을 방문하는 셔틀외교에 합의했다. 윤 대통령의 방일은 한일 관계 정상화의 첫걸음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양국 정상의 만남이 거듭되고 신뢰가 쌓인다면 과거사를 비롯해 이번에 풀지 못한 현안들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