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모처럼 하루 휴가를 내서 아침에 조조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명량이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같은 기대작도 이미 봤고, 기다리고 있던 해무는 개봉일이 내일이더군요;;; 뭐 있나 보니 "허클리스"란 영화가 있더랬죠.
사실 별로 기대는 없었습니다. 일단 제목과 카피부터가... 헤라클레스는 그리스 신화, 아니 모든 신화를 통틀어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영웅인데 생뚱맞게 "허큘리스"(사실 이건 얼마전 개봉한 비슷한 제목의 영화와 헷갈리지 않기 위함이지만)에 "아무도 몰랐던 진짜 영웅 이야기"라니... 그럼 제우스는 "쥬스"고 하데스는 "헤이디스"란 말인가??
게다가 드웨인 존슨의 거대한 체격이 헤라클레스에 어울리기는 하지만 워낙에 특징적인 얼굴과 목소리의 소유자라 보는 내내 헤라클레스가 아닌 "더락"이 떠오르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워낙 헤라클레스 신화를 어렸을때 좋아했는지라, 헤라클레스가 엄청난 괴물들을 때려잡는 장면을 깊은 생각없이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 선택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재밌는 오락영화였다고 봅니다. 기존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신 이미지를 떠나 인간 헤라클레스를 그리려는 시도는 괜찮았고, 헐리우드의 막강 자본과 나름 개성있는 캐릭터들 덕분에 흥미진진했습니다.
명작에는 택도 없지만 오락영화로서는 괜찮은 캐릭터, 화려한 효과와 액션씬 (특히 헤라클레스의 힘을 강조하기 위한 액션씬, 둔탁한 곤봉타격과 맨손격투가 좋았습니다)이 어우러져 그냥 두시간동안 아무 생각 없이 재미나게 보기엔 좋았습니다.
예고편에 나온 괴물 퇴치가 사실상 낚시였다는 것에 좀 열받았지만 이후 펼쳐진 액션신은 이에 못지 않았으니까요.
다만 액션과 드라마를 맛깔나게 버무리진 못한 점은 브렛 래트너다웠다고 할까요? "인간" 헤라클레스를 그렇게 강조하면서 정작 영화의 주요 네러티브는 선악대결의 비교적 단순한 구도였습니다. 착한놈인 줄 알았던 왕이 나쁜놈이란 반전은 있지만 그렇게 엄청난 반전도 아니었고요.
특히 헤라클레스가 가족을 죽인뒤 내면의 악마로부터 고통을 받던 장면은 "사실은 헤라클레스가 안 죽였다"는 단순한 결론으로 매듭을 지은 점이 좀 아쉬웠습니다. 실제 신화에서는 본인의 잘못이 아니긴 했지만 (헤라가 광기에 쉽싸이게 함) 분명히 자기 손으로 죽였고 이로부터 오는 고통과 갈등은 헤라클레스 신화의 비극에 크게 일조합니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헤라클레스가 아무 죄도 없고 모든 잘못은 (얼굴과 목소리부터 대놓고 "나쁜놈!"이라고 써놓은 듯한) 에우리스테오스에게 돌려 그를 죽임으로 인해 갈등이 한큐에 해결되게 합니다. 심지어 에우리스테오스는 신화에서조차 악역에 가까운 놈이었으니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었죠.
물론 이 점은 변명의 여지도 있습니다. "가족을 죽인 헤라클레스의 고뇌"는 오리지널인 신화는 물론이고 이후 이에 영향을 받은 다른 작품 (갓오브워의 크레스토스 등)에서 많이 다뤘기 때문에 전혀 신선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 영화의 선악구도가 단순했고, 이로 인해 "인간으로서 겪는 다양한 고뇌"보다는 "킹왕짱 영웅 헤라클레스의 신나는 모험담"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여담이지만 영화 내내 "인간"을 강조한데 반해 작중 헤라클레스는 실제 제우스의 자식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괴물이더군요. 성인남자를 한손으로 던지고 곤봉 한방으로 다섯명을 죽이는 것까지는 영화적 과장이라고 쳐도, 아니 말을던지거나 굵은 쇠사슬을 끊는 것까지도 그렇다 쳐도 후반부에 6~7층짜리 건물 높이와 맞먹는 거대한 대리석상을 넘어뜨리는 장면을 보자 "제우스 아들 맞네. 아니면 말이 돼???"란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티탄족 중 가장 힘이 센 아틀라스밖에 못하던 하늘 들고 있기(버전에 따라 세계)를 한 신화상의 헤라클레스에 비하면 심히 너프된 거긴 합니다만.
그러나 드라마의 부재를 감안해도 볼만한 영화이긴 합니다. 그렇다고 수작도 아니지만요. 사실 크리스토퍼 놀란이 대단해도 모든 감독이 놀란일 필요는 없고, 모든 영화가 인셉션이나 다크 나이트일 필요는 없는거니까요.
두고두고 생각할 여지가 남는 명작을 보고자 하는 분들에게 권해드리고 싶진 않은 영화였습니다만, 두 시간동안 생각없이 신나게 액션을 즐기기엔 좋은 영화라고 봅니다
첫댓글 헤라클레스 영화는 이미지랑 안맞는 부분이 많아서 영 거슬렸는데, 몽둥이 타격감이라니 기대가 쬐끔 됩니다...만 감독때문에 기대를 접고 봐야겠네요.
전 해적이 좋더라구요, 진짜 계속 웃으면서 봤어요.
시간되시면 함 보세요.
흠. 전작 허큘리즈가 워낙 망작이라... 전작에서 기억에 남는 건 전기나오는 칼 들고 휙휙 쓸면서 수십명을 쓰러뜨리는 모습 밖에 기억이 안나는데.. 한 번 봐야 겠군요.
전 때려부시는 영화는 어지간하면 극장에서 보는 편이라 허큘리스도 개봉날 바로 봤는데 저 역시 상당히 잼있게 봤어요 ㅋ
영화 끝나고 괴물들 어떻게 사냥했나 보여주는 것도 잼있었고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