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 외할아버지 집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외할머니는 젊었을 때 미국 선교사가 세운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셨고, 외할아버지는 미국 선교사들과 북한과 만주 지방을 다니면서 선교사역에 종사했던 분이시다. 이런 외할아버지의 [잔소리]와 외할머니의 [사랑의 음성]을 많이 듣고 자랐다. 외할아버지는 [사람은 밥값을 해야 한다]는 [잔소리]같은 말씀을 자주 강조하셨다. 어렸을 때 들은 말은 평생 간다. 지금도 스스로 [내가 밥값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가끔 하게 된다. 북한에서 피란 내려 온 어느 권사님이 [하얀 이밥 한번 실컷 먹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셨다. [이밥]이란 흰 쌀밥을 뜻한다. 1950년 625 전쟁 이후 한국 실정은 정말 가난했고 먹을 것이 부족하여 배가 고팠다. 보리밥, 쌀밥을 논하고, 무밥, 비지 밥을 들먹일 땐 [밥]은 생존의 숭고함 그 자체였다. 오죽하면 인생은 먹기 위해 산다는 말 까지 나왔을까. [밥.... ] 밥이라는 말만큼 마음이 가는 것도 세상에 없다. 따뜻하고 포근하여 사랑으로 지은 까치밥이 있고, 인정으로 지은 한솥밥이 있다. 감자를 넣으면 감자밥이요, 콩나물을 넣으면 콩나물밥이다. 쑥을 넣으면 쑥밥이요, 잡곡을 넣으면 잡곡밥이요, 생굴을 넣으면 굴밥이다. 모든 재료가 밥을 향해 달린다. 비비면 비빔밥이 되고, 볶으면 볶음밥이다. 물에 말면 물밥이요, 국에 말면 국밥이다. 짬뽕에 밥을 더하면 짬뽕밥이요, 잡채에 밥을 더하면 잡채밥이요, 잡탕에 밥을 더하면 잡탕밥이다.
조밥, 콩밥, 팥밥, 완두콩밥, 수수밥, 옥수수밥, 고구마밥.찰지면 찰밥이요, 설익으면 설은 밥이요, 야물면 고두밥이다.
뜨끈뜨끈한 돌솥밥이 있는가 하면, 따로 노는 따로국밥이 있다. 외면당하는 쉰밥도 있고, 눈치를 보아야 하는 눈칫밥도 있으며, 서러운 찬밥도 있다.
이렇게 수많은 종류의 밥이 있어 [밥값 하기]가 그렇게 힘이 드는 것일까. 그래서 그런지 어느 누가 나에게 밥값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얼른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그건 횟밥도 아니요, 유부초밥도 아니요, 충무김밥도 아니기 때문일까. 인생은 [생일밥]을 먹다가, 짬밥(군대에서 먹던 밥그릇 수- 서열을 의미)을 먹다가, [죽 밥]을 먹다가, 사자 밥을 먹으면 끝나는 것이 전부다. 인생은 결국 밥상 앞에서, 밥줄로, [밥 심]으로 살다 간다. 그러기에 싸움 중에 가장 큰 싸움이 밥그릇 싸움이다. 아이고. 알프스 산이 쓰러지고, 지리산이 무너지고 낙동강이 범람해도 밥그릇 싸움만큼 무서운 싸움이 또 어디 있을까. 저 철부지 똥개마저 다 찌그러지고 오그라진 밥그릇을 두고, 경천동지(驚天動地-하늘이 놀라고 땅이 움직이는)의 사생결단을 하지 않던가. 예수님께서도 주기도문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우주가 창조되면서 시작된 밥, 가장 좋은 때가 밥 때라고 하며, 금강산도 식후경이요, 사랑도 배가 부른 후라는 그 밥값 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가 되었다.
100세 시대를 구가(謳歌)하지만 오래 살 수록 [밥값 하기] 힘든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비생산적인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밥을 먹으면 힘이 생긴다. 에너지가 생긴다. 그러니까 밥값을 한다는 말은 에너지를 어디에 쓰느냐는 질문이다.
생명과 영생을 위해 쓰면 밥값을 하는 것이고, 썩어질 이생의 육신만을 위해서 쓴다면 밥값을 못하는 것이다. 무심하게 시간만 보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는 말씀도 있다. 만약 배가 고파 밥을 찾는 사람이 밥만 먹고 밥값도 못한다면 [이름 값]은 언제 할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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