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755) - 봄이 오는 길목의 걷기 스케치
꽁꽁 언 대동강 물이 풀리고 봄비가 내린다는 우수가 코앞인데 매서운 추위 속에 함박눈이 쏟아진다. 단톡방에 오른 봄소식, ‘눈이 녹으면 뭐가 되냐고 선생님이 물으셨다. 다들 물이 된다고 했다. 소년은 봄이 된다고 했다.’ 봄 봄 봄, 며칠 전 한강변에서 수줍은 듯 얼굴 내민 민들레와 마주쳤다. 여의도의 백목련과 홍매화도 물기 머금었어라. 때마침 영국에서 들려온 낭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의 손흥민 선수가 2월 17일 버밍엄의 빌라파크 경기장에서 EPL 통산 50,51호 골을 터트리며 아시아 선수 최초로 EPL 50골 고지를 돌파하는 새 역사를 썼다. 영화 기생충에 이은 쾌거, 곳곳에서 좋은 봄소식 이어지라.
우수를 코앞에 두고 내리는 함박눈, 올겨울 들어 처음 보는 집앞의 설경이 평화롭다
금년 들어 동호인들의 걷기가 활성화 되어 서울나들이가 잦아졌다. 지난주, 목요일에는 저녁걷기로 광나루에서 왕십리에 이르는 도심의 밤풍경을 즐기고 금요일 낮에는 청담대교에서 가양대교까지 강변을 걸으며 굴곡진 역사의 숨결이 스민 한강의 이모저모를 눈여겨 살폈다. 이틀간의 걷기소묘를 소개한다.
1. 야경이 아름다운 대공원과 가로수길
목요일(2월 13일) 저녁 7시, 광나루역에 30여명의 한국체육진흥회원들이 모였다. 최근에 광나루역에서 출발하거나 마무리한 걷기행사가 여러 차례, 이제 제법 익숙한 지역이 되었지만 저녁시간에 찾기는 처음이다. 광나루역을 출발하여 아차산역으로 가는 길목이 부산하고 아차산역 지나서 어린이대공원으로 이어지는 야경이 운치 있다. 공원에서 잠시 멈추어 나누는 간식이 꿀맛이고. 대공원을 나와 군자교 거쳐 살곶이 다리로 이어지는 가로수 길도 일품, 한국체육진흥회는 이곳을 내년의 국제걷기 때 25km코스 후보로 검토 중이란다. 10여일 전에 살핀 살곶이다리(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를 지나 왕십리역에 도착하니 저녁 9시, 두 시간동안 10km를 즐겁게 걸었다. 목요일마다 밤길 걷기에 나서는 동호인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군자교에서 왕십리 가는 길목의 휘황한 야경
2. 애환의 숨결이 스민 한강의 이모저모
금요일(2월 14일) 오전 10시, 청담역에 9명의 동호인이 모였다. 보름 후에 가질 3‧1절 120km 걷기코스의 사전 점검 차. 이날 걷기는 청담대교에서 가양대교에 이르는 25km, 한강을 가로지르는 10여개의 대교를 지난다. 각기 나름의 역사와 스토리를 간직한 것이어라.
청담동은 서울의 부자 동네, 더러 올림픽대로를 달리며 지나기는 하였지만 그 동네에 발을 딛기는 처음인데 인조 트리로 장식한 역사 안의 휴게소가 고품격이다. 청담나들목 지나 한강변에 들어서니 전철도 지나는 청담대교가 우뚝하다. 시야가 탁 트인 강물에는 여러 무리의 갈매기와 오리 때들이 유유히 노니누나. 비단처럼 매끈한 산책로를 심호흡하며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잠시 후 영동대교, 조선통신사 걷기에 여러 차례 참여한 일본인의 애창곡 ‘비 내리는 영동교’가 떠오른다.
이어서 당도한 다리는 수십 명의 못다핀 꽃들을 앗아간 참사의 성수대교, 옛일을 잊은 듯 강물은 무심히 흐른다. 그 다음은 동호대교, 고속터미널 오가며 자주 이용하는 3호선 전철의 다리 밑을 지난다. 압구정 나들목과 잠원 나들목에 이르는 수변의 한강공원이 넓고 쾌적하네, 그곳에서 잠시 휴식하며 목을 축인다. 한남대교 지나 반포대교에 이르는 강변에는 가수 혜은이가 부른 제3한강교의 노래 사연, 정조가 건넜다는 배다리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그 언저리 쯤 6‧25 피란길에 우리 가족이 나룻배 타고 건너간 지역도 있으리라.(10년 전, 회상의 피란길 되짚으며 장성한 가족들과 함께 반포대교를 걸었다.)
현충원 옆 동작대교 지나 노량진의 한강인도교(6‧25 전쟁 당시 유일의 한강 다리, 1950년 6월 28일에 예고없이 이 다리를 폭파하여 피란중인 민간인 800여명이 숨졌다), 이어서 육중한 한강철교를 지나노라니 연달아 오가는 열차들의 굉음이 요란하다. 수많은 사연이 서린 애환의 다리 아니런가! 그 다음은 여의도, 서울의 명물인 6‧3빌딩이 한눈에 잡힌다.
애환이 서린 한강철교와 서울의 명물 6‧3빌딩을 조망하며 걷는 일행
여의도 한강공원 지나 여의나루역에 이르니 오후 2시가 가깝다. 근처의 음식점을 찾아 늦은 점심을 들고 3시 못 미쳐 남은 길을 재촉한다. 힘을 내서 마포대교, 서강대교, 선유도와 양화대교(제2한강교), 성산대교 지나니 새로 건설하는 월드컵대교의 공사현장이 부산하다. 멀리 가양대교가 시야에 들어오는 산책로를 내쳐 걷다가 대교 못미처 나들목에서 강변을 벗어나 오후 4시 반에 가양역에 이른다. 열심히 걷느라 다리는 뻐근한데 25km 명품 길 주변을 두루 살피며 완주한 보람이 뿌듯하다. 돌아와 아내에게 밝힌 소회, 수십 년 오가며 관찰한 한강 풍광 중 가장 아름다운 발걸음이었다. 이를 적노라니 성서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 걷는 중 국회의사당 부근 여의도의 한강에 있는 큰 규모의 한강파출소(해양안전 교육센터) 건물이 눈길을 끌었다. 안전관리에 만전을 기하기 위함이리라. 공교롭게도 다음날(2월 15일) 안타까운 사연(투신자 구하려다 순직한 경찰관 이야기)을 접하였다. 고귀한 희생의 경찰관에게 경의를, 관계자 여러분에게 위로를 드리며 그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목숨 건 한강 구조
겉보기엔 평온하고 유유히 흐르는 한강이지만, 물속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오염과 부유물 등 때문에 수경 앞에서 자기 손을 흔들어도 안 보일 정도. 물속엔 공사장 등에서 떠내려 온 통나무 철근 등 온갖 고체들이 빠른 속도로 흘러간다.
서울 한강경찰대 수상구조요원 유재국 경위가 15일 투신자 수색 중 숨졌다. 교각 돌 틈에 몸이 끼었는데 빠져나오지 못해 변을 당했다고 한다. 2018년 8월에는 민간 보트 구조에 나섰던 심모 소방교 등 소방대원 2명이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다. 한강 평균 수심은 5m에 불과하지만 베테랑 구조대원들도 잠수했다가 위험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강에 투신해 물속으로 사라져버린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강바닥에서 일렬로 줄을 잡고, 한 손으로 더듬어 가며 찾아야 한다. 체력 소모도 극심한데 공기통만 20kg이 넘는 데다,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수 kg의 추를 차고, 수색 내내 물살을 거스르며 헤엄을 쳐야 한다. 한강 하류는 유속이 시속 5km 정도인데 2km만 넘어도 몸을 가누기가 힘들다.
안타까운 건, 재난 상황 자체도 위험하지만 구조대원들의 선한 마음 때문에 더 큰 위험에 빠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는 점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보려는 마음에 스스로 ‘조금만 더’를 외치며 잠수 횟수와 시간을 늘리다가 변을 당하기도 한다.
구조는 목숨을 건 행동이다. 하지만 구조대원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사람들도 많다. 실종자 수색본부가 차려진 곳 바로 옆에서 수상스키‧윈드서핑을 즐기는가 하면, 수색 작업의 어려움은 고려하지 않고 시신 인양이 늦어지는 것만 질타하는 목소리도 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다. 숨진 유 경위의 아내는 임신 중이라고 한다. 심 소방교도 당시 갓 돌이 지난 쌍둥이를 두고 있었다. 유가족들만큼은 더 이상 힘들지 않게 우리가 돌볼 차례다.’(동아일보 2020. 2. 17 '횡설수설'에서)
한강에 투신한 시민을 구하려다가 순직한 유재국 경위의 영결식이 2월 18일 오전 유족과 경찰 동료 등 300여 명이참석한 가운데 서울 송파구 경찰병원에서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