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우물 수도원, 가르멜 갈멜산 수녀원
당당뉴스 강문호 | mhkang526@hanmail.net
이스라엘에는 수도원이 300개 가량 된다고 들었습니다. 누구도 정확한 통계를 모릅니다. 수도원에 가서 수도사들의 삶을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한 달 남짓 머믈면서 91개 수도원을 방문하였습니다. 문을 열어주지 않거나 문을 열어 주어도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이 48 곳이었습니다. 사진만 찍었습니다. 수도사들과 대화를 나누며 수도사의 삶을 접하여 본 곳이 43 곳입니다.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수도원은 수도원의 영성이 있습니다. 수도원 영성이란 어떤 것일가요? 수도원(Monastery)은 ‘홀로’라는 의미의 헬라어인 ‘모노스’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세상과 떨어져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삶을 사는 행위를 하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스스로 인간이 얼마나 악한 존재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인간은 영을 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극치가 수도원입니다. 수도사란 누구인가요? 수도사란 모든 것에 떠난 자이며 동시에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루는 사람입니다. 수도사란 두 가지 단어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따라 가는 삶’이라는 라틴어 “이미타치오 크리스티”(Imitatiop Christy)이고 다른 하나는 ‘제자들을 따라 가는 삶’이라는 라틴어 “비타 아포스톨리”(Vita Apostoli)라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 18:36)
이집트 기독교- 콥트교(Coptic Church)
이집트의 토착 기독교 교회를 ‘콥트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콥트’라는 말은 고대 이집트어에서 유래합니다. 전체 이집트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아이깁티오스(Aigyptios)’라는 말은 ‘이집트인’입니다. 640년 이집트를 정복한 아라비아인들은 이집트를 ‘킵트(Qibt)’라고 불렀습니다. 이집트는 급격하게 이슬람화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이들을 ‘토착 콥트교도’라고 부릅니다.
마가가 아프리카로 와서 복음을 전하고 순교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집트 기독교인 콥틱 기독의 제1대 교황을 마가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교회에 가보니 외벽에 마가부터 지금까지 콥틱의 교황 이름을 돌에 새겨놓았습니다. 인상깊었습니다. 마가는 자기가 교황이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명예를 좋아하는 이들의 후대 작품입니다.
이집트에서 수도원이 역사상 가장 먼저 생긴 이유가 있습니다. 이집트 신화가 성경과 비슷합니다. 이집트 신화 <사자의 서>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성경 이야기와 흡사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심장을 꺼냅니다. 저울에 죽은 자의 심장을 한쪽에 놓습니다. 다른 쪽에 새 깃털을 놓습니다. 살아서 선행을 하며 덕을 세운 사람의 심장은 새 깃털같이 가벼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깃털보다 올라가면 잘 산 사람입니다.
심장이 깃털보다 가벼운 사람은 죽음의 사자가 심판대에서 ‘앙크’를 줍니다. 깃털은 가볍습니다. 진리는 단순하다는 의미입니다. ‘앙크’는 저 세상에 가서 영원히 살 수 있는 부활과 생명입니다. 앙크를 받은 사람은 영생에 참여하게 됩니다.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앙크는 기독교의 십자가 사상입니다.
이런 이집트 신화는 기독교에 두 가지 공헌을 하였습니다. 하나는 기독교를 쉽게 받아 들이게 하였습니다. 기독교 교리와 이들의 신화가 같기 때문입니다.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다는 것, 선행을 하고 잘 살면 생명이 있다는 것이 같아 기독교를 받아 들이기가 쉬웠습니다.
이런 신화가 결정적으로 공헌한 것이 수도원입니다. 덕을 쌓아야 하고, 금욕을 하여야 하는 신화는 기독교를 수도원화 시켰습니다. 그래서 세계에서 처음으로 이집트에서 수도원이 생겼습니다. 심장을 새 깃털보다 가볍게 하려면 덕을 쌓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곳이 필요하였습니다. 이 곳이 바로 수도원입니다.
수련장이 콥틱어로 ‘스케테(scetis)’입니다. 스케테는 현재 이집트 와디 알나트룬입니다. 알렉산드리아로부터 약 100 km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기독교가 수도원에 미치는 영향이 결정적이었지만, 이집트 수도원이 기독교에 미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 시작이 4세기 이집트 스케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서방 수도원
서방 수도원을 잘 정립한 분이 베네딕토입니다. 서방 수도원을 세운 수도사입니다. 로마 정치가 요한 카시안(John Cassian)이 정치적으로 이집트 수도원으로 망명하여 잠시 살았습니다. 피신이었습니다. 이집트 수도원에서 살면서 배운 것을 그대로 서방 로마로 가지고 갔습니다. 그는 돌아가서 책 두 권을 썼습니다. <담화집>(conferencs)과 <제도집>(institute)입니다. 그런데 베네딕토는 이 두 권을 참고로 수도원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베네딕토 규칙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수도원 규칙 교과서입니다. 그런데 이 두 권은 모두 이집트 수도원 규칙입니다. 말하자면 동방 수도원 규칙입니다. 카토릭 수도원은 기독교 수도원에서 규칙을 가지고 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천주교 수도원은 기독교 수도원 다음에 생겼습니다.
세겜 수도원에서
이스라엘 수도원을 돌아 보는 중에 세겜에 들렀습니다. 수도원이 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겜에 두 산이 있습니다. 에발산과 그리심산입니다. 그리심산 정상에 올라가서 세겜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폐허가 된 옛 세겜 도시, 여호수아가 오른쪽 왼쪽에 6지파씩 세워놓고 말씀을 증거하였던 곳, 요셉의 무덤이 보였습니다. 가장 눈에 두드러지게 보이는 곳이 수가성 우물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렛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다가 목이 마르셔서 물을 마시며 남편이 6명 있었던 여인에게 전도하신 곳입니다. 그 곳에 수도원이 세워져 있고, 그리심산 정상에 수도원이 있습니다. 그리심산 정상에서 예수님이 지나가시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나 혼자 상상하여 보았습니다.
“나사렛에서 예루살렘까지는 151km다. 12살부터 일년에 3번은 올라가셨다. 세 절기는 이스라엘 성인 남자들은 모두 예루살렘에 가야 했다. 33살까지 그렇게 하셨다면 공생애까지 합하여 거의 100번은 이 길을 왕복하셨다. 요즈음 이스라엘 날씨가 45도 정도다. 걷다가 목 마르셨던 예수님의 심정을 정말 진하게 알려면 150 km를 한번은 걸어야 한다. 마침 뚝섬 우리 교회에서 충주 산척 수도원 예정지까지가 고속도로로 120 km, 국도로 150 km다. 한번 걷자. 그것도 복중에 걸어야 정말 예수님 체험이다.”
예수님 체험
이스라엘에서 귀국하고 나니 바로 7월 17일 초복이었습니다. 그래서 18일 월요일부터 걷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먼저 기사를 데리고 우리 교회부터 충주까지 150 km를 4시간 가량 지형 조사를 마쳤습니다. 이천까지는 걸을 수 없는 환경임을 알았습니다. 이천부터 수도원까지 약 100 km 정도 걸어야겠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수도원을 보고 오더니 엉뚱한 행동을 한다고 할 것같아서 우리 교회에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 토요 성경공부 모임에서 말했더니 6명 팀이 형성되었습니다. 몇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1. 예수님 체험
가장 더울 때 150km를 걷는 예수님 체험입니다. 나사렛에서 예루살렘까지입니다. 우리가 순례의 길을 걷는다고 하니까 한 목사님 말했습니다.
“왜 하필이면 복중에 합니까? 선선한 가을에 하십시오.”
“이스라엘 45도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살아서 돌아 오십시오.”
2. 수도사 체험
수도원은 사막에서 생겨 더 깊은 사막으로 들어갔습니다. 수도원이 커지면 돈이 생기고 유혹이 생기니까 모두를 버리고 더 깊은 사막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사막을 늘 걸었던 이들이 수도사들입니다. “사막에게 물어라.” “사막에 답이 있다.” 이런 말들이 사막의 수도사들에게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나 거룩은 장소가 아니라 관계라고 하면서 늘 사막을 걸으며 거룩을 생각하였던 것이 수도사들이었습니다.
3. 제자 체험
누가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전대도 갖지 말고 두 벌 옷도 갖지 말고 얻어 먹고 전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돈을 갖지 않고 어디에서 먹을지 모르고, 어디에서 잘지 모르고 떠나기로 하였습니다.
4. 내려 놓음과 맡김 체험
모두를 내려놓고 출발부터 도착까지 먹고 자고 인도하심 100%를 하나님께 맡기고 나서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지닌 것 없이 집 문을 나서며 자유로움, 내려놓음 그리고 맡김을 체험하게 될 것을 알았습니다.
5. 극기 체험
3일 동안 33도라는 보도였습니다. 폭염주의보가 계속 내려지고 있었습니다. 아스팔트는 40도 정도입니다. 이런 악조건속에서 하루 평균 33 km를 걸으며 내가 나를 얼마나 이길 있는 지 실험하여 보기도 하였습니다.
18일 월요일 아침 이천에서 6명이 출발하였습니다. 점심 때까지 걸었습니다. 배가 고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디에서 밥을 얻어 먹어야 하는 지 걱정이었습니다. 누구에게 밥을 달라고 하면 줄 수 있을지 대상을 찾았습니다. 밥 한끼가 이렇게 소중한 지 몰랐습니다. 집에 들어가서 밥을 달라고 할 용기나 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빈 그릇 하나씩과 수저를 준비하여 갔는 데 밥 좀 달라고 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그래도 남부럽지 않게 사는 이들이었습니다. 평생 돈 걱정 안 하고 사는 이들이 언제 밥을 얻어 먹었을까요? 점심을 굶었습니다. 서러웠습니다. 길거리에 식당들은 즐비한 데 모두 돈이 있어야 먹을 수 있는 곳입니다.
지나다 보니 절 앞에는 “식사를 제공합니다”라고 프랭카드가 붙어 있었습니다. 교회가 그렇게 하는 곳은 없었습니다. 굶을 지언정 절에 가서 밥을 얻어 먹고 싶지 않았습니다. 작열하는 태양밑에서 걸으며 나무 한 그루 그늘을 지날 때마다 잠간이지만 시원하였습니다. 옷이 땀으로 젖었다 말랐다 수차례 반복하였습니다. 지나다 보니 큰 보호림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늘밑에서 잠간 땀을 식히며 아브라함 생각이 났습니다.
아브라함이 마므레 상수리 나무 그늘에 앉아 있을 때였습니다. ‘날이 뜨거울 때’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창 18;1) 나그네 세 명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달려가서 땅에 몸을 굽히고 떡을 먹고 떠나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사라에게는 떡을 구우라고 하고, 자기는 가축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살진 송아지를 잡아 하인들에게 급히 요리하라고 명합니다. 나그네들은 천사들이었습니다. 천사들은 감격하여 두 가지 축복을 주었습니다. 하나는 아이 낳지 못 하는 사라에게 아이 낳을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될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 상수리 나무가 지금은 고목으로 서있습니다. 20년 전만 하여도 살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 옆에 수도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누가 우리 6명을 불러다가 소잡아 대접하여 주는 사람이 있을까요? 밥 좀 달라고 할 때 조금이라도 주는 사람이 있어도 다행인 환경이었습니다. 저녁이 되어 갑니다. 장호원 앞까지 왔습니다. 저녁이 걱정이고, 잘 곳이 염려됩니다. 학교로 갈까? 마을 회관으로 갈까? 원두막은 없나? 온통 생각이 복잡하였습니다. 모두 나만 쳐다 보고 있습니다. 잠자리 구하는 것은 내 책임이 되었습니다. 34km 가량 걸은 우리는 모두 지쳐 있었습니다. 장호원 교회 김광중 목사가 생각이 났습니다. 서울 우리 교회로 전화를 걸어 김 목사님 전화번호를 받았습니다. 김 목사님은 우리를 따뜻하게 맞았습니다. 저녁에 보리밥을 대접하여 주었습니다. 꿀맛이었습니다. 잠자리까지 제공하여 주었습니다. 대원들은 피곤으로 인하여 골아 떨어졌습니다. 김목사님 부부가 아침까지 해결하여 주었습니다.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천사를 보내신 하나님
이튿날 아침 장호원에서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목표는 충주입니다. 40 km입니다. 폭염주의보로 낮에는 활동하지 말라는 문자가 떴습니다. 오늘도 점심을 얻어 먹지 못 하였습니다. 6명이 예수님을 생각하며 걷자고 이를 악물고 걸었습니다. 시원한 에어컨을 키고 달리는 창안에 있는 이들이 부러웠습니다. 길거리 옆에 60대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내가 대원들에게 말했습니다.
“저 할머니에게 밥 좀 얻어 와요.”
한 명이 말했습니다.
“할머니 찬 밥 남은 것있으면 좀 주세요.”
할머니가 거지같은 우리 6명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다 떨어졌어.”
보기좋게 거절당하였습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한 두 명에게는 밥을 주는 데 6명 정도면 밥주기가 부담스럽다는 것입니다.
지쳐서 걷고 있을 때 앞쪽에 차 한 대가 깜박이 등을 켜고 섰습니다. 우리는 고장난 차인줄 알고 신경쓰지 않고 걸었습니다. 차 앞으로 갔을 때 그 안에 누가 타고 있는지 알았습니다. 같이 걷고 있는 이회학 장로 아내 윤 권사와 친구 두 명 모두 세 명이 우리를 보고 울고 있었습니다. 눈이 시뻘겋게 달아 올랐습니다. 우리는 마주보고 한참 같이 울었습니다. 거지같은 모습, 지쳐 있는 모습을 보고 “왜 저렇게 고생하나?”하고 측은하여 울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같이 울었습니다. 서로 말 못하고 멍하니 울다가 정신을 차렸습니다. 길 옆에 앉아 아이스크림, 빵, 수박, 바나나 모두 싫컷 먹었습니다. 우리를 찾아 차를 타고 헤메다가 만났다는 것입니다. 밤 10시까지 40 km를 걸었습니다. 보름달이 우리를 시원하게 하여 주었습니다.
허리에 찬 만보계를 만지다가 떨어졌습니다. 허리를 굽혀 줍기조차 싫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버리고 싶었습니다. 언젠가는 앞에 금덩어리가 떨어져 있어도 줍기 어려운 때가 분명히 올 것입니다. 다 필요없이 빈 손으로 주님앞으로 가야 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삼일째 충주부터 수도원까지 26km를 걸었습니다. 모두 100km 가량을 걸은 것입니다. 마지막 4km 남은 길은 한 걸음이 천근을 들어 옮기는 것같이 힘들었습니다. 그늘에 조금 쉬었다가 다리를 옮기려면 기중기로 발을 드는 것처럼 무거웠습니다. 그러나 다 왔다는 소망이 발걸음을 떨어지게 하였습니다. 드디어 목적지 수도원에 도착하였습니다. 정문을 들어서며 우리는 모두 얼싸안고 울었습니다. 드디어 해냈다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군대에서도 100km 행군, 복중 행군은 금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땀으로 흠뻑 젖은 옷을 입은 채로 둘러 앉아 폐회 예배를 감격스럽게 드렸습니다. 내가 간단하게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본문은 디모데 후서였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과정이 힘들었기에 결과가 소중하였습니다. 자아가 깨어지는 값진 쳬험을 한 보람으로 모두의 입에서는 환호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환호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지 않았다면 순간순간 이길 수 없었습니다. 동료들을 향한 감사였습니다. 나혼자 걸었다면 포기하였을 지도 모릅니다. 같이 힘을 준 동료들에게 감사하였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리는 예배였습니다. 이런 예수님 체험, 수도사 체험, 제자 체험, 내려놓음 체험, 극기 체험 과정을 겪었습니다. 같이 뜰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수도원 벽에 기념으로 걸어 놓기로 하였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에서 본 두 수도원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야곱의 우물 수도원(The well of Jacob Monastery)
예루살렘에서 세겜, 사마리아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날씨가 워낙 더워 시원할 때 보려고 일찍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의외의 사건이 생겼습니다. 도중에 뒷바퀴에 펑크가 났습니다. 하마터면 사고가 날 뻔 했습니다. 다행히 앞뒤로 차가 없었습니다. 난감했습니다. 이채윤 사모가 도로가 아스팔트위에 무릎 꿇고 앉아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조금 후 경찰차가 왔습니다. 펑크가 났다고 말했더니 잠깐 점검하더니 말했습니다.
“5분 후에 차를 보내겠습니다.”
조금 후 정말 경찰차가 왔습니다. 총을 메고 권총까지 차고 있었습니다. 살벌한 경찰이었습니다. 그가 모든 조치를 다 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총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작업을 했습니다. 대단했습니다. 다 고친 후에 사례를 했더니 극구 사양했습니다. 그러나 억지로 들려 보냈습니다. 그는 기분 좋게 떠났습니다.
예정보다 조금 늦게 야곱의 우물 수도원에 도착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물가의 여인과 아름다운 대화를 나누셨던 그 우물을 중심으로 하여 수도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수도원장을 만나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여기 저기 안내해주었습니다. 수도사는 자기 혼자뿐이라고 했습니다. 75살인데 지금 35년째 이곳에서 수도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나에게 두 가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는 벽에 난 총탄 자국이었습니다. 그 총탄 자국을 보여주면서 말했습니다.
“이 곳은 온통 무슬림지역입니다. 공격이 심합니다. 그래서 무서워서 수도사들이 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혼자입니다. 전 원장은 그들이 잡아서 껍질을 벗겨 죽였습니다. 그리고 제 전임 원장도 잡아서 묶어 놓고 도끼로 목을 찍어 죽였습니다.”
총탄 자국을 보고 나서 우리를 데리고 조금 걸었습니다. 벽에 모자이크한 자기 얼굴 사진이 선명히 보였습니다. 그리고 관이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내가 죽으면 여기 들어갈 것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비장한 각오로 그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심각하게 관을 바라보자 다시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 죽게 되겠지요.”
우리 일행은 모두 야곱의 우물가로 갔습니다. 내가 두레박을 내렸습니다. 족히 30m는 내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우물 안은 어두워서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참 도르래를 돌렸습니다. 물 한 두레박이 올라왔습니다. 맑은 물이었습니다. 마셨습니다. 예수님이 마셨던 물입니다.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마셨습니다. 시원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우물가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3-14)
주님으로부터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받아 마시고 싶어졌습니다.
수도원을 나서며
온통 회교 지역에 이 수도원 하나가 복음을 지키며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수도원은 목숨을 걸고 복음을 지키는 간성이었습니다. 이 수도원마저 없어진다면 이 땅에 복음은 발붙일 곳이 없어질 것입니다. 관을 만들어놓고 죽음을 각오하고 복음을 지키고 있는 원장님에게 경의를 표하하였습니다. 15억 명의 무슬림은 마흐디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흐디는 무슬림의 재림 메시아입니다. 무슬림의 메시아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마흐다는 무슬림의 재림 메시아입니다.
2. 그는 무함마드의 후손이며 마함마드의 이름을 잇게 될 것입니다.
3. 마흐다는 매우 경건한 사람입니다.
4. 지구상에 혼란과 고통과 전쟁의 시기후에 나타날 것입니다.
5. 그는 세계를 다스릴 것입니다.
6. 그는 종교를 통일하고 경제를 통일하고 세계를 통일할 것입니다.
7. 그는 백마를 타고 올 것입니다.
8. 그는 7년 평화 협정을 맺을 것입니다.
9. 그는 자기를 반대하는 자에게 폭정을 가할 것입니다.
10. 그는 세계 통일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할 것입니다.
11. 그는 세계 혁명을 이끌어 세계를 제패할 것입니다.
12. 그는 예루살렘에 세계 이슬람 본부를 세울 것입니다.
13. 그는 지구상에서 종교로는 이슬람만 믿게 할 것입니다.
14. 그는 성경을 해석하여 유대인을 논박하는 데 사용할 것입니다.
15. 그는 갈릴리 근처에서 법궤를 찾아 예루살렘에 둘 것입니다.
16. 그는 알라로부터 초자연적인 능력을 받아 바람과 비와 곡식을 다스릴 것입니다.
17. 그는 막대한 부를 가지고 분배할 것입니다.
18. 그는 지구상에 모든 사람들에게 환영받으려고 할 것입니다.
19. 그는 독보적인 정신적, 정치적, 군사적 지도자가 될 것입니다.
20. 그는 충성스러운 무슬림을 데리고 유대인들에게 최후 살육을 감행할 것입니다.
이것이 무슬림의 신조입니다. 이러한 환란과 핍박 속에서 오늘도 살아있어야 살았다는 각오를 가지고 살아가는 야곱의 우물 수도원장님을 위해 기도하고 돌아섰습니다.
모세 한 사람 때문에 하나님은 200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먹이셨습니다.
5병2어를 내놓은 어린아이 한 사람 때문에 5천명이 광야에서 배불리 먹고 12바구니가 남았습니다.
아담 한 사람 때문에 온 인류가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한 분 때문에 온 인류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요나 한 사람 때문에 니느웨성 안의 모든 사람들이 생명을 구했습니다.
엘리야 한 사람의 기도가 3년 6개월 동안의 가뭄을 그치게 했습니다.
야곱의 우물 수도원장 한 분 때문에 이 지역에 복음의 뿌리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스라라엘은 이슬람에 적대국가입니다. 이슬람은 반미, 반유대교, 반 기독교이기 때문입니다. 잔인하고 공격적인 이슬람과 혼자 맞서 영적 전투를 하고 있는 수도사님이 존경스러웠습니다.
가르멜 갈멜산 수녀원(Calmelite Monastery)
하이파 가르멜 수녀원을 찾았습니다. 무조건 들어갔습니다. 인터넷으로 위치를 알아 네비게이션으로 찾아갔습니다.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2시간 이상을 찾아 갔습니다. 그냥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계속 문을 두드렸습니다. 드디어 문이 열렸습니다. 나이많은 수녀님이 문을 열어주면서 상냥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welcome!”
나도 샬롬으로 인사 답례를 하였습니다.
뜻밖에도 한국 수녀님이 계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수녀님 21명이 14개국에서 파송되어 같이 동거하고 있는 봉쇄 수도원이었습니다. 쥬리아나(Sr. Juliana)라고 이름을 바꾼 한국 수녀를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습니다. 이스라엘에 들어와 91 곳의 수도원을 둘러 보면서 처음으로 한국 여자 수도사를 만나니까 그 반가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 분도 한국인인 우리를 만나니까 너무나 반가워했습니다. 봉쇄라 그 분은 나오지 못하고 감옥 창살 같은 안에 서계셨습니다. 우리는 밖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오순도순 따스한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언제 이스라엘에 오셨나요?”
“1995년에 왔으니까 20년이 넘었습니다.”
“울타리 밖에 안 나가시나요?”
“물론이지요. 그러나 병원에 가야할 상황에는 나가요. 그리고 부모님 상을 당하면 나가지요. 그리고 가르멜 수녀들끼리 1년에 한번, 때로는 3년에 한번 모임이 있습니다. 그 때는 밖으로 나가지요.”
“이 곳에 가르멜 수도원이 세워지게 된 이유가 있나요?”
“그렇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이곳에서 수도했다는 기록이 있어서 이곳에 수도원이 세워졌습니다. 엘리야의 영성을 본받으려는 수도입니다. 예언자 엘리야가 숨어 지내면서 따르는 이들에게 가르친 곳입니다. 그래서 엘리야의 영성을 가르치는 수도원입니다.”
“하루 일과는 어떻게 하시나요?”
“6시에 일어나 한 시간 묵상 개인기도, 그리고 한 시간 예배, 아침식사하고 개인적으로 맡겨준 일을 11시 30분까지 합니다. 기도시간을 갖고, 점심식사 후 기도 그리고 독서, 교부들에 대한 연구 그리고 잠깐 잡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잠깐의 낮잠이 필요해요. 그리고 저녁식사 후 개인 묵상과 마침기도를 하고 나면 9시 30분이 됩니다. 모든 것을 마칩니다.”
“수녀님은 왜 봉쇄를 선택하셨나요?”
“하나님께 기도에 전념하려면 떠나야해요. 아브라함처럼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떨어진 곳에 가야 하나님과만 지낼 수 있습니다. 세상에 대해 나 몰라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세상을 책임지는 자세로 세상을 위해 기도합니다.”
“가르멜 수녀원은 어떤 곳인가요?”
“가르멜은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뜻입니다. 프랑스에서 시작되었기에 가르멜 수녀원 공통 언어는 불어입니다. 불어를 모르면 들어올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수녀원은 14개국에서 21명의 수녀들이 와서 같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실례되는 질문인데요. 전혀 다른 여자들이 같이 살면서 싸우거나 갈등관계를 가질 때는 없나요?”
“왜요? 우리도 할 것 다해요. 싸우지요. 그러나 저녁 기도회 시간에 회개하고 나면 모든 것을 풀어요. 그리고 새 출발하지요. 우리들은 수녀지만 세상 사람이 하는 것 다 해요. 다만 하루가 지나기 전에 다 풀지요. 넘어졌다 일어났다하면서 살지요.”
“TV를 보시나요?”
“우리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아요. 대신 하늘비전을 보지요.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매일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요.”
“한국 고향은요?”
“태어나기는 전라도 고흥에서 났고, 살기는 서울에서 살았습니다.”
“한국에 21년 동안 한 번도 안 가셨어요?”
“꼭 한번 갔고요. 가족들이 꼭 한번 이 곳에 왔고요.”
“수도원 운영은 어떻게 하나요?”
“가난하지요. 우리 수녀들이 기념품을 만듭니다. 꿀도 만들고 농사도 짓고 간단한 스카프도 만들어 팝니다. 그것으로 유지하려니까 어렵습니다.”
그는 말을 잠간 멈추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판매하는 물건들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천주교인들에게 필요한 것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물건들이었습니다. 수녀님이 들어간 동안 우리는 헌금을 준비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행복해야 돼요. 행복하려면 기도하면 돼요. 기도하면 기도하는 내가 행복해지니까요. 그리고 책을 많이 읽으세요. 좋은 책이 얼마나 많은지 놀라울 정도예요.”
“이 수도원은 언제 세워졌나요?”
“1892년에 세워졌습니다.”
“그러면 100년도 넘었으니 봉쇄 수도하시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수녀님들도 많겠네요?”
“많습니다.”
“그러면 한 곳에 모시나요?”
“그래요. 평생 나가지 않고 살면서 수도하던 수녀들이 죽으면 같이 묻습니다. 가르멜 공동묘지가 있습니다. 죽어서도 같이 있게 됩니다.”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사세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요. 우리는 작은 빛일 뿐이지요.”
“가르멜 수녀원은 한국에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세계적으로 퍼져 있나요?”
“그래요. 세계적으로 126국에 850개의 수도원이 있습니다. 한국에도 1939년 마리 마들렌 수녀가 처음 입국하면서 가르멜 수도원이 시작되었습니다. 서울, 인천, 대구, 광주, 마산 5곳에 가르멜 수녀원이 설립되어 있습니다. 1154년 프랑스 베르톨더스가 시작했습니다.”
“봉쇄 수도원 안에 있으면서 답답하지 않으세요?”
“많은 사람들이 제일 궁금해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너무 너무 행복해요. 이 행복을 나가서 막 전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인생은 티끌이요. 욕심 부리지 말아요.”
가르멜 수녀원을 나서며
세상에는 이렇게 사는 이들이 많은 것을 보면서 새로운 세계를 보는 것 같아 기뻤습니다. 한국인들이 이런 곳에까지 와서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개신교가 이런 면에 너무 약한 것을 알고 슬퍼지기도 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여인들이 이런 수도원을 세워 거룩하게 살아가는 단체가 많았습니다.
가르멜 여자 수도원은 1154년에 생겨서 거의 1000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 수녀원이 가르멜 수녀원 총본부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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