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의 길
요7:1-13
2026년 7월 15일(수)
기동찬
1.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2.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3.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4.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5.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6.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7.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8.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9.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
10.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가시니라
11.명절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
12.예수에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한다 하나
13.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에 대하여 말하는 자가 없더라.
하나님, 감사합니다.
순종의 길을 걸어가시고 계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며 감사합니다.
1.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하나님,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인들은 죽이려 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오직 성부 하나님의 뜻에만 초점을 맞추어 살며 사역하셨다는 의미인 줄 믿습니다. 반대로 저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다는 것은, 저들이 그만큼 성부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져 있다고 하는 가를 보여 주는 비극입니다.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창조주를 죽이려했던 죄인의 완악함을 봅니다.
그러나 주님은 죽음이 두려워 유대에서 다니지 아니하시고 갈릴리에서 다니신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아무리 예수님을 죽이려고 해도 예수님이 허락하시지 아니하시면 저들은 예수님의 옷자락 하나도 손 댈 수 없습니다.
실제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잡고자 했지만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므로”(요7:30),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그저 철저히 성부 하나님의 때에 맞추어 순종의 걸음을 걷고 계셨을 뿐입니다. 성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역의 길 뒤편에 남겨진 인간적인 외로움과 고독을 주님의 모습을 통해 발견 발견합니다. 죄인인 저의 죄 문제를 해결 해 주시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온갖 수치를 당하시면서도, 묵묵히 성부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순종의 시간표를 따라 걸어가고 계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심은 단순히 십자가에서 죽는 것 자체가 아니라, 성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제자들을 훈련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확장해 나가시는 것을 완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직은 갈릴리에서 눈 먼자를 뜨게 하고, 가난한 자에게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제자들을 세우시는 사역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 사명을 마치기 전에 맞이하는 죽음은 성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기에, 주님은 지혜롭게 갈릴리로 사역의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그리고 훗 날 십자가에서 마침내 “내가 다 이루었다.”(요19:30)고 선언하시며 기꺼이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지혜로운 절제는 비겁함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순종임을 선포합니다. “때가 되지 않아서” 묵묵히 걸음을 늦추시고 계시는 주님을 경배합니다.
성부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순종의 길을 걸어가시고 계시는 주님의 심정을 친 동생들도 알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동생들은 세상의 성공 공식을 들이밀며 “여기에 묻혀 있지 말고 유대로 올라가서 이름을 나타내라.”(3,4절)고 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영적으로 이해받지 못하셨을 때 주님께서 느끼셨을 쓸쓸함은 얼마나 깊으셨을지요. 그러머에도 주님의 마음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6절) 라고 말씀하심으로 요동함이 단단하셨니다.
형제들을 먼저 보낸 후, 주님은 홀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가시니라.”(10절). 은밀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걸어가시는 주님의 그 은밀한 발걸음 속에서, 죄인을 향한 사랑 때문에 그 외로운 무게를 기꺼이 감내하시는 단호한 사랑을 봅니다.
막상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무리들은 참된 메시아를 눈 앞에 두고도 예수님에 대하여 ‘좋은 사람이다.’ 아니다 ‘미혹하는 사람이다.’ 라고 수군거리고 있었습니다.
12.예수에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한다 하나
13.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에 대하여 말하는 자가 없더라.
인류의 대속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아를 눈 앞에 두고도 깨닫지 못하는 영적인 소경들을 보시는 주님의 심정은 슬픔과 애통함으로 가득하셨을 것입니다.
자신을 미워함으로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들, 저들을 향한 주님의 심정은 슬픔과 긍휼의 마음을 품으신 줄 믿습니다.
사람들이 초막절 축제의 흥겨움에 취해 있을 때, 주님께서는 은밀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성부 하나님의 뜻을 향해서 순종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주님의 이 고독한 순종이 있었기에 오늘 저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음을 선포합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라고 선포해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하루도 주님의 손에 올려 드리며
제 삶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Declaration
초막절의 화려한 축제와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오직 성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I praise the Lord who walked the path of obedience without wavering, following only the will of God the Father, even amidst the splendid festival of Tabernacles and the threat of death.
첫댓글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