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은 도계골(道溪洞)에 살았다. 곧장 태복산 밑에 닿으면, 오래 된 빌라가 서 있고, 8층에 집이 있는데, 두어 칸 초가는 비바람을 막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전생은 만화책과 애니 감상만 좋아하고, 그의 처가 남의 바느질 품을 팔아서 입에 풀칠을 했다.
하루는 그 처가 몹시 배가 고파서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평생 고시를 보지 않고 공부도 안 합니까?”
전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 독서를 익숙히 하지 못하였소.”
“그럼 공장 일이라도 못 하시나요?”
“공장 일은 본래 배우지 않았는 걸 어떻게 하겠소?”
“그럼 장사는 못 하시나요?”
“장사는 밑천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소?”
처는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밤낮으로 만화책을 읽더니 기껏 ‘어떻게 하겠소?’ 소리만 배웠단 말씀이오? 공장 일도 못 한다. 장사도 못 한다면, 도둑질이라도 못 하시나요?”
전생은 읽던 책을 덮어놓고 일어나면서,
“아깝다. 내가 당초 글읽기로 십 년을 기약했는데, 인제 칠 년인걸…….”
하고 획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전생은 거리에 서로 알 만한 사람이 없었다. 바로 네이버 지식인에 질문을 올렸다.
“어느 대출업자가 가장 대출을 잘 해주나요?”
리x코x를 말해 주는 이가 있어서, 전생이 곧 리x코x에 전화를 걸었다.. 전생은 상담원 변씨에게 말했다.
“내가 집이 가난해서 무얼 좀 해 보려고 하니, 10억원을 대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변씨는
“그러시오.”
하고 당장 10억원을 내주었다. 전생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전생이 전화를 끊자, 다른 상담원들이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저이를 아시나요?”
“모르지.”
“아니, 이제 하루 아침에, 평생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10억원을 그냥 내던져 버리고 성명도 묻지 않으시다니, 대체 무슨 영문인가요?”
변씨가 말하는 것이었다.
“이건 너희들이 알 바 아니다. 대체로 남에게 무엇을 빌리러 오는 사람은 으레 자기 뜻을 대단히 선전하고, 신용을 자랑하면서도 말을 중언부언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 객은 형색은 허술하지만, 말이 간단하고, 목소리가 대담한 것으로 보아, 재물이 없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해 보겠다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닐 것이매, 나 또한 그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다. 안 주면 모르되, 이왕 10억원을 주는 바에 성명은 물어 무엇을 하겠느냐?”
전생은 만 냥을 입수하자, 다시 자기 집에 들르지도 않고 바로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은 우리 나라 물류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만화책을 모조리 두 배의 값으로 사들였다. 전생이 만화책을 몽땅 쓸었기 때문에 온 나라가 만화책을 못 팔 형편에 이르렀다. 얼마 안 가서, 허생에게 두 배의 값으로 만화책을 팔았던 상인들이 도리어 열 배의 값을 주고 사 가게 되었다. 전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10억으로 온갖 만화책의 값을 좌우했으니, 우리 나라의 형편을 알 만하구나.”
그는 다시 DVD 따위를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서 피겨를 죄다 사들이면서 말했다.
“몇 해 지나면 나라 안의 덕후들이 DDR을 하지 못할 것이다.”
전생이 이렇게 말하고 얼마 안 가서 과연 피겨 값이 열 배로 뛰어올랐다.
전생은 늙은 사공을 만나 말을 물었다.
“바다 밖에 혹시 사람이 살 만한 빈 섬이 없던가?”
“있습지요. 언젠가 풍파를 만나 서쪽으로 줄곧 사흘 동안을 흘러가서 어떤 빈섬에 닿았습지요. 아마 사문(沙門)과 장기(長崎)의 중간쯤 될 겁니다. 꽃과 나무는 제멋대로 무성하여 과일 열매가 절로 익어 있고, 짐승들이 떼지어 놀며, 물고기들이 사람을 보고도 놀라지 않습니다.”
그는 대단히 기뻐하며,
“자네가 만약 나를 그 곳에 데려다 준다면 함께 부귀를 누릴 걸세.”
라고 말하니, 사공이 그러기로 승낙을 했다.
드디어 바람을 타고 동남쪽으로 가서 그 섬에 이르렀다. 전생은 높은 곳에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보고 실망하여 말했다.
“땅이 천 리도 못 되니 무엇을 해 보겠는가? 토지가 비옥하고 물이 좋으니, 단지 부가옹(富家翁)은 될 수 있겠구나.”
“텅 빈 섬에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대체 누구와 더불어 사신단 말씀이오?”
사공의 말이었다.
“덕이 있으면 사람이 절로 모인다네. 덕이 없을까 두렵지, 사람이 없는 것이야 근심할 것이 있겠나?”
이 때, 변산(邊山)에 수천의 덕후(德侯)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각 지방에서 경찰을 동원하여 수색을 벌였으나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덕후들도 감히 나가 활동을 못 해서 배고프고 곤란한 판이었다. 허생이 덕후의 산채를 찾아가서 우두머리를 달래었다.
“천 명이 천 냥을 빼앗아 와서 나누면 하나 앞에 얼마씩 돌아가지요?
“일 인당 한 냥이지요.”
“모두 아내가 있소?”
“없소.”
“논밭은 있소?”
덕후들이 어이없어 웃었다.
“땅이 있고 처자식이 있는 놈이 무엇 때문에 괴롭게 덕후가 된단 말이오?”
“정말 그렇다면, 왜 아내를 얻고, 집을 사고, 차를 사서 일을 하며 지내려 하지 않는가? 그럼 오덕후 소리도 안 듣고 살면서, 집에는 부부의 낙(樂)이 있을 것이요, 돌아다녀도 욕 먹을까 걱정을 않고 길이 의식의 요족을 누릴 텐데.”
“아니, 왜 바라지 않겠소? 다만 돈이 없어 못 할 뿐이지요.”
전생은 웃으며 말했다.
“덕후질을 하면서 어찌 돈을 걱정할까? 내가 능히 당신들을 위해서 마련할 있소. 내일 바다에 나와 보오. 붉은 깃발을 단 것이 모두 돈을 실은 배이니, 마음대로 가져가구려.”
전생이 덕후와 언약하고 내려가자, 덕후들은 모두 그를 미친 놈이라고 비웃었다.
이튿날, 덕후들이 바닷가에 나가 보았더니, 과연 전생이 300억원의 돈(이 든 사과박스)을 싣고 온 것이었다. 모두들 대경(大驚)해서 전생 앞에 줄이어 절했다.
“오직 장군의 명령을 따르겠소이다.”
이에, 덕후들이 다투어 사과박스를 짊어졌으나, 아무도 사과박스를 지지 못했다.
“너희들, 힘이 한껏 사과박스 하나도 못 지면서 무슨 덕후질을 하겠느냐? 인제 너희들이 양민(良民)이 되려고 해도, 인터넷에 덕후라는 소문이 쫙 퍼졌으니, 갈 곳이 없다. 내가 여기서 너희들을 기다릴 것이니, 한 사람이 1000만원씩 가지고 가서 여자 하나, 차 한 대를 거느리고 오너라.”
잔생의 말에 덕후들은 모두 좋다고 흩어져 갔다.
전생은 몸소 이천 명이 1 년 먹을 양식을 준비하고 기다렸다. 덕후들이 빠짐없이 모두 돌아왔다. 드디어 다들 배에 싣고 그 빈 섬으로 들어갔다. 전생이 덕후를 몽땅 쓸어 가서 나라 안에 시끄러운 일이 없었다.
그들은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대[竹]를 엮고 울을 만들었다. 땅 기운이 온전하기 때문에 백곡이 잘 자라서, 한 해나 세 해만큼 걸러 짓지 않아도 한 줄기에 아홉 이삭이 달렸다. 3 년 동안의 양식을 비축해 두고, 나머지를 모두 배에 싣고 나가사키로 가져가서 팔았다. 그 지방이 한참 흉년이 들어서 구휼하고 은 백만 냥을 얻게 되었다.
전생이 탄식하면서,
“이제 나의 조그만 시험이 끝났구나.”
하고, 이에 남녀 이천 명을 모아 놓고 말했다.
“내가 처음에 너희들과 이 섬에 들어올 때엔 먼저 부(富)하게 한 연후에 따로 문자를 만들고 의관(衣冠)을 새로 제정하려 하였더니라. 그런데 땅이 좁고 덕이 없으니, 나는 이제 여기를 떠나련다. 다만, 아이들을 낳거들랑 오른손에 숟가락을 쥐고, 하루라도 먼저 난 사람이 먼저 먹도록 양보케 하여라.”
다른 배들을 모조리 불사르면서,
“가지 않으면 오는 이도 없으렷다.”
하고 돈 500억원을 바다 가운데 던지며,
“바다가 마르면 주워 갈 사람이 있겠지. 1000억원은 우리 나라에도 용납할 곳이 없거늘, 하물며 이런 작은 섬에서랴!”
했다. 그리고 글을 아는 자들을 골라 모조리 함께 배에 태우면서,
“이 섬에 화근을 없애야 되지.”
했다.
전생은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난하고 의지없는 사람들을 구제했다. 그러고도 돈이 100억원이 남았다.
“이건 리x코x에 갚을 것이다.”
전생이 가서 변씨를 보고
“나를 알아보시겠소?”
하고 묻자, 변씨는 놀라 말했다.
“그대의 안색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으니, 혹시 10억원을 실패 보지 않았소?”
전생이 웃으며,
“재물에 의해서 얼굴에 기름이 도는 것은 당신들 말이오. 10억원이 어찌 도(道)를 살찌게 하겠소?”
하고, 100억원을 변씨에게 내놓았다.
“내가 하루 아침의 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글읽기를 중도에 폐하고 말았으니, 당신에게 10억을 빌렸던 것이 부끄럽소.”
변씨는 대경해서 일어나 절하여 사양하고, 십분의 일로 이자를 쳐서 받겠노라 했다. 전생이 잔뜩 역저을 내어,
“당신은 나를 오덕후로 보는가?”
하고는 소매를 뿌리치고 가 버렸다.
변씨는 가만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전생이 태복산 밑으로 가서 조그만 빌라로 들어가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한 늙은 할미가 우물 터에서 빨래하는 것을 보고 변씨가 말을 걸었다.
“저 조그만 빌라가 누구의 집이오?”
“전 생원 댁입지요. 가난한 형편에 만화와 애니만 좋아하더니, 하루 아침에 집을 나가서 5 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으시고, 시방 부인이 혼자 사는데, 집을 나간 날로 제사를 지냅지요.”
변씨는 비로소 그의 성이 전씨라는 것을 알고, 탄식하며 돌아갔다.
이튿날, 변씨는 받은 돈을 가지고 그 집을 찾아가서 돌려 주려 했으나, 전생은 받지 않고 거절하였다.
“내가 부자가 되고 싶었다면 100억원을 버리고 10억원을 받겠소? 이제부터는 당신의 도움으로 살아가겠소. 당신은 가끔 나를 와서 보고 양식이나 떨어지지 않고 옷이나 입도록 하여 주오. 일생을 그러면 족하지요. 왜 재물 때문에 정신을 괴롭힐 것이오?”
변씨는 전생을 여러 가지로 권유하였으나, 끝끝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변씨는 그 때부터 전생의 집에 양식이나 옷이 떨어질 때쯤 되면 몸소 찾아가 도와 주었다. 전생은 그것을 흔연히 받아들였으나, 혹 많이 가지고 가면 좋지 않은 기색으로,
“나에게 재앙을 갖다 맡기면 어찌하오?”
하였고, 혹 술병을 들고 찾아가면 아주 반가워하며 서로 술잔을 기울여 취하도록 마셨다.
이렇게 몇 해를 지나는 동안에 두 사람 사이의 정의가 날로 두터워 갔다. 어느 날, 변씨가 5 년 동안에 어떻게 1000억원이나 되는 돈을 벌었던가를 조용히 물어 보았다. 전생이 대답하기를,
“그야 가장 알기 쉬운 일이지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매니아들의 층이 얇고, 시장도 빈약한데다 '만화는 애들것이다'라는 편견이 팽배해 온갖 만화가 나오자마자 거의 바로 사장되지요. 무릇, 1억원은 적은 돈이라 한 가지 작품을 독점할 수 없지만, 그것을 열로 쪼개면 1000만원이 열이라, 또한 열 가지 물건을 살 수 있겠지요. 단위가 작으면 굴리기가 쉬운 까닭에, 한 물건에서 실패를 보더라도 다른 아홉 가지의 물건에서 재미를 볼 수 있으니, 이것은 보통 이(利)를 취하는 방법으로 조그만 장사치들이 하는 짓 아니오? 대개 10억원을 가지면 족히 한 가지 작품을 독점할 수 있기 때문에, 만화면 만화 전부, 비디오면 비디오 전부, DVD면 DVD를 전부, 마치 총총한 그물로 훑어 내듯 할 수 있지요. TV판 중에 한 가지를 슬그머니 독점하고, 극장판 중에 슬그머니 하나를 독점하고, OVA 중에 슬그머니 하나를 독점하면, 한 가지 작품이 한 곳에 묶여 있는 동안 모든 덕후들이 고갈될 것인데, 이는 백성을 해치는 길이 될 것입니다. 후세에 당국자들이 만약 나의 이 방법을 쓴다면 반드시 나라를 병들게 만들 것이오.”
“처음에 내가 선뜻 10억을 대출해 줄 줄 알고 찾아와 청하였습니까?”
전생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당신만이 내게 꼭 빌려 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 능히 10억을 지닌 사람치고는 누구나 다 주었을 것이오. 내 스스로 나의 재주가 족히 1000억원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운명은 하늘에 매인 것이니, 낸들 그것을 어찌 알겠소? 그러므로 능히 나의 말을 들어 주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라, 반드시 더욱더 큰 부자가 되게 하는 것은 하늘이 시키는 일일 텐데 어찌 주지 않았겠소? 이미 10억을 빌린 다음에는 그의 복력에 의지해서 일을 한 까닭으로, 하는 일마다 곧 성공했던 것이고, 만약 내가 사사로이 했었다면 성패는 알 수 없었겠지요.”
변씨가 이번에는 딴 이야기를 꺼냈다.
“방금 정부 당국자들이 수십년동안 일본애니에 당했던 치욕을 씻어 보자고 하니, 지금이야말로 지혜로운 선비가 팔뚝을 뽐내고 일어설 때가 아니겠소? 선생의 그 재주로 어찌 괴롭게 파묻혀 지내려 하십니까?”
“ 어허, 자고로 묻혀 지낸 사람이 한둘이었겠소? 우선, 박무직 같은 분은 세계적으로 대성할 인물이었건만 매장당했고, 윤인완과 양영일 같은 분은 극장판을 제작할 만한 재능이 있었건만 저 섬나라에서 소요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의 집정자들은 가히 알 만한 것들이지요. 나는 장사를 잘 하는 사람이라, 내가 번 돈이 족히 구왕(九王)의 머리를 살 만하였으되 바닷속에 던져 버리고 돌아온 것은, 도대체 쓸 곳이 없기 때문이었지요.”
변씨는 한숨만 내쉬고 돌아갔다.
변씨는 본래 국무총리와 잘 아는 사이였다. 총리가 변씨에게 민간에 혹시 쓸 만한 인재가 없는가를 물었다. 변씨가 전생의 이야기를 하였더니, 총리는 깜짝 놀라면서,
“기이하다. 그게 정말인가? 그의 이름이 무엇이라 하던가?”
하고 묻는 것이었다.
“소인이 그분과 상종해서 3 년이 지나도록 여태껏 이름도 모르옵니다.”
“그인 이인(異人)이야. 자네와 같이 가 보세.”
밤에 총리는 경호원들도 다 물리치고 변씨만 데리고 걸어서 전생을 찾아갔다. 변씨는 총리를 문 밖에 서서 기다리게 하고 혼자 먼저 들어가서, 전생을 보고 총리가 몸소 찾아온 연유를 이야기했다. 전생은 못 들은 체하고,
“당신 차고 온 술병이나 어서 이리 내놓으시오.”
했다. 그리하여 즐겁게 술을 들이켜는 것이었다. 변씨는 총리를 밖에 오래 서 있게 하는 것이 민망해서 자주 말하였으나, 전생은 대꾸도 않다가 야심해서 비로소 손을 부르게 하는 것이었다.
총리가 방에 들어와도 전생은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았다. 총리는 몸둘 곳을 몰라하며 나라에서 어진 인재를 구하는 뜻을 설명하자, 전생은 손을 저으며 막았다.
“밤은 짧은데 말이 길어서 듣기에 지루하다. 너는 지금 무슨 직위에 있느냐?”
“국무총리요.”
“그렇다면 너는 나라의 신임받는 신하로군. 내가 와룡 선생(臥龍先生) 같은 이를 천거하겠으니, 네가 대통령께 아뢰어서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하게 할 수 있겠느냐?”
총리는 고개를 숙이고 한참 생각하더니.
“어렵습니다. 제이(第二)의 계책을 듣고자 하옵니다.”
했다.
“나는 원래 ‘제이’라는 것은 모른다.”
하고 전생은 외면하다가, 총리의 간청을 못 이겨 말을 이었다.
“너는 정부에 청하여 대여점을 폐쇄해서 만화가들에게 그 수익을 나누어 주게 할 수 있겠느냐?”
총리는 또 머리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어렵습니다.”
했다.
“이것도 어렵다, 저것도 어렵다 하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느냐? 가장 쉬운 일이 있는데, 네가 능히 할 수 있겠느냐?”
“말씀을 듣고자 하옵니다.”
“무릇, 천하에 대의(大義)를 외치려면 먼저 천하의 호걸들과 접촉하여 결탁하지 않고는 안 되고, 남의 나라를 치려면 먼저 첩자를 보내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는 법이다. 지금 일본이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제작국이어서,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그들의 작품을 선호해서 저들이 우리를 가장 믿는 터이다. 진실로 우리 자제들이 유학 가서 작품활동까지 하도록 허용해 줄 것 등을 간청하면, 저들도 반드시 자기네에게 친근하려 함을 보고 기뻐 승낙할 것이다. 그 중에 실력파들을 가려 뽑아 작품활동을 장려하고 더 넓은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걸작을 만든다면 한 번 천하를 뒤집고 국치(國恥)를 씻을 수 있을 것이다.”
총리는 힘없이 말했다.
“제작자들이 모두 조심스럽게 심의를 지키는데, 누가 12세 애니를 만들고 15세 애니를 만들려 하겠습니까?”
전생은 크게 꾸짖어 말했다.
“소위 YWCA란 것들이 무엇이란 말이냐? 친일파가 대부분인데 일본문화를 막겠다고 자칭하니 이런 어리석을 데가 있느냐? 대체 무엇을 가지고 편집이라 한단 말인가? 이제 세계로 나가기 위해 대작을 만들겠다 하면서, 그까짓 피 한방울을 아끼고, 또 장차 일본의 애니메이션의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경쟁해야 할 판국에 최소한의 노출도 보장하지 않고 딴에 예법이라고 한단 말이냐? 내가 세 가지를 들어 말하였는데, 너는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한다면서 그래도 신임받는 공무원이라 하겠는가? 신임받는 공무원이라는 게 참으로 이렇단 말이냐? 너 같은 자는 칼로 목을 잘라야 할 것이다.”
하고 좌우를 돌아보며 칼을 찾아서 찌르려 했다. 총리는 놀라서 일어나 급히 뒷문으로 뛰쳐나가 도망쳐서 돌아갔다.
첫댓글 이거 저한테 도움이 되는 글이네요... 그리고 이거 허생전을 모델로 했고 우리나라만화의실태를 알릴려고 하는이야기군요... 너무좋습니다.. 시간날때 계속읽도록 해야겠어요..
아무리 비유를 한다 해도 이건...;
왜요? 재밋잖습니까? 저는 이거보고 존내 웃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