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200〉
■ 가을에 (김명인, 1946~)
모감주 숲길로 올라가니
잎사귀들이여, 너덜너덜 낡아서 너희들이
염주 소리를 내는구나, 나는 아직 애증의 빚 벗지 못해
무성한 초록 귀때기마다 퍼어런
잎새들의 생생한 바람 소릴 달고 있다.
그러니 이 빚 탕감받도록
아직은 저 채색의 시간 속에 나를 놓아다오.
세월은 누가 만드는 돌무덤을 지나느냐, 흐벅지게
참꽃들이 기어오르던 능선 끝에는
벌써 잎 지운 굴참 한 그루
늙은 길은 산맥으로 휘어지거나 들판으로 비워지거나
다만 억새 뜻 없는 바람 무늬로 일렁이거나.
- 2010년 김명인 시선집 <아버지의 고기잡이> (휴먼앤북스)
*올해도 벌써 10월의 마지막날이 되었습니다. 만개한 정원의 국화들 사이로 굴참나무 잎새가 간간이 떨어지며, 가을이 깊어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군요.
그런데 토요일 밤에 들려온, 수많은 젊은이들의 푸르고 창창한 생명을 한순간에 앗아 가버린 이태원의 안타까운 사고 소식에 온 국민들은 크게 놀라서 할 말을 잃고, 침통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주말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을 바람에 흔들리는 고운 단풍의 모습이, 그래서 외려 쓸쓸함과 허무함을 더해주는 느낌입니다 그려.
이 詩는 늦가을 모감주나무 숲을 통해 담담하게 생을 마감하는 자연의 모습을 보고, 삶과 죽음의 이치를 다시금 깨닫는 작품입니다. 여기서 주 소재가 되는 ‘모감주나무’는, 마을 근처나 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로서 열매는 염주를 만드는 재료로 쓰이고 있어, 염주나무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시인은 모감주나무들로 가득한 가을 숲길을 거닐며, 싱싱하던 잎새가 고운 단풍으로 물들어 낙엽이 되어 떨어져 내리는 나무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삶을 다시 되돌아봅니다. 그러면서 여전히 애증의 빚을 벗지 못하고, 세상살이 속에서 번민하고 갈등하며 숨차게 보내는 자신을 포함한 인간의 삶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곱씹고 있군요.
낙엽이 시들어 떨어지는 모감주나무 숲은 곧, 소멸의 의미를 깨닫는 공간으로서 시인은 이를 통해 세상의 만물은 결국 소멸을 향해 가는 것이라는 자연의 이치를 깨달으며, 우리에게도 이를 전해주고 있군요.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