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는 아스테카의 동쪽인 멕시코 동남부와 과테말라, 벨리즈, 그리고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 일부 등 광활한 지역을 아울렀던 문명이다. 마야는 단일 국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며, 마야족이 분포하고 마야 언어, 문자, 달력 등 공통의 문화를 공유하였던 문화권을 의미한다.
이는 수메르가 문명의 이름이지, 나라의 이름은 아닌 것과 같다. 수메르 안에 우르나 우루크 같은 수많은 도시국가가 흩어져 있었던 것처럼, 마야 안에는 티칼이나 팔렝케나 칼라크물 같은, 수도와 위성도시와 그것들을 둘러싼 마을들을 지닌 많은 작은 나라들이 흩어져 있었다.
아스테카(메히까 제국)는 14세기 초에서 16세기 초 멕시코(메히코) 중앙고원에서 번성하였던 국가였다. 지금의 멕시코시티인 테노츠티틀란 섬에 정착한 후, 인근의 도시국가 테스코코, 틀라코판과 함께 삼각동맹을 맺고 멕시코 중앙고원의 중심국가로 성장했다. 이들은 활발한 정복 전쟁과 공물 시스템으로 멕시코 전역을 하나로 연결했다. 이 지역에는 기원전 1500년에서 기원후 1697년 마야의 마지막 도시가 에스파냐 군대에게 함락 당할 때까지 수많은 도시국가가 탄생하고, 또 사라졌다.
‘잉카’는 나라의 이름이 아니라 타완틴수유(또는 타완틴수요)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를 일컫는 말이다. 이는 동아시아 사람들이 쓰던 명칭인 ‘천자(天子)’나, 로마 제국 사람들이 쓰던 명칭인 ‘카이사르’와 같은 뜻이다.
잉카는 15세기에서 16세기 초까지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을 따라 길고 광활한 영토를 차지했다. 타완틴수유의 유민들이 오래전부터 전하거나 기억하던 이야기들에 따르면, 나라 자체는 15세기가 아니라 13세기 초에 세워졌고, 15세기 전반인 1438년에야 본거지를 나와 사방으로 정복 전쟁을 펼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들은 40,000㎞에 달하는 거대한 도로망을 구축하고 여기에 독특한 파발 시스템으로 거대한 영역을 효율적으로 통치했다. 험준한 산악지대여서 바깥세상의 적이 쳐들어오기가 힘들고, 지키기에는 편하고, 물을 얻을 수 있었고, 정교한 계단식 논에서는 여러 종류의 감자를 길렀다. 그리고 메소아메리카보다는 생산량이 작지만, 안데스에서도 옥수수를 길렀다.
1492년에 서유럽 사람들이 침략하기 전까지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결코 하나가 아니었고, 여러 갈래로 나뉘었으며, 그들은 서로 다른 나라, 서로 다른 문화, 서로 다른 문명을 지니고 서로 경쟁하거나 교류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하나의 큰 덩어리로 이해하는 사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같은 지역에 살면서 같은 인종이면 나라나 문화도 똑같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