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권의 배다른 여동생 ‘손상향’
최용현(수필가)
동오의 대도독 주유는 적벽대전 승리의 전리품이라 할 수 있는 형주를 유비가 먼저 점령하자, 조조군의 장수 조인이 지키고 있는 남군을 공략했다가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은 데다 남군마저 제갈량의 계책에 말려 유비에게 빼앗기고 울적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 무렵, 유비의 감부인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주유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손권의 여동생을 미인계로 써서 유비를 동오로 유인하여 형주와 맞바꾸든지, 아니면 아예 유비를 죽여 버리기로 계책을 세웠다. 유비의 두 부인 중 미부인은 전에 조운이 장판파에서 유비의 아들 아두를 구해올 때 스스로 우물에 뛰어들어 죽었지 않았는가.
오주 손권에게는 올해 스무 살 난 배다른 여동생이 하나 있었다. 그녀의 정확한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경극에서 손상향(孫尙香)으로 쓰고 있어 여기서도 그 이름을 그대로 쓰고자 한다. 손권의 아버지인 손견에게 두 자매가 시집을 왔는데, 손책과 손권을 낳은 언니는 이미 죽었고, 동생인 국태부인이 손상향을 낳은 것이다.
손상향은 어릴 때부터 무술 수련을 해서 무예가 뛰어났고 미모 또한 출중했는데, 그녀가 움직일 때나 잠잘 때는 항상 무장한 시녀 수십 명이 호위를 섰다고 한다. 그녀는 늘 천하에 이름난 영웅이 아니면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유비라면 누가 봐도 부족함이 없는 신랑감이 아니겠는가. 나이가 40대 중반이라 아버지뻘이긴 하지만.
이 혼사를 추진하러온 동오의 사신이 유비에게 손상향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국태부인께서는 신부가 너무 어려서 멀리 가는 것을 두려워 하니 아무쪼록 유황숙께서 동오로 와서 혼례를 올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비는 속으로 기꺼워하면서도 주유의 흉계가 있을까 두려웠는데, 제갈량이 비책이 있다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했으므로 새 장가를 들기로 했다.
유비는 조운과 병사 5백 명을 대동하고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동오에 도착하자마자 병사들은 제갈량의 계책대로 시내를 돌아다니며 혼숫감을 사들이며 유황숙이 손권의 누이와 결혼하기 위해 왔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이 소식은 들불처럼 번져서 삽시간에 동오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유비는 먼저 손책과 주유의 장인어른인 동오의 원로 교국로를 찾아가 인사를 했고, 교국로는 국태부인을 찾아가 유비가 이곳에 왔다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국태부인 몰래 추진하려다 불려가서 혼이 난 손권은 ‘주유의 계략일 뿐 혼사를 추진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지만, 국태부인은 ‘내일 감로사에서 유비를 만나보고 혼인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손권은 감로사에 도부수들을 매복시켜놓고 국태부인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유비를 죽이기로 했지만, 유비를 만나본 국태부인이 아주 만족해하는 바람에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감로사 기둥 뒤에 숨어서 유비를 훔쳐본 손상향도 흡족해했음은 물론이다. 유비가 어디 보통 인물인가.
마침내 유비와 손상향의 결혼식이 열렸고, 유비는 처가에서 꿈같은 신혼을 보내게 된다. 주유는 자신의 계책이 실패로 끝나자 이번에는 유비를 아예 동오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발을 묶기로 했다. 유비가 신혼재미에 빠져서 아예 딴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하면 자연히 형주 일을 잊어버릴 테니 그 사이에 기회를 보아 형주를 도모하기로 한 것이다.
손권은 유비에게 궁궐 같은 집을 새로 지어주었다. 그리고 자주 무희들을 불러서 잔치를 열고 황금과 패옥, 비단 등을 아낌없이 내주었다. 젊은 부인을 얻은 유비가 평생 처음 호사에 빠져 형주로 돌아갈 생각을 아예 잊어버린 듯하자, 조운은 위기감을 느끼고 제갈량이 준 계책을 쓰기로 했다.
조운은 유비를 찾아가 조조가 적벽에서 패한 복수를 위해 50만 대군을 이끌고 형주로 오고 있다고 말했다. 조조란 말에 정신이 번쩍 든 유비가 형주로 돌아가려 하자, 손부인도 따라가겠다고 했다. 며칠 후 설날, 유비는 국태부인에게 세배를 하면서 ‘이제 결혼을 했으니 강가로 나가 고향을 바라보며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싶다.’고 말해 허락을 받았다.
유비 부부는 조운과 함께 강으로 내달았다. 뒤늦게 유비 부부가 도망친 것을 알게 된 손권은 분을 참지 못하고 여러 장수들에게 유비와 손부인의 목을 베어 오라는 명을 내린다. 주유도 서성과 정봉에게 정병 3천을 주며 형주로 가는 길목을 차단하게 했다. 그러나 손부인의 용기와 기지로 유비일행은 무사히 형주로 돌아오는데 성공한다.
형주로 돌아온 유비는 조조와 손권 진영의 추이를 관망하면서 군무로 바쁜 일상을 보내게 된다. 이때 한중에 웅거하고 있던 장로가 서촉으로 쳐들어올 기미를 보이자 익주자사 유장은 유비에게 사신을 보내 도움을 청했다. 유비가 이에 응하여 군사를 이끌고 서촉으로 향했는데, 이때 손부인은 홀로 형주에 남게 되었다.
손권은 유비가 없는 틈을 노려 형주를 빼앗을 계획을 세웠으나 손부인이 형주에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손권은 ‘국태부인이 위독하니 유비의 어린 아들 아두를 데리고 속히 동오로 돌아오라.’는 편지를 밀정에게 주면서 손부인에게 전하게 했다. 아두를 데려오면 유비와 결전을 벌일 때 유용한 카드로 쓸 수가 있다. 아두와 형주를 바꿀 수도 있지 않은가.
손권의 편지를 본 손부인은 곧바로 동오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아두를 안고 밀정과 함께 형주성을 빠져나가 준비해온 배를 탔다. 이때 강가를 순찰하던 조운이 이들을 발견하고 추격에 나서서 손부인과 담판을 벌이지만, 결국 아두만 빼앗다시피 데려오고, 손부인은 그대로 동오로 돌아가고 만다.
정략결혼이 깨지고 말았다. 난세이다 보니 나이 많은 신랑은 늘 장거리 출장이고, 홀로 적국으로 시집 온 어린 신부는 이에 잘 적응하지 못한 것이 파경의 원인이 아니었나 싶다.
동오로 돌아간 손부인은 이릉대전이 벌어져 승승장구하던 촉군이 효정에서 육손의 화공에 대패하고 유비는 군중에서 전사했다는 잘못된 소식을 들었다. 수레를 몰고 강변으로 달려간 손부인은 서쪽을 바라보며 애통해하다가 강물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후세 사람들이 그곳에 사당을 지어 손부인을 기렸다고 한다.
첫댓글 세세한 설명으로 더욱더 흥미롭습니다
또 기대합니다
저의 취향으론 유비형?의 매력은 별로인데 ... ㅎㅎ
저도 샌님에다 꼰대 같은 유비는 별로입니다.
비상한 머리에 인간미도 있는 조조가 훨 매력이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