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곡사거리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 석현리
반곡산(258m)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안성리
반곡역(盤谷驛)
강원도 원주시 반곡동 154에 위치한 중앙선의 철도역이었다.
일제 강점기 말 소규모 지방 역사의 분위기를 잘 간직하고 있으며, 근대기에 수입된 서양 목조건축 기술을 엿볼 수 있고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임이 고려되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41년 개통.
-2007년부터 여객취급이 중지되었으나
-이 역 인근에 강원혁신도시가 조성되면서 출·퇴근 수요에 따라 2014.8.18부터 상, 하행 2회의 무궁화호가 다시 정차하였다. -2021.1.5에 서원주-제천 구간 복선 전철화가 완료되어 폐역되었다.
반곡저수지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반곡리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반곡리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신광면 반곡리
전라남도 함평군 학교면 금송리
반곡지
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반곡리
반교리(盤橋里)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에 있는 리(里).
아미산 중산간에 위치하며, 대부분 산지이다. 동쪽에는 반교천이 흐르고, 반교소류지가 있다.
백제시대에는 다산현, 조선시대에는 홍산현 내산면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손대리(遜臺里) 일부를 병합하고 반교리라 하여 부여군 외산면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로는 금반형, 도팍굴, 배나무골, 반교리(판교, 판교리)등이 있다. 금반형은 금반형의 명당이 있다 하여 붙여졌고, 도팍굴은 근처에 돌이 많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배나무골은 전에 배나무가 많이 있었다 하여 붙여졌다. 반교리는 널로 다리를 놓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반교리(盤橋里)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에 있는 법정리(里).
남으로 효정리와 이웃해 있는 낮은 언덕지형이다. 해발 고도 25m 안팎의 야산 아래에 마을이 들어서 있고, 마을 서쪽으로 5~8m 안팎의 평야 지대가 펼쳐져 있다. 야산에서는 주로 밭농사와 과수 농사가 이루어진다. 마교 위쪽에 마교제(馬橋堤)가 있어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조선 말기 김제군 모촌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임상리·마교리·용지리 일부, 개토면 구평리 일부를 병합하여 반교리(盤橋里)라 하고 김제군 용지면에 편입하였다.
-1995.1.1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용지면 반교리가 되었다.
마교, 임상의 두 자연마을이 있다. 마교는 마을의 지형이 매화꽃이 땅에 떨어지는 것 같다는 매화락지(梅花落地) 형국이라 하여 매교라 부르다가, 후에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것 같다는 갈마음수(渴馬飮水)의 명당이 있다 하여 마교라 부르게 되었다.
총 94가구에 266명[남자 123명, 여자 143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이 가운데 1가구가 빈집이다(2009년 11월 현재). 전체 면적은 1.16㎢로 논 0.22㎢, 밭 0.57㎢, 목장 7,383㎡, 대지 0.07㎢, 임야 0.17㎢이다. 마을 옆으로 지방도 735호선이 남북 방향으로 지난다. 자연마을로 마교(馬橋)와 임상(林上) 등이 있다.
마교는 임상 북쪽에 있는 마을로 마다리라고도 한다. 1750년경 오씨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고, 그 뒤로 안씨가 들어왔다. 처음에는 마을 지형이 매화꽃이 땅에 떨어지는 매화낙지(梅花落地) 형국이어서 매교(梅橋)라 하였다가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갈마음수(渴馬飮水) 형국의 명당이 있다 하여 마교로 고쳤다고 한다. 임상은 반교리에서 으뜸가는 마을이다. 옛날 마을 주위에 수풀이 울창하게 우거져 붙여진 이름인데, 지금은 숲도 사라지고 사람들도 많이 떠나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반교리(盤橋里)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에 있는 법정리(里).
이 지역은 구릉성 평야지대에 위치하며 구릉성 평야지대에 있으며 반교리 지역의 원반교에서 나오는 배는 특산물로 매우 유명하다. 산을 개간해 농지를 만들어 예전에 있었던 소나무길, 당산나무, 시암, 모정 등은 모두 없어진 상태이다. 구릉과 소나무 군락이 군데군데 산재해 있다.
반교리는 본래 전주군 이서면 지역을
-일제강점기인 1914년 지방행정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면서 반교리, 갈동리, 수청리, 갈산리 일부와 이남면의 옥정리 일부를 병합하고 ‘반교리’라 해서 전주군 이서면에 편입되었다.
-이후 1935년에 전주군이 전주부로 승격하면서 완주군 이서면으로 편입되었다.
-반교리는 2005년 혁신도시로 선정되었다.
반교리는 본래 전주군 이서면 지역으로 반석으로 놓은 다리가 있었으므로 독다리, 반석다리 또는 반교라 명명되었다.
반교리의 자연마을로는 갈동(葛洞. 시양골), 수청(水靑. 水淸), 원반교(元盤橋. 반석다리. 독다리), 홍개(洪開, 되미, 되메), 정농1리(定弄農園)와 정농2리가 있다. 갈동을 시양골이라고도 하는데 시양골은 시향(時享)을 지내는 골짜기라는 말이다. 갈마음수혈이 있다고 한다. 수청마을은 반교 동쪽에 있는 마을로 물이 맑아 생긴 이름이라 하며 원반교마을은 반석으로 놓은 다리가 있다. 다리로 인해 ‘반교리’라는 마을 이름이 생겼다. 홍개마을의 홍개를 또 되미라고 하는데 되미는 마을 뒷산 이름이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벼농사 외에 복분자, 배, 고추, 인삼, 담배 등을 재배하고 있다. 정농1마을은 반교리의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6.25 사변 당시 1952년 즈음에 38선을 넘어 북한에서 월남한 분들이 집단으로 정착한 황해도 출신 실향민 집성촌이다. 그래서 원래 마을 이름은 ‘정착농원’이었다. 벼농사를 지으면서 고구마, 포도, 배, 복숭아를 재배하고 있다.
반교리의 인구수는 2018년 6월 30일 기준 총 121세대, 248명[남 131명, 여 117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