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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년간 철도 노동자가 파업으로 열차 운행에 지장을 준 것은 불과 네 차례, 총 19일. 그나마 가장 최근에 있었던 2009년, 8일간의 파업은, 철도가 필수 공익 사업장이 되면서 파업 시에도 노조가 기본 운용 인력을 제공했기 때문에 실제로 열차가 운행을 멈추었던 기간은 지난 4천여 일 가운데 열흘 남짓이다. 강성으로 오해받는 철도노조의 역사는 사실 이렇다.
그런 철도노조에서 2013년 6월 27일, 노조 역사상 가장 높은 89.7%라는 찬성률로 파업안이 통과됐다. 수서발 KTX 경쟁 체제 도입을 시작으로 한 정부의 철도 민영화 계획 때문이다.
언뜻 보면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수서-평택 사이의 철도 노선을 새로운 철도 회사가 운영하게 된다고 해서 무슨 큰일이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2011년부터 추진되어 온 수서발 KTX의 민영화안은 노조와 시민 단체의 끈질긴 반대로 무산되었다가 정권이 바뀐 후에도 또다시 ‘경쟁 체제 도입’이란 이름으로 추진되고 있다.
도대체 정부는 왜 그토록 끈질기게 이 노선을 민영화하려 하고 노조는 왜 그토록 이를 반대하는가?
이 책은 이와 같은 정부의 철도 민영화 계획에 대한 철도 노동 현장의 목소리다. 저자인 박흥수는 18년간 열차를 운전해 온 현장 노동자이자 철도노조 정책연구팀과 사회공공연구소에서 민영화안에 대해 연구해 온 전문가로서 국토부 관료와 국책 연구원의 거짓말과 ‘효율’이란 가면을 쓴 경영 기법의 허상을 현장에서 쌓아온 지식과 관점을 통해 날카롭게 비판한다. 정부와 관료 집단, 자본의 공고한 카르텔을 통해 추진되고 있는 민영화안이 실현될 경우 벌어질 일들에 대한 민영화 탐구생활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철도 오타쿠’라 불릴 만큼 해박한 저자의 철도 지식과 이에 기반한 에피소드들은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다.
서울역에서 출발해 만주 대륙까지 이어졌던 대륙열차에 몸을 실은 독립투사들의 이야기에서부터 현장 노동자로서 경험을 토대로 정부가 말하는 적자 노선들이 사실은 가장 아름다운 철도 노선임을 보여 주는 일화들, 그리고 지방 특산물을 이용한 열차 도시락을 꿈꾸는 그의 따뜻한 상상은 무거운 쇳덩이를 온기 어린 하나의 생명체로 살아 숨 쉬게 한다. 그는 오늘도 1%를 위한 민영화안이 말하는 끔찍한 미래와는 다른 세상을 꿈꾼다.
철도 기관사가 펜을 든 이유
Q 어릴 때는 영등포역 근처 빈민촌에 살면서 철길을 넘나들며 놀았고, 건설 회사를 다니다 철도공무원 시험 안내 포스터를 보자마자 운명처럼 철도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철도 오타쿠’라 불릴 정도로 기관사라는 직업과 현장에 대한 애착이 큰 것은 알고 있지만, 사실 기관사 근무 스케줄을 보면 육체적으로 정말 힘들 것 같다. 기관사의 근무조건, 솔직히 어떤가? 애로 사항은 없나?
A 나는 주로 일반열차를 운전한다. 새마을호, 무궁화호를 몰고, 아주 가끔씩 화물열차를 운전한다. 지금은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강연이나 토론 같은 것도 많이 하지만 여전히 수백 명 승객을 태우고 기관차 운전석에 앉을 때 마음이 제일 편하다. 또 화물열차 운전도 좋아하는데, 장점은 한마디로 “화물은 말이 없다”는 거다. 화물열차 운전이라고 해서 쉬운 일은 아니지만 열차가 어떻다고 민원이 들어올 일은 없기 때문에 마음 놓고 산야를 달릴 수 있어 좋다.
기관사란 직업의 특징은 월요병이 없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통상적으로 쉬는 날인 토요일이나 일요일이 우리에겐 휴일이 아니다. 교번제라는 특이한 형태로 근무를 하는데, 그래서 출근 요일이나 시간이 매일, 매월 다르다. 아마 기관사들의 근무표를 보면 이상한 암호문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출근 시간은 새벽 세 시가 되기도 하고, 밤 열 시가 될 때도 있고, 오후 두 시가 될 수도 있다. 열차 운행 스케줄에 따라 사람이 배치되다 보니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 교번제 근무는 사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상당히 힘이 든다. 규칙적인 생활이 전혀 불가능하다. 자는 시간, 먹는 시간이 항상 다르기 때문에 만성 불면증, 위장병 등은 물론이고, 어마어마한 엔진 소리와 달릴 때 나는 소음 때문에 청력도 정상일 수 없다. 난청을 달고 산다.
Q 휴일은 어떻게 되나? 야근이 많을 것 같은데, 야근 수당이 나오나?
A 휴일은 40시간 노동제가 적용되어 일반적으로 4~5일 연속근무를 마치고 이틀을 쉬게 되는데, 요즘은 인력 부족으로 휴일에도 차를 타야 하는 일이 많아졌다. 노동강도는 입사해서 십 년 동안은 정말 살인적이었다. 한 달에 변변한 휴일 하루 없어서 당시 기관사들이 요구했던 게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쉬게 해달라는 거였다. 지금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휴일이 보장되긴 한다. 과거에 비하면 천지개벽일 정도로 노동조건이 나아진 것이지만, 여전히 노동강도는 만만치 않다. 야간근로의 경우, 근로기준법상 추가되는 시간당 추가분 외에 더 받는 건 없다.
Q 그런 근무조건에서 글 쓰는 일을 병행하는 것도 어려운 일일 텐데, 글은 어떻게 쓰게 되었나?
A IMF 경제 위기 때가 생각난다. 임금 삭감 등이 이루어졌지만 회사에서 강제로 쫓겨나는 사람도 많은데, 이게 어디냐는 생각으로 위안 삼았다. 이런 와중에 정부가 철도를 민영화하겠다고 밝혔다. 한 달에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일하는 기계처럼 살았던 철도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비효율의 주범이 되었다. 그때부터 철도란 무엇인가를 고민했고, 정부는 왜 민영화를 하려는지 공부하기 시작했다.
2004년, 철도청이 철도공사로 바뀌면서 소위 ‘상하 분리’ 조치로 철도 운영 기관과 시설 기관이 분리되었다. 이후 철도 개편과 관련된 문제는 잠시 수면 아래로 잦아들었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2011년, 수서발 KTX를 시작으로 하는 민영화 계획이 발표되었다. 당시 불도저라 불리던 이명박 대통령이 맘먹으면 못할 게 없던 시절이었다.
이때부터 정부 민영화안의 문제점에 대한 글을 언론에 기고하기 시작했다. <프레시안>, <레디앙>,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약 1년 반 동안 기고를 해오면서 가졌던 생각은 절박함이었다. 만약 국토부 안대로 결정이 되면 한국 철도의 앞날은 먹구름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금도 철도 민영화는 진행 중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국민적 동의와 사회적 합의 없는 철도 민영화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새 국토부 장관이 임명되자마자 경쟁 체제 도입을 발표하면서 이명박 정권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철도 민영화가 갖는 문제와 그것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뜻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서발 KTX 민영화,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Q 수서발 KTX는 왜 건설되는 건가요?
A 한국 철도의 비효율이 가중된 이유 중 하나는 수도권 중심의 철도 네트워크에 있다. KTX 수익의 80퍼센트, 수송량의 70퍼센트가 수도권 이용객이다. 서울~금천 구간의 고속선과 일반선이 만나는 지점의 선로 포화상태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병목 구간으로 인해 늘어나는 고속열차의 승객을 감당할 수 없어 통로마다 입석으로 가득 찬 KTX가 달린다. 일반열차를 이용하는 승객들도 일반열차의 운행 편수가 대폭 줄어 불만이다. 또 수도권으로부터 연결되어야 탑승률이 높아지는 호남선, 전라선, 장항선 등의 비수익 노선도 선로 용량 한계로 열차 편수를 늘릴 수 없고, 이것은 열차 이용의 편의성을 떨어뜨려 열차 이용을 외면하게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대안을 찾다가 최종 선택된 방안이 수서~평택 고속철도 노선을 신설해 체증 구간을 우회함으로써 철도의 선로 용량을 대폭 확대하는 안이었다. 서울 동남부와 수도권 동부 지역의 철도 이용을 확대하고 서울역으로 집중된 승객을 분산하게 되면 한국 철도의 고질적 문제인 열차 좌석 공급 부족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서~평택 노선은 한국의 사회적, 역사적 특성 때문에 기형적으로 발달한 한국 철도가 자기 완결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수서~평택 노선으로 선로 용량의 여유가 생기면 그동안 답보 상태에 빠졌던 일반철도 노선의 준고속화 사업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현재 시속 140킬로미터가 최고인 서울~대전 구간의 새마을호나 무궁화호의 일반열차 운행 시간은 1시간 55분 정도 걸리는데, 이것을 시속 180~200킬로미터 정도로 올리면 1시간 20분 내외로 운행할 수 있다. 1시간 정도 걸리는 KTX보다는 느리지만 150~200킬로미터 이내의 중,단거리 노선은 일반열차를 이용해도 빠르고 쾌적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KTX의 좌석 보유율을 높여 쾌적한 장거리 여행을 보장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한국 철도가 낙후된 일반철도와 고급형 고속철도로 분리되고 소득수준에 따른 차별적 열차 선택이 아니라 열차의 기능과 용도에 따른 철도 선진국형 이용 체제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시점이다. 그러나 이 노선이 수익성이 보장되는 것으로 예측되자 너도 나도 노른자를 빼먹겠다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Q 철도 민영화는 언제부터 시작된 일인가? 정부가 그토록 끈질기게 민영화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A 민영화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이것은 그만큼 철도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재등장하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제는 자본이 여기에 눈독을 들이면서 시작된다. 토건 및 금용 자본과의 결탁한 국토부 관료들은 끈질기게 민영화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이명박 정권 때 재벌에 고속철도 운영권을 넘겨주는 수서발 KTX 민간 경쟁 체제 도입을 추진했다. 그러나 특혜 시비와 민영화에 대한 사회적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경쟁 도입’이라는 기본 골격은 놔둔 채 포장지만 바꾸었다. 일단은 한국철도공사체제를 타파하기 위해 민간 경쟁 체제에서 ‘민간’이라는 말만 빼고 경쟁 체제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경쟁 체제가 도입되고 향후 국토부가 원하는 조건이 무르익으면 그때 본격적으로 민영화안을 추진하면 되니까 그러는 것이다. 수서발 KTX에 경쟁 체제가 도입되고 나면, 이후 다른 노선들까지 민영화 과정이 착착 진행될 것이다.
Q 하지만 정부는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민영화’라고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A 그간 민영화 방식도 굉장히 복잡, 다양해졌다. 과거 국가나 공기업이 갖고 있던 사업 분야 전체를 민간에 매각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권은 공공이 갖고 운영권만 민간이 가져가거나, 아예 운영권도 공공에 넘겨주고 투자금에 대한 소득을 보장받거나 하는 식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민자 사업’이란 이름으로 사회기반시설에 민간이 다양하게 진출해 있는데, 민자 사업은 민영화의 위장 잠입undercover 형태다.
대한항공이나 포항제철처럼 완결적 구조의 공기업을 민간에 매각하는 전통적인 민영화 방식이 아니라 소유권은 국가가 갖고 운영권만 확보해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로 진행됐다. 이런 이유로 민자 사업은 사적 기업의 이윤 창출 도구로 기능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국가가 관리하고 민간 기업의 효율성을 도입해 사회에 기여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여기에 가장 큰 함정이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회기반시설 전반에 걸쳐 사회적 자산이 사적 수익 창출의 도구로 변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조용하고 서서히 진행되었는데, 정부가 촉진하고 법이 보장하면서 당연하고 자연스런 현상처럼 되어 버렸다.
철도 민영화와 구조 개편 방안을 제출했던 세계은행은 민간 참여의 방법으로 아홉 가지를 제시했다. “국가 소유 기업에서 운영 분야의 개방, 사업권 분할, 서비스 공급 계약, 경영 위탁 계약, 사업권 승인” 등이 그것인데, 국토부가 추진 중인 내용을 보면 세계은행이 말하는 민영화의 핵심 요소를 모두 담고 있다. 민자 사업의 가면을 쓴 채 민영화라는 맨얼굴을 보이지 않겠다는 술수에 불과하다.
Q 국토부 관료들의 이야기만 들으면, 어쨌거나 철도 적자가 심각하고 이를 해소하는 게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국 적자 해소를 민간이 하느냐, 국가가 해주느냐의 논쟁으로 가면서 ‘세금’으로 그 적자를 해소해 주어야 하느냐의 이야기로 흘러가는 것 같다.
A 철도 적자 문제만을 놓고 따지고 들 경우, 국토부가 옳으냐 철도노조나 시민단체의 주장이 옳으냐의 문제로 갈 수밖에 없는데, 이런 구도 자체가 문제다. 철도 적자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책 당국부터 그 근본적인 원인과 해법에 대해 여러 이해 당사자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일단 철도 적자의 원인이 철도공사의 비효율과 독점 체제에 있다고 해버리니 민영화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어 보이는 것이다.
정부 설명을 듣고 있노라면 귀가 솔깃해지고 철도적자가 나라경제를 다 말아먹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게 된다. 국토부의 고질적인 습관이 자신들에게만 유리한 해외 사례를 교묘히 왜곡해 가져오고, 공격 대상의 문제는 최대한 부풀리고 성과는 최소로 축소하는 것이다. 국토부는 사실 같은 통계자료를 가지고도 정반대의 보도 자료를 뽑아낼 수 있는 위인들이다.
Q 사실 시민들도 민자 사업의 폐해에 대해서는 이미 피부로 많이 느끼고 있다. 민자 고속도로 통행료만 내봐도 알 수 있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건가?
A 용인경전철은 민자 사업의 교과서라고 볼 수 있고, 맏형인 인천공항고속도로나 철도공사가 인수한 인천공항철도도 그 폐해가 만만치 않다. 서민을 등쳐먹는 건 세금이 아니라 바로 이런 것이다. 허위 수요예측, 발주처와 사업자 간 결탁, 친인척을 내세운 공사 입찰 비리, 시의회와 공무원, 언론에 대한 업체의 부당한 편의 제공, 공사 중단 및 개통 연기, 국제 소송에 따른 배상금 지불, 관계자 줄소송, 시 재정 압박에 따른 교육·복지 등 다른 분야 예산 삭감 등 사업자의 이익 외에 시민들에 대한 어떤 고려도 없다.
관료와 기업, 금융 세력과 토건 세력이 결탁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이다. 잘 아시다시피 정부 관료들은 정책 결정과 집행, 각종 인허가 과정에서 수많은 권력을 행사하게 되는데, 이는 이들이 퇴직 후에도 민간 기업의 사외이사 등으로 가면서 더욱 심각하게 이루어진다. 공무원들끼리 하는 말 중에 ‘보험 든다’는 말이 있는데, 상당수의 고위직 공무원들이 퇴임 후 무엇을 하는지 보면 그들이 말하는 보험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국책 연구기관의 연구원들도 정부의 정책 결정을 합리화시키는 꼭두각시나 앵무새 역할을 할 뿐이다. 정부와 토건 자본은 사업 타당성을 확보하고 향후 운영 수입을 안정적으로 챙기기 위해 수요예측을 부풀린다. 이런 수요예측 부풀리기는 업체의 입맛에 맞게 용역 보고서를 작성해 주는 한국교통연구원과 같은 전문 용역 기관의 몫이다.
이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방식은 업체의 투자수익률을 산정해 놓고 교통 수요예측을 역산하는 것인데, 이로 인한 부담은 국민에게 전가된다. 여기에 금융-토건족들이 결합해 공고한 트라이앵글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4대강의 썩고 있는 물이 이 절망의 카르텔을 생생히 보여 주고 있지 않나. 정부가 추진 중인 철도 산업 발전 방안은 4대강 사업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4대강 사업은 대운하가 아니라며 국민을 속였듯이 철도 역시 민영화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만약 그들의 정책이 실현된다면, 4대강이 그랬듯 철도 또한 되돌릴 수 없을 만큼 황폐화될 것이다.
민영화의 폐해는?
Q 요금 인상이나 안전사고 등이 일반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민영화의 폐해일 텐데, 그 외에 민영화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A 민영화가 일반 시민들에 미치는 영향이라 하면 당장은 요금 인상이나 구조 조정에 따른 인력 감축, 그에 따른 안전사고, 지방 적자선 폐지로 인한 지방의 몰락 등을 쉽게 예상할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가치 변화에 있다. 수익성이나 효율성을 기준으로 모든 것이 평가받는 게 정상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된다는 게 얼마나 암담할지 생각해 보라.
철도 회사 사장이나 경영진이 시설 보수비용과 사고보상비용을 저울질하다가 차라리 보상비가 싸다는 결론을 내리는 사회, 그리고 이런 결정이 합리적인 것으로 용인되고 주주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사회가 된다고 생각해 보라. 이런 사회에서 수백억이 드는 안전비용보다 사망보험금이 싸다는 로펌의 건의를 받게 된 철도 경영진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 아찔하지 않나?
또 철도가 만들어 온 이야기들, 그것이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문화가 하나둘 사라지게 되는 것도 문제다. 상업적 고려만 작동하는 시스템에서는 우리의 추억조차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흔히들 인문학과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들이 이런 민영화를 통해서도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안의 철도 이야기
Q 사실 기차는 불편한 점이 많은 교통수단이기도 하고, 특히 최근 KTX 관련 불만이 최고조에 달한 듯하다.
A 기차는 기본적으로 자동차와 비교했을 때 불편한 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현관문만 나서면 탈 수 있는 자동차와 달리 역까지 가야 하고, 표를 사야 하고, 운행시간에 맞춰 열차를 타야 한다. 모든 것이 열차 중심주의다. 그런데 이런 불편함만 감수하면 철도가 주는 혜택은 크다.
2000년 기준 도로 교통이 유발하는 사회적 비용(에너지 소비, 환경오염 비용, 혼잡비용, 사고 처리 비용 등)이 11조4,310억 원인 데 비해 철도는 2,865억 원으로 도로의 2.5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승객 1천 명과 화물 1톤을 1킬로미터 수송할 때 발생하는 환경 비용도 도로는 8만5,888원인 데 비해, 철도는 2만6,164원에 불과하다. 에너지 효율성 측면에서도 철도는 승용차의 18배, 버스의 3.9배, 화물 트럭의 8.8배에 이른다. 국토 이용률 측면에서도 철도는 도로에 비해 훨씬 적은 면적으로 수송을 담당할 수 있어 환경 파괴나 오염을 최소화할 수 있다.
열차가 늦게 온다는 불만이나 고장, 사고에 대한 걱정이 있긴 한데, 이 역시 우리가 한걸음 물러서서 보면 좋겠다. 사실 한국 철도의 정시 운행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자랑스럽지 않다. 우리 문화에서는 조금만 늦어도 참지 못하고 폭발하는 일이 일상다반사지만, 다른 나라 철도를 경험해 보니 그렇지 않았다. 사회가 우선시하는 가치가 그 사회를 어떤 사회로 만드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1분 1초라도 늦으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작은 실수를 큰 사고로 만들 수 있다. 외국에 나가 보면, 열차가 갑자기 멈춰 섰을 때 승객들이 전혀 안절부절해 하지 않는다.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역 전광판에 두 시간에서 심지어는 네 시간까지 열차가 연착된다는 정보가 뜨는 걸 본 적이 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처럼 역무실 창문을 깨거나 역무원의 멱살을 잡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Q KTX가 개통될 때만 하더라도 참 신기했다. 그렇게 빠른 시간대를 살 수 있다는 게 말이다. 기관사가 보기에 KTX가 생기면서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A KTX가 생기면서 좋아진 점은 철도가 시대에 뒤떨어진 교통수단이 아니라 미래를 책임지는 교통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된 건데, 철도 교통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중요한 발판이었다.
하지만 고속철도 건설이 설계에서부터 공사 진행, 그리고 이후 운영과정에서 철학과 영혼 없는 사람들의 정책 결정에서 비롯된 폐해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철도 간 환승도 안 되고, 역은 도심에서 너무 멀고, 잘못된 예측으로 터무니없는 액수를 들여 역사를 짓는 등이 그런 일이다. 또 일반철도 이용객에 대한 차별이 발생하는데, 사실 나는 이것이 가장 문제라고 생각한다.
Q KTX에 대한 불만도 사실 많다. 좌석 거리가 좁고, 요금도 너무 비싸다. 또 최근에는 사고까지 잦아졌다.
A 사실 좌석 거리 문제도 잘못된 수요 예측과 효율성의 논리에서 시작됐다. 예측한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열차를 구매해야 하고, 또 최대한 많은 사람을 수용해야 했기에 KTX에서 성인 남자 상당수가 무릎도 제대로 못 펴고 다니게 된 것이다.
요금이 비싼 이유는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한 가지를 들자면, 선로 용량 한계로 좌석 공급이 부족해서 다양한 요금제를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처럼 일찍 예매할 경우에 파격적인 할인율을 적용하거나 정기권이나 방학 등 특정 기간 특정 대상에게 열차 이용을 유도하는 할인 제도 등 철도 요금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길이 많이 있다. 그러나 앉을 좌석도 없는 열차에 코레일이 굳이 운임 할인 혜택을 줄 필요성은 못 느낄 것이다.
Q 최근 열차 사고가 있었고, 기관사가 구속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사고와 안전 문제 해결, 기관사가 보기에 어떤 해법이 맞나?
A 철도 안전사고의 해법은 명쾌하다. 사고의 원인을 집요하게 따라가면 해답이 나오게 되어 있다. 여기서 핵심은 “책임자 처벌이 아니라 원인 규명”이라는 원칙이다. 사고 관련자만 처벌하면 유사한 사고는 또 일어나게 되어 있다. 그러면 또 처벌하고 말 것이다. 사고의 원인을 제거하게 되면 사고 발생과 관련자 처벌이라는 악순환을 벗어날 수 있다.
Q 올 11월부터 동해남부선이 폐선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책에서도 말씀하셨다시피, 지방선 폐선의 문제는 단순히 오래된 역이 사라지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대 상권의 몰락과 더 나아가 지방의 몰락을 야기한다. 앞으로도 적자 때문에 폐선될 노선이 있는가?
A 아직까지는 적자 때문에 폐선된 역은 없다. 그러나 앞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우리 사회가 주요하게 여기는 가치의 변화가 없다면 더 많은 철도역과 노선들이 사라질 것이다. 오직 경제 논리, 이윤과 효율의 프리즘으로만 보는 세상에선 간이역 같은 것들은 진즉에 사라졌어야 할 흉물일지도 모른다.
Q 그러고 보니 비둘기호가 생각난다.
A 비둘기호와 통일호가 없어진 데 대해서는 양면적인 감정이 교차한다. 간이역조차 마다 않고 정차했던 비둘기호는 가난한 서민의 친구였다. 학생 시절 용산에서 부산진까지 비둘기호를 타고 간 적이 있었는데, 10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을 달리니 무슨 장거리 국제열차를 탄 기분이었다.
비둘기호 통일호는 차량도 낡고 열차 운행의 여러 조건이 변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한국 경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결국 사라졌다. 서민의 애환이 담긴 열차가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지만, 열차를 단계별로 등급을 두어서 열차 승객들의 계층을 나눠 버리는 체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둘기호와 통일호가 사라지면서 한 등급 위의 열차를 타야 하는 서민에게는 요금 인상을 해버린 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