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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學問을 위하여 - 전원책
學問 안으로 내시경을 넣어 살폈다. 불순한 것은 무엇인가. 이 나이까지 묻고 답한 것들 모두 누고 남아 있 는 것 그저 약간의 누런 눈물뿐인 걸 알면서 무슨 종양으로 자랄 화근 이 될까 보아 나는 전날 밤부터 물만 먹으면서 욕심을 버리고 또 버렸다. 좋은 술 몇 줄의 독설 그리고 가무(歌舞)만 있어도 인생은 얼마나 황홀 한가. 기껏, 배우고 때로 익힌 것들이 학문 밖으로 쓸모없이 다 버려지 는 것을 깨닫기에는 그리 큰 힘이 들지 않구나. - 시인 변호사 전원책의 홈페이지에서 ********************************************************************* 며칠 전 한 텔레비전 프로에서 대표적 진보논객인 진중권 교수와 보수층의 입심인 전원책 변호사가 무릎을 맞대고 앉아 오순도순 맞장을 뜨며 서로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서로에 대해 "굉장히 맑고 순수한 사람이라 대화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분", "진보 쪽에서 그래도 책읽기가 대단히 잘 돼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진교수가 술 한 잔 사겠다는 말에 약속은 바로 지키라며 전변호사가 반색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며 직설적 화법을 구사하는 전변호사와 은유와 비유의 독설로 유명한 진중권 교수가 뜻밖의 친밀감을 드러내 보였다.
아무튼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이들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의 고수로 알려져 있지만 전변호사는 토론 중에 윽박지르며 흥분하는 모습의 바람직하지 못한 토론태도를 그동안 자주 보였고, 진교수는 인신공격성 발언 수위에 깐족거리는 부적절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여 둘 다 적지 않은 안티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전변호사가 "이제는 서로 한발 물러나서 사회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손을 내밀었으며, 진교수도 "전 변호사는 진보를 공격하기도 하지만 때론 보수가 잘못하면 따끔하게 꼬집는다, 그런 역할이 필요한 것 같다"며 "보수냐, 진보냐, 좌냐, 우냐를 떠나서 지켜져야 할 것은 상식이고 합리성"이라고 맞받았다.
지금의 여와 야도 이 정도 수준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다. 대화의 테이블로 돌아와서 현안과 갈등을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며 합의를 도출하는 능력을 보여주는 소망스러운 그림을 기대한다면 예수의 재림만큼이나 어려운 일일까. 나름 똑똑하고 많이 배웠고 경륜도 있다는 사람들을 뽑아 놓았는데, ‘기껏, 배우고 때로 익힌 것들이’ 국민을 위하고 섬기는데 기여하기 보다는 당리당략과 시리사욕에만 치중하는 듯 모습을 보여서야 쓰겠는가. 게다가 더러는 ‘무슨 종양으로 자랄 화근’이 될 학문도 있다고 가정해보면, 그들 자신만의 ‘황홀’을 위한 ‘독설’은 더 이상 들어주지는 못하겠다.
ACT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