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 4: 13. 보아스와 룻의 결혼 - 룻 4: 15. 며느리가 낳은 자
3. 룻의 결혼과 출산 ( 4: 13-17 )
13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14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15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16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17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룻 4: 13. 보아스와 룻의 결혼 -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 이에 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아내를 삼고 그와 동침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로 잉태케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
1]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보아스와 룻의 결혼은 온 성읍이 축하하는 성대한 결혼이었다. 이렇게 함으로서 모압 여인 룻은 가나안 여인 라합, 다말과 함께 여인 중에서 그리스도의 계보에 들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 마 1: 5 –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구속 역사 속에서 모압의 인상은 매우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모압 족속은 근친상간(近親相姦)에 의하여 생겨난 부족으로(창 19: 31 이하) 출애굽 중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적대적이었다.
* 민 22: 2-6 – 2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보았으므로 3 모압이 심히 두려워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많음으로 말미암아 모압이 이스라엘 자손 때문에 번민하더라. 4 미디안 장로들에게 이르되, 이제 이 무리가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음 같이 우리 사방에 있는 것을 다 뜯어먹으리로다. 하니 그 때에 십볼의 아들 발락이 모압 왕이었더라. 5 그가 사신을 브올의 아들 발람의 고향인 강 가브돌에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하여 이르되,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주하였고 6 우리보다 강하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이겨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
바알브올 사건 때는 이스라엘을 죄를 범케 하는 올무가 되기도 하였다. (민 25장). 그래서 모압 사람은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율법에 규정했다.
* 신 23: 3 –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이처럼 혈통적으로 볼 때 모압의 딸 룻은 마땅히 저주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 이였다. 그러나 자기 민족의 신인 그모스를 버리고 온전히 여호와를 신앙함으로써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은총을 덧입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았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이 거둔 놀라운 승리였다.
2] 그에게 들어갔더니
많은 풍랑을 헤치고 결혼한 룻은 초야를 치루게 되었다. 모압을 떠나는 날부터 받은 고통이 헤아릴 수 없도록 많았을지라도 보아스의 손길이 닿을 때 봄눈이 녹듯 사라져 버렸다.
* 계 21: 3-4 –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3]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1)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아들을 낳는 것이 무엇보다 귀중한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겼다. 반대로 아들을 낳지 못한 여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여겨졌으므로 슬픔 가운데 살 수 밖에 없었다.
* 시 127: 3 –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그의.상급이로다.
* 삼상 1: 11 -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2)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따라서 본 절은 룻이 하나님의 돌보심과 축복 가운데서 성읍 장로들의 소원대로 아들을 낳게 된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룻 4: 14. 이스라엘에서 유명하기를 원함 -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찌로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아니하셨도다. 이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
1]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이 말에 해당하는 '바라크'(히)는 '무릎을 꿇다', '축복하다', '문안하다'등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이 말이 인간 대 인간 사이에 사용될 때에는 주로 '무릎을 꿇다', '축복을 빌다', 등의 뜻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이 말을 사용할 때에는 '찬양하다'란 의미가 된다. 그 이유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이 말을 사용할 때에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축복에 대한 감사와 응답으로 이 말을 하기 때문이다.
2]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말을 '보아스'에게 적용시키고 있으나(Canon Cook), 문맥으로나 법적으로 볼 때 분명 룻이 보아스를 통해 낳은 아들을 가리킨다(Keil, Cassel, Morison).
왜냐하면 룻이 낳은 아들은 법적으로 엘리멜렉 가문을 이어나갈 자이다.(10절) 따라서 나오미에게는 마치 아들처럼 되어 그녀에게 위로와 기쁨을 줌으로써, 결국 나오미의 참 기업 무를 자(고엘 2: 20 참조)가 되기 때문이다.
3]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익콰레'(히)는 '부르다', '선포하다', '읽다'를 의미하는 '콰라'(히)의 수동형으로 곧 '불리워지다', '선포되다'로 옮길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이름이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의미로 많이 불리는 것은 곧 그 사람이 유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룻 4: 15. 며느리가 낳은 자 -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로다. )
1]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며
이 말은 나오미의 생명이 새롭게 된다는 것, 즉 마치 죽은 것과 방불했던 나오미의 가정 엘리멜렉 가문이 룻이 낳은 그 아이로 인해 생기를 되찾게 된 것에 대한 표현이다.
2] 네 노년의 봉양자라.
이것은 나오미에게 손자가 생겼으므로, 그로 인해 그녀가 비록 늙더라도 장성한 손자의 봉양을 받게 될 것을 일컫는 말이다.
3]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이 말은 룻이 단순히 아들을 낳았기 때문에 나오미에게 있어서 일곱 아들보다 귀하게 여겨진 것이 아니다. 그 동안 룻이 시모를 잘 공경하고 헌신하며 순종하였던 사실에 근거하여, 결국 그러한 지극한 효성이 열매를 맺게 된 사실을 칭찬한 말이다.
특히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충만이나 완전을 상징하며, 하나님께로부터 자녀의 축복을 풍성히 받았음을 상징할 때도 사용되었다.
* 삼상 2: 5 -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따라서 본 절은 시모에 대한 룻의 공경과 헌신이 많은 아들의 그것보다 더욱 컸다는 것을 생생히 표현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