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5. 큐티
마태복음 13:1 ~ 9
네 가지 땅에 뿌려진 씨에 대한 비유
관찰 :
1) 큰 무리가 예수님께 몰려들다
- 1절.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 2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집에서 말씀을 증거하시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몰려왔기에 적적한 대책이 필요했습니다. 당시에 마이크도 강당도 없는 상황이지만 주님은 당황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연스럽게 바닷가(갈릴리호수)로 나가시고 그곳에 무리는 해변에, 예수님은 배에 올라가 앉으셔서 말씀을 증거하셨습니다.
- 마이크나 확성기가 없었음에도, 낮에 호수에서 육지로 부는 바람을 통해 자연스럽게 주님의 음성은 많은 무리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공학적 원리들은 주님에게는 배우거나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 이 세상을 지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 주님은 모여든 많은 무리들을 다루시고, 인도하시는 법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아무리 많은 무리가 온다고 해도 주님은 당황하거나 분주해 하거나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2) 예수님의 비유
- 3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 씨를 뿌리는 자가 씨를 뿌렸습니다. 이 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 4절.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 길가에 떨어진 씨는 공중의 새가 와서 먹어버렸습니다. 길가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자입니다. 마귀가 그 말씀을 빼앗아버렸습니다. 목적은 믿어 구원 얻는 것을 방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 5절 ~ 6절.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는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 바위 위에 떨어진 씨는 습기가 없어서 말랐습니다. 여기서는 방해자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뿌리를 내리지 못해 말씀을 들은 것이 시험 받을 때 배반하게 되었습니다.
- 7절.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 가시떨기 속에 떨어진 씨는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습니다. 말씀을 들고 깨달은 자가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믿음이 막혀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8절.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을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으니라” =>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켜서 인내로 결실하는 자입니다.
- 씨는 똑같습니다. 움터서 열매 맺기 좋은 씨와 비루먹은 것 같이 말라비틀어진 씨가 나뉘어서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균등하게 뿌려집니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다르는 것입니다.
3) 좋은 땅
- “좋은 땅”은 착한 자입니다. 하나님은 성품이 착한 사람을 찾으시고 기대하십니다.
- “좋은 땅”은 좋은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이웃을 향해서 진실함으로 대하는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 “좋은 땅”은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입니다. 말씀을 듣지만 지키지 않으면, 아무리 착하고 마음이 좋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열매 맺는 자입니다.
- “좋은 땅”은 인내로 결실하는 자입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하나님의 말씀이 저절로 열매 맺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인내! 이 인내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씨가 움이 트고 뿌리를 내리도록 흙은 그 씨에게 자신이 가진 자양분을 내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씨가 자라서 열매 맺기까지 계속해서 양분과 수분을 끌어 모아 말씀의 뿌리에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한 인내의 시간, 인고의 시간이 흘러야 열매가 맺혀지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이 없으면 열매도 없습니다. 뿌리도 일하는 것이지만 땅이 자신의 것을 내어드림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그렇게 자라는 것입니다.
4) 귀 있는 자
- 9절.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 “귀 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자를 말합니다. 이런 자는 좋은 땅의 자질을 가진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똑같이 듣고도 그것이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거나 버리는 자는 귀 없는 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바를 바르게 듣는 자가 귀 있는 자입니다.
가르침 :
1) 주님은 주님의 말씀이 동일하게 사람들에게 주어지는데 왜 다른 결실을 맺는지에 대해서 설명하시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농부의 잘못이 아니라 뿌려진 땅의 문제입니다. 이 땅이 된 존재는 씨에게 자신의 양분을 내어주어야 합니다. 새에게 뺏긴 것도, 단단하게 굳어져 씨를 거부한 것도, 가시덤불과 같은 다른 것에게 양분을 다 내어준 것도 모두 문제입니다. 오직 자신의 것을 자신에게 뿌려진 씨에게 다 내어준 땅에서 결실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2) 나의 자양분을 하나님의 말씀에 드림이 없다면 열매도 없습니다. 나의 유익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말씀을 위한 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귀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손을 들어 나의 귀를 만져봅니다. 이 귀가 붙어는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하면 제대로 된 귀가 아닙니다. 그러나 설령 귀가 없거나 고막이 나가서 듣지 못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으로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진짜 귀를 가진 자입니다. 말씀은 진리이고,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아는 자가 참된 감각을 가진 자이고, 참 진리가운데 사는, 참 생명을 소유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적용 :
1) 주님의 말씀은 나에게 나의 자양분을 내어 놓을 것을 요구하십니다. 나의 시간, 나의 재능, 나의 소유, 나의 관계, 나의 열정, 나의 everything! 그래야 열매가 맺습니다. 나의 어떤 것이 말씀에 드려지지 못하고 다른 것에 드려지면 그것이 가시떨기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것이고, 말씀을 거부하는 영역이 돌짝밭인 것이고, 말씀을 받아들이고 전에 잊어버리는 것이 새에게 먹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나의 생명을 내어 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살고자 합니다.
2) 내 마음에 뿌려진 말씀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 것을 소망하고 기대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이끄실 것임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