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각장 근처 (외 1편)
장성혜
달아난다. 화분이, 의자가, 약봉지가, 꽃들이
꽃 같은 약속이, 읽지도 않은 책들에 바통을 넘긴다
숨을 헉헉거리며 허공으로 달아난다
연기가 되어 달아나면서 사라진 얼굴을 갈아입는다
여섯 살 동생이, 할머니가, 나를 버린 남자가
흐물흐물 춤을 추며, 다시 연락하겠다, 낄낄거리며 달아난다
연기가 사라지는 하늘엔 자주 먹구름이 끼고
연기에 취한 집들은 쉬지 않고 쓰레기를 낳고
갈수록 의자가, 꽃들이 한 자루에 들어가는 속도가 빨라진다
쓰레기가 펑펑 솟는, 창가에 앉아 굴뚝은
터질 듯이 불룩한 하루를 피운다
의자를, 화분을, 일회용 꽃들을 뻑뻑 피운다
가끔 달아나고 싶은 사람들도 피운다
필터만 남은 여자 하나 비 내리는 창밖으로 던져버린다
핸들을 잡은 바람은 사라지는 방향을 이리저리 바꾼다
피가 나도록 긁어도 끝나지 않는 가려움이 시작되는 저녁
또 하루가 아토피 걸린 지붕으로 달아나면서
살 속 깊이 사라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리토피아》2009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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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지를 건너며
검은 개가 따라왔어요. 따라오지 마, 돌을 던졌어요. 검은 개는 먹구름 속에 숨었어요. 휘어진 소나무 위로 달아났어요. 징검다리 건너다 돌아봤어요. 검은 개는 보이지 않았어요. 주머니에 돌멩이만 쌓였어요.
검은 개를 찾아다녔어요. 입을 열면 돌멩이가 튀어나왔어요. 누군가 가까이 오면 돌을 던졌어요. 흐린 편지를 뜯으면 비가 쏟아졌어요. 돌아보면 그리운 것들은 모두 건너편에 있었어요. 다시는 건널 수가 없었을 때, 내 몸 안에 어두운 강을 키웠어요.
나는 검은 돌이 되었어요. 줄줄이 돌멩이를 낳았어요. 흐르다 내 어둠과 다시 만날 줄 몰랐어요. 강바닥에 내가 던진 돌멩이만 가득했어요. 먹구름이 꼬리를 쳤어요. 아우라지 물결이 따라오며 컹컹 짖었어요. 검은 개는 끝내 보이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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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혜 / 1957년 경북 봉화 출생. 197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2년 《리토피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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