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335]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
살다보면 이따금 허무감에 빠질 때가 있다. 인생이 허망하다는 생각이 파고들어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 그때 떠오르는 것이 허탈, 허무, 허전함, 헛됨, 쓸쓸함, 부질없음 같은 감정의 언어들이다. 이러한 감정은 대부분 좌절할 때나 뜻대로 일이 안 풀려 낙심할 적에 생기지만, 때로는 성공을 이루고도 찾아들 때가 있다. 내가 땀 흘려 행한 일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 그 일을 위해 한평생을 그렇게 발버둥 쳤던가?
그러한 의구심은 사람의 관계에서 더 절실해지기도 한다. 젊어서부터 삶을 나눌 수 있는 친구로 생각해 뜻을 같이 했는데, 지나고 보니 결과적으로 우리 둘은 맞지 않았다. 친구가 나를 배신했고, 나 또한 그 일로 등을 돌리고 말았다. 이제와 그 일이 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나를 곰곰 생각하게 된다.
친구와 동업을 시작했다. 자본은 내가 대고 기술은 친구가 댔다. 우리는 평생을 같이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힘을 합치고 서로를 챙겼다. 사업은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창업 30년 만에 주식 상장이라는 성공을 거두었다. 나는 38% 지분을 갖는 1대주주 대표이사가 되고, 친구는 15%의 지분을 갖는 CTO(최고기술경영자)로 해외사업 부문 사장을 맡았다. 불만은 상장 과정에서 싹을 틔웠다. 그는 더 이상 회사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괴로웠던 모양이다.
오래전 일이다. 새벽녘에 악몽에 시달리다가 잠에서 깬 적이 있다. 우리 집에 불이나 식은땀을 흘리다가 눈을 떴다. 얼마나 가위눌렸으면 악몽을 다 꾼 것일까. 그때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고 괘씸한 생각이 스쳤다. 해외 사업장을 통째로 맡겼는데, 그것이 참화를 부르다니!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기대치를 높이는 경향이 없지 않다.
“저 사람은 내가 잘해 주었으니까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거야.”
사람들마다 자기만의 순진한 확증편향에 빠져 있다. 내가 아무리 후하게 잘해주어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늘 미흡하게 마련이다. 경영자는 줄 만큼 주었다는 입장이고, 종업원은 일한 만큼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상충한다. 인간은 자기 이해관계에 민감하게 움직인다.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지 배신할 수 있다는, 그 점에서 나는 아둔했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름답지 못한 뒷모습을 남기고 회사를 떠났지만, 어려울 때 만나 정이 든 사람들이, 등을 돌릴 때는 그렇게 마음의 상처가 될 수 없었다. 세월이 이만큼 흐르다 보니, 나쁜 감정은 삭히고 어디서라도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창업에서부터 호흡을 맞추어 회사를 일구어온 친구는 오래오래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를 믿고 사장으로 승진시켜 해외법인을 맡겼는데, 그럴 수가 있을까.
상장하고 몇 년이 지난 뒤, 내가 몸이 안 좋아 몇 달을 쉬는 사이 이른바 ‘난(亂)’을 일으켰다. 그동안 여러 가지 수법으로 회삿돈을 빼돌린 것도 부족해서, 해외에다 비밀리 법인을 만들고 우리 제품을 카피생산 하다니! 철썩 같이 믿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경쟁업체로 나타난 것도 모자라, 우리 거래선을 찾아다니며 덤핑 가격으로 시장을 교란시켰다.
그때 뼈저리게 느낀 것이 사람이 해선 안 될 게 ‘배신’이란 것이었다. 역사에 나오는 수많은 반역자들이 다 어디에서 나오나? 가족, 친구, 최측근, 심지어 배신의 아이콘인 가룟 유다까지 예수의 제자였다. 그는 나의 신뢰를 역이용하여 소리 소문 없이 자기 영역을 구축했다. 반란의 법칙이 그렇다. 상대가 힘이 약해졌거나 약점을 보일 때, 이만하면 겨룰 만큼 힘을 길렀다고 판단할 때 악령이 준동하는 것이다.
그래도 30년 쌓은 인간관계에 금이 가는 게 안타깝고, 회사에 남긴 공헌을 참작해 품고 가려고 했지만, 수 차례 약속을 손바닥 뒤집 듯하는 그를 보다 끝내 결별하고 말았다. 그러한 시련을 겪은 후 사람에 대한 신뢰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이해관계에 민감하고 무섭게 반응한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잘하다가 세월이 가면서 배신하는 사람이 있고, 신임을 받기까지 최선을 다한 뒤 변심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과정을 경험하면서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첫째> “사람의 관계는 믿음의 관계가 아니라 협조의 관계이다.”
<둘째> “아이 낳는 일이 아니면 부부라도 동업은 하지 말라.”
아물지 않은 상처 속에 결별은 했지만, 이후 들리는 소식들이 가슴을 암울하게 했다. 그의 아내는 유방암 말기로 커다란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받고, 전이 돼 옆구리에 장루를 달았다고 했다. 수년 동안 항암치료와 표적치료를 받으면서 머리카락이 빠졌다가 자라나는 횟수만큼 죽었다 살아나기를 반복했다. 간호사들이 혈관을 찾을 때마다 진땀을 흘린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얼마가 지났을까. 그의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는 부음이 들렸다. 그리고 1년이 채 못되었을 때, 교통사고로 세상을 하직했다는 그의 부음을 들었다. 다시 얼마 후엔 회사를 폐업했다는 이야기가 바람에 실려왔다. 시차를 두고 들리는 아픈 소식이 쌓이면서 그를 용서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일말의 회한이 스쳤다. 부인 부음을 들었을 때, 문상을 핑계 삼아 억지로라도 찾아볼 것을…. 그랬다면 마음이 지금처럼 무겁지는 않을 텐데.
인생이 무상하다는 생각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사는 게 이처럼 허무하고 허망한 것이 우리네 인생인가 보다. 그래도 우리가 낙담을 털고 살아갈 수 있음은 희망을 되찾아주는 자연의 찬란한 섭리 때문일 것이다. 움츠리고 비탄하는 사이, 꽃망울을 터트렸다는 봄의 화신들이 어둑한 창을 두드렸다. 지금쯤 양수리에는 생명을 탈환하는 생명의 경이가 시작되고, 빈 초원에 푸른 생명이 꿈틀거릴 때면, 제주도의 유채꽃이 온 들판을 황금물결로 흔들겠지.
청자빛 한강에도 춘심을 가르는 바람이 불었다. 환희와 비탄의 역사를 끌어안고 흘러온 강은 이 봄을 안고 너울너울 내 앞을 흘러가고 있다. 장애물들을 만나 부딪쳐 깨지기도 하지만 강은 다시 하나로 흘러간다. 인생도 강물처럼 멍든 상처를 보듬고 흐르다 보면 치유도 되고 잊히기도 하겠지….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첫댓글 인생도
강물처럼 멍든 상처를 보듬고 흐르다 보면
치유도 되고 잊히기도 하겠지요
우리도 사업을
동업으로 시작 했었지만
끝내 좋지 않더군요
이 글을 보면서
지난 일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우리는
살면서 풀지 못하고 사는
이야기들이 있어요
자신을 뒤돌아 보며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