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첨부파일
서론
싱가포르는 금융과 물류, 관광의 중심지라는 이미지가 크지만, 실제로는 한국과 유사한 경제성장 경로를 걸어왔다.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탈퇴하여 독립한 이후 대외 개방, 수출 중심 공업화 정책을 추진하여 한국과 더불어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 불리며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전기전자, 화학 등 제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여 글로벌 주요 선진국임에도 싱가포르의 제조업 비중은 2022년 기준 21.6%에 이른다.
그러나 싱가포르의 인구구조 변화는 향후 싱가포르의 경제성장의 그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싱가포르 이민‧출입국관리청(ICA, Immigration & Checkpoints Authority)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싱가포르의 합계 출산율과 신생아 수는 각각 1.05명, 3만 5,605명으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하였다. 또한 2022년 싱가포르의 중위연령은 42.1세로 한국(45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싱가포르 정부는 코로나 19 팬데믹 시기 저출산에 대응하여 출산과 육아에 대한 지원정책을 크게 강화하였으나 아직 가시적인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위해 한국과 싱가포르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유사한 점이 많다. 싱가포르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개방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우수한 인력을 유치하고, 국적에 상관없이 글로벌 혁신을 주도하는 기업이면 투자를 꺼리지 않는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와 영토국가인 한국을 동일선에 두고 비교하기는 어려우나, 싱가포르가 영토상의 한계를 넘어 ‘연결성’에 기반, 주변 신흥국에 진출하고 부를 끌어들이는 방법론은 눈여겨 볼 만하다.
싱가포르의 투자 정책
싱가포르 경제개발청(EDB, Economic Development Board of Singapore)은 싱가포르의 국가개발 정책을 수립하고 싱가포르 경제발전의 핵심인 외국인 투자유치를 전담하는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해당 기관의 목표는 싱가포르의 지속가능한 경제성장 및 사업, 일자리 기회를 창출하는 것이다. 세부적인 핵심성과지표(KPI, Key Performance Indicator)도 이와 관련된 총 고정자산 투자유치, 일자리 창출 등과 같은 항목이다. Invest KOREA, JETRO(일본무역진흥기구)와 같은 타 국가의 외국인투자유치기관(IPA, Investment Promotion Agency)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표 1> EDB와 주요 IPA의 KPI 현황
자료: KOTRA1), EDB2), JETRO3) 등
싱가포르의 특징은 해외 기업에 대한 투자에도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싱가포르 경제개발청 산하에는 투자부문 자회사인 EDBi가 있는데, EDBi는 싱가포르 경제개발청의 지침 및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싱가포르 경제성장 필요 분야의 글로벌 기업 또는 전략산업 분야 싱가포르 유망 중소기업에 투자하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
과거에는 북미, 유럽, 중국 및 아시아 지역 등에서 펀드를 조성하여 현지 운용사(GP, General Partner)를 통해 간접투자하는 방식을 활용하였지만, 최근에는 혁신기업에 대한 직접투자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외에서 펀드를 조성하여 해외 운용사를 통해 투자하는 방식은 한국벤 처투자의 해외VC글로벌펀드와 유사하나, EDBi는 싱가포르 국적기업이 아니더라도 싱가포르 경제 및 산업발전과 전략적인 접점이 있다면 투자를 꺼리지 않는다.
헬스케어, 금융서비스, 디지털 경제 및 ICT, 미래 엔지니어링 기술 등의 혁신분야에서 실제 투자를 진행하였거나 진행 중인 기업들은 해당 분야에서 글로벌 혁신 기업으로 알려져 있는 기업들이다. 모더나(Modena, 의약), 코세라(Coursera, 교육), 도큐사인(DocuSign, 디지털 서명)과 같은 기업들이 EDBi의 투자 포트폴리오에 포함되어 있다. 투자대상으로 공개된 기업들의 국적 또한 미국 76개사, 싱가포르 50개사, 싱가포르 외 아시아 지역 24개사, 유럽 8개사 등 비(非)싱가포르 기업의 비중이 높다.
<표 2> EDBi의 주요 연혁
자료: EDBi 자료4)를 기반으로 저자 정리
싱가포르는 글로벌 기업의 아시아 지역본부 투자유치를 핵심 어젠다로 삼아왔으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 왔다. 코로나 19 팬데믹 시기였던 2021년에는 EDBi를 통해 ‘Growth IPO Fund’를 조성하였는데, 해당 펀드는 기업공개(IPO, Initial Public Offering)까지 2단계 혹은 그 이상이 남은 후기 단계 혁신기업에 자금을 투자하여 궁극적으로 싱가포르 거래소(SGX, Singapore Exchange)에서의 상장을 지원한다. 싱가포르 거래소의 규모는 홍콩, 도쿄와 같은 타 아시아 금융중심지는 물론, 한국거래소나 대만거래소보다 규모가 작은 편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자본시장의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여 글로벌 혁신기업의 싱가포르 내 자금조달 경로를 확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싱가포르의 연결성: 활용사례들
글로벌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기업들을 유치, 이들을 활용해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싱가포르의 전략은 코로나 19 팬데믹을 전후(前後)한 시기에도 그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금융, 전기전자, 화학 등 전통적인 산업 분야 뿐만 아니라 신규 혁신 분야의 기업들이 싱가포르에 본사를 두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우버(Uber)인 그랩(Grab)의 본사가 싱가포르에 위치해 있으며, 아시아의 아마존(Amazon.com)인 쇼피(Shopee) 또한 본사가 싱가포르에 있다.
Shopee의 모기업인 씨(Sea) 그룹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기업 중 하나이다. 2018~2021년 Sea의 매출은 11.2억 싱가포르 달러에서 134.5억 싱가포르 달러로 121배 가량 확대되었고, 고용인원은 2만 2,600명에서 6만 7,300명까지 증가했다. Sea그룹은 당초 독일계 게임 스타트업인 가레나(Garena)에서 출발하였으나 현재는 온라인 유통망 자회사인 Shopee가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Shopee는 코로나 19 팬데믹 기간 사세를 크게 확장하여 싱가포르뿐만 아니라 동남아 주요국에서 온라인 유통망 1위 기업이 되었다. Shopee와 동남아시아 지역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수위(首位)를 다투는 라자다(Lazada) 또한 싱가포르에 지역본부를 두고 있다. 이들 두 사업자가 동남아시아 온라인 유통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일례로, 2021년 집계된 동남아 주요 유통망의 홈페이지 방문수에서 Shopee(2억 8,138만 5,616회)와 Lazada(1억 3,715만 4,967회)는 3위 사업자 토코피디아(tokopedia, 8,888만 9,000회)와 압도적인 격차를 보였다. 현재, Shopee는 대만,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주요 국가의 전자상거래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Shopee는 2015년 Shopee Korea를 설립하고 “Shopee로 동남아 고객을 잡으세요”라는 캐치프레이즈 하에 한국상품을 적극 소싱하고 있다.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싱가포르를 비롯한 동남아에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은 한류에 편승하여, 한국상품의 동남아 진출을 지원하면서 그에 수반되는 이익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싱가포르의 연결성과 한국의 우수한 상품이 결합한 사례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연결성은 물리적인 인프라가 뒷받침되어야 시너지 효과가 창출된다. 싱가포르 항만공사(PSA Corporation Limited)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싱가포르항을 운영하는 주체이다. 모두 6개 터미널로 이루어져 있는 싱가포르항은 2021년 기준 37.5백만 TEU(Twenty-foot Equivalent Unit, 20피트 컨테이너 1개 단위)를 처리하여 상하이(47백 만 TEU)에 이은 세계 2위 수준을 유지하였다. (부산은 22.7백만 TEU로 6위)
1997년 민영화를 기점으로 싱가포르 항만공사는 적극적으로 해외에 진출하고 있다. 1996년 중국 다롄 터미널 투자를 시작으로, 한국에도 2004년 인천과 2010년 부산항만에 투자하였다. 싱가포르 항만공사가 구축한 글로벌 네트워크는 현재 42개국 160개 사무소와 66개의 터미널에 이른다. 이를 기반으로 싱가포르 항만공사는 내륙과 해상, 항공을 넘나드는 종합 복합운송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의 동남아시아 시장 진출이 활발한 가운데, 싱가포르 기업이 구축한 물류 파이프라인은 앞으로 더욱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다. 2020년 하노이에서 개최된 ‘아세안 스마트 물류 네트워크ASEAN Smart Logistics Network)’ 행사에서 싱가포르와 베트남은 하노이 인근의 물류 인프라와 서비스 개선을 위한 슈퍼포트(Super Port) 프로젝트 협약식에 참가하였는데, 이 자리에서 싱가포르의 리센룽(Lee Hsien Loong) 총리는 해당 프로젝트가 싱가포르 기업의 베트남 투자 중 가장 큰 물류 프로젝트로 베트남과 현지 수출산업 발전을 위한 인프라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베트남 북부에 대규모 제조 단지를 형성하고 있는 한국과 중국, 베트남 기업들이 그들의 주요 고객이 될 것이다.
나가며
도시국가로서 싱가포르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개념으로 가상국가(Virtual State)가 있다. 가상국가는 지리적으로는 미미하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전파하고 국가들을 연결하는 데에는 효과적인 국가를 말한다. 싱가포르는 영토적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연결성을 강조하고 개방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물론 싱가포르가 가지고 있는 입지적인 강점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영국이 1818년 말라카(Malacca)를 네덜란드에 할양(割讓)하면서 새로운 말라카 해협(Strait of Malacca)의 근거지로 삼은 싱가포르는 최초 개발된 1819년 당시는 물론 현재도 동서양을 잇는 핵심 입지로서의 위상이 견고하다.
다만 싱가포르가 가지고 있는 하드웨어적인 강점 외에 그들이 지니고 있는 소프트웨어적인 강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싱가포르의 소프트웨어적인 강점 중 하나는 글로벌 시장에 접근하는 방식인데, 앞서 언급한 사례들을 종합하면 결국 싱가포르를 통해 ‘사업화’에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이 글로벌화된 사례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싱가포르 내에서 혹은 싱가포르와 연결된 글로벌 혁신기업이, 싱가포르의 연결성을 활용하여 보다 큰 시장에서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을 확장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글로벌 벤처캐피털과 흡사한 모습이다.
지난 1월 한국과 싱가포르 간 디지털 동반자협정(Korea-Singapore Digital Partnership Agreement)이 발효되었다. 이는 한국이 해외 국가와 체결한 첫 디지털 통상협정이었다. 해당 협정은 전자상거래 원활화, 디지털 비즈니스 활성화, 디지털 제품 무관세 및 비차별 대우, 소비자 보호 및 사이버 안보와 관련한 사항을 담고 있어, 향후 양국 간 디지털 신산업 분야 협력의 근간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는 과거 한국이 2000년대 초반 글로벌 무역 네트워크 확장을 시작하던 당시를 떠오르게 한다. 칠레에 이어 한국의 두 번째 FTA 파트너가 되었던 나라가 바로 싱가포르였다.
한국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반도체, 전기전자, 자동차, 화학 등 주력산업에서의 강점을 동남아시아에 투사할 때 싱가포르가 가지고 있는 물류, 금융분야의 경쟁력이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혁신기업이 싱가포르가 가진 물류, 금융 분야의 연결성을 기반으로 동남아시아에 한국의 비즈니스 모델을 확산하는 전략도 가능할 것이다. 실제 싱가포르 투자기관들은 한국의 혁신기업에 주목하고 있다. 단, 한국 시장만이 아니라 아세안, 글로벌 시장을 지향하는 기업들을 말이다.
* 각주
1) https://www.investkorea.org/ik-kr/bbs/i-276/down.do?bbs_id=30&ntt_sn=72655&data_ty_cd=A&atfile_sn=1
3) https://www.jetro.go.jp/ext_images/invest/ijre/report2022/ijreJP2022_ch3.pdf
4) https://edbi.com/news/edbi-commemorates-30-years-of-investing-to-shape-singapores-future/
첨부파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