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이 넘으니 이제야 나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2024.02.20
얼마 전, 백화점 여성복 매장에서 함께 간 딸이 불쑥 말했습니다.
“어? 나, 다리가 얇아졌나?”
마음에 드는 옷을 입어 본 뒤였죠.|
“음, 글쎄~ 탈의실 거울 중에 좀 날씬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어.”
딸아이는 실망한 것 같았지만 거짓말로 기분을 맞춰주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싶었습니다.
진짜 모습은 원래 실망을 줄 때가 많은 법입니다. 나는 스스로 키가 작고 다부지게 살찐 체
형인 것을 옛날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야 내가 목이 짧다는 것을 깨달았
죠. 젊었을 때부터 깃이 좁은 옷을 입으면 답답해서 되도록 네크라인이 넓은 옷을 골랐었는
데, 그건 내 목이 짧았기 때문이었나? 싶었습니다.
남에게 뭔가를 배우는데 서툴다는 것도 수영장에 다니면서 처음 알았습니다. 선생님 말씀
을 못 알아듣기 때문이 아니라 선생님이 열심히 가르쳐주시는데 그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
는 나를 참을 수 없었죠. 그리고 나 때문에 기다리는 다른 수강생들에게 미안하기 때문이었
습니다. 결국 “이제 저는 안 가르쳐주셔도 돼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죄송해요.”라며 도망
치고 말았습니다.
수영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기초반 강좌에서 배워서가 아니라 혼자 힘으로 시행착오를 거친
결과였습니다. 생각해보니, 6년 채 안 되는 회사생활 이후에는 줄곧 프리랜서로 혼자서 일
해 왔습니다.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렇지 않았던 모
양입니다.
텔레비전도 본방송은 시청하지 않지만 녹화해서 부엌이나 욕실에서 재미있게 보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깨달았습니다. 나는 나만의 페이스가 무너지는 게 싫었던 것이죠.
50이 넘어서야 간신히 그런 나의 본질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대부분이 실망스러운 것 투
성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스스로 생각했던 것처럼 강한 인간이 아니
라는 것이었습니다. 갱년기 이후의 무기력함으로 그것이 확실해진 느낌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 모습을 모르는 게 좋았을까?”라고 반문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진
짜 모습이 아무리 엉망이어도, 어디가 엉망인지 알게 되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대책
도 세울 수 있고, 정말로 안 되겠다 싶으면 체념도 하게 됩니다. 날씬해 보이는 거울을 보며
만족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오십이 되었지만, 아직도 자신을 충분히 알지 못합니다. 지금 힘들다고 느끼는 부분, 잘 안
돼서 고민하는 부분이 스스로를 아직 모르는 부분일지 모릅니다. 그 점을 알게 되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삶은 ‘오더 메이드(order made)’ 인생입니다.
나만의 사이즈로 나만의 형태를 가진, 그 어디서도 팔지 않는 인생이죠. 스스로 주문해 만
들어진 인생입니다. ‘나를 안다’는 것은 나의 사이즈와 모습을 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실망하는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길 바랍니
다. 그리고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인생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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