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랜만에 왔다
그동안 절이 몸을 많이 불린 느낌이다
이렇게 많은 건물들이 절마당에 앉아 있었나
수덕여관엔 꼭 들르고 싶었다
이응로화백의 자취가 남아있는 이곳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어쩜 나는,
이화백의 본부인 마음을 더 읽고 싶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젊은 제자와 파리로 훌쩍 떠나버리더니
귀국해 동백림사건으로 감옥에 갇힌 남편.
지극정성 옥바라지하고
출옥 후엔 자신의 품으로 돌아와 몸을 추스르는 남편에게 또 지극정성을 다했을 그녀
남편의 마음은 파리에 온통 가 있는 걸 알면서도....
동백림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나와
본부인이 있던 이곳에 머물며 심신을 가다듬었던 한 예술가의 고독을 잠시 엿본다
너럭바위에 앉아 햇살에 마음을 널어 말리다가
불덩이가 솟아오를 때마다 바위를 쪼아대며 삭여내 만든 작품이 오늘날 충청남도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며 영고성쇠를 표현했다며 여기엔 네모습도 있고 내 모습도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다라는 작가의 설명이 있었다
문자 같기도 하고 추상화 같기도 한 바위그림에 작가의 마음을 대비시켜 본다
누군가는 하룻밤 쉬어갈 잠자리를 찾아들고
누군가는 마음을 다스리거나 요양을 위해 찾아들던 소박한 이곳을 천천히 둘러봤다
물소리, 바람소리가 베개밑까지 파고들었을 잠자리는 뽀송하고 청결했을 것 같다
어쩌면
부인 박귀옥여사는
이응로화백의 불덩이보다 더 강력한 것을 쏟아내려
툇마루를 윤이 나게 쓸고 닦고,
호청이불 벗겨내 빨아 널어 다딤이방망이로 두드리며 뽀얀 이불을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서로 어깨를 스치듯 배치된 지붕들이 멋진 선의 조화를 이룬다
저 문 활짝 열고
숲으로 뛰어들고 싶게 한다
이 바위가 여기 있었던가?
이 절에 와 본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수덕사가 고즈넉하다 느꼈던 것은
내 기억의 오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