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요. 이렇게 행복했답니다. 아직도 예쁘지요? - 여수에서
독문과 식구랍니다. LA에서 온 권윤식 동문, 대구의 이진흥동문, 웃기 참 힘들었죠잉 - 여수에서
송기철씨, 그렇게 재미있어요? - 여수에서
5월22일, 64학번 입학 50주년 기념식이 서강대학교 동문회관에서 있었다.
어느새 반백년의 세월이 흐르고 서강과 인연이 맺어진지가 50년이 됐단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그 숫자 앞에, 하지만 그것은 현실이다.
현 동기회 회장의 추진력과 집행진의 헌신적인 노력이 아니었다면 치러낼 수 없는
그 행사가 이년여의 준비 끝에 만남의 시간을 갖게 됐고, 미국, 캐나다, 싱가폴등지에서 찾아온 동기들, 진주,
경주, 대구, 대전, 군산등 지방에서 찾아 온 동기 포함, 80여명의 친구들이 모인, 동기들 모임 중 최대 인원이
참석한 감격스런 밤이었다.
80여명의 참석이 감격스런 숫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서강이기 때문에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초창기 서강
신부님들의 슬로건에 걸 맞는 참 알차고 아름다운 모임이란 거다. 숫자는 비록 미약하지만 비율 70%라는 것,
역시 ‘서강가족’이다
지난 50여년의 서강의 발자취, 동기 한사람 한사람의 흔적을 되돌아 보던 영상물, 오늘이 있기까지 헌신적인
봉사를 해줬던 고마운 동기들에 대한 감사의 시간, 모교에 기증한 5천만원의 기금 전달식등, 다채로운 행사로
전야제는 마무리가 됐다.
졸업 후 처음 동기 모임을 찾았노라는 친구들부터, 50년만에 만나는 동기들의 얼굴이 낯설어 이름표를 곁눈질로
확인하던 친구들까지, 그렇게 약간의 흥분과 설렘으로 밤을 보내고 23일 아침, 8시30분, 교대역에서 두 대의
대절버스에 나눠 타고 맛 기행 여행길에 올랐다. 홍영균 회장이하 현 집행부가 지난 1년여간 4-5차례의
사전답사로 고심하며 만들어 낸 남도의 맛집을 찾는 여행, 맛집과 함께 아름다운 남도의 주변 풍광을
함께할 수 있었던 일석이조의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산악대장 김용주님, 뭐가 마음에 안드셨어요? 옆에선 웃고 있는데 - 여수에서
우리는 화학과래요. 박의병, 박충상동문 - 여수에서
우리는 물리과. 홍일점 박순례는 너무 점잖아.
순례야 미안해, 수학과 커플이 재미 있어 자리를 옮겼어. - 물리과 서완석 - 여수에서
첫째 날,
중식부터 맛 기행의 시작이다.
담양의 떡갈비, 맛깔스런 전라도 특유의 밑반찬과 떡갈비로 모두의 미각이 탄성, 식후 담양의 대나무밭
걷기로 몸 단련 . 잘 다듬어 조성해 놓은 죽녹원의 길은 싱그럽고, 하늘로 곧게 뻗어 오른 대나무 사이의
푸른 하늘과 반짝이던 햇살에 걷는 틈틈이 탄성이 나오기도 했다.
몇 가지의 일정을 생략한 후 여수의 특급호텔인 디오션호텔에 여장을 풀고 가진 만찬행사.
모두들 타임머쉰의 기차를 타고 1964년, 그 어설프고, 풋풋했던, 약간은 수줍고 낯선, 하지만 서강이라는
이름의 캠퍼스에서 얻을 수 있을 미래에 대한 꿈과 설렘으로 가슴 부풀었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테이블
마주하고 앉은 사람이 머리가 반백이 되고, 눈가에 입가에 주름진 모습이란 걸 잠시나마 잊게 했던 시간이었다.
그 봄 날의 캠퍼스 어디에선가 주고 받았던 얘기를 기억해냈고, 석양이 지던 c관 캐프테리아에서 마시던 커피
한잔과 왕자다방을 기억해 내고 있었다. 풍성한 여흥도 흥겨웠지만 돌아 간 어린 시절의 유희는 더 더욱 즐거운
것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잡은 손길도 따듯했고, 우리에겐 익숙치 않은 껴안음 (hug)도 어색하지
않았다. 여수 밤바다의 바람결이 유난히 부드럽고 따듯했던 건, 모두의 가슴에 살아 난 훈훈한 기억들 때문 이었을 게다.
이게 뭐하는 짓이다요? 이영남 부회장님과 전임회장 최정소님.
하하하. 잘했어, 잘했어, 역시 이영남 부회장 최고야.
경영과 삼인방? 싱가폴의 최동무님 보이고, 경주의 정익영님, 가운데가 장동국님, 조금 웃어 보실래요
과에 구별없어요. 뱅쿠버에서 온 철학과 최임순님, 진주에서 온 철학과 박매자님, 영문과 김효선님, 사학과 안정숙님
뉴욕에서 온 송진님과 짝지, 오건환님, 윤영섭님
영문과래요. 저는 춘향이 박천애구요, 내 옆엔 향단이 박혜자구요. - 뉴욕에서 찾아 온 최광남동문에게
옆에 계신 분이 부인이세요?
모두의 가슴을 짠하게 했던 정창조님의 '가고파' - 고국이 그리워 많이 울었답니다.
홍영균 회장님, 노래까지 불러 흥을 돋구고, 댄서로 등극한 이영남 부회장과 향단이 박혜자님
우리 모두 다 같이 춤을 춰요.
회장만 하십니까. 나도 한곡 - 이영남 부회장 제가 있잖아요.- 양문자
여행 둘째 날
LA에서 달려온 이조안, 걱정했던 것 보단 씩씩하게 끝까지 함께 해 줘서 모두가 감사했답니다.
호텔에서의 조식은 풍성했다. 불편한 몸으로 행사 참여를 해줬던 이조안 동문이 맛있게 먹고 있던 아침, “뭐 먹고
있는거니?” "총각김치가 너무 맛있어.” 그 친구 별로 식욕이 좋은 친구도 아닌데 맛있게 먹는다. 모든 음식이 다
맛갈스러웠다. 구름이 낮게 드리워 걷기엔 딱 알맞은 날, 첫 행선지는 순천만 갯벌 갈대숲, 사계절 언제라도
낭만적인 풍광이 걷기에 기분 좋은 곳이다.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도록 잘 다듬어 놓은 갈대밭 사이의
통나무 길, 약간의 오르막이지만 숨 한번 고루면 걸을 수 있던 용산의 숲길, 여름으로 접어들며 우거진 나무 숲,
그 길을 걸으며 50년의 거리를 좁혀간다. 사는 이야기를 하고, 살아온 삶을 이야기한다. 긴 시간의 간격이 자꾸만
좁아져 간다.
벌교의 꼬막은 남도의 맛 중 대표적인 향토음식의 하나다. 점심으로 찾은 벌교의 꼬막집, 우아한 손놀림으론
맛이 살지 않는다. 손 씻고, 달라붙어 꼭 다문 꼬막의 문을 열면 향긋한 (다만 즐기는 사람에겐 향긋함이지만
싫어하는 사람에겐 비릿함이란다) 풍미와 함께 입안에 씹히는 그 쫄깃함이라니. 다행히(?) 꼬막을 싫어하는
이조안과 잘 먹고 있지만 까는 속도가 떨어지는 박천애 덕분에 꼬막으로 포식을 했다. 덕분에 꼬막 비빔밥은
거의 먹질 못했지만. 꼬막집을 찾아낸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음을 홍회장께 다시한번 감사를
벌교의 꼬막과 함께 잊을 수 없는 벌교의 사람, 조정래의 문학관도 찾았고, 순천의 낙양읍성을 찾아 잊혀져
가는 옛 모습을 돌아보기도 했다. 이제는 수령이 오래되어 그 숲에 들면 한낮임에도 어둑어둑해지는 오동도의
동백나무 숲길도 걸었고, 파도가 거칠게 치고 나가는 해안가 바윗길도 걸었고, 오동도와 여수 해안을 도는 선상
관광으로 한려수도의 끝자락의 맛도 보았다. 구름 끼던 하늘은 오후가 되며 걷히기 시작했고, 선상관광에 오를
때는 빛이 따가 왔다.
멋진 회로 석식을 갖었다.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회로 즐거운 저녁 식사를 끝내고 여수엑스포장에서 열리는
빅오쇼를 관람했다. 우의 하나씩을 챙겨 입고, 물기에 젖은 의자에 앉아 관람하는 쇼는 내게는 생소하고
신기했다. 멋졌다. 까만 밤 하늘, 배경처럼 깔리던 파도소리, 펼쳐지던 현란한 빛의 흐름, 잠시나마 우주 밖
어딘가를 부유하는 느낌이었다면 과장일까.
밤하늘을 수 놓았던 빅오쇼의 몇 컷,
여수의 야경은 매우 아름다웠다. 시내에 밝혀진 빛들은 보석처럼 반짝이고, 영롱했다. 가슴가슴마다 영롱한
보석 하나씩을 찾아내진 않았을까? 그렇게 신비스런 밤이었다.
셋째 날
허백련 화백의 수묵화 한 폭 같던 여수의 아침바다.
호텔 방에서 내려다 보이던 안개로 흐릿한 일출의 바다는 신비스런 한 폭의 그림처럼 창을 가득 채웠다.
오늘은 법성포의 굴비정식으로 중식을 병천의 순대국으로 석식을 하는 날이다. 나는 몸이 불편한 친구와
동행이 되어 7시 기차를 타고 서울을 가야한다. 병원을 시간 맞춰 가야한다며 올린 친구의 카톡에 눈물
흘리는 이모티콘으로 마음이 짠해, 걱정마, 내가 친구해줄께라고 큰소리쳤으니 굴비도 순대도 머리로
먹기로 하자. 다 풀지 못한 친구들과의 회포야 문자와 메일에밑기기로 하고,
끝까지 동기생 하나하나를 챙기는 회장은 여수역까지 이 친구 배웅을 한다.
덜컹이며 기차는 출발이다. 우리들의 애틋하고 아련한 추억여행도 이 기차와 함께 떠나갈 것이다.
3일 동안 살아 본 추억 속의 시간들,
응답하라 1964년이여. 너는 지금 어디쯤에서 숨 쉬고 있는가.
깨어나라 1964년이여. 우리의 가슴에 영원한 젊음으로.
우리들의 즐거웠던 시간들을 만나보실래요
첫댓글 이제야 사진다운 사진을 봅니다. 찍는 분의 혼이 살아있는 사진,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말씀은 과찬이시고, 움직이는 사람을 찍어 보는 것은 처음이라 촛점도 맞지 않고 흔들리고 했습니다.
노련한 기술을 갖고 있었다면 인상적인 모습도 많이 잡아 낼 수 있었을텐데요. 근엄하고, 점잖기만 하던 모습들이
어깨동무에, 유희 시간이 되며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모습으로 바뀌고 있던지, 그 날이 줬던 시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답니다.
김미자씨의 여행후기가 나오리라 예상했는데 한달이 지나서야 올리셨군요.
한달이 지나서 미자씨의 사진과 글을 보니 벌써 잊고있었던 50주년 행사와 맛기행이 새롭게 느껴집니다.
마지막날을 함께 보내지 못하고 조안리씨와 동행하여준데 대하여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읍니다.
영광 법성포 굴비 정식을 함께 못하였는데 특별히 미자씨를 개인적으로 법성포에 초대하겠습니다.
기대하고 계세요.
제가 얼마나 게으른지 아시겠지요? 핑게는 책을 보내는 작업이 제게 조금은 버거웠었다고 한다면 변명이 될까요? 보내느라 숨가빴던 것 만큼, 받지 못한 많은 분들이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헛일'했구나 싶게 허탈했습니다. 50주년 행사에 작은 보탬도 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으로 행사에 참석한 동문과 그 외 꼭 감사해야 할 동문들을 포함 우송해 드렸습니다. 참고로 받았다고 연락왔던 동분들과 제가 직접 전달한 동문들을 다음과 같이 알려 드립니다. 홍회장님, 정성스레 써 주신 댓글 감사합니다.
@mjk65 받지 못하셨다는 동문들껜, 죄송합니다. 일일이 전화로 확인하는 작업을 했어야 했는데, 그 과정을 생략한 게 그리 된 것 같습니다. 주소가 오랫동안 변경되지 않은 분들, 예를들자면 동문회에 등록된 주소와 일치하는 분들은 관할 우체국의 문제가 될 것이고, 동문회에 등록된 주소지와 지금 살고 계신 곳에 변동이 있다면 아마 전 주소지 번지로 투입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직접 전달한 동문 - 서완석, 정창조, 송기철, 송진 (송기철씨편에) 안정숙, 강경임, 최임순, 김승숙, 박희민,
차재윤, 이일우, 김석동
받았다 연락 온 동문 : 최응수, 이경영, 오준용, 이진흥, 이명조, 박순례, 김의창, 이경희, 정선희, 황복희,
김효선, 이동원, 최의광, 김현수, 홍영균, 이현규, 한억훈, 이흥섭, 손창욱, 이민우, 박매자
정익영, 오건환, 윤웅섭
역시나 기행문은 아무나 쓰는게 아니다...
미자의 맛갈스런 글과 행복이 넘치는 사진들은 다시 여행지로 돌아가게 하는 재주가 있어요...
고맙소... 미자야....
어찌됐던 간에 못받은 책자는 더욱 궁금해지고,, 아쉬워진다...
미자야,, 너무 속상해 하지 말렴... 그 책은 그냥 버려질 물건이 아니라서,,
우리가 못받았어도 누군가가 읽지 않을까 생각해.. 애독자가 더 생겼다고 좋게 생각하자꾸나..
며칠 내로 교보에 나가볼까 해요.. 분당 교보에도 있으려나
안그래도 내 팬이라 믿고 있던 juli씨의 댓글을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사진이 미숙해 스냅 사진이 잘 찍히지 않아 순간 포착이 어려웠어요. 몇명이 찍히면 누구는 예쁘게 나오는데, 누구는 밉게 나와 올리지 못하고, 경순씨는 그 날 예쁜 모습이 안 잡히더라구요. 그래서 juli씨 올라는 건 포기했답니다. 어제까지 총 6권 반송들어왔습니다. 핸폰 문자로 주소와 우편번호 알려주세요.
@mjk65 애구구~~~ 맙소사~~!!
찍어 올려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예쁘게 나오는 것까지 신경쓰니
내라면 안찍고 말겠당... 이렇게까지 힘들게 찍고 올리니... 정말 고맙소...
내사진 없는 건 괘안아요~~~ 그냥 편안하게 삽시다요... 아무것도 못하는 나처럼,,
@juli 경순씨는 가만히 조용히 뒤에서 남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즐기는 스타일이기 대문에 사진이
안나오는 것입니다. 미자씨도 마찬가지 이고.,...
난 사진 찍기만 즐기지 자상하게 골라서 즐거운 애기까지 곁드려서! 책 출판 했대서 큰 부자될것같아 부자친구 하나 생기나 했더니 있는 재산 축이날듯 하구나. 네가 쓰고싶은 책들 또쓰는게 이젠 걱정 되는구나. 어째든 고마워. 즐겁게 해줘서. 황 복희 사진도 안빠드렸구나. 건강해. 연화
부자친구? 그랬으면 나도 뽀다구나게 쓸 수 있었을텐데. 말이라도 고맙시다. 예쁘게 웃는 친구가 있어 올리고 싶었는데, 옆 친구 표정이 아니다 싶어 올리지 못했고, 꼭 올리고 싶었던 사람, 윤권식동문의 와이프, 어찌나 흥겹고 예쁘게 춤을 추는지, 내 동작이 느려 노치고 말았지. 사진으로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게 힘이 들더라고. 댓글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