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 길섶에서, 혹은 마당에서 민들레, 고들빼기, 취 등 먹을 수 있는 풀들을 보면
반사작용으로 침이 고인다.
도랑을 뒤덮은 돌미나리 군락이라도 발견할라치면 보물창고를 만난 듯 환희심이 차오르곤 한다.
이렇게나 순수하고 건강한 '먹이'가 바로 옆에, 앞에, 뒤에 지천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은
때때로 경이로움을 안겨준다.
시골에 살지만 그토록이나 소원인 터밭의 꿈을 아직은 이루지 못하고 있는 입장에서,
필요할 때마다 그저 '채취'만이라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골에 사는 특권을
대통령이 지닌 권한 못잖은 절대권력처럼 여긴다.
내가 사는 마을은 참 작고 소박한 곳이다.
등동마을!
'집이는 대문 간 풀을 왜 뽑지 않느냐'며 기분 나쁘지 않은 지청구를 놓곤 하시지만 김장김치도,
터밭의 솔(부추)이나 고수풀, 상추 등 당신이 가꾸신 푸성귀들을 언제든지 맘대로 뜯어다 먹으라시며
시골인심을 아끼지 않으시는 앞집 할머니,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를 타고 외출하시는 길에 역시 외출 길에 나선 나를 발견하면 저만큼 가시다가도
오토바이를 멈추고 내쪽을 향해 말을 건네며 '또 어디 가냐, 언제 오냐?'며 이웃인 앞집 아낙에 대한 관심을 숨기지 않곤 하시는 뒷집 할아버지, 그리고 마을 끝 뒷산 아래로 뚝 떨어져 있어 얼굴 마주칠 일이 별로 없는 육여사와 같은 육씨 가문의 종손집 아저씨. 나까지 모두 합해 열 집이 채 안되는 가구 수이다.
우리집 마당과 고풍스런 돌담장을 사이에 두고 이웃해 있는 이웃 없는 이웃집, 바로 옆집은 벌써 비어
폐가가 된지 오래다. 이처럼 작고 한적한 등동마을이지만 전에는 물론 여느 시골마을처럼
훨씬 더 많은 가구수가 살았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많던 마을사람들이 다 먹고도 남아 가축에게까지 주곤 하던 마을의 샘이 옛 영화를 간직한 채
언제나 그 자리에서 마르지 않고 샘솟고 있다.
지금은 앞집 할머니네 우사의 소들에게 식용수로 혹은 농사용으로 공급되고 있다.
맑은 그 샘물은 물맛도 아주 좋다고 하길래 차를 좋아하는 나는 그 물을 길어다 보이차를 달여
먹어봐야 겠다고 생각하곤 바가지를 들고 가 파란 샌드위치 판넬 조각으로 된 뚜껑을 열어보았다가
무당개구리가 펄쩍 뛰어오르는 바람에 놀라기도 하고 입맛이 떨어져 포기하고 말았다.
대신 샘가에 가득한 돌미나리 군락을 보곤 쾌재를 부르며 다시 집으로 가 미나리를 벨 도구인
주방가위와 대바구니를 들고 와 콧노래까지 부르며 가위로 싹둑싹둑 오려 바구니에 담아 왔다.
우리밀가루를 넣고 전을 부쳐도 좋았겠지만 '막걸리도 없는데 안주가 뭔 필요'냐며
생채로 겉절이를 해 먹기로 했다.
샐러드라는 외래어 보다야 겉절이가 얼마나 더 친근하며 맛깔스레 느껴지는가!
그렇다, 난 분명 '샐러드가 아닌 '겉절이'를 해 먹을 요량을 한 것이다.
마침 우리집 마당에는 순진짜참자연산 민들레도 여기저기 깔려있다.
그것도 도시사람들이 그토록 환장한다는 토종 흰민들레가 말이다.
전에 살던 사람이 너른 마당을 온통 시멘트로 발라놓아 풀들이 살기 적합한 환경이 못 되는데도
한 줌 흙이 남아있는 곳이라면 그야말로 여지없이 흩뿌려진 씨를 연착륙시키고 싹을 틔어
그 척박하기 그지없는 가운데서 용케도 자라나는 걸 보면 역시나 경이롭다.
물론 시멘트 틈새 피어난 귀하신 몸, 토종민들레에 대한 생명의 경외와 숨길 수 없는 나의 식탐이
동시에 피어오르긴 하지만 말이다.
집 뒤뚜란을 돌아가면 장독대 터에 장독, 항아리는 간 데 없고 돌나물이 잔뜩 깔려있다.
샘가 돌미나리와 마당 시멘트 바닥의 토종민들레, 뚜란가 장독대의 돌나물까지...
이건 의심없는 하늘의 집중적 축복이다.
하늘과 땅에 감사의 절을 잊지 않으며 천지의 축복 가득한 그것들을 경외심과 함께 균형잡힌 탐욕심을
조절하며 적.당.량.만. 취.한.다.
캐어다 먹을 이라곤 나밖에 없는데 욕심낼 일도 없다.
베어내고 돌아서면 오뉴월 볕이 금방 또 자라게 해 줄테니까.
마당의 우물가, 비록 엑셀수도관을 통해 흘러와 수도꼭지 끝에서 급수되는 것이긴 하지만 틀림없이
마을 뒷산 아래 공동 취수시설 우물로부터 흘러온 물을 받아 신성하기 그지없는,
혹은 먹음직스럽기 그지없는 돌미나리, 토종흰민들레, 돌나물들을 정성들여 씻어
플라스틱이 아닌 대바구니에 담아 물기를 뺀다.
고춧가루, 송송 썬 쪽파, 다진 마늘, 산야초 효소, 통깨, 중국산 말고 국산들기름, 집간장 등
우리나라 음식의 맛을 내주는 '갖은양념'들을 준비하면서는 입 안 가득 고이는 침을
주체할 수 없을 지경이 되고 만다.
풀들에 양념이 고루 배이도록 하는 한편 풋내가 나지 않도록 살살 버무려 투명한 유리그릇에 담아
맛을 본다.
말로는 설명하기 싫다.
문장 표현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어떤 말로도 자연의 그 맛을 표현해 내기에 부족하니까 그렇다.
없어서 이기도 하지만 '에너지와 환경을 생각해서' 라고 말하고 싶은데, 내겐 전기밥솥이 없다.
없는 건 전기밥솥 말고도 얼마든지 더 많지만...
남비에 불린 쌀을 약간 담아 가스불을 조절해 가며 밥을 짓는데, 한 번 해 놓고 두 세 끼니를 먹는다.
날이 더우니 굳이 다시 뎁히지 않아도 먹을 만하다.
비록 식은 밥 한덩이와 들풀 겉절이로 차린 밥상이지만 소박함이 클수록 생명력도 함께 커진다.
먹고살기 위해 풀을 뜯어 취하는 마음과 뜯으며 풀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마음.
내겐 분명 양면성이 있다.
풀에 대한 이런 식의 나의 태도는 분명 이중적이다.
사람에 대해 이중적인 것과는 다르지 않느냐며 합리화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아무튼 이중적인 그것조차 내가 지닌 진실이다.
천지부모가 주신 거룩한 생명의 밥!
지엠오, 화학첨가물, 잔류 농약성분, 비료성분 하나 없이 순결무구한 밥이다.
지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온 가장 높은 천지부모의 사랑!
나는 경배드린 후 천천히 곱씹고 또 곱씹으며 음미한다.
그것은 식사가 아니라 기도요, 명상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일찍 나온 초저녁 별이
지붕 끝에서 울기에
평상에 내려와서
밥 먹고 울어라, 했더니
그날 식구들 밥그릇 속에는
별도 참 많이 뜨더라
찬 없이 보리밥 물 말아먹는 저녁
옆에, 아버지 계시지 않더라
_詩 마당밥/안도현-
(산서로 귀촌한 이듬 해, 처음 맞이한 봄에 집 마당과 주변에 널린 '바른 먹거리', '생명의 먹거리'에 감동하며
썼던 게시물입니다. 오늘 귀농학교의 '나의 귀농이야기 '바른 먹거리' 주제 강의에 참고 삼기 위해
다시 올려봅니다.)
첫댓글 보기만해도 배불르고 행복합니다 내가원하고그리던것들이 다있군요 거기빈집있음 소개해주세요 시간도면 갈께요 만나고싶어요
벌꽃님 취향과 감수성이 저와 비슷하신가 보군요..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시길 기원하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 드릴 수 있길 바랍니다.. 제가 봐둔 맘에 드는 빈집도 하나 있긴 한데..ㅎ
도움될 만한 정보가 있을 경우 쪽지라도 드리죠..
제 연락처는 협의회 사무국에 문의하시면 됩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우리곁에 퉁성히 자라는 농촌풍경과 먹거리 생생하게 전해 주셧군요
그럼요 우리주위에는 영양가만점의 풍요로운 먹거리가 지천에 깔려있지요
김혜정님 좋은글 감사합니다.
모든 걸 사랑해 줄 준비가 되신
당신이 제일 아름답습니다
비 속에 감기 조심 하세요
김혜정님 감사합니다 조만간 한번 놀러갈께요
님의 글 속에는 우리 것의 소중함과 그리고 진정으로 귀한 것이 무엇 인가를
가르쳐 주시는군요. 부끄럽습니다. 소박한 우리 것의 소중함과 겸손함을 배우고 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