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마리는 허브의 일종인데 허브란 푸른 풀을 의미하는 라틴어인 'Herba'에서 유래된 말로 잎이나 줄기나 뿌리 등이 식용이나 약용으로 쓰이거나 향을 이용하기도 하는 식물의 총체를 뜻하지. 그 중 로즈마리는 지중해 연안에 원산지를 둔 다년초, 상록 저목이고 병충해도 별로 없고 건강하고 튼튼하고 직립성 타입과 옆으로 퍼지는 포복성 타입 잠깐, 그러니까 내 로즈마리는…."
"직립성이야."
"응, 그래 직립성. 그래서 내 말은…."
"잠깐. 지금 몇 신줄인지나 알아?"
그녀의 목소리엔 짜증이 섞여있습니다. 침묵사이, 그는 또 한번 지치고 말았습니다. 어떤 의미로든 그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고 그런 감정의 시작으로 그는 말했습니다.
"내 로즈마리가 죽어가고 있어."
그녀는 더 이상 잠들 수 없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습니다. 형광등을 켜면서 그녀는 수화기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옮깁니다. 한참을 깜박거리던 형광등 아래서 그녀가 서성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왜 서성이고 있는 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걸 알고 서성이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그것이 형광등 아래라면 말입니다.
"안됐네."
라고 십 분 뒤 그녀가 말했습니다. 어쩌자고 그녀는 저리도 무심한 말을 한 걸까요? 그러나 마땅히 할만한 대답이 없었다는 걸 그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흙에 묻어줄 거야?"
"어차피 뿌리는 흙 속에 묻혀 있는 걸."
"그럼 잎이랑 줄기만 묻어버리던가, 뿌리는 내놓고."
그는 참지 못하고 웃어버렸습니다. 그녀는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그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흠칫 놀랍니다. 평소에 그의 웃음이 그랬다는 것을 그녀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까닭입니다.
"좋은 생각이지만 한가지 네가 오해하고 있는 게 있는데 내 로즈마리는 죽은 게 아니라 죽어가고 있는 거라고."
"어차피 죽을 거잖아."
"그건 모르는 일이야."
또 다시 침묵 사이. 그녀는 테이블에 수화기를 내려놓은 대신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듭니다. 라이터를 한참 찾다가 결국 포기하고 부엌으로 향합니다. 가스레인지의 불을 켭니다. 오른손으론 머리카락을 잡고 왼손으로 담배에 불을 붙입니다. 무척 조심한 탓에 지난번처럼 머리카락에 불이 옮겨 붙진 않았습니다. 깊게 한 모금을 들이마신 후, 약간의 물이 담긴 주전자를 그대로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습니다. 커피잔을 꺼내고 흑설탕과 커피를 한 스푼씩 넣은 뒤 그제야 생각난 듯 수화기를 가지러 테이블로 갑니다.
"미안.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못 들었어."
"아무 말도 안하고 있었어."
그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습니다. 실로 그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로즈마리를 걱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살릴 방법이 없을까?"
"상태가 어떤데?"
그녀는 입안에 머금은 연기를 조금씩 내보냅니다. 조그맣게 오므린 입에서 잠시 휘파람소리가 납니다. 물이 끓으려면 아직 먼 듯 합니다.
"잎이 마르고 누렇게 변해버렸어."
"흙은 습하지 않고?"
"네 말을 들어보니 그런거 같기도 해."
"로즈마리는 다습한 상태로 오래도록 놔두면 뿌리가 썩어가면서 죽어. 우선 한동안 물 주지마. 물 준다고 다시 살아나는 게 아니야. 어째 너는 뭐든지 부족한 걸 채우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하지만 그게 최선인 걸."
"너다운 말이지만 최선이 최선의 결과를 만들진 않아."
"그 정돈 나도 알아."
"알면 됐어."
후. 한숨과 침묵사이. 그는 수화기에서 담배냄새를 맡습니다.
"다시 담배 피기 시작한거야?"
"응, 그날부터."
"결국 죽어버리는 걸까?"
"그럴지도."
"불쌍하네, 로즈마리."
"입이 마르고 노래진 건 찬바람을 많이 쏘여서 그래. 겨울에 자주 그러거든. 비닐을 씌우면 푸른 상태로 항상 유지될 거야."
"저기, 지금은 여름이야. 겨울이 아니라고."
"아."
담뱃재가 툭하고 카펫에 떨어집니다. 그녀는 황급히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꺼버립니다.
"미안. 요즘은 도무지 알고 있는 게 하나도 없어."
수화기에선 짧게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옵니다.
"사실은 나도 그래."
그의 목소리에 그녀는 잠시 안도합니다. 그 안도감이 곧 무겁게 그녀를 짓눌러왔지만 말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이 로즈마리, 꽤 오랫동안 우리집에 있었던 거 같은데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집에 있었던 건지는 도무지 기억이 안나."
"작년, 7월 6일이었어."
"정확하게 기억하네."
"잠깐만. 물이 끓고 있어."
그녀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부엌으로 향합니다. 주전자에서는 희뿌연 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녀는 가스불을 끄고 밸브를 잠갔습니다. 그리고 허리에 손을 얹고 잠시 한숨을 내쉽니다. 주전자를 들어 잔에 물을 가득 붓습니다. 원래부터 그녀는 까다로운 여자가 아니라서 인스턴트 커피향에도 무척 만족스러운 듯 보입니다.
"커피 마시는 거야?"
티스푼을 저으며 다시 든 수화기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대답대신 그녀는 수화기를 댄 채 후르륵 한 모금을 마십니다.
"또 소리내면서 마시네."
"왠지 잘 안 고쳐지더라고."
그는 다시금 키득거리기 시작합니다.
"우리 아버지도 내내 그랬지. 어머니는 그걸 견디지 못해서 아버지를 정말 미워했었어. 같이 못살겠다고 늘 칭얼거릴 정도 였지. 커피 소리내면서 마시는 게 그렇게 싫을까?"
"훗. 여자는 정말 사소한 부분에서 남자를 못 견딜 때가 많아."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
"뭘?"
"7월 6일."
그녀는 짧게 숨을 들이킵니다. 그녀는 식탁 위에 걸터앉았습니다. 남자는 신경쓰지 않고 계속 말을 합니다.
"갑자기 기억이 나더라고. 그 날, 네가 참 아끼던 허브를 내가 깨버렸지. 그 허브도 로즈마리 였나?"
"응, 맞아."
"정말이지. 사람이 그렇게 울 수 있다는 거 처음 알았어. 너 완전히 어린애처럼 꺽꺽거리면서 울었잖아."
잠시 소리없는 웃음 사이. 그녀는 멋쩍은 듯 입맛을 다십니다.
"너무 당황해서 당장 새 화분을 사다준다고 했는데도 넌 계속 울었어. 나중에 알고 보니까 네가 아낀 건 허브가 아니라 그 화분이었던 거였지. 엄마가 줬던 거라고 했었나?"
"응. 그렇게 말했어."
"그래서 곧장 꽃집에 가서 로즈마리를 두 개나 사가지고 왔지. 하나는 네가 갖고, 하나는 내가 갖는 걸로."
"맞아. 내 건 아직도 잘 지내고 있어."
"그치만 내가 준 것 중에서 네가 가장 기뻐하지 않은 게 그거였다고 나는 생각해."
그녀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십니다. 식탁에 내려놓는 커피잔이 달그락 소리를 냅니다.
"이제와서 말하자면 그때부터 난 널 견딜 수 없었어."
"그랬을지도."
"응, 정말 그랬어."
"엄마가 준 게 아니었군."
또 다시 침묵 사이. 그녀는 커피잔 손잡이 안을 검지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아다닙니다.
"그런데 그 때 깨진 화분 안의 로즈마리는 어떻게 했지? 설마 흙 속에 입이랑 줄기를 묻어 버린거야?"
"잠깐. 그 때 아마 먹어버렸던 거 같아."
"뭐? 먹었다고?"
그는 정말로 놀란 듯 큰소리로 말해버렸습니다. 그녀는 미간을 잠시 찡그렸지만 그가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더욱 찡그리고 말았습니다.
"응. 그때 닭고기 구이에 넣어버렸어. 너도 같이 먹었잖아."
"그걸 말하는 거구나."
그는 수화기 사이로 음 하고 소리를 냅니다. 그녀는 그 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마십니다. 커피는 아직 반이나 남아있었습니다. 비록 미지근해져버렸지만 말입니다.
"그래. 좋은 생각이 났어."
"뭔데?"
"나도 내 허브를 먹겠어."
"좋은 생각이긴 한데 죽어가는 로즈마리를 먹었다간 네가 죽을지도 몰라."
"먹든지 먹히든지 둘 다 괜찮은 결과인 걸."
"바보."
그녀는 진심을 담아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은 듯 분주히 무언가를 준비합니다.
"그 요리 어떻게 만드는 거야? 적을 준비 됐으니까 천천히 말해봐."
"진짜 해먹으려고? 재료는 어떻게 구하려고."
"어떻게든 구할 테니 설명이나 해줘."
"알았어."
그녀는 몹시 난감했지만 기억을 더듬어 요리 순서를 기억해냅니다.
"우선 닭다리가 필요해. 마늘과 로즈마리는 다져놓고, 소금이랑 후춧가루가 있으면 돼."
"닭다리랑 다진 마늘과 로즈마리……."
"닭다리는 깨끗이 씻어서 두꺼운 부분에 칼집을 내야 돼. 넌 대충대충 하니까 꼭 깨끗이 씻어야 돼."
"알았어."
"그리고 마늘, 로즈마리, 소금, 후추를 모두 섞어서 닭다리에 비비듯 손으로 문질러 줘."
"얼마만큼 넣어야 하는데?"
"말론 설명 못 해. 네가 보기에 적당량을 하면 되겠지. 너 의외로 눈썰미 있잖아."
"그렇군. 그 다음엔?"
"오븐을 예열해 놔야해. 180도 정도로. 양쪽을 뒤집으며 삼십 분 정도 구워주면 되는 거야."
"엄청 간단하네."
"응. 그러니까 내가 해먹을 수 있던 거지."
"그치만 우리 집엔 오븐이 없는 걸."
그는 무척 아쉽다는 말투로 말을 했습니다.
"네 집에 있는 오븐 참 좋았는데 말이지."
그럼 내 것이니 당연하지. 그녀는 조용히 말을 삼켰습니다. 그런 유쾌한 말을 할 수 없다는 걸 그녀가 잘 알기 때문입니다.
"프라이팬 있지? 거기다 구워도 돼. 단 위에 뚜껑을 덮어둬야 하거든. 전골 냄비 같은 큰 뚜겅을 찾아서 덮어놔."
"그래도 괜찮을까?"
"뭐, 오븐에 굽는 것보단 맛이 없겠지만 정 먹고 싶다면."
"오케이. 알았어."
그녀는 잠시 커피잔을 바라봅니다. 갑자기 당겨오는 식욕을 그녀는 무척 낯설어 합니다.
"갑자기 나도 먹고 싶어졌잖아."
"뭐 좀 이른 아침이라 생각하면 되잖아."
"아직 해도 뜨지 않았다고."
그녀는 잠시 투덜거려 봅니다.
"닭고기는 또 어디서 구해? 이 시간에."
"아, 냉동실에 있던 닭다리 먹어버렸어?"
"응? 무슨 소리?"
"냉동실 찾아봐. 거기에 닭다리 두 개 정도 남아 있을 거야. 그 전에 먹지 않았다면 말이지."
그녀는 그의 말에 따라 어느새 냉장고 앞에 서 있습니다. 그녀가 열어본 냉동실 안에는 그의 말대로 꽁꽁 얼어붙은 닭다리 두 개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시릴 정도로 차가운 닭다리를 들고 와 다시 수화기를 듭니다.
"정말이야. 있었어.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거지?"
"글쎄, 언제부터 거기 있었던 걸까나."
그는 조금 능글거리는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그녀는 푸르게 자라고 있는 그녀의 로즈마리를 바라봅니다.
"내 로즈마리는 멀쩡한데. 먹어버려야 하는 건가?"
"어차피 죽은 거나 다름없는 걸. 네 로즈마리도."
"그렇겠지?"
"응. 그렇다고 생각해."
그녀는 단단히 결심을 합니다.
"나도 먹을래."
그가 소리나게 웃었습니다. 그녀도 덩달아 소리를 내며 웃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어."
마지막 침묵 사이. 사위가 조금 밝아진 듯 한 느낌에 그녀는 잠시 어지러워집니다.
"그럼 아침 잘 먹어."
통화가 끝나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습니다. 그녀는 손에서 녹아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닭다리를 들고 부엌으로 향합니다. 그리곤 분주하게 요리를 준비합니다. 마늘과 로즈마리를 다지고 닭다리에 깊은 칼자국을 남깁니다. 반쯤 남은 커피를 개수대에 버리고 다시 물을 끓이기 시작합니다. 커피와 로즈마리 닭고기 구이. 참으로 호사스런 아침이라고 그녀는 생각합니다. 적당히 예열된 오븐에 닭다리를 올려놓고 굽습니다. 삼십 분이란 시간이 참으로 느릿하게 흘러갑니다. 그 사이 담배 한 개비를 더 피웁니다. 잘려진 로즈마리 화분을 그대로 쓰레기봉투에 안에 담아버리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TV를 켜니 어느새 여섯 시를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옵니다. 다 구워진 닭고기 구이를 접시에 담고 커피를 따라 식탁에 올려놓았습니다. TV에선 아나운서가 오늘의 신문의 몇몇 기사를 친절하게 읽어주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머금은 뒤 닭다리를 들었습니다. 로즈마리의 향과 닭다리의 뜨거운 기운이 잠을 자지 못해 민감해진 그녀의 피부에 와 닿았습니다. 조심스레 한입을 베어 물었습니다. 갑자기 그녀는 목이 메임을 느낍니다. 먹든지 먹히든지 둘 다 괜찮은 결과인 걸. 그녀는 목이 메여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녀의 외로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