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유기질지우(父母唯其疾之憂)
<논어> ‘위정’편에서 공자(孔子)는 맹무백(孟武伯)이 효(孝)에 대해 묻자
“부모는 오직 그 자식이 병날까 그것만 걱정하신다(부모유기질지우)”라고 답했다.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고 한다.
보고 있어도 늘 보고 싶어서 아예 눈 속에 넣어 가지고 다닐 셈으로 실제로 눈에 넣는다 해도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리라.
이토록 소중한 자식이 병에 걸려 고통스럽게 앓는다면 부모의 마음은 찢어질 수밖에 없다.
부모의 마음을 그토록 아프게 했으니 이보다 더 큰 불효는 없다.
반세기 전만 해도 우리나라 대한민국 하면 이 지구상에서 삼강오륜과 어른을 공경하는 장유유서의
미풍양속과 조상숭배정신과 부모공경의 예절이 가장 으뜸인 나라라고 서양인들이 칭송했다.
심지어는 이웃 나라 일본이나 중국에서까지도 한국인들의 모범적 예절 문화와 효 사상을 높이
우러를 정도로 부러워하지 않았던가!
지구상에서 가장 못산다고 하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행복 만족도가 세계 1위라는데 그 이유를 알아보니 낳아준 부모공경과 자기 분수에 만족하는 ‘훈훈한 마음이 부자’라고 한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라는 말이 있다.
후회(後悔)란 현재가 아닌 과거에 일어난 잘못한 일에 대한 뉘우침이다.
따라서 선행(先行)이 불가능한 인간의 행위다.
하지만 사람의 삶에는 예측가능한 일이 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삶이 각자 다르다고 하지만 늘 반복되는 행동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말들은 고사성어에 담겨 있기도 하고, 속담으로 남아 여전히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겨울잠을
자다가 때가 되면 부스스 깨어 고개를 내민다.
많은 사람들이 후회하는 것 중 하나를 뽑으라면 단연 ‘효(孝)’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내리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은연중에 희생을 강요한다.
자식의 부모에 대한 사랑은 ‘치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늘 부족함을 강조한다.
부모를 여읜 사람들 중 열의 아홉은 하나같이 말한다.
“계실 때 효도해. 돌아가시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라고 말이다.
그리고는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오는 구절을 읊조린다.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부모에게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전국책/제책> 에 이르기를 왕손가의 어머니는 “네가 아침에 나가서 늦게 돌아오면 내가 문에 의지하여 너를 기다렸고,
네가 저물 무렵 나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내가 마을 어귀의 문에 기대어 너를 기다렸었다”고 말했다.
지금 사람들은 ‘근심과 걱정은 부모의 직업이다’라고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의 자식에 대한 걱정은 한 치의 변함도 없이 한결 같다.
따라서 부모의 걱정을 덜어 주는 것이 자식의 도리이고, 하나의 효(孝)다.
“걱정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티베트의 속담이다.
우리네 삶에서 고통, 고난, 걱정은 버릴 수 없는 인생의 동반자다.
따라서 참을 인(忍) 세 번(忍 忍 忍)을 짝꿍 삼아 기꺼이 즐길 수 있어야 비로소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고전에 길을 묻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