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단평 ＜꽃을 통해 허공을 말하는 법＞ 시 / 박남희, 단평 /김세영

[김세영]

-시단평 리뷰

꽃을 통해 허공을 말하는 법

                             시 / 박남희, 단평 /김세영

나는 어느 날

당신이 말하는 것이 허공을 말하는 것 같아

당신이 문득 꽃으로 느껴지기 시작했지

꽃은 자신이 허공에 있다는 것을 모르지

자신의 안에 허공이 있다는 것도

하지만 뿌리는 꽃을 통해 허공을 말하는 법을 알고 있지

그런데 한차례 꽃이 피어나고 시드는 허공의 이치를

뿌리는 왜 끝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인지

그러면서 실뿌리는 점점 땅 속 깊이 뻗어가

낯선 돌을 만지고 샘을 더듬다가

어둠의 차디찬 깊이를 만나고 끝내 꽃을 떨구게 되지

아름다움은 모두 한차례의 흔들림으로 기억되는 것인지

허공은 자꾸만 꽃을 흔들고 꽃은 점점 외로워지지

그렇게 꽃은 떨어져 시들어가지

꽃이 외롭게 흔들리다 만들어낸 흔적이

다시 허공이 된다는 것을 바람은 알고 있지

그렇게 만들어진 텅 빈 커다란 꽃이 허공이라는 것을

아무도 가르쳐주는 이가 없어도

허공은 텅 빈 꽃으로 날마다 새롭게 피아나지

당신과 내가 마주보며 흔들려서 만들어낸

바람의 빛깔, 저 허공의 언어가

꽃이라는 것은 영원히 당신과 나만이 알지

-「미네르바」 2009년 봄호

‘꽃은 자신이 허공에 있다는 것을 모르지 / 자신의 안에 허공이 있다는 것도’라는 구절을 읽으면,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의 핵심 사상인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을 시적으로 형상화했음을 느낄 수 있다. 꽃은 색色 즉 존재의 대표적 현상現象 즉 이미지이다. 허공은 인식론적 공간으로서 존재의 색이 있을 때만 인식된다. 존재의 본성은 공空 즉 무無를 뜻한다. 색은 공의 일시적 현상인 것이다. 존재의 근원인 뿌리는 꽃을 피우고 꽃을 떨구어, 우리에게 허공을 인식시키고 그 이치를 깨닫게 한다는 것을, 시인은 ‘뿌리는 꽃을 통해 허공을 말하는 법을 알고 있지’라고 표현하고 있다.

‘꽃이 외롭게 흔들리다 만들어낸 흔적’ 즉 생의 모습은 잠시 기억으로 남아 있다가 바람 즉 시간과 함께 사라져서 다시 허공이 되고 만다. 그래서 봉오리 속에 허공을 품고 있는 꽃은 ‘아름답고 슬프다’ 라는 복합적이고 갈등적 정서를 우리에 안겨준다. 존재와 사멸이라는 주제는 문인이라면 한번쯤 심각하게 다루어보는 거대한 철학적 명제이다. 평자도 「상象」이란 제목의 시에서 ‘빛덩이로 맺혀있던 빈 자리 / 어둠이 먹물처럼 번져서, 순식간에 / 관棺 위에 흙을 덮듯이 채워버리고’ 라고, 존재가 사라진 뒤의 적멸을 형상화하여 보았다. 윌리엄 워즈워드도 「초원의 빛」이란 시에서 ‘초원의 빛이여! / 꽃의 영광이여!/ 그것이 돌아오지 않음을 서러워 말고 / 그 속에 간직된 오묘한 힘을 찾으리니’라고 표현했는데, ‘오묘한 힘’이란 만물의 생멸生滅을 지배하는 우주의 원리 즉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순환원리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본다.

‘당신과 내가 마주보며 흔들려서 만들어낸 / 바람의 빛깔, 저 허공의 언어’ 라고, 꽃 즉 사랑의 자태와 소리를 표현하였다. 허공은 ’텅 빈 꽃으로 날마다 새롭게 피어나’서 생명성을 얻게 되고, 꽃은 ‘영원히 당신과 나만이 아’는 아름다운 기억으로서 허공을 가로지르는 영원성을 얻는 것이 아닐까? (김세영/시인)